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37화 (37/188)

If someone hates you for no reason - 3

< 1 >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한 결과, 새끼고양이의 노히트 게임]

…… 분명히 출발은 불안했다. 1회 리드오프부터 두 타자를 상대하며 계속 풀 카운트 승부를 했고 이후 연속 볼넷을 내줬으니까. 그때 AT&T파크에 모였던 자이언츠 팬들은 조 선수가 부디 5회까지만 무탈하게 막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1회에만 30개의 투구를 한 투수에게 그 이상을 바라긴 무리 아닌가.

하지만 모두 우려에 불과했다.

30개의 투구는 좁은(심하게 말하면 내셔널스 타선에 대한 배려로까지 보였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일단 조 선수에게 적용한 존은 내셔널스에게도 공평해야 했으니까.

상하좌우 주심이 설정한 존의 경계를 확인하고 학살은 시작됐다.

물론 이 호러영화의 주인공은 학살을 저지르는 장본인이었고.

원래 그렇다. 공포영화에서 다른 주인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이언츠는 수월하게 공격을 풀어나갔다.

좁혀진 존은 공평했고 중반에 이미 6:0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반면 내셔널스의 타선은 2회부터 조 선수에게 완벽하게 봉쇄당했다. 원래 던지던 포심과 팜-체인지업. 그리고 올해 스플리터를 버리고 새로 장착한 스핀-커터. 이 세 구종이 조 선수의 무기였는데 어제는 구종마다 구속과 변화까지 조절해 흉기처럼 휘둘렀다.

그 결과가 바로 노히트 게임이다.

타고투저 시대에 등장한 조금은 사나운 새끼고양이.

그 앙칼진 고양이는 스톤햄이란 걸출한 에이스가 8주나 전력에서 이탈했어도 올해 자이언츠가 기대되는 이유다. 또 그 기대를 부풀게 하는 다른 루키들의 존재감도 작지 않다.

시즌 첫 홈런을 뽑아낸 앰브로즈.

핫 코너 강습타구를 하나도 놓치지 않은 페르시.

덕아웃에 굴러 떨어지면서도 공만 바라본 하우어.

이들이 모두 어제 노히트 게임의 숨은 주인공들이다.

아직 풀 시즌 한 번도 치르지 않은 선수들에게 과한 기대라고?

어제 경기를 처음부터 제대로 지켜봤다면 내 대답을 알 수 있다.

주심의 루키 존 적용을 거꾸로 이용하는 영리함과 배짱, 내셔널스 타선마저 학살할만한 구위. 더 뭐가 필요한가?

더 못 보고 태블릿을 덮었다.

부탁인데 누가 내 손발 좀 찾아줘.

오그라들어 죽겠네. 구단은 저런 기획기사를 계속 찍어내다 내 성적이 하락하면 어쩌려고 무리수를 두나.

물론 노히트 게임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막말로 마스터나 외계인도 노히터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마스터, 외계인에 비해 더 나은 투수일까?

대답은 사양한다.

좋아. 즐거워.

그래도 즐기는 건 어제까지면 충분해.

전부 프린츠 집으로 몰려가 파티도 했고(맥주는 구단에서 보내주더라고.) 스톤햄까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와 축하해줬으니까.

2연패를 당한 우울함을 싹 날려버렸지.

그럼 이제 현실로 돌아올 때가 맞아.

현실로 돌아오라고 때맞춰 의사가 들어왔다.

“다 됐습니다.”

“그럼 가도 되나요?”

“네. 결과에 아무 이상 없고 구단엔 이쪽에서 통보를 했어요.”

아침에 프런트의 연락을 받았다.

가능하면 오전에 메디컬 센터에 들러 포괄신체능력테스트(IPAT)와 통합손실도측정(CLM)을 받아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다.

아마 후자인 손실도 측정이 주목적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투구 수 제한까지 시키더니 이젠 별 걸 다 받으라고 한다.

“결과가 제게 비밀은 아니죠?”

