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9화 (19/188)

리버캐츠 산(産) 악마들 - 1

< 1 >

따악!

높이 뜬 공을 중견수 제이크가 따라간다.

설마 또 넘어가나?

“아웃!”

펜스 바로 앞에서 기어이 잡아냈다.

와우! 제이크 고마워요! 이제 집에 갑시다!

“Incredible!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자이언츠는 루키가 사고를 치고 내셔널스 전을 가져갑니다. 이번 시즌 자이언츠의 스윕은 처음이죠. 어떤 기사 내용처럼 가을야구를 앞두고 자이언츠가 모든 컨텐더 팀에게 Fucking Giants가 됐습니다.”

“9이닝 1실점. 경기 결과도 어제랑 똑같아요. 다저스와 3차전부터 내셔널스 1차전까지 3경기에서 자이언츠도 불펜소모가 상당히 많았는데 루키 두 명이 피로를 확실히 풀어주네요.”

“네. 이러면 자이언츠로선 다음 경기가 부담이 없어지죠. 오늘 미누 조 선수의 투구는 정말 눈부시단 표현이 딱 어울립니다. 하위타선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긴 했지만 사실 내셔널스 타선은 하위타선도 쉬어갈 구석이 없으니 아쉬워할 것도 아닙니다. 중반까진 투구 수가 좀 많았는데 극복했어요.”

“5회 말을 끝냈을 때 투구 수가 78개. 페이스를 보면 7회 말까지나 던질 걸로 예상됐었죠. 그런데 5회에 세 번째 타자를 상대하면서부터 패스트볼이 확 바뀌었어요. 2400대에 머물던 회전수가 2800까지 올라가며 수직 무브먼트가 15인치에 달하는 공을 던졌거든요.”

“내셔널스 타자들이 적응을 못했죠. 다저스 전에서 선보였던 체인지업까지 곁들이니 악몽이 펼쳐졌어요. 배트타이밍을 맞추기도 어렵고 변화까지 투심 이상인 체인지업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우완 투수의 서클 체인지업이면 우타자 상대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횡 변화를 보이며 떨어지거든요. 한데 조 선수가 던지는 체인지업은 그 횡 변화 각도가 아예 슬라이더와 데칼코마니라고 보면 됩니다.”

“네. 그래서 다저스는 조 선수의 포심만을 집요하게 노렸었죠. 내셔널스도 같은 전략을 썼는데 조 선수의 포심이 달라지며 무너졌습니다. 자이언츠 관계자 말에 의하면 조 선수가 트레버 호프만에게 체인지업을 배웠다고 하는데, 오늘 포심을 보면 배운 구종이 체인지업이 아니라 포심 같아요. 체인지업은 분명히 헬-벨이 던지던 팜볼이 아니니까요.”

“어찌 됐든 Hells Bells의 전설이 이어지는 건 기쁜 일입니다. 덕분에 가을야구가 점점 달아오르지 않습니까?”

이젠 감독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말린다고 선수들이 들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나?

에미넴이 숨겨둔 아들일지 모르는 터너는 이미 비트에 몸을 맡긴지 오래고, 조용한 성격의 제이크마저 충분한 공간만 허락하면 멋진 비보잉을 보여줄 기세다.

그래도 오늘은 경기 후 바로 샌디에이고로 이동이라 선수들끼리 적당히 말려가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록 터너는 앉아서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지만.

“오늘 홈경기가 아닌 게 다행이군.”

“그랬으면 전 샌프란시스코 클럽을 모조리 뒤지고 다녀야 했겠죠. 이 친구들을 내일 경기에 세우려면 말입니다.”

“밤새 이 친구들 찾다가 난 마누라한테 쫓겨났을 걸.”

베이커 감독과 코치들의 대화에 모두 낄낄거리느라 바쁘다.

“샌디에이고에도 클럽은 있습니다.”

“그래. 경기 전날 밤에 클럽에 있다 들키면 기자들이 환장하게 좋아할 거야.”

그건 좀 무서운 말이다.

사실 훈련과 경기를 제외한 사생활 부분에선 구단의 간섭이 없어야 정상인데, 선수들이 몽크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자들.

팀의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선수들 동선을 따라가 트집 잡고 까대기에 열을 올린다.

물론 프로스포츠 선수라면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응원의 박수갈채를 보내는 팬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그 팬 중엔 아이들이 있다. 야구만 생각했을 때 다섯 살짜리 아이도 캐치볼을 하고 경기장을 찾는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고 그 선수의 유니폼을 입는다.

영감님이 말했던 것처럼 거의 미국인 전부가 응원하는 야구 팀 하나는 가졌고, 선수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

그런데 고작 맥주 한 잔 하며 몸이나 흔들고 오더라도 기자들은 잠깐 상승세를 탄 자이언츠 선수들이 정신이 나갔다는 기사를 써댈 거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팬들은 눈을 흘겨 뜨며 선수들을 바라볼 거고.

