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38화 (38/188)

If someone hates you for no reason - 4

< 1 >

솔직히 나는 구단의 기획기사도 무척 불편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수할 생각을 갖고 있다. 파드리스가 드래프트 지명으로 내게 기회를 준 팀이라면, 자이언츠는 산하의 팜에서 성장한 것도 아닌 루키에게 과감히 선발을 맡겨준 팀이니까.

언젠가 프린츠가 기획기사에 대해 했던 말이 있다.

“San Francisco Baseball Associated LP가 자이언츠 구단주라 했잖아. 32명의 투자자 집단이고. 32명의 의견이 일치하기 쉽겠어? 존슨의 지분이 가장 많다 해도 겨우 25%야. 여러 주장이 갈리기 마련이고, 팀 성적이 바닥이어도 루키들 기용엔 반대하는 투자자도 있어. 추락한 팀 성적을 회복하려면 차라리 가치가 증명된 대형 FA영입이나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강화하자는 쪽이지. 지금 루키들을 빅 리그로 올리는 걸 기획한 쪽이 누군지 몰라도 그 당위성을 포장해서 반대편을 압박하는 거라고 보면 돼.”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전에도 부자였던 프린츠다.

프린츠가 아닌 프린츠 집안이 부자겠지만 그건 넘어가고.

어쨌든 구단이 돌아가는 사정이나 투자자 집단 내에 존재하는 파벌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으니 했던 말이다.

이해가 갔다.

야구에도, 구단운영에도 정치적인 요소는 있지 않겠나.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 구단주가 한 사람이면 독단적 운영이 문제가 되고 여럿이면 의견이 갈려 갈팡질팡하는 것.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난 내가 원했던 야구만 계속하고 싶을 뿐이다.

팬이 없으면 존재할 의미도 없는 프로스포츠를 하며 언론에 노출되길 아예 거부하긴 무리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알지만 그래도 선을 넘어가는 과도한 띄우기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날 야구가 아닌 구단정치에 이용하는 것도 싫고.

그렇게 나를 과도하게 띄우는 기사도 마땅찮은데 내 과거 성적과 현재를 비교하며 소설을 써댄 기사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 좋을까? 구단에서 나름대로 대처를 하겠지만 이건 내 개인에 대한 매우 악의적인 공격이다.

- 젊은 선수들이 언제든 빠질 수 있는 유혹.

- 재능의 부족을 노력이 아닌 편법으로 극복하는 선수?

재능이 부족하다? 인정해.

그 부족한 재능, 매니지먼트와 계약이 없었다면 채우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 계약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진 않았어.

내가 땀 흘린 시간마저 부정당하고 참을 순 없지.

< 2 >

- 그리즐리! 이번엔 퍼펙트라도 했어?

이틀 연속 내게 전화를 받은 제시의 반응이다.

어제 숙소에 돌아와 수백 개는 쌓였던 축하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주고 에드를 비롯해 가족들과 통화도 했었다. 물론 영감님께도 전화를 드렸고.

미안하지만 오늘은 다른 용건이다.

“혹시 제러드와 선이 닿은 기자들 있어?”

- 무슨 일인데? 사고 쳤어?

아직 그 기사를 읽지 않은 모양이다.

악의가 철철 넘쳐흐르는 기사내용이라 내 입으로 말하긴 싫지만 전화를 건 용건을 설명하려면 알릴 수밖에 없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걸 크러쉬 제시는 내 설명이 끝나자 당장 걸쭉한 욕설을 퍼부었다.

- 미친 자식이네. 법적인 대응도 가능해.

“법적인 대응을 하려고 했으면 변호사를 찾았지.”

- 내가 변호사야.

“제시는 안 돼.”

- 왜?

“소송을 거는 대신 그 기자 목을 부러뜨릴 거잖아.”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날 괴롭히던 녀석들이 있었다.

