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형우는 늦잠을 잤다.
진짜 잠이 와서 잔 것은 아니다.
눈은 새벽부터 몇 번씩이나 떠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지숙이 아침에 곤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7시가 훨씬 넘었을 무렵.
안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슬리퍼 소리가 들리더니, 방 문이 조용하게 열린다.
드르렁-쿠울-
형우는 일부러 코고는 소리까지 내며 자는 흉내를 냈다.
"후우."
지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녀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밖에서 달그락 거리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우는 이십분 정도 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졸려서 정신이 없다는 듯 눈을 비비며 나가자 지숙이 말을 걸어왔다.
"형우 일어났니? 어제 밤에 별...일 없었지?"
지숙은 주저 하며 물었다.
예상대로 간밤의 일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집에 들어오기 전 부터 의식은 없었던 듯 했다.
그래서 사인방이 대문 앞까지 데려다 준 모양이었다.
형우의 대답을 기다리는 지숙의 표정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러나 형우는 오히려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어? 엄마 언제 들어 왔어요?"
그의 물음에 지숙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긴장감과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졌다.
"언제 들어 오긴? 어제 밤에 들어 왔지."
"에이. 들어왔으면 깨우지 그랬어요?"
"자고 있는 사람 깨워서 뭐하게? 그보다 어서 앉아서 밥 먹어. 학교 늦겠다."
"벌써 늦었어요. 천천히 가죠 뭐."
형우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의 얼굴은 웃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학교는 여전히 세상 모르는 아이들의 밝은 수다로 떠들썩했다.
형우는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기름 떨어진 자동차 마냥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고 그저 무기력함만이 가득했다.
수업시간에 선생이 떠드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속에는 지숙이 했던 말만이 계속해서 울려왔다.
-엄마 행복 해. 죽을 것 같이 기분이 좋아서 너무 행복해......
그때 짓던 지숙의 표정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하아......"
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사인방이 여느때와 같이 뒤쪽에 모여들었다.
"야 씨발. 나 아침에 일어났다가 죽는 줄 알았어."
"나도 그래. 온 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더라."
"씨발년. 완전 킹 오브 개걸래야. 어떻게 네 명을 상대하는 데 우리가 먼저 뻗냐?"
"그 년 막판에 집 앞에서 존나 박아 주니까 완전 뿅 가서 정신 나가 버렸던데. 괜찮았으려나 몰라."
김동혁이 피식 웃더니 형우를 흘깃 보며 말했다.
"괜찮지 그럼? 안 괜찮으면 어쩌려고?"
형우는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들이 다시 대화를 나눈다.
"찐따 새끼가 보진 않았을까? 너무 티나게 해놨었잖아."
소심한 김종수의 말에 김동혁이 고개를 저었다.
"봤을 리가 없지. 집에 불 다 꺼져 있었잖아. 자빠져 자고 있었을 거야."
"존나 찐따라서 불 끄고 딸딸이 치고 있었을 지도 모르잖아."
김동혁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병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뭐하러 불 끄고 딸딸이를 치겠냐? 그리고 진짜 그랬으면 더 괜찮지. 존나 발정 나서 딸딸이 치고 있던 새끼가 그 꼴을 봤다고 생각해 봐라. 눈이 안 뒤집히겠냐?"
"그래도 엄만데?"
"븅신. 발정난 새끼 눈에 엄마고 뭐고 보이겠냐? 더군다나 정신까지 나간 년인데? 일단 들이 박고 보지."
"에이. 그건 너무 심했다. 야설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하겠냐?"
"근데 좀 꼴리기는 한다. 아들 새끼가 정신 잃은 엄마 보지 쑤시는 거 생각하니까."
그들이 크게 관심을 표하자 김동혁이 잠시 형우 쪽을 살피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진짜 눈 확 감고 모자상간 한 번 찍어 버릴까?"
"위험하다면서?"
"당연히 그 년 얼굴은 가려야지. 보자기 같은 거 하나 씌우면 돼. 일단 빠구리 몇 판 뛰게 한 다음에 나중에 그년 한테 영상 보여주면 존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그 년 표정 존나 웃길 것 같아. 아 씨발. 생각만 해도 꼴리네."
김동혁의 말에 세 녀석도 흥분이 되는 지 침을 꼴깍 삼킨다.
"그게 될 까?"
"안 되면 마는 거지. 내가 살짝 한 번 떠보고 올게."
