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36화 (36/188)

If someone hates you for no reason - 2

< 1 >

딱!

경쾌한 타격음. 제대로 맞은 공이다.

타구가 지나간 방향을 볼 때 저건 안타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타자가 구종 하나를 노리고 들어올 때 대처가 어렵다.

구속에 변화를 주고 무브먼트를 조절해 봐도 제대로 맞을 확률은 언제나 존재한다.

특히 내셔널스 저 악마군단의 컨택 능력이면 자기가 노렸던 공일 때 어떻게든 때려낸다. 물론 파울이나 땅볼이 자주 나오긴 하지만 일단 인필드 공이면 안타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우와아아아아아! 나이스 터너!”

“이 미친놈 터너! 사랑한다!”

관중석에서 난리가 날만도 했다.

올해의 슈퍼플레이를 뽑으면 난 터너에게 한 표 던진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지는 타구를 따라가 글러브도 안 쓰고 오른 손으로 잡아 바로 1루로 송구.

“아웃!”

새비지가 다리가 찢어져라 발끝을 내밀며 잡아냈다.

이런 슈퍼플레이는 상대에게 안타 하나를 도둑질 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허탈하고 맥이 빠지게 만든다.

쉽게 말해서 상대 기를 죽이는 플레이다.

솔직히 타격은 내셔널스 타자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터너의 수비는 NL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다.

내가 구단주면 바꾸자 해도 안 바꾼다.

“땡큐! 터너! 새비지!”

엄지손가락을 들어 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씩 웃으며 손을 들어 올리는 둘의 표정이 조금 어색하다.

이상하다 느낀 건 6회 초 내셔널스 공격을 막고 덕아웃에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자이언츠 선수들이 조용하다니.

인간들이 너무 떠들다 이젠 진이 빠졌나?

뭐 나도 오늘은 경기에 집중 중이라 말을 건네진 않았다.

< 2 >

“인크레더블! 역시 터너 선수의 수비능력은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이 탐을 낼 이유가 있군요. 커버하는 범위도 넓고 강한 어깨와 타구 판단력까지 모두 겸비한 선수입니다. 작년에도 저 수비능력을 인정받아서 올스타에 뽑혔던 거죠. 꽤 깊숙한 타구를 어느새 따라가서 잡아냈습니다.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에요.”

“타구를 따라가는 순간 느꼈던 겁니다. 글러브로 잡으면 역동작에 걸려 어차피 1루에서 승부가 안 된다는 걸요. 그만큼 깊은 타구였고 누가 봐도 안타였어요. 이거…… 메이저리그의 금기를 어길 생각은 없고, 오늘 경기가 우리 예상대로 끝나면 조 선수는 터너에게 저녁을 사야겠습니다.”

“아깝네요. 제가 밀튼의 목을 조를 기회였는데요.”

“제 목은 소중합니다. 메이츠 당신에게 그럴 기회를 줄 순 없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죠. 선발투수가 이닝을 소화하며 구속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거나 곧 올라가게 될 일부 선수를 제외하면 1회 구속과 완투를 하는 9회 구속이 보통 2-3마일까지는 차이가 나요. 그런데 조 선수 투구를 보면 그동안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차이가 없었거든요. 메이츠, 기록을 살펴보세요.”

“맞습니다. 작년 13경기에 출전한 미누 조 선수는 정확히 93.8마일의 평균구속을 기록했어요. 최고구속은 95.2마일. 이건 절대 유의미한 차이로 볼 수 없죠. 평균구속과 최고구속이 대체로 일치한다고 봐도 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닝 소화능력까지 뛰어나고 완투를 하면서도 9회까지 저 구속을 계속 유지했단 점입니다. 올해는 데이터가 조금 적네요. 2경기 출전에 평균구속 96.1마일. 최고구속 97.3마일입니다. 기록을 보면 당장 해부가 필요하죠?”

“자이언츠 팬들이 당신에게 돌을 매달아 맥코비 만으로 던져버릴 소리네요. 아무튼 오늘 조 선수는 또 진화를 했습니다. 포심과 스핀-커터를 체인지업처럼 구속조절을 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1회부터 투구를 영상으로 겹쳐보면 같은 구종이 변화마저 다릅니다. 이건 조금 긁히고 긁히지 않은 차이가 아니에요.”