아직 내 체구도 자그마했을 때 일이고 녀석들은 제시 또래로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괴롭힘을 당한 걸 알고 제시는 그 중 한 놈의 코뼈까지 부러뜨려 놨었다.

자기도 날 못 살게 굴었으면서.

어쨌든 제시가 나서면 그 기자 영혼까지 털어버릴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적당히 언론을 이용해야할 에이전트가 그와 반대로 언론과 대립하는 그림이 나온다. 자칫 기자들 전체가 제러드의 에이전시와 내게 반감을 가질 수도 있고.

- …… 그럼 네 생각은 뭔데?

“꼭 내가 칼을 휘두를 필요는 없잖아. 대신 싸워줄 용병을 구하고 난 야구만 할 생각이야.”

- 네가 말하는 용병이 같은 기자라는 거지?

“그동안 거절해왔던 개인인터뷰도 좀 해주고, 이런 터무니없는 의혹이 나올 때면 개싸움은 기자들끼리 하게 만드는 거지.”

- 곰탱이가 머리 쓰는 건 완전히 여우네.

“최선을 지향한다고 해줘.”

기자들 내에서 아군을 만들긴 어렵지 않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언론접촉을 사양해왔던 선수가 노히터까지 달성해 관심도가 높을 때 개인인터뷰 및 떡밥을 잔뜩 내준다.

주로 객관적 시각을 가졌다는 평을 듣고 여론형성에 영향력 있는 기자들 위주로. 거짓으로 포장해달란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날 오픈하는 건데 싫어할 이유가 없겠지.

그들은 직접 내가 밝힌 이야기나 검증된 사실만 이야기하는 거겠지만, 내게 악의를 품은 이들과 싸우는 결과가 발생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오글거리는데 성적 좋고 화제성을 갖춘 선수의 배려다. 이 배려의 의미를 안다면 기꺼이 내 대신 거짓 의혹에 맞서 싸워줄 거라 믿는다. 그 참전 자체가 그들에겐 좋은 기사거리가 되니까.

직접 대응하는 것보단 이게 최선이다.

야구에만 온전히 심력을 쏟을 수 있는 방법이고.

- 제러드에게 물어볼게. 오래 안 걸릴 거야.

“그래. 부탁해.”

- 너 신경 굵은 거 알아서 큰 걱정은 안 하는데, 알지?

“알아. 그냥 내가 흘린 땀까지 무시당하는 건 싫어서 그래.”

- OK. 넌 야구에만 집중해.

전화를 끊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나만 아는 진실을 말하자면 난 분명히 치트키를 쓰고 있다.

꼭 금지된 약물로 근력이나 지구력, 회복력을 높이지 않았어도 내가 받은 특전 덕분에 9회까지 거의 최고구속을 유지한다.

Scope!를 비롯한 보너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그 특전과 보너스를 얻어낸 건 나 자신이다.

거저 얻지도 않았다. 땀의 보상으로 받은 특전이고 승리의 대가로 주어진 보너스다. 특전과 보너스를 이용한다고 매 경기 모두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 해도 좋다.

뻔뻔하게 이용하며 더 앞으로 나아갈 거다.

특전과 보너스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노력할 거고.

어제는 내 야구인생에서 최고의 날이었다.

그리고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찬물을 뒤집어썼다.

내 코딱지만한 양심과 실질적 계산 때문에 법적 대응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지만, 기사를 쓴 기자가 증명할 수 없는 의혹을 그저 악의로 둘둘 싸 세상에 내보낸 것도 사실이다.

이유 없이 날 엿 먹이고 싶었다면 그 엿 되돌려준다.

< 3 >

노히터를 했어도, 쓸데없는 논란에 휩싸였어도 야구는 계속 된다.

오늘도 역시 경기는 있었다. 그래서 어제 파티에서도 맥주 하나가 부담스러워 소다수만 들이킨 동료들도 많았다.

따악!

오늘 상대팀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작년 시즌에 와일드카드를 노렸다가 막판에 떨어져나가며 눈물을 흘렸고, 올해는 대놓고 리빌딩에 들어갔다.

