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ing Giants! - 3
< 1 >
내셔널스 파크.
워싱턴 내셔널스가 2008년부터 홈구장으로 쓰는 이 경기장은 신축구장들이 구장 이름을 기업에 파는 유행을 거부했던 덕분에 참 심플한 이름을 가졌다.
좌중간 115m, 중앙 123m, 우중간 113m로 조금은 투수에게 친화적이지만 연간 홈런 생산량이야 평균 수치다.
“두 번째 메이저 구장에 들어와 보네.”
“마이너로 쫓겨나지만 않으면 지겹게 볼 텐데 뭐.”
음. 다음 달이면 확장로스터 적용이고 솔직히 마이너로 쫓겨나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단 2승을 했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도 생겼는데 쫓아낼라고?
미친! 사인 한 번 해준 걸로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어쨌든 조금 건방진 생각이긴 해도 두 경기 출전 결과만 보면 자이언츠 입장에서 복권 긁어 꽝이 나온 건 아니잖아.
오히려 걱정해야할 건 지금 포수석에 나간 하우어다.
이번 내셔널스와 3연전이 끝나면 새비지가 돌아오니 하우어는 원래의 불펜포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새비지의 체력관리를 생각해 가끔 투입은 되겠지만 꾸준한 출전을 보장하진 못할 거라고 본다.
또 9월에는 나와 함께 파드리스에서 트레이드됐던 케인까지 확장로스터에 포함될 테니 백업포수도 경쟁을 해야 할 판이지. 이번 3연전에서 타격이 남다르단 걸 벤치에 확실히 보여줘야 살아남는다.
“루키 둘이 은행이라도 털 궁리를 하는 거야?”
프린츠가 뒤에서 나와 리키에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여긴 워싱턴이에요. 저기 외야 너머로 국회의사당 돔이 보이는 동네에서 은행을 털다니요. 그냥 내셔널스를 털 모의중이라고 해줘요.”
“내셔널스는 다저스와는 또 다른 팀이지.”
“바르가스가 있어서겠죠?”
과연 바르가스 하나뿐일까?
내셔널리그 타격순위 20명을 일렬로 세우면 5명이 빨간 색 로고가 박힌 유니폼과 빨간 모자다. 한 마디로 투수를 빼면 쉬어갈 곳이 없는 타선이다. 투수들이 가장 화끈한 타격지원을 받는 팀이라고 보면 된다. 조금 부럽다.
“네 스트레칭이 효과가 있으면 우리도 내년엔 좀 낫겠지.”
“…… 누가 부상이에요?”
“사실 전부야.”
“……”
야구선수는 모두 자잘한 부상을 안고 뛴다.
경기에 영향을 주는 부상부위도 참 다양하다.
투수만 보면 손목, 팔꿈치, 어깨라는 일반적인 부상부위 외에도 발목, 햄스트링, 허리도 부상이 잦은 부위고 심지어 손톱이 깨지는 것도 부상원인이다.
하우어 같은 포수를 보면 치질도 조심해야 한다.
정말 야구선수 부상을 생각하면 외과병동 하나를 따로 차려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존경하는 야구 선수 중 칼 립켄 주니어가 있다.
통산 400홈런, 3,000안타 기록을 갖고 있지만 내가 그를 최고라 여기는 기록은 따로 있다.
바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역대 최장 기록인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 생각해보자. 몇 년을 뛰어야 2632경기인지.
2632경기에 그냥 출장도 아니고 연속이었다.
그것도 포수를 제외하면 가장 체력소모가 많은 유격수 위치에서 저 기록을 만들어냈다.
얼마나 자기관리가 필요한 일인지 짐작도 못할 거다.
또한 그라고 부상을 당한 적이 없을까? 부상에도 아랑곳 않고 자리를 지켰던 거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에 충분했을 시간을.
그런데 자이언츠 선수들도 지금 대부분 부상을 안고 그라운드에 나가있단다. 사람은 부상부위가 있다면 몸의 밸런스부터 무너진다. 야구선수도 마찬가지다.
화끈한 타선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무리였단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힘을 내주고 있는 거네요?”
내 2승을 만들어준 타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꼭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다. FA를 대비해서였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든 드는 감정은 똑같다.
“구단이 잘못 판단을 했던 거야. 이제라도 너희들을 콜업해서 바로잡으려고 하는데 조금 늦었지.”
“다음 달부턴 그래도 조금 여유가 생기겠죠?”
“트로피를 놓고 싸울 때라면 여유가 없겠지만 우리야 올해는 트로피랑 멀어졌으니까.”
0.403으로 겨우 4할에 복귀한 자이언츠 성적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건가?
< 2 >
따악!
미친! 바르가스는 괴물이 맞다. 진짜다.
오늘 어느 때보다 스톤햄은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실제 3회까지 볼넷 하나에 노히트 게임을 펼치던 스톤햄인데, 첫 안타를 바르가스에게 맞았다.