그리고는 형우를 향해 걸어온다.
형우는 엎드린 채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녀석들은 형우가 자고 있는 데다, 주변이 소란스럽고 거리도 평소보다 멀어서 당연히 자기들 대화를 듣지 못했을 거라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형우는 무기력한 대신 신경 만큼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 해진 상태였다.
녀석들에게 집중을 하자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나 먼 거리 따위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형우는 그들이 속닥거리는 소리 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미친새끼들.'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는 무기력함 속에서도 그들의 대한 분노 만큼은 느껴졌다.
형우가 속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김동혁이 다가오더니 옆 자리 책상에 걸터 앉는다.
"야. 민형우."
김동혁의 부름에 형우는 책상에 엎드린 채 눈동자만 움직여 그를 보았다.
형우가 대답을 하지 않음에도 김동혁은 가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다.
"얌마. 사람이 불렀으면 좀 대답을 해. 재수 없게 눈까리만 움직이지 말고."
그러나 형우는 여전히 말 없이 보기만 했다.
"이런 썅!"
김동혁은 버럭 화를 내려다, 이내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야. 내가 싸우려고 온 건 아니고. 궁금한 게 있어서 말야. 너 혹시 여자랑 자 본 적 있냐?"
"......"
"없지?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여자 먹게 해줄까?"
"......"
"내가 아는 년 중에 존나 개걸래가 하나 있는데, 내 말은 다 듣거든. 내가 그년 먹게 해줄까?"
"......"
"씨발놈아. 구라 아니고 찐짜야. 애가 나이가 좀 많긴 한데, 그래도 빠구리 하나는 진짜 끝내주게 잘 뛰거든. 그년한테 박으면 뿅 갈걸? 니가 하도 불쌍해 보여서 내가 니 아다 떼 주려고 이러는 거야 임마."
"......"
"아 씨발놈. 의심 존나 많네. 뭐 솔직히 공짜로 먹게 해주겠다는 건 아냐. 나도 뭔가 이익이 있어야 하니까, 딱 오만원 만 받을 게. 대신 오만원 내면 내가 하루 종일 박을 수 있게 해줄게. 씨발 이거 아무때나 찾아 오는 기회 아니다 너? 단 돈 오만원에 하루 종일 빠구리 뛸 수 있는 창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긴 해. 그 년 얼굴을 좀 가려야 되거든. 그래도 워낙 몸매가 쌔끈해서 얼굴 가리는 건 전혀 상관 없을 거야. 어때? 생각 있냐? 존나 하고 싶지? 당연히 하고 싶을 거야. 오만원이 비싸면 좀 깎아줄 수도 있어. 삼만 오천원 어때? 그것도 비싸? 에이 씨발. 내가 존나 인심 썼다. 좋아. 삼만원까지는 봐줄 수 있어. 어떠냐? 삼만원. 삼만원이면 여관바리 부르기도 존나 빠듯한 돈이야."
형우는 그를 노려 보았다.
김동혁이 지금 포주가 창녀 몸값 흥정하 듯 가격을 부르고 있는 여자는 지숙이었다.
더 이상 악취나는 그의 말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형우는 전학 와서 처음으로 김동혁에게 입을 열었다.
"꺼져."
나직한 목소리에 김동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형우가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의 내용이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김동혁은 인상을 구겼다.
"이런 씨발. 싫으면 때려 쳐 새끼야. 줘도 못 먹냐 병신아. 존나 헐값에 아다 떼주겠다는 데도 지랄이야. 어우. 진짜 학교만 아니었으면 존나 반 죽여 놓는 건데."
김동혁은 분을 이기지 못하겠는 지 가슴을 쾅쾅 쳤다.
형우는 그를 무시하고 다시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계속 본다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자제력을 잃어 버릴 것 같았다.
형우가 끝까지 자신을 무시하자 김동혁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 씨발 놈이 진짜 끝까지 쌩까려고 하네. 야. 야. 죽고 싶냐? 야. 씨발놈아. 일어 나봐. 야."
퍼억퍼억.
김동혁은 엎드려 있는 형우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욕했다.
그러나 형우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만 있었다.
마치 김동혁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자 김동혁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개졌다.
"개새끼가 진짜 확......"
분을 못 이겨 어쩔 줄을 몰라하던 김동혁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 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짐짓 목소리를 낮추더니 형우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야. 니네 엄마 잘 있냐?"