“물론 아니죠. 하지만 복잡한 숫자를 보여주는 것보단 제가 설명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종목제한 없이 미국의 스포츠 스타를 전부 모아도 조 선수의 IPAT 수치는 상위 0.1%예요. 또한 손실도를 봐도 근육, 인대, 관절의 모든 부위가 싱싱하고요. 어제 노히트 게임을 한 선수의 데이터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정도죠. 아마 구단이 조의 부상위험을 걱정하는 것 같은데, 내가 에이전트면 장기계약 따윈 권하지 않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센터를 나오는데 기분이 산뜻하다.

자기 몸 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법이라지만 때론 객관적 지표의 보증도 필요한 법이니까. 특히 구단이 내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데 백 마디 말보다 숫자 하나가 설득력이 더 강하지.

“오! 우리 노히터 투수 왔네.”

“오늘은 훈련 빠지는 거 아니었어?”

메디컬 센터에 들렀던 탓에 오늘은 지각이다.

항상 숙소에서 같이 몰려나오는 루키들이 1등인데.

훈련 중이던 동료들이 하나둘 인사를 건네 왔다. 어제 축하는 정말 원 없이 받았는데 오늘도 노히터 투수 타령이네.

“노히터 했으면 야구 끝난 건가요?”

“좋은 자세야. 이제 시작이지.”

“그래도 적당히 스트레칭만 해.”

왠지 하루아침에 보모들이 생긴 기분이 든다.

그런데 스트레칭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조! 잠깐 볼까?”

“네.”

직장에서 상사가 부르면 이유 없이 긴장이 된다는데 아무래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또 우리 감독은 개인적으로 부르는 일이 좀처럼 없거든.

“센터에 다녀왔다고?”

“네. 아침에 구단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끔찍하게 아끼는군. 결과는 듣고 왔겠지?”

“Excellent랍니다.”

선발투수가 완투를 하고 나면 어깨 회전근개부터 시작해 정말 신체의 모든 부위에 과부하가 걸린다. 회복엔 휴식이 최고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의사는 내가 완투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데이터가 나왔다고 했으니까 뭐. 당연히 Excellent지.

“다행이군.”

“구단이 너무 저를 업어 키우려는 거 아닌가요? 오늘 기사만 봐도 얼굴이 뜨겁던데.”

“그 기사야 어제 자네 인터뷰에 미리 약을 친 거지.”

뜨끔!

< 2 >

“미누 조 선수. 노히트 게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첫 노히트 게임이고 여기 AT&T파크에선 정말 오랜만에 나온 기록이거든요. 1회의 볼넷 두 개가 정말 아쉬웠어요. 야구팬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일 텐데요. 혹시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 적용에 불만이 있었나요?”

살짝 간을 보는 질문이었다.

“존의 경계에 대한 판단은 주심의 권한입니다. 양 팀 모두 똑같은 존을 적용받았으니 불만 없습니다.”

“만약 내셔널스에 우호적인 판정이 이어졌으면요?”

“결과를 놓고 과정이 아닌 가정을 묻는 인터뷴가요?”

“…… 팬들은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 드리는 질문입니다. 루키 존 적용에 불만이 없단 말씀이시죠?”

질척거리고 의도가 뻔히 보였다.

대놓고 루키 존을 들먹여 싸움을 붙이겠다는.

명랑한 분위기의 인터뷰를 기대했는데 저러면 구단출입이 금지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이미 끝난 경기고 게다가 노히터라는 명예로운 기록도 남겼는데 불만이 있으면 뭘 어쩌라고?

퍼펙트를 할 수도 있는 기회를 날렸으니 이 인터뷰에서 주심에게 엿 먹이는 멘트라도 날려?

“Never let your memories be greater than your dreams. 추억이 꿈보다 커지게 만드는 건 미래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

인터뷰에서 문제가 됐던 건 대충 저 내용뿐인데.

대충 조회수 한 번 올려보겠다고 덤비는 싸구려 언론에게 성실하게 대답할 의무도 못 느껴서 한 방 먹이고 끝냈던 거였다.

그 뒤에 다른 기자들에게 받았던 질문은 대부분 평범했고 대답도 무난하게 했다.

루키 존 문제에 대해 구단이 미리 김을 뺀 작전이야 알겠는데 다른 게 또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될 인터뷰는 아니었는데요?”

“따로 해석을 안 하고 그대로 받아 적어주면 언론이 아니지.”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런데 감독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또 없는 의혹도 만들어낼 수 있고.”