자이언츠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어쨌거나 내셔널스를 상대로 팀의 1-2-3선발을 차례로 투입한 결과가 루징시리즈였다. 다행히 연패는 끊었어도 타선이 불타오르는 팀과 또 만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발진에 파간과 카라스코가 남아있지만 스톤햄을 대신해 급하게 리버캐츠에서 올린 카시니가 조금 문제거든.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너무 긴장을 심하게 하고 있다.

내셔널스나 다저스 같은 팀의 타선을 만나 초반에 무너지면 앞으로 쭉 자신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파드리스에겐 조금 미안한 말이어도 약체를 상대로 호투를 하게 되면 조금 나아지겠지.

이제 자이언츠가 최소한의 타격지원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중이니 마음이 놓일지도 모르고.

“앰브로즈! 달려!”

“굿 잡! 앰브로즈! 그래, 루키들이 차례대로 미치는 거야.”

기세, 흐름.

객관적 지표로는 절대 증명하지 못할 부분이다.

앰브로즈가 어제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홈런을 때려내더니 오늘도 저렇게 날아다니는 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 단순히 요즘 타격감이 좋다고? 아니다. 저게 기세다.

팀에도 기세와 흐름이 있고 개인에게도 있다.

카시니도 출발부터 좋은 기세와 흐름을 타면 좋겠다.

1회 말 자이언츠는 앰브로즈를 시작으로 3안타 1볼넷을 묶어 2점을 먼저 얻고 앞서 나갔다.

그리고 2회부터 4회까지 계속 1점을 뽑고 5회는 쉬어가는 이닝.

파간이 1실점을 했지만 승기는 이미 자이언츠에 있었다.

파간이 지구력이 약해 박빙의 승부일 때는 본인 스스로 마운드를 내려가길 원하는데, 오늘은 6회까지 마운드를 맡았다.

헌신하는 투수에게 승리와 QS를 챙겨주려는 감독의 배려였다.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는 게 강팀의 조건.

자이언츠는 오늘 파드리스를 상대로 강팀의 면모를 보여줬다.

파간이 6회까지 던졌고, 하웰과 프린츠가 이어 던지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최종스코어가 6:1이라 네리스가 세이브를 할 기회도 없다며 투덜거렸지만 웃자고 하는 소리.

모두가 만족할 완승이었다.

그런데.

“실례합니다. 사무국에서 나왔습니다.”

MLB 사무국에서 불시에 직원을 파견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를 비롯해 리버캐츠에서 올라온 루키 전원이 혈액과 소변 샘플을 넘겨줘야 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자이언츠의 선전에 일부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고, 사무국은 의혹의 조기진화를 위해 도핑테스트를 결정한 거다.

오늘 오전 구단의 갑작스러운 메디컬 테스트 요청.

언론이 없는 의혹도 만들어낼 수 있다던 감독의 경고.

당장 오늘 경기가 끝나면 사무국에서 불시조사를 나올 걸 짐작했던 게 아닐까? 경기 시작 전에 제시에게 전화를 할 때만 해도 난 당장 오늘 조사를 받을 거란 생각은 없었는데.

“표정이 왜 그래?”

“나 때문에 너희가 피해를 받는 것 같아서.”

“조! 누구도 널 의심하지 않고, 그 누구도 너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생각하지 않아. 한때 메이저리그에 약쟁이 전성시대가 있었던 건 너도 알지? 그 뒤로 튀는 성적을 내면 누구나 약물 의심을 받았던 게 사실이야. 또 오늘처럼 음해의 수단도 됐고. 특히 자이언츠는 본즈 때문에 그런 의심도 음해도 많아.”

리키의 눈에서 강한 신뢰가 느껴진다.

조금 멋쩍은 기분이다.

“젠장!”

“가자. 앰브로즈가 저녁 사겠대.”

“설마 그 시카고 피자?”