그리고 클럽은 무슨.

동부 끝에서 경기를 마치고 서부 끝으로 이동할 선수들이다. 플레이보이 모델이 잡지를 찢고 튀어나와도 별 감흥이 없을 거라는데 100달러 건다.

“얌전히 호텔에서 맥주나 한 병 하겠습니다.”

“루키들은 도핑테스트 안 걸리게 좀 마셔야 해.”

“혈관에 피보다 알콜이 많이 흐르게 하면 되겠지.”

“좋아. 농담은 여기까지.”

뭔가 농담이 아닌 것 같지만 선수들은 조용해졌다.

“13경기에 9승 4패! 올해 자이언츠가 낸 가장 좋은 성적이고 다들 열심히 뛰어줬어. 루키들이 힘을 냈지만 모두 함께 뛴 결과야. 조금 늦었다는 게 많이 아쉽지.”

“……”

나 역시 아쉽다.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 자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이언츠는 선수들이 모두 자유분방하면서도 서로 잘 챙겨준다.

챙겨준다는 게 간섭이 아니다. 지나가는 조언 정도?

스톤햄이 나와 리키에게 종종 건네는 말을 생각해보면 알아듣기 쉽다.

한 마디로 좋은 팀이다.

그 좋은 팀이 성적까지 좋았으면 최고일 텐데 두 가지를 한 번에 가질 순 없는 거겠지.

“그래서 9월 확장로스터가 적용되면 무리할 생각이 없다. 리버캐츠에서 올라올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건데, 교체가 된다고 당장 실업자라는 말은 아냐.”

“당연히 실업자는 안 되죠.”

“아직 학교도 안 간 애가 둘입니다.”

“이래서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란 거야.”

어째 이 인간들의 진지 모드는 유효시간이 딱 1분이다.

또 내 입이 허락도 없이 벌어질까봐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앞으로 2주. 지금 힘든 사람이 많은 걸 알지만 딱 2주만 더 기운을 내달란 뜻이야.”

아! 감독 역시 선수들의 무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2주는 금방이었다.

< 2 >

9월 확장로스터가 적용되고 덕아웃이 북적거렸다.

보통은 40명을 꽉 채우지 않는데 기존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겠다는 감독의 의지를 구단에서 받아들인 것 같다.

“페르시! 왜 그렇게 얼어있어?”

“망할! 한 달 먼저 올라왔다고 여유 있다?”

리버캐츠에서 어울렸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페르시가 바짝 얼어있기에 가서 옆구리를 쿡 찔렀더니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재밌다.

그런데 네가 말한 한 달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단다.

자이언츠의 루키 원 투 펀치가 날아다녔거든.

5승 1패. 평균자책점 1.53

막상 던진 건 난데 내가 믿지 못할 성적을 거뒀으니까.

자이언츠 전체의 성적도 좋았다.

내셔널스 전에서 첫 스윕을 기록하고 그 후로도 14경기에서 8승 6패로 5할 승률을 넘겼다. 특히 위닝시리즈를 가져간 경기에 LA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전이 있어 각 지구 1위 팀에게 고춧가루를 단단히 뿌렸다.

“네가 얼지만 않으면 충분하니까 하는 말이야.”

“…… 너야 성적이 좋으니 편하게 말할 수 있지.”

“페르시! 그런 내 공을 배팅 볼 쳐대듯 했던 게 너야.”

힘내라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에드손 페르시. 네덜란드계인 이 녀석은 더블A에서 하우어와 함께 내게 백투백 홈런을 때려냈던 녀석이다. 굉장히 유연한 타격 폼을 가져서 타격만 보면 하우어 상위버전이지.

“그래봐야 자리만 채우다 내려가는 건 아닐까?”

“우리가 와일드카드라도 노리면 그렇겠지.”

“…… 지금 자이언츠가 30경기 정도 남았나?”

“29경기. 절반만 투입돼도 충분히 네 실력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한두 경기에 다 보여줄 필요도 없어.”

페르시의 얼굴이 이제야 조금 풀린다.

확장로스터로 올라온 선수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적은 출장에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 압박감이다. 더블A는 말할 것도 없고 트리플A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관중.

그 함성을 뒤에 두고 처음부터 제 실력을 보여줄 심장 튼튼한 선수는 아무래도 많지 않다. 튼튼한 심장마저 재능이라고 여기는 환경에서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올해 자이언츠는 조금 다르다.

작년엔 컨텐더 팀 중 하나였기에 리키마저 조금 부진을 보이자 출전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이젠 여유가 있다.

자잘한 부상을 안고 뛰던 기존선수들. 그들에게 휴식을 주기로 마음먹은 감독이라 루키들을 계속 올릴 거다.

표정이 밝아진 페르시 뒤로 리키와 하우어가 리버캐츠 동료들을 한둘씩 붙잡고 긴장을 풀어주는 게 보인다.

리키의 입담이 날로 늘어가는 게 이럴 땐 다행이다.