“의혹이요?”

“…… 매우 냉정한 시선으로 대학시절과 지금의 자네 모습을 비교하면 의혹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

“앞으론 자네의 성실함을 이야기하는 기사가 나갈 거야.”

< 3 >

“미네.”

[네.]

“노히터 특별보너스 다시 보여줘.”

[메이저리그 노히트 게임 달성 특별 보너스]

위기를 기회로!

좁은 스트라이크 존, NL 최고의 강타선.

분명히 조건은 나빴지만 그 상황을 멋지게 극복한 계약자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패시브 : 상시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 Double UP!

- Stride Fix!

액티브 : 매 경기 선택이 가능합니다.

- Scope!

- Untouchable!

- Magic Control!

- Eagle Eye!

진짜 아낌없이 퍼주는 매니지먼트다.

일단 패시브로 등록된 Double Up!은 훈련성과를 두 배로 올려주는 건데 300구 제한과 1주일 기간제한이 사라졌다.

앞으로 시즌 중에도 계속 투구능력 향상을 꾀할 수 있게 됐다.

Stride Fix!로는 아예 마운드 상태에 영향을 안 받게 됐고.

비가 내려도 웬만해서 강우 콜드 따위가 없는 메이저리그에선 매우 유용한 패시브다.

액티브엔 모르는 게 생겼다.

랜덤으로 주는 보너스라 그동안 안 나왔던 항목인 듯하다.

Eagle Eye! 미네가 주던 일시적 특전으로 타자의 스탠스와 무게중심을 읽어 가장 취약한 코스를 보여주던 게 있다.

그 부분을 아예 선택형 보너스로 줬다.

어쨌든 액티브 보너스는 네 개고 앞으로 매 경기 하나씩 골라 활성화가 가능하다.

다시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보너스다.

앞으로 나도 메이저리그 괴수들 사이에 끼게 될까?

문제는 역시 감독이 말했던 의혹이겠지. Double Up!이 패시브인 것만 해도 시즌 중 계속 성장이 가능한데 매 경기 액티브 보너스를 적용해 던지게 된다.

뭐 그래도 내 공을 때려낼 타자들이야 많지만, 대학시절의 성적과 비교하면 내가 인터뷰에서 물을 먹인 기자가 아니라도 누군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미누]

“응?”

[세상에 자기가 가진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은 몇 명쯤 될까요? 그냥 야구로 한정해도 돼요.]

“글쎄. 많진 않겠지.”

내가 매일 메이저리그 괴수들 타령을 하지만 꼭 메이저가 아니라도 예비 괴수들은 널렸다. 대학에도 마이너리그에도 언제든 빅 리그에서 활약이 가능한 재능 넘치는 이들이 많다.

다만 대부분 그 재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

넘치는 재능만 믿고 자기관리에 소홀한 이들.

또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데 방향이 틀린 이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

재능도 있고, 그 재능을 제대로 갈고 닦고, 다가온 기회까지 놓치지 않고 잡아낸 야구선수는 많지 않다.

[그렇죠? 미누는 부족했던 재능을 채웠고, 성실하게 노력했고, 이젠 기회가 왔어요. 의혹? 가지라고 해요. 매니지먼트와 계약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했던 건 아니니까요.]

“역시 움츠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당연하죠.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땅을 기라고 하면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헬렌 켈러.]

“…… 뭐야? 따라 하는 거야?”

[전 미누 매니저고 친구니까요.]

< 4 >

‘의혹 따위 제기할 거면 하라고 해!’라는 마음가짐으로 맘껏 특전도 쓰고 내가 뛸 경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 이 기사 봤어?”

리키가 내게 자기 태블릿을 내밀었다.

“또 뭔데? 내 손발 충분히 오그라들었어.”

“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마이너리그까지 기록이야.”

“……”

진짜 올 게 온 건가?

태블릿을 받아 내용을 쭉 읽어봤다.

그래. 인정한다. 내가 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의 기록이다.

대학 때까지 성적은 멘틀을 뚫고 지구 내핵까지 파묻혔는데 드래프트 이후 성장을 보면 감마선 쏘인 헐크다.

그래도 기사 마지막 코멘트엔 동의할 수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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