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7화 (7/188)

AT&T파크의 세 악마견 - 7

< 1 >

<이보다 화끈한 루키 데뷔전이 있을까? 뒤지던 경기를 6:5로 역전시킨 강력한 한 방!>

<갈 길 바쁜 컵스, 루키에게 발목이 잡히다!>

<9회 말 투 아웃 상황에서 터진 루키의 2루타!>

<컵스 감독. 비록 졌지만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양 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다만 오늘은 3연전의 첫 경기였을 뿐. 컵스는 자이언츠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갈 준비를 마쳤다. 내일 경기부턴 달라질 것이다.>

“영웅이 된 기분이 어때?”

“실감이 안 나.”

자기 기사를 읽느라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는 하우어.

하우어야 그렇다 치고 하우어 곁에 바짝 붙어서 같이 신난 리키 너는 뭐냐?

저 녀석은 오늘 자기 선발인 건 잊었나?

“식사나 마저 하고 봐라.”

“아직도 얼떨떨해서 배도 안 고파.”

“난 다 먹었다. 그럼 먼저 올라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하우어가 자기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제야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아무튼 신경 참 무딘 자식이네. 이거나 읽어봐.”

“하우어 찬양? 어제 밤 베이스볼 나이트쇼에서 실컷 봤다.”

“그런 거 아냐.”

뭔데 갑자기 정색을 하지?

일어나려던 자리에 다시 앉아 하우어가 터치해둔 기사에 눈길을 돌렸다.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한 반발]

…… 4타수 2안타 1삼진 2타점. 어제 루키가 빅 리그 출전 첫 경기에서 받아든 성적표다. 훌륭하다. 그런데 과연 저 수치만으로 루키의 출전 이후 컵스와 자이언츠 양 팀에 일어난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단 한 경기 활약으로 너무 오버하지 말라면 인정한다. 고작 한 경기였다.

하지만 하우어 선수가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경기의 진행패턴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 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MLB가 NFL과 NBA에 비해 점점 미국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지 생각해보자.

세이버 매트릭스가 점령한 야구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 AT&T파크를 찾은 관중들 대부분은 WHIP나 WAR, OPS 등의 수치를 보여줘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간다. 분석을 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 아니다. 끈적이는 열기와 선수들의 파이팅을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관중들은 컵스와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만족했다. 만족을 넘어 열띤 호응을 보냈다. 프로스포츠는 관중이 없으면 존재할 의미가 없다. 관중을 흥분시키고 열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낭자한 선혈 대신 땀과 긴장으로 채워진 콜로세움. 그 안에서 싸우는 검투사들에게 언제든지 환호를 보낼 준비가 된 관중들이다.

기자는 오늘 컵스와 자이언츠의 2차전 경기도 어제 경기처럼 흥분과 긴장으로 가득차길 바란다. 선수 개개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함께 몰입할 수 있길 원한다. 그렇게 되면 태어나 처음으로 컵스와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살 생각이다. 과연 나만 그럴까?

세이버 매트릭스로 수치화할 수 없는 격렬한 부딪힘을 메이저리그는 되찾아야 한다. 어제 루키가 보여준 파이팅이, 함께 호응한 컵스와 자이언츠 선수들의 끈끈함이,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한 반발의 첫 걸음이 되길 응원한다.

▶ 인정! 난 컵스 팬이지만 어제 경기에 만족한다.

▶ 샌프란시스코였어. 약쟁이들의 천국. 단체로 약 한사발 거하게 하고 약에 취해 미쳤던 거지.

▶ 이제 한 경기 했어. 오늘, 내일 2-3차전을 봐야 알아.

▶ 지구 내핵까지 파고들어간 자이언츠 실력으론 오늘 제대로 털릴 건데 파이팅이나 할 수 있을까?

▶ 마침 오늘 선발도 루키다.

▶ 중고 루키지. 작년에 털리고 마이너로 갔던.

▶ 털리는 거랑 경기 재밌는 건 또 다른 얘기야.

▶ 그래도 올해는 나쁘지 않은데. 메이저 콜업되고 두 달 동안 거둔 성적이 2승3패. 평균자책점 3.68

▶ 자이언츠 타선을 생각하면 준수하네.

▶ 일단 2차전, 3차전 보고 생각하자. 잔뜩 기대하고 봤는데 우리 마누라가 만든 푸딩 맛이면 절망할 테니까.

▶ 위 댓글 아카이브 박제.

▶ 나도. 부인 전화번호 불러봐.

“재밌네.”

“그렇지?”

하우어가 열심히 포크를 놀리다 나를 바라봤다.

마저 먹으라고 손짓을 하며 대답했다.