순둥이였던 녀석이 갑자기 각성해서 나를 놀려댈 때 선봉에 서는데, 입담이 늘어서 여자 팬들에게 인기도 많다.

음, 생각해보면 잘 생긴 것도 이유가 된다.

나랑 하우어가 230파운드(104Kg)를 오가는데 비해 모델처럼 쭉 빠진 몸매에 누가 봐도 미남이니까. 오늘도 사인을 수십 장은 했을 거다. 저러다 한때 뉴욕의 연인이라 불렸던 데릭 지터의 뒤를 잇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이 사귀었던 여자 친구 명단만으로 올스타 라인업을 짤 수 있었다던 그 데릭 지터 말이다.

젠장!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한테 쓰지도 못하는 가운데 물건 운운할 때 알아봤다.

뭐 그래도 하우어가 있으니 안심이다. 녀석은 나와 함께 자이언츠의 두 수도승이 되기에 충분하니까. 외모 자체가 흉기인 하우어까지 나보다 먼저 여자 친구가 생기면 히트맨이라도 고용하고 말 거다.

아, 생각이 엉뚱한 쪽으로 흘렀다.

아무튼 당분간 우린 리버캐츠 동료들을 케어 해야 한다.

주전들을 하나둘씩 쉬게 하며 그 자리에 루키들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당장 오늘이라도 함께 뛸지 모르는 일이니까.

< 3 >

오늘부터 애리조나 D 백스와 3연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난 왜 페르시에게 조언 따위를 했던 걸까?

페르시는 그동안 3루 핫코너를 맡아서 고생했던 라미레즈를 대신해 1회부터 경기에 투입됐다.

1회 초 수비야 별 게 없었다. 빗맞고 데굴데굴 굴러간 땅볼 하나 처리하고 끝. 2회엔 공 한 번 못 만져보고 내려왔다.

그리고 2회 말 자이언츠 공격.

무슨 일인지 타자들이 초반부터 불타올랐다.

1회엔 분명히 삼자범퇴를 당한 타선인데, 오늘 4번에 배치된 제이크가 볼넷을 얻어 첫 출루를 했다. 이어서 5번 페티트가 내야 깊숙한 땅볼로 고든을 2루로 보냈고, 6번 하우어가 좌익수 앞 안타로 1사에 주자 1루와 3루.

7번은 페르시였다.

큼직한 외야 플라이 하나면 선취점이 가능한 상황.

힘이야 아틀라스 대신 지구를 떠받들고 있어도 충분할 녀석이라 우린 1점은 무난히 내겠다고 키득거렸다. 반대로 병살이 나오기도 딱 좋지만.

사실 이 타석이 페르시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앞으로 자기 타격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냐 없냐가 이번 타격 한 번으로 결정될 수 있다. 또 잔루가 많아질 때 선수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위기 뒤의 기회라고 상대팀이 기세가 오를 수도 있고.

어쨌든 굳은 얼굴로 페르시가 타석에 들어갔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후 상대 선발투수의 제1구.

실점위기지만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던진 공이었을 거다.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나온 루키 앞에 주자가 두 명이나 있으니 의욕이 앞설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래서 초구부터 싱커로 땅볼을 유도했겠지.

평범한 외야 플라이 하나면 실점이니까 병살을 노리려고.

따악!

하지만 거듭 말하는데 타석의 루키는 인생 2회차다.

전생은 희랍신화에서 지구를 들던 아틀라스고.

“미친! 저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장외지 뭐.”

“그냥 장외? 내일 아침쯤엔 호주 하늘 위를 지나갈 것 같은데? 저 방향이면 태평양 지나 호주 맞지?”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향이야 내일 아침 호주 하늘 위를 날든지 파리 에펠탑 위로 지나가든지 알 게 뭐야. AT&T파크 관중석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이 환호하는 것도 잠시 잊어버렸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홈런이었다.

나 크고 아름다운 거 너무 좋아하나?

뭐 우리 팀 선수들이 때리는 건 다 크고 아름답지.

“새크라멘토에 땅 좀 사놓을까?”

“리버캐츠 구장에 뭔가 있는 게 맞지? 올라오는 루키들마다 미치는 걸 보면 확실해.”

페르시가 덕아웃에 들어오자 난리가 났다.

잘하면 특수소재 헬맷이 사람 손에 구겨지는 모습도 구경할 것 같다. 한참 두들겨 맞은 녀석이 옆에 와서 앉았다.

아직 녀석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이 안 나는 얼빠진 표정이다. 내가 첫 승 올리고 딱 저랬겠지.

“나중에 스윙 좀 알려줘.”

“왜 내 밥줄까지 뺏어가려고?”

“이 자식이 나누는 즐거움을 모르네.”

조금 표정이 돌아온 녀석이랑 킬킬거리며 장난을 쳤다.

어쨌든 리버캐츠 산(産) 악마들이 세상에 풀려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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