“맞아. 근처에 그걸 파는 식당을 찾았대.”

시카고 딥 디쉬라고도 불리는 시카고 피자.

리버캐츠 시절부터 앰브로즈는 시카고 피자의 신봉자였다.

들고 먹는 이탈리안 피자와는 격이 다르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시카고 피자를 찬양했었는데 취향에 맞는 식당을 찾은 모양이다.

“그래. 앰브로즈 벗겨먹으며 기분을 풀어야겠다.”

그렇게 덩치들만 보면 오클랜드 갱단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녀석들 8명이 스마트폰 길안내를 믿고 순례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 피자를 내놓는 식당이면 주인장이 컵스 팬이겠단 생각도 들지만 뭐 어떤가. 야구를 좋아하는 주인이면 더 환영하겠지.

도착한 곳은 작은 레스토랑.

진짜 우리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주인은 남자가 애를 뱄다면 세쌍둥이 8개월째라 해도 믿을 만큼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였는데 날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누군지 아는 분위기인데. 다만 이 아저씨 하는 말이……

그리고 리키 이 자식의 대답이……

“Minou? No pets!(애완동물 출입금지!)”

“Him? No hair!(털 안 날립니다!)”

이딴 대사를 치고 둘이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댄다.

죽일까? 공공장소라 목격자가 너무 많은데.

< 4 >

날 보고 대뜸 농담을 던질 만큼 주인장은 유쾌했다.

자신을 빈스라고 소개했고 내 예상처럼 컵스 팬이 맞았다.

컵스 팬 빈스! 라임이 훌륭하다.

“빈스, 우리가 자이언츠 선수라고 피자에 소금 잔뜩 뿌려 주는 건 아니죠?”

“그런 짓은 안 해. 다만 딜을 걸어볼까? 컵스로 이적한다고 약속하면 피자를 공짜로 주지.”

“FA가 될 때까지 다른 팀에 팔려가지 않으면 생각해보죠.”

“그럼 유보니까 피자 말고 음료수만 서비스야.”

피자는 맛있었다.

사실 시카고 피자는 치즈와 토마토 토핑을 산처럼 쌓아 굽는다는 통념 때문에 다이어트의 주적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식당의 피자는 그렇게 고칼로리 덩어리론 보이지 않았다.

물론 크기야 레귤러가 도미노의 다섯 배쯤으로 보였지만.

배를 두드리며 다 먹고 나자 빈스가 디저트를 가져와 자신도 우리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제 노히터 축하하네.”

“고마워요. 그런데 컵스 경기를 본 게 아니었어요?”

“화면분할만 하면 세 경기쯤은 한 번에 볼 수 있어.”

“앞으로 서부지구는 자이언츠를 응원해줘요.”

“챔피언십까지 가서 컵스에 지라고 응원하지.”

역시 맛있는 음식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제시가 여자들은 쌓인 게 많으면 폭식과 쇼핑으로 푼다던데 살짝 이해가 간다.

“맛있는 걸 먹어서 기분이 한결 낫네요.”

“트래쉬 페이퍼 때문에 속이 상했었나?”

“…… 빈스도 봤어요?”

“야구에 관한 건 다 찾아보지. 다만 쓸데없는 조언을 하나 하자면 그런 기사를 봤다고 믿진 않는다는 거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고. 메이저리그에 약쟁이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전체에 비하면 백사장의 모래 한줌이란 걸 알거든. 무조건 색안경부터 끼고 바라보는 자들의 말엔 신경 쓰지 말고 네 땀으로 증명해. 백사장에서 유리조각 하나 밟았다고 다시는 바다를 찾지 않을 멍청이는 없어.”

땀으로 증명해라?

피자 한 조각 먹으러 와서 정말 따뜻한 말을 듣는다.

“오늘부터 시카고 피자를 좋아하도록 노력해볼게요.”

“피자 따윈 아무래도 좋아. 컵스로 이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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