“경기 결과만 놓고 루키 찬양한 게 아니라 경기 전반 분위기를 잘 읽고 쓴 기사야.”

“오늘 선수들 모두 긴장하겠는데?”

“똑같이 하면 돼. 원래 야구는 그렇게 하는 거고.”

“…… 날 부추긴 건 네 녀석인데 말 참 편하게 한다.”

부추긴 게 나였던가?

내면의 악마를 끄집어낸 건 너 자신이야.

그냥 내가 부추겼다고 네가 리버캐츠의 미친 슈나우저가 됐었겠냐? 이 말은 속으로만 했다.

밖으로 꺼낸 말은?

“그래, 그래. 내가 너희를 이교도로 개종시켰다.”

< 2 >

“어제 관중들이 혹할만한 경기를 한 건 분명해. 컵스 팬들마저 자이언츠에 졌다고 돌을 던지진 않았으니까. 다만 패배가 계속 쌓여도 그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겠나?”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 들어온 컵스 감독의 첫마디였다.

선수들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컵스의 팬들? 유명하다.

아니 유명하단 정도론 표현이 한참 부족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30개 홈구장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하나는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은 인간들. 또 하나는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은 인간들.’

딱 이게 미국이 인식하는 컵스 팬이다.

같은 도시를 쓰면서도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들과는 다르다. 상당수 컵스 팬들은 야구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컵스를 응원한다. 심지어 야구의 룰을 잘 모르는 사람들, 또는 메이저 리그 구단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컵스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저 Go! Cubs! Go!

즉 야구라는 스포츠에는 관심도 별로 없으면서 연인, 가족끼리 손잡고 주말이면 구장에 나가 컵스를 응원한다는 소리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컵스 팬들의 충성심이 대대로 자자손손 내려온다는 걸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야구광인데 아버지는 야구에 심드렁해도, 그 아버지마저 주말마다 구장에 가서 컵스를 응원한다.

또 다른 동네 이사 가서도 자랑스럽게 자기 팀 광고하고, 그걸 다시 대대손손 물려주는 이들은 시카고 컵스 팬과 보스턴 레드삭스 팬밖에 없다.

70년 넘게 이어진 염소의 저주를 안고 살았던 팀이지만, 관중동원에서는 늘 5위권 안에 드는 최고 인기 팀의 비결?

염소의 저주 이전까지 생각하면 우승에 108년이 걸렸던 팀이 같은 도시의 화이트삭스를 인기에서 압도하는 비결?

바로 저런 팬들 덕분이다.

멋진 경기도 좋다.

하지만 항상 지는 경기라면 저 팬들을 실망시킨다.

“물론 자이언츠도 쉽게 경기를 내줄 생각은 없을 거야. 나가서 카디널스를 상대로 싸운다고 생각해.”

같은 동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일리노이-미주리 주 경계를 접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컵스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그런데 자이언츠를 카디널스로 생각해라?

감독은 더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 3 >

“새비지! 어제 루키에게 저녁 사고 파산했다며?”

“말도 마. 카드명세서를 들켜서 조앤에게 쫓겨날 뻔했어.”

오늘 라커룸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양 팀 선발들이 승패를 기록하지 못하고 내려간 난타전에서 일단 이겼으니까. 스톤햄에겐 조금 미안한 일인데 컵스 타자들마저 각성을 해서 물고 늘어졌으니 뭐.

그래도 어제 경기는 어제 경기.

오늘은 또 다른 경기가 될 거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컵스에선 로테이션에서 잠깐 빠졌던 1선발을 내세우기로 되어있고 자이언츠의 선발은 아직 새파란 루키다.

밖엔 최근 본 적이 없는 숫자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니 순둥이 리키가 느낄 부담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선수들이 왜 하룻밤 만에 바보가 됐는지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전부 눈이 풀렸는데.”

베이커 감독이 라커룸에 들어왔다.

어제 경기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을까 경계하는 말이겠지만 선수들이 마냥 흐트러진 건 아니었다.

“컵스 팬들의 저주를 풀 방법을 논의 중이었습니다.”

“그거야 오늘 경기 내주면 되겠지.”

“이겨서 받을 저주 말인데요.”

“큭큭큭!”

“킥킥!”

프린츠가 재치 있게 감독의 말을 받아낸 덕분에 라커룸 분위기가 쑥 올라갔다.

“좋아. 그런데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야. 리키!”

“Yes, Boss!”

저 녀석 저작권도 인정 안 하고 내 멘트를 그대로 쓰네.

“컵스 선발이 카일 넬슨인 거 알고 있겠지?”

“네. 컵스 1선발이죠.”

“기죽을 생각인가?”

“타자로 나오면 머리를 맞혀 보내버릴까요?”

이젠 선수들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다.