“어쨌든 7회 초 내셔널스 공격이 끝났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겁니다. 2이닝이 남았다는 걸 빼면 말이죠.”

중계방송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지만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지금 AT&T파크에서 진행 중인 일을 모를 리 없었다.

▶ 오늘 AT&T에 갔어야 한다고!

▶ AT&T에서 ‘그게’ 몇 년 만이지?

▶ 까마득하지. 솔직히 넌 태어나기도 전?

▶ 내년에 대학 가는 내 딸이 태어나기 전으로 정정해.

▶ 장인어른!

▶ 닥쳐! 그나저나 저 새끼고양이 물건이네.

▶ 맞아. 내가 1회부터 계속 보는 중인데 외곽에 꽉 차는 볼마다 인정을 안 해주더라고. 그러니 아예 볼넷 내주면서 상하좌우로 존을 좁혀놓고 주심이랑 내셔널스 함께 엿 먹이고 있다.

▶ Fuck! 루키 존이었어?

▶ 잠깐! 그럼 주심 때문에 볼넷 준 게 아니었으면?

▶ 당장 AT&T에 가야겠어.

▶ 주심 머리라도 열어보려고? 됐어. 조가 시위하듯 존을 좁힌 덕분에 내셔널스만 박살나고 있다.

▶ 내셔널스에도 똑같은 존을 적용하면 할 말 없지.

▶ 이제 조에게 루키 존으로 장난치는 놈들은 없겠네.

▶ 7회 말 공격 끝났다.

▶ 나와라! 새끼고양이!

▶ 새끼고양이치곤 좀 무섭다.

물론 한국에서 인터넷방송을 시청하는 야구팬들도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편의 조에게 영향을 줄 것도 아니라 노히터를 직접 언급도 했다.

▶ 퍼펙트도 나올 수 있었단 말이네.

▶ 지금 구위만 봐도 양민학살 수준인데 스트라이크 존 넓었으면 진짜 한 20K 퍼펙트 나왔을지 모른다.

▶ 내셔널스 팀 타율은 알고 20K라고 하는 거냐?

▶ 팀 타율이 2할7푼을 넘으면 뭐하는데? 그래. 투수 빼면 3할까지 나올 수 있었다 치자. 그럼 뭐하냐고. 지금 개 털리는데.

▶ 남 잘되면 배 아픈 새끼는 어디나 있지.

▶ 설레발이 쩌니까 하는 말이잖아.

▶ 8회 투 아웃까지 노히터를 설레발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너는 머리 쪽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 어릴 때 다쳤냐?

▶ 지랄! 아직 경기 끝나지도 않았으니까 적당히 빨라는 말도 못 알아듣는 새끼가 뭐래?

▶ 싸우는 건 방 따로 파고 너네끼리 나가서 해라.

▶ 그래. 야구나 보자. 그나저나 경기 노히터로 끝나면 저 주심은 테러 안 당할까?

▶ 테러까진 오버고 욕은 졸라 먹겠지.

▶ 난 주심 물 먹여서 나중에 손해 보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 KBO야 심판들이 대부분 선출이지만 MLB는 무슨 아카데미 나와서 실기테스트 보고 뽑는 거라 괜찮아.

< 3 >

8회 초 투 아웃!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내가 지금까지 몇 개를 던졌더라? 100구쯤 된 것 같은데.

괜찮다. 구단에서 감독에게 내 투구 수 조절을 제안했다지만 지금 마운드에서 날 내리진 못한다. 노히터가 진행 중인 투수를 제한투구 수에 걸렸다고 내렸다간 폭동이 일어날 걸.

풋! 살짝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내가 노히트 게임이라니. 이젠 기억에서 얼굴도 흐릿한 친부와 약속이 나를 이끌어 시작한 야구. 당연히 난 야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시작했지만 평범함 그 자체였던 재능.

결국 긴 인생을 위해 다른 길을 찾으려 했는데 어쩌다 4만2천 관중이 가득 찬 구장에서 노히트 게임을 하고 있을까?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누구나 인생에 마법 같은 변환점이 생기길 바라지만 이건 정말이지 너무 극적인 변화다.