예리한 각도의 슬라이더 변화를 끝까지 따라가 부드럽게 밀어낸 타구였다. 타선이 한 바퀴 돈 시점에서 벌써 저 변화가 바르가스 눈에는 익숙해졌단 뜻이다.
저게 인간의 동체시력일까?
물론 때려낸다고 모두 안타가 되진 않는다.
배트스피드가 느리면 구위에 밀려 파울이 나오기 쉽고, 제대로 때려낸 인필드 공마저 땅볼, 라인드라이브, 평범한 플라이 볼로 아웃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BABIP이란 세이버 매트리션 아니면 이해하기도 어려운 용어를 동원하지 않아도 바르가스의 안타 제조능력은 대단하다. 진짜 악마의 재능이다.
“1사에 주자 1루. 병살을 노리겠지?”
“저쪽 벤치에서 작전이 나올 수도 있어.”
아직 털갈이도 못한 병아리 둘(리키와 나)은 덕아웃 난간에 매달려 눈을 부릅뜨고 경기를 지켜보는 중이다.
스톤햄 정도의 투수.
내셔널스 정도의 타선.
그 둘의 접전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부니까.
어깨는 더 싱싱할지 몰라도 저들의 누적된 경험치는 우리가 아직 넘보기 힘든 봉우리가 맞다.
따악!
우리 둘 다 틀렸다.
스톤햄은 땅볼을 유도한다고 어려운 승부를 가져가지도 않았고, 내셔널스 역시 작전 따위 없는 강공이었다.
페티트가 머리를 넘긴 타구에 펜스 플레이를 적절히 했음에도 발 빠른 바르가스는 이미 3루를 돌고 있었다.
홈 승부?
아무리 봐도 늦었다.
“진짜 미친 타선이네.”
“바르가스처럼 제대로 맞힌 것도 아니고 아예 힘으로 긁어서 퍼 올렸어. 빗맞은 게 저래.”
선취점을 내주고 주자는 2루인 상황.
나는 차라리 홈런을 맞고 말지 연속 2안타에 점수를 내주고 득점권에 또 주자를 두는 상황이 더 싫다.
그런데 스톤햄의 반응은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모자를 벗어 고쳐 쓰는 게 전부였다.
겨우 저걸로 마음을 충분히 다스렸단 뜻일까?
답은 그가 던지는 공에 나와 있었다.
“스트라이크!”
“볼!”
“파울!”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단 공 4개로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따악!
“아웃!”
초구를 노린 그 다음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잡았다.
투구 패턴에 변화는 없었다. 그저 공에 힘을 좀 더 실었다는 게 약간의 차이였다. 승부를 어렵게 가져가지도 않았고 던지던 볼 배합도 그대로. 1점 정도 내준 것엔 연연하지 않는 마인드인가?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에 돌아오는 그에게 조용히 음료를 내밀었다.
“여기 루키들 노예 경매 중이었어?”
“무슨 말이에요?”
“시원하게 맞고 잠깐 보니 둘 다 난간에 바짝 매달려 있던데 내가 잘못 봤나? 노예 경매 딱 그 자세로 하잖아.”
내가 미쳤지.
이런 인간 멘탈을 걱정했다니.
“먼저 점수 내주고 농담이 나와요?”
“루키! 마스터가 했던 말을 기억해봐. ‘나는 야구를 하며 내 투구 이외에 경기의 나머지 부분은 관심 밖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 것 같아?”
잠깐 고민하고 대답했다.
“실투가 아닌 이상 실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잘 아네.”
확 끌리는 말이다.
내 투구. 투수는 자기 투구에만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던졌으면 잊어야 한다. 상대가 때려낼지 또 일단 때린 공이 안타가 될지 야수가 처리할 수 있을지 미리 알아낼 방법이 없다. 좀 전에 스톤햄이 맞은 2루타도 사실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낮은 공이었다.
그걸 상대방은 힘으로 긁어 올렸고.
배드 볼 히터가 내셔널스에서 4번을 치는 이유였다.
그렇게 상대가 잘 쳐내면 투수로선 어쩔 수 없다.
맞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투구를 계속할밖에.
가끔은 전력분석팀과 코치들이 수비시프트를 내놓고 특정한 공을 주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스톤햄 정도 투수에게는 거의 믿고 맡긴다.
“조! 다저스 전에서 네 공은 훌륭했어.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항상 그렇게 던질 순 없을 테고, 당장 3차전에 네 출전인데 내셔널스 녀석들 타격감이 좋아. 맞을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 그래도 넌 던지는 걸 제외하면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어때? 인상을 쓴다고 네 공이 달라질 것도 아니고, 점수 내주면 덕아웃에 고개 파묻고 울상이나 지을 거야?”
“……”
“경기에 집중하더라도 매달리진 마.”