그 말에 형우의 눈이 떠졌다.
형우는 사나운 시선을 김동혁에게 던졌다.
형우가 동요하자 김동혁이 여유를 되찾았는 지 히죽거리며 말했다.
"전에 보니까 니네 엄마 존나 예쁘더라고. 그래서 물어 본 거야. 뭐 그런 걸 가지고 도끼눈을 해가지고 째리냐?"
형우는 이를 바드득 갈며 다시 경고했다.
"꺼지라고 했다."
그러나 김동혁은 더욱 신나서 떠들어 댔다.
"내가 아까 말했던 걸래년 있지? 그 년이 걸래긴 해도 존나 예쁘거든. 아마 니네 엄마 만큼 예쁠 거야."
김동혁은 형우의 머리에 척 하고 손을 올리더니 계속 이죽거렸다.
"이 년이 얼굴은 꼭 니네 엄마처럼 존나 얌전하고 정숙하게 생겼거든? 그런데 이 년이 보지는 완전 개걸래야. 우리가 존나 씹창 내줬거든. 아. 너 여자 보지 본 적도 없지? 걸래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 지도 모르겠네. 뭐 궁금하면 니네 엄마거라도 한 번 보던가. 얼굴도 비슷하니까 보지도 비슷할 거 아냐? 혹시 아냐? 니네 엄마도 그년 처럼 존나 개.걸.래. 일지?"
형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지숙은 이런 쓰레기의 입에 함부로 거론 될 만큼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껏 참았왔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지숙은 진짜로 그런 싸구려 창녀로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김동혁이 그의 앞에서 직접적으로 지숙을 창녀에 빗대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뻔히 알고 있는 노예로서의 지숙과 비교하면서.
김동혁은 지금 노예 지숙과 형우의 엄마인 지숙이 같다는 말을 돌려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형우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지숙의 이중성을 가증스럽게도 가해자인 김동혁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삼만원 짜리 싸구려 창녀에 비유를 하면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무기력하던 몸에 뜨거운 피가 흘러 넘쳤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의 쓰레기를 박살내지 않고는 도저히 식을 것 같지 않았다.
뚝.
머리속에 뭔가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억누르고 억눌렀던 자제력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형우는 더러운 입을 놀리고 있는 김동혁을 쏘아 보았다.
시선이 가는 순간.
주먹은 이미 그의 입과 코를 짓뭉개고 있었다.
콰앙!
김동혁의 몸이 붕 떠올랐다.
일그러진 그의 코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우당탕탕.
그의 뒤에 있던 책상이 뒤집혀 쓰러졌다.
"커헉."
김동혁이 뒤늦게 숨막히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싸움났다!"
근처에 있던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남학생들은 열을 올리며 모여 들었다.
주변이 온통 구경꾼들로 들어찼다.
"이, 이 개새끼."
김동혁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형우에게 맞아 나뒹군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이 씨발 새끼가 쳐? 너, 내가 오늘 죽이고 만다."
김동혁은 창피함과 분노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씩씩거리며 형우에게 달려 들었다.
형우가 책상을 밀치며 일어났다.
달려들던 김동혁이 책상에 부딪쳐 주춤한다.
형우는 몸을 날려 책상을 밟고 뛰어 올랐다.
쉬익.
마치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형우의 무릎이 김동혁의 얼굴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직.
"어억!"
김동혁이 다시 얼굴을 감싸며 나뒹굴었다.
형우가 바둥거리는 그의 배를 걷어 찼다.
쓰러진 김동혁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끄억."
김동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꺽꺽댔다.
형우가 세번 째로 그를 걷어 찼을 때, 뒤에서 누군가 덮쳐 왔다.
"이런 씨발놈이!"
장재민이었다.
장재민은 상당히 덩치가 큰 편이다.
그는 형우를 뒤에서 끌어 안으려 들었다.
형우는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다.
뻐억.
"끄억."
달려들던 장재민이 관자놀이를 얻어 맞고 나뒹군다.
형우는 장재민은 쳐다도 보지 않고 다시 김동혁을 짓밟았다.
"야! 저 씨발 놈 잡아."
장재민의 뒤를 따라 오던 서동철이 급히 소리쳤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형우를 말리려고 달려 들었다.
형우가 그들을 사납게 노려 보았다.
"건들지 마!"
서슬퍼런 형우의 말에 붙잡으려던 아이들이 손을 움찔거린다.
