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20화 (20/188)

리버캐츠 산(産) 악마들 - 2

< 1 >

“아쉽군.”

AT&T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자이언츠 단장 사무실.

경기를 지켜보던 요한슨 단장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다.

아쉬울 수밖에 없다. 8월 한 달 선전을 거듭했지만 와일드카드를 얻기엔 2% 부족한 성적. 만약 저 루키들을 좀 더 일찍 불러올렸다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아쉬운 게 요한슨 단장의 마음이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

“내년부턴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요.”

세이우드 페릴.

요한슨을 배경으로 현재 자이언츠 운영의 전권을 쥐고 있는 단장보좌에겐 올해의 아쉬움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신 있나?”

“내년에 당장 반지를 얻진 못하겠죠. 그래서 지금 페이스 유지만 시키며 루키들의 경험치를 올려줄 생각입니다.”

“올해 페이롤을 대폭 줄였으니 트레이드를 좀 해보면?”

요한슨의 물음에 페릴이 싱긋 웃었다.

노인이 되면 꼭 여유가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조급함에 무너지기도 한다. 이럴 때 냉정하게 끊어준다.

“우린 그 자금을 저 루키들에게 써야 합니다.”

“…… 나도 모르는 사이 MLB 서비스타임이 바뀌었나?”

“요한슨. 2010년, 2012년, 2014년. 자이언츠가 우승했을 때를 생각해봐요.”

“……”

페릴이 말하는 건 당시 자이언츠의 구단 운영방침이었다.

머니볼로 불리는 오클랜드의 빌리 빈과는 정 반대노선을 달렸던 게 당시 자이언츠였다. 우선 FA를 얻은 선수들에게 비교적 후한 대우를 해주면서 잡는 편이었다. 트레이드보단 이미 있는 선수들을 잘 관리했고, 한 해씩 건너뛰며 성적이 나쁠 때도 올해처럼 선수들을 팔거나 리빌딩을 선택하지 않았다.

실제 자이언츠를 징검다리로 우승시킨 팀의 기둥들은 대부분 직접 뽑아 키우거나 싸게 업어왔던 선수들이다.

그래서 당시엔 자이언츠의 정책을 ‘Loyal’이란 단어를 써가며 머니볼과 반대편에 놓고 설명했다. 기록과 분석보단 선수 자체를 믿으며 젊은 유망주들에게 장기계약을 안겨주는 정책이 결국엔 짝수 해의 신화를 가져왔다.

구단의 사정과 여러 악재가 묘하게 겹친 탓에 그 Loyal 정책을 포기한 대가가 바로 지난 20년의 부진이다.

그런데 그 과거를 답습해서야 되겠나. 서비스타임 기간이어도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면 충분한 보상을 해줄 생각이다.

고작 2-3년 쓰기 위한 선수를 위해 유망주를 내주지도 않을 테고. 그 돈은 차라리 유망주에게 쓴다.

“물론 올해 바로 결정할 건 아니니 긴장 푸세요.”

“…… 뭐 내 지갑 털어가는 건 아니니까.”

“내년까진 자이언츠 부흥기를 알릴 라인업이 결정될 겁니다. 그때 구단주 목을 비틀어서라도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제게 주시고, 그 뒤론 요한슨은 구경만 하세요.”

< 2 >

투수 운용의 최적 시나리오란 뭘까?

투구 수에 문제만 없다면 선발의 완투가 최고라는 대답이야 누구나 할 수 있으니 패스. 그럼 다음 해답지는?

선발투수가 7회까지를 책임지고 프라이머리 셋업맨이 8회를, 클로저가 9회를 맡아주는 체제. 가장 이상적이다. 여기엔 딱히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오늘 자이언츠의 경기는 투수 운용 면에서 완벽했다.

리키가 7회, 프린츠가 8회, 네리스가 9회.

페르시의 3점 홈런에 이어 뒤에 2점을 더 뽑았고, 별다른 반전도 없었다. 중간에 리키가 3점을 내줘 ERA가 조금 오르긴 했어도 큰 타격은 아니다.

“굿 피칭!”

“오아시스시여. 선인장 1호에게 축복을!”

“Get Away! 오늘 홈런도 못 친 놈이 무슨 선인장 1호?”

이젠 자이언츠 오아시스로 고정된 네리스가 덕아웃에 돌아오자 또 한 차례 떠들썩해진다. 누가 이 인간들 입에 재갈을 물려주면 평생 충성할 것 같다.

아니? 이 사태의 원인제공은 내가 했던 건가?

“…… 경기 이기면 항상 이래?”

인터뷰를 마치고 온 페르시의 표정이 볼만하다.

라커룸인지 클럽인지 전쟁터인지 구분이 안 갈 거다.