또 하나 배웠다.
투구 하나하나엔 집중한다.
다만 그 결과엔 매달리지 않는다.
따악!
그런 마음가짐의 성과일까?
바로 이어진 5회 초 자이언츠의 반격이 시작됐다.
< 3 >
“흥미진진합니다. 워싱턴 내셔널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차전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난타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4회 스톤햄 선수가 선취점을 내줬을 때는 내셔널스 타선이 폭발할 거라고 봤는데 오히려 자이언츠가 경기를 뒤집었거든요.”
“네. 이번 시즌 자이언츠의 평균 득점력을 생각하면 5회에만 4득점은 상당히 집중력을 발했던 거죠. 그런데 역시 내셔널스는 내셔널스예요. 스톤햄 선수가 내려간 7회 1사 후에 자이언츠 불펜을 두들겨 다시 역전에 성공했거든요. 자이언츠는 선발보단 불펜의 힘으로 이번 시즌을 버텨왔는데 여름을 보내며 그들도 지쳤을 겁니다.”
“역전에 재역전인데, 하지만 자이언츠가 9회 초 공격에서 다시 역전을 노립니다. 무사에 주자 1루.”
“6:4의 상황에서 1점으론 경기결과를 바꾸지 못합니다. 번트는 없을 거라고 보는데 어떨까요? 자이언츠 타선이 5회처럼 폭발해 줄까요?”
스톤햄의 승리는 날아갔다.
그런데 눈치를 살짝 봤더니 별로 실망한 표정도 없다.
하긴 지금 상황은 팀이 다시 3연패의 늪에 빠질지 내셔널스를 제물로 연패에서 벗어날지 결정되기 직전이니까.
생각해보면 선발투수는 참 외롭다.
자기가 나서는 경기를 제외하면 경기 결과에 영향력을 발휘할 재간이 없다. 아까 재역전을 당할 때도 리키와 나는 안타까워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도 난간에 매달려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따악!
“우와아아아아!”
“제이크! 드디어 터지는구나!”
저 위에서 누가 우리 응원을 들었던 걸까?
중견수로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지만 타격에선 좀처럼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하던 제이크의 한 방이 터졌다. 내셔널스의 마무리 보토의 싱커를 걷어 올려 우중간 펜스를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이제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장 감독과 코치진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8회 말에 마운드에 올랐던 하웰을 9회에도 계속 쓸 건지 마무리 네리스를 올릴지 결정해야겠지.
누가 봐도 마무리가 올라갈 타이밍이지만 시리즈 전체를 생각하는 코칭스태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스톤햄이 내려오고 디커슨이 올라갔지만 아웃카운트 두 개를 못 잡고 무너진 탓에 다시 하웰을 올렸다.
시리즈 첫 경기에 투수를 세 명이나 소모한 셈이다.
하웰은 이번 시즌을 아예 셋업맨으로 전향했다.
전력투구를 해 3이닝만 막겠다고 했고, 이제 그가 1.1이닝을 던졌으니 계속 마운드를 맡길 가능성도 크다.
“하웰! 9회 말 가능하지?”
“문제없습니다.”
“네리스! 10회엔 자네가 자이언츠 오아시스인 걸 증명해.”
애쉬비 코치의 마지막 말엔 귀를 막았어야 했다.
< 4 >
경기 초반에 프린츠의 말을 들었던 탓이겠지?
동료들의 뛰는 모습이 정말 투혼을 발휘하는 것 같다.
큰 부상은 아니기에 경기에 나서고 있겠지만 연장 12회까지 이어지는 경기는 선수의 진을 빼놓는다.
DL에 오르는 선수들이 처음부터 큰 부상을 당해 시즌을 접는 게 아니다. 작은 부상을 제대로 관리 안 해서 큰 부상으로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들 괜찮을까?
따악!
그런데 이게 웬일?
잠깐의 우려를 날려버리는 한 방이 터졌다.
“악! 악! 그만 때려!”
“페티트! 너 선인장 13호에게 오아시스 곁에 머물 기회를 주겠노라. 냉큼 이리 오너라.”
“내가 왜 13호야? 3호도 억울할 판인데.”
“선인장 따위의 항의는 안 받는다. 제일 바닥 23호로 내려가고 싶어?”
이 인간들이 신난 거랑 나 놀려먹는 걸 구분을 못하네.
아무튼 덕아웃이 흥분의 도가니가 된 그때였다.
따악!
페티트를 두드리던 선수들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리고 모두 함께 봤다.
크고 아름다운! 내셔널스 파크 하늘 위로 힘차게 쭉 뻗어나가는 하얀 공의 궤적을!
또 루키답게 빠른 속도로 베이스를 도는 하우어를.
“미쳤군.”
“미쳤네.”
“우리 루키들 약물검사 나오는 거 아냐?”
“맥주를 잔뜩 먹이면 좀 희석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