그 사이에 달려온 서동철이 주먹을 휘둘렀다.
형우는 상체를 숙이며 뒷차기를 했다.
서동철의 주먹은 형우의 머리 위로 지나갔고, 형우의 발은 서동철의 허리를 걷어찼다.
"억!"
서동철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보통 싸움 같았으면 일단 서동철이나 장재민을 마저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형우의 눈에는 김동혁 밖에 보이지 않았다.
형우는 김동혁에게 달려 들어 그의 위에 올라탔다.
왼 손으로 김동혁의 목을 짓눌렀다.
"커헉. 씨, 씨발 새끼. 이거 안 놔?"
김동혁이 켁켁 거리며 발버둥 쳤다.
그의 주먹이 몇 차례 형우의 얼굴을 후려쳐왔다.
형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런 솜주먹은 맞은 것 같지도 않았다.
형우는 김동혁의 얼굴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빠악.
"씨발놈아.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 보라고!"
형우의 주먹은 김동혁의 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주먹이 아니라 마치 쇳덩이 같았다.
게다가 총알처럼 빠르기까지 했다.
한 손으로만 치는 데도 김동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이 미친놈아! 손 안 놔?"
나동그라졌던 장재민이 형우를 걷어찼다.
하지만 형우는 발에 차이면서도 김동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형우는 김동혁의 목을 더욱 세게 누르며 고함쳤다.
"개새끼야! 다시 말해 보라고!"
"끄으윽. 이, 이거 놔......"
김동혁은 형우에게서 벗어 나려 발버둥 쳤다.
그때 뒤에서 서동철이 의자로 형우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콰앙.
"씨발새끼. 죽고 싶냐? 그거 안 놔?"
형우의 몸이 비틀거렸다.
장재민이 형우의 뒷덜미를 끌어 당겨 김동혁에게서 떼놓았다.
그 틈에 김동혁은 허겁지겁 교실밖으로 도망쳤다.
형우가 그런 김동혁의 뒤를 쫓았다.
"씨발놈. 어딜 가려고?"
장재민이 뒷덜미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형우가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장재민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콰앙.
형우의 주먹이 그의 턱을 올려쳤다.
돌아서서 파고들며 턱을 치는 동작이 한 번에 이루어졌다.
마치 만화에나 나올법한 그림 같은 움직임이었다.
"억."
장재민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이야아아아아! 개새끼야!"
서동철이 형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그런 주먹다짐에 뒤엉키면 영락 없는 개싸움이 되고 만다.
개싸움이든 뭐든 상관 없었지만, 지금은 그와 놀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형우는 뒤로 살짝 물러 나며 발을 차올렸다.
골반이 쭉 빠지며 형우의 다리가 한 뼘이나 늘어났다.
그의 앞발이 뾰족한 창처럼 서동철의 명치를 찔렀다.
"커헉."
서동철은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배를 끌어 안고 상체를 숙였다.
형우는 서동철의 머리를 짚고 뜀틀을 뛰듯 그대로 뛰어 넘어 버렸다.
김종수가 엉거주춤하게 서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비켜섰다.
더 이상 막아서는 장애물은 없었다.
형우는 쏜살같이 교실을 뛰쳐 나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치고 있는 김동혁이 보였다.
그와의 거리는 교실 하나 차이였다.
형우는 그대로 내달렸다.
복도를 단번에 가로질러 달리던 그대로 김동혁의 등을 걷어 차 버렸다.
우당탕.
김동혁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형우가 그의 머리를 짓눌렀다.
"씨발놈아. 니가 뭔데? 니가 뭔데? 너 따위가 뭔데 우리 엄마를 함부로 말해? 씨발새끼야. 니깟게 뭔데? 말해봐! 대답해 보라고! 니가 뭐냐고 이 씨발놈아?"
형우는 김동혁의 머리를 땅에 쾅쾅 찍었다.
김동혁의 뒤통수가 깨어지며 피가 흘러 나왔다.
몇 번 더 머리를 찍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형우는 억눌렀던 분노와 살의가 터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김동혁을 이대로 죽여 버리고 싶었다.
뒷 일 따윈 생각 나지 않았다.
예전 마음을 다잡기 전의 그와 같이 머리속이 온통 깜깜하기만 했다.
그대로 십초만 더 있었으면 김동혁을 죽였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동혁은 아직 명줄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이 새끼 뭐야? 그만 안해?"