에드, 스테판, 로건, 제시가 보고 있을까?

무엇보다 영감님이 혹시 여기 와있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늘에선 내 손에 처음 야구공을 쥐어줬던 친부가 보고 계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열심히 던질 이유가 생겼다.

남은 네 타자? 모두 무시무시하지만 자신 있다.

일단 8회의 저 마지막 타자부터.

제1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오늘 주심이 내셔널스 타자가 거르는 외곽 꽉 찬 공을 계속 볼로 콜을 한 이유가 선입견이라면, 내게도 무기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내가 스트라이크 존을 고집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내 지난 경기들을 분석했으면 매우 당연한 결과지.

더구나 오늘 경기 내게도 족쇄가 될 좁아진 존.

타자들은 내가 그마저 이용한다는 걸 몰랐다.

2회부턴 어떻게든 존 안에서 승부를 했다.

구속에 변화를 주고 무브먼트를 조절해가면서.

하지만 6회부터 다시 경계에 걸친 공을 던지는 걸 타자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배트를 내밀었다. 주심이 아무리 존을 좁게 잡아줘도 헛스윙까지 스트라이크 콜을 부르지 않을 순 없으니까.

계속 경계에서만 승부하면 몰라도 섞어주면 괜찮다.

모두 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거든.

고정관념은 그래서 무서운 거다.

그럼 다시 제2구.

딱!

“파울!”

제3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8회 초 내셔널스 공격이 끝났다.

다 좋은데 주변에서 왜 이리 굳어있는 거야?

정작 던지는 내가 가벼운 걸음으로 덕아웃에 돌아가는데 다른 자이언츠 동료들이 막 힘겨워 보인다. 긴장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면 딱 저런 증상이지 않나?

오늘밤 자고 일어나선 전부 내 대신 근육통을 앓아줄 기세다.

내 노히터를 지켜주려고? 흐흐! 동료란 이런 거겠지.

그래도 지금이 복수의 기회다. 절호의 기회.

앞에 선 동료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터너!”

“헉! 왜? 왜?”

붙잡아주지 않았으면 주저앉았겠는데?

“…… 수상하네. 왜 그렇게 놀라요?”

“……”

“오늘 맥주 한 잔 살게요. 아까 멋진 수비 보답!”

“……”

계속 대답도 못하네.

그럼 또 타겟을 바꿔주지.

내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앉은 사냥감을 찾았다.

“프린츠!”

“헉! 왜?”

무슨 반응이 다 똑같아.

“오늘 프린츠 집에서 맥주파티 어때요?”

“……”

재미없다. 슬프다.

다들 그 익숙한 시선을 보내온다.

놀려먹으려던 계획이 내 무덤을 내가 판 기분이다.

< 4 >

8회 말 공격에서도 동료들의 배려는 계속됐다.

딱 내게 휴식을 줄 정도. 딱 어깨가 식지 않을 정도.

안타를 치고 점수를 내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적당히 내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플레이만 했다. 개인 커리어 따위는 머리에서 비워버린 배려였다.

그렇게 8회 말 공격이 끝나고 마운드에 올랐다.

1회 초 마운드에 올라와서 했던 다짐은 나 혼자 마운드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뿐이었다. 스톤햄이 부상을 당했고 팀은 2연패에 몰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터무니없는 욕심도 부리게 됐다.

오늘 두 번의 출루를 허용해 9회 첫 타자는 투수?

그럴 리 없지. 당연히 핀치 히터가 나왔다.

좌타자다.

내야안타라도 노리겠다는 의지.

하우어가 미트를 타자의 몸 쪽으로 낮게 세웠다.

오케이! 제1구.

딱!

빠악!

스트라이크 존 중앙으로 들어가던 공에 타자가 거의 본능적인 스윙을 가져갔지만 구종은 존 앞에서 꺾인 스핀-커터.

손목을 비틀어 때려내긴 했지만 배트가 부러졌다.

새비지가 달려들며 땅볼을 잡고 타자를 가로막는다.

이런 새비지. 제발 얼굴 좀 펴요.