전쟁터란 건 지금 터너가 틀어놓은 음악의 비트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총소리에 버금간다는 뜻이지. 거기 맞춰 랩을 쏟아내는 터너는 확실히 직업을 잘못 골랐다.

“자이언츠를 무시하지 마라. 가끔은 지고도 이래.”

“…… 푸훕! 켁! 켁!”

페르시가 리키의 대답에 마시던 물을 뿜고 자지러진다.

걱정 마. 곧 적응될 거야.

내가 첫 패배를 기록했던 날이 기억난다.

투구엔 집중하되 결과엔 매달리지 말라 했던 스톤햄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망정이지 후……

그래도 다음 내 출전에 점수를 뽑아주기 위해 몸을 내던지며 허슬 플레이를 보여줬던 동료들이다. 욕할 수 없다.

“Ladies and Wolves! 이제 주목!”

결국 진압을 위해 기동대가 투입됐다.

나까지 달 보고 짖는 늑대인간이 됐지만 레이디보단 늑대인간이 차라리 낫다고 여겨지니까 뭐.

“다들 잘 싸워준 덕분에 오늘은 D 백스를 넘어뜨렸다. 그런데 덴버에선 로키스가 해적들을 털어먹었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수수께끼입니까?”

“자네들이 와일드카드 경쟁을 원점에서 출발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축하한다.”

선수들 사이에 잠깐 웅성거림이 일었다.

“D 백스랑 로키스가 몇 경기 차가 되는 거지?”

“0.5게임이겠네.”

0.5게임이면 방금 감독 말대로 원점에서 다시 출발이다.

D 백스 입장에선 자이언츠에게 욕이 나올 수밖에 없고 로키스 팬들은 우리에게 사랑한다고 외쳐댈 상황.

2-3차전이 혈전이 될 거라는 예고다.

우리야 잃을 게 하나도 없으니 설렁설렁 경기를 해도 그만이긴 한데 내가 내일 경기에서 선발이잖아! 대충 하면 안 되지. 난 승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우리 리버캐츠에서 온 악당들에게 기회를 줄 거라던 약속 역시 유효하다. 그래서 오늘은 3루에 페르시 한 명이었지만 내일 경기엔 둘이 더 들어갈 계획이고.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조에겐 아무래도 부담인데, 루키 투입을 어떻게 생각하나? 새끼고양이.”

감독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불안하지 않겠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불안하지. 그래도 일단 모범답안을 내놨다. 난 시험은 잘 보니까.

“리버캐츠 산 악마들이 잘해 줄 겁니다.”

“경기에 지면?”

“이 친구들은 제가 왜 리버캐츠의 코카스패니얼이었는지 잘 압니다.”

페르시와 하우어를 붙잡아 어깨동무를 했다.

왼쪽 어깨에서 파르르 떨림이 느껴지는데 꽉 잡아줬다.

괜찮아! 떨지 마.

나 이제 착해졌어.

“…… 조가 코카인지 헬하운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실은 하나뿐이다. 야구라는 게임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서로를 위한 플레이를 하는 팀이 이긴다는 점이지. 내일부터 자이언츠는 서로를 위한 야구를 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를 거다. 오늘 마무리 훈련은 쉬고 모두 서로를 위한 플레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도록.”

< 3 >

감독이 강수를 뒀다.

내 생각에 감독 혼자만의 결정은 아닐 것 같은데.

어쨌든 나와 하우어까지 포함하면 내일 경기는 루키들 다섯이 투입되는 경기다. 자칫하면 자이언츠가 드래프트 상위 픽을 노리고 탱킹을 한다는 오해도 불러올 수 있다.

맥없이 지게 되면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 거다.

팬들 역시 실망하게 될 테고.

감독에겐 동료들이 잘해줄 거라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다. 다른 세 명이 오늘 페르시처럼 자기실력을 온전히 발휘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째 생각이 많아지네.

“미네.”

[네.]

“내게 매 경기 매니지먼트 보너스나 네가 주는 특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최근 성적은 절대 무리였겠지?”

[…… 야구에 절대란 말은 없습니다.]

맞아. 절대는 없지.

지나간 과거에 가정도 의미가 없고.

“하지만 중요한 승부처에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잖아.”

[매니지먼트와 계약에 충실할 경우 보너스나 특전으로 얻은 능력치도 언젠가 계약자가 얻게 될 실력입니다.]

“그렇긴 한데.”

얼른 생각해봐도 몇 개가 있다.

다저스에 불을 지르기 위해 써먹었던 미친 제구력.

내셔널스 전에 완투를 가능하게 해줬던 포심의 무브먼트.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13개의 삼진을 잡게 해준 스플리터.

그것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번 시즌이 끝나면 훈련을 대폭 늘릴 생각이다.

그래서 Double Up! 보너스를 계속 모으고 있다.