내가 순둥이 리키를 너무 버려놨나?

“1번에서 8번까지 타자들을 전부 상대한 다음 이야긴데 넬슨 타순이 돌아오기 전에 자네부터 끌려 내려오면? 어제 하우어 때문에 컵스 타자들 독이 올라 있어.”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 믿어보지. 다음! 타자들!”

“Yes, My Lord!”

“Yes, Your Majesty!”

얼씨구! 이 인간들 신났네.

방금 감독 말대로 컵스 타자들은 이를 악물고 나올 텐데.

하우어와 컵스 투수 가르시아 사이의 분위기는 투구가 늘어나며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지만, 주둥이 털다 역으로 당한 타자들은 아니거든.

어제 경기가 컵스 승리로 끝났으면 모르겠지만 타자들의 손을 떠난 9회 말에 경기가 뒤집혔잖아. 마무리 투수가 무너질 때도 있는 게 야구지만 어젠 너무 극적이었어.

“리키를 어떻게 도와줄 생각이지?”

“…… 컵스 타자들이 리키를 많이 괴롭히겠죠. 일단 마운드에 서는 두 투수 몸값부터 비교하기 민망하고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라는 게 아닌데.”

페티트의 냉정한 분석에 감독이 눈을 갸름하게 떴다.

“제 말은 리키가 부담 없이 던져도 된다는 말입니다. 최저연봉 받는 루키가 몸값 3천만 달러짜리 투수와 맞대결에서 졌다고 문제될 게 없으니까요. 타자들이 좀 더 질척거리겠지만 평소처럼 던지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맞을 건 맞고, 야수들을 믿어주는 게 필요해요.”

“좋아, 좋은 말이야. 점수도 좀 뽑아주면 더 좋고.”

역시.

웃고 까불고 떠들어도 이들은 메이저리거다.

자이언츠의 올해 성적이 아무리 바닥을 긴다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야구선수 중엔 최고라는 뜻이고. 저런 마인드와 스킬 등 모든 게 내겐 배울 것 천지다.

< 4 >

따악!

“쳤습니다. 타구 2루수 키를 넘겨 우중간을 가로지릅니다. 자이언츠 우익수 고든 선수 빠른 대시로 일단 공을 잡습니다만 2루에 있던 주자는 이미 3루를 돌았습니다. 홈으로 던지나요? 네, 승부를 합니다. 고든 선수 어깨라면 승부를 볼만하죠. 원 바운드로 포수에게…… 주자 파고듭니다! 주심의 콜이 어떻게 나오나요? 세이프! 세이프 판정이 나왔습니다.”

“네. 4회 초 컵스가 선취점을 얻고 앞서갑니다. 3회까지 안타 두 개에 볼넷 하나를 내줬어도 무실점으로 경기를 이끌었던 리키 선수인데 컵스 타자들이 계속 노리고 들어오죠.”

“컵스는 어제 다 잡았던 경기를 놓쳤거든요. 그게 하필 타자들과 신경전을 벌였던 루키, 하우어 선수에게 결승타를 맞아서 그렇게 됐어요. 오늘 자이언츠 선발로 나온 리키 선수 구위가 나쁘진 않은데, 워낙 컵스 타자들 집중력이 높습니다.”

“양 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경기에 이어 관중들이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어요. 자이언츠의 타선 역시 아직 점수는 없지만 컵스 선발 넬슨 선수를 꽤나 괴롭히는 중이지요. 앞으로 자이언츠 경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성적과 무관하게 팬들의 호응을 많이 얻는 팀이 될 겁니다.”

“하하! 이제 겨우 두 경기. 아직은 더 지켜봐야죠. 다만 어제 오늘 같은 경기가 계속된다면 일단 저부터 자이언츠 경기는 빼놓지 않고 찾아보겠어요.”

리키는 선취점을 내줬지만 다시 후속타를 맞진 않았다.

한 구종을 노리고 들어온 타자에게 볼 배합을 들켜 맞는 거야 피할 수 없다. 구위로 누르면 이겨내겠지만 구위로 짓누른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홈 승부 덕분에 2루로 진루했던 타자.

자칫 추가점을 줄 수도 있던 상황에서 다음 타자를 삼진 처리하고 4회를 넘겼다.

‘아직 부족하네. 미누처럼 볼 끝에 힘을 더 실어야 하는데.’

우선 6회까지 퀄러티 피칭을 속으로 다짐하며 나왔다.

이제 겨우 1점을 준 것에 불과하고. 하지만 컵스의 타자들도 자신의 공에 배트 타이밍을 맞춰간다는 게 문제다.

‘미누 저 자식을 좀 닦달해볼까.’

신기한 스트레칭부터 도움을 주기보단 받을 게 많은 녀석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