누가 보면 싸우려는 줄 알겠네.

“아웃!”

어쨌든 공 하나로 원 아웃을 잡았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또 대타를 기용할 줄 알았는데 타순 그대로 1번 타자가 올라왔다.

내 공을 한 번이라도 더 본 타자가 낫다고 여겼나?

제1구.

퍼엉!

“스트라이크!”

살짝 애매한 공이었는데 스트라이크를 불러준다.

하긴 원래 잡아줬어야 할 존에 걸친 공이다.

제2구.

딱!

“파울!”

오늘 새비지도 고생이 많다.

유독 1루 방향의 파울 타구가 자주 나오는 탓이다.

내셔널스의 우타자 대부분이 내 구위에 눌리고 있다는 증거긴 한데, 자칫 라인 안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새비지의 신경이 곤두섰을 거다.

오늘 전부 불러서 맥주를 사긴 해야 할 모양이다.

일단 경기부터 끝내고. 제3구.

딱!

이번엔 하우어가 마스크를 벗고 미친 듯 달려간다.

포심의 아랫부분을 때려 위로 뜬 타구였다.

하우어! 덕아웃이야! 그러다 다친다!

달려가는데 우당탕 소리가 들린다.

미친!

“아웃!”

나보다 먼저 따라붙은 주심이 아웃 선언을 하는데 뒤에서 덕아웃 안으로 굴러 떨어진 하우어가 글러브를 들어 올리고 있다.

빌어먹을!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마운드로 돌아와 다음 타자를 맞았다.

꼭 텅 빈 구장의 마운드에 혼자 선 느낌이다.

관중석에서 들리던 함성도 없다.

제1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제2구.

퍼엉!

“스트라이크!”

“AT&T파크에 침묵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제 27번째 아웃카운트에 스트라이크 하나가 남았고요.”

“에이스의 부상과 2연패. 그 상황에서 다음 경기를 맡아 부담감이 컸을 루키의 투구가 아닙니다. 자칫 팀이 상승세에서 스윕을 당할 위기까지 자기 손으로 진화해야 했거든요.”

“특히 투수 입장에선 가장 까다로운 내셔널리그 최강타선을 상대해야 했죠.”

“네. 내셔널스는 시즌 후반에 가서 성적과 의욕이 함께 떨어진 팀이 아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화끈한 방망이를 가진 팀이었죠. 부디 마무리가 잘 되길 바랍니다.”

제3구.

퍼엉!

AT&T파크를 가득 메운 관중들, TV로 중계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 바다 건너 한국 팬들까지 이 마지막 공을 숨죽이고 지켜봤다는데 막상 난 무슨 공을 던졌는지 기억도 안 났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가까운 내야에서, 멀리 외야에서, 또 덕아웃에서 미친 듯 달려온 동료들이 날 덮쳤던 게 내 기억의 전부였다.

AT&T파크를 뒤집어버릴 것 같은 함성은 덤이다.

난 아마 노히터를 달성하고 동료들에게 깔려죽은 첫 선수로 메이저리그 기록에 남을 거야.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나올 거고.

숨 막혀! 이 인간들아!

“이 미친 자식! 네가 해냈어!”

이건 리키인가? 하우어인가?

“그래. 가자. 가자고! 오늘 집을 거덜내버려도 좋아!”

이건 보나마나 프린츠겠고.

“질식사는 안 돼. 오늘은 익사를 시켜야 해.”

“프린츠 집의 욕조면 저 비만고양이도 충분히 들어가지.”

이건 누군지도 모르겠다.

내 암살음모나 짜는 이 인간들 때문에 아까는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단 말이지? 다 죽여 버리겠다.

노히터로 이러는데 퍼펙트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잠깐! 내가 진짜 미친 모양이다. 퍼펙트를 떠올리다니.

아무튼 정신 나간 동료들에게 파묻혀 미네가 뭐라고 했는데 제대로 확인도 못했다.

뭐랬더라?

[노히트 게임 달성으로 특별보너스가 주어집니다.]

미네. 고맙다.

보너스가 뭐든 그것보단 내게 네가 있다는 게 제일 고마워.

하지만 일단 이 인간들 좀 처리하고 조용할 때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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