앞으로 내가 출전할 경기가 5-6회 되려나? 보너스도 랜덤이라 현재 모은 게 3개. 앞으로도 3개라 보면 6주는 집중 훈련을 할 수 있을 거다. 훈련도 늘리고 저 보너스를 잘 활용하면 내년엔 온전한 내 실력으로 공의 구위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보너스도 결국 승리투수가 돼야 얻는다.

독기를 품고 나올 컨텐더 팀을 대상으로 리버캐츠 동료들과 뛰어 이길 수 있을까? 안다. 분명히 알아. 지금까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내게 승리를 안겨준 주전들도 쉬어야 하고, 리버캐츠의 동료들도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거.

하지만 이기고 싶어.

결과에 매달리진 말자고 했으면서 빌어먹을!

뒤늦게 이럴 거면 감독 앞에서 태연한 척이나 말던가.

갑자기 승리에 대한 집착이 인식되니 자기혐오에 빠질 지경이다. 젠장맞을!

[미누, 뭐가 걱정이죠?]

잠깐 생각에 빠져 있다가 깜짝 놀랐다.

항상 계약자로 날 부르던 미네가 날 이름으로 불렀다.

“뭐야? 지금 내 이름 부른 거야?”

[네. 싫으신가요?]

“천만에. 계약자보단 1억 배쯤 듣기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이름으로 불러줘.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놀란 거야.”

[…… 고민과 불안을 나눌 수 있어야 친구입니다.]

뭐랄까? 뒤통수를 한 방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베이스볼 매니지먼트란 놈과 계약. 그리고 내게 배정됐다 말하던 매니저. 시키는 훈련을 받고 그 성과를 얻고. 그렇게 단순한 관계였는데 친구라고?

또 고민과 불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특전에 ‘매니저와 더 친근하게’라는 항목이 단순히 이름이나 붙여주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라는 게 아니었단 뜻이다.

내가 미네를 불렀던 건 리버캐츠 동료들과 뛰게 된 내일 경기를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리버캐츠 동료들과 이제 겨우 비슷한 수준이라고 본다. 콜업은 됐어도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미네가 부여하는 특전, 승리투수가 돼서 얻는 보너스로 경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특전과 보너스가 없는 나는 확장로스터에 올라온 리버캐츠 동료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저 남들보다 좀 더 튼튼한 심장만 가졌을 뿐이다.

특전과 보너스가 없는 동료들.

그들과 함께 뛰면 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하던 참인데, 미네는 그 고민과 불안을 나눠가지려고 해주는 건가?

“나 참 이기적이지?”

[…… 감독이 했던 말을 생각해보세요. ‘서로를 위한 플레이’라고 했어요. 승리에 탐욕스러운 건 좋아요. 하지만 야구는 절대 혼자 이길 수 없어요. 미누가 특전과 보너스로 얻는 공보다 훨씬 좋은 공을 던지게 돼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구종의 종합평점이 80점이 나와도……”

[네.]

나 스스로가 멍청하단 생각을 처음 해본다.

생각해보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답을 미네의 입을 통해 듣길 바란 것 같다. 리버캐츠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루키. 멀리 보면 누구랑 함께 경기에 나갈지는 이미 결정된 일이다.

“미네. 고마워.”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말도 편하게 해. 친구라며.”

[……]

대답이 없네. 뭐 그래도 친구란 말은 네가 먼저 했다.

미네와 관계도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가나?

< 4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오늘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둡니다. 오늘 경기 자이언츠에선 확장로스터로 올라온 루키들을 선발라인업에 많이 올렸는데 그게 패배의 원인이었을까요?”

“아무래도 공수 양면에서 약간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선발로 나온 조 선수는 퀄리티 피칭을 했는데 타격에서 큰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을 기록했고요. 수비에서도 실책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아쉬운 플레이가 몇 번 나왔죠.”

“네. 어제 경기에서 데뷔전 홈런을 때려냈던 페르시 선수의 방망이도 오늘은 침묵했지요. 자이언츠가 루키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내일 D 백스와 자이언츠의 3차전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라커룸 분위기가 완전히 둘로 갈렸다.

주전들이야 오늘 경기를 뛰었든 안 뛰었든 어제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리버캐츠 동료들은 딱 패잔병 모드다.

어제 나름 고민하고 미네와 대화도 하지 않았다면 나마저도 저 분위기에 동참했을지도 모르지. 인상을 벅벅 긁으며 흑마법도 쓸 수 있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팍팍 뿌렸을 거다.

녀석들 옆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뭐하냐?”

“……”

“끝이 난 건 오늘 경기뿐이야. 우린 내일도 야구를 할 거고.”

“……”

“야구는 항상 해피엔딩이야. 혹시 끝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돼.”

더 주절거리진 않았다.

결국 녀석들이 극복할 문제니까.

또 리버캐츠 산 악마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다 같이 맥주나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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