아이들이 불러 왔는지 체육 선생이 형우를 뒤에서 끌어 당기며 김동혁에게서 떼어냈다.
"놔! 씨발 놓으라고!"
형우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김동혁에게 달려 들려 했다.
체육선생이 팔로 형우의 목을 휘감고 그를 말렸다.
"임마. 진정해."
형우는 체육선생에게 붙잡힌 채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아무리 형우라도 건장한 어른의 근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형우가 진정을 하지 못하자 체육선생이 뺨을 때렸다.
짜악.
"정신 차려 임마."
그제서야 형우는 발버둥을 멈췄다.
형우는 씩씩대며 김동혁을 노려 보았다.
김동혁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떻게든 형우에게서 떨어지려고 기어가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삼인방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이런 씨발놈이 감히 동혁이를......"
의자를 무기 삼아 들고 왔던 서동철이 체육선생이 있든 말든 상관치 않고 의자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형우의 모습을 보고는 움찔하더니 비칠거리며 물러선다.
형우의 모습이 너무 살벌했기 때문이엇다.
형우는 머리에서 피가 흘러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된 채 살벌한 눈초리로 김동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피에 젖은 도깨비 같은 모습에 서동철은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같이 온 장재민 역시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태가 겨우 진정이 된 것 같자 체육선생이 형우를 놓아 주고 옆에 있던 아이에게 말했다.
"야. 저 녀석 담임한테 말해서 병원 보내라. 그리고 니들은......"
체육선생이 형우와 삼인방을 보고 따라오라고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옆의 아이에게 잠깐 고개를 돌린 그 사이에 형우가 서동철을 발로 차서 넘어 뜨리고는 그가 들고 있던 의자를 낚아챘다.
"이 씨발새끼야! 니깟게 뭐냐고?"
형우는 벼락같이 소리치며 김동혁을 향해 의자를 집어 던졌다.
옆반 교실문 앞을 기어가고 있던 김동혁의 머리 위로 의자가 날아 들었다.
와장창.
의자에 맞은 교실 유리창이 그대로 박살 났다.
후두둑.
깨진 유리가 김동혁의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으어어어억."
김동혁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모습은 평소의 자신만만하던 김동혁을 떠올릴 수 없을 만치 비참했다.
"이 새끼가 정말?"
체육선생이 김동혁에게 튀어 나가려는 형우를 잡아 끌었다.
"안 되겠다. 이 새끼는 일단 내가 보건실로 데려 갈테니까, 니네 세 명은 조금 있다 교무실로 와!"
체육선생은 발버둥 치는 형우를 질질 끌고 보건실로 향했다.
형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소동은 끝이 났다.
삼인방은 허둥지둥 김동혁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학교 역사상 가장 화끈한 싸움이었을 거라며 수근 거렸다.
그렇게 싸움은 끝이 났다.
그리고 한 순간의 폭발로 인한 결과는 형우에게 너무도 가혹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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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그냥 주먹으로 한 대 치는 정도로 끝내려 했는데, 하도 복수 복수 외치는 분들이 많아서, 중간에 분이나 살짝 푸시라고 팬 서비스 겸으로 좀 줘 패 봤습니다.
형우의 행동으로 학교는 한바탕 뒤집어 졌다.
학교 자체가 날라리가 별로 없는 모범 학교였기에, 이토록 요란스러운 싸움은 전례가 없었다.
형우의 싸움은 아이들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도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선생의 앞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둘째 치고, 폭행의 정도가 아이들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현장에서 형우를 말렸던 체육선생은 자신이 조금만 늦게 말렸다면 김동혁이 죽었을 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폭행도 폭행이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김동혁의 부모가 보통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김동혁의 부친은 부동산 재벌이며 학교 이사장과도 호형호제 하는 인물이었고, 모친은 삼년째 육성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한 마디로 부모가 둘 다 학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부모를 둔 김동혁이 만신창이가 되어 두들겨 맞았으니, 교장 이하 선생들의 똥줄이 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형우는 그 날 보건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하루 종일 담임과 학생주임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들로서는 일단 싸움의 원인부터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형우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을 말 할 수도 없었고, 무슨 합당한 핑계를 대든 간에 결국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생주임 선생은 형우에게 계속 입을 닫고 있다간 감옥에 갈 것이라며 윽박질렀지만, 형우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담임 선생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마 전까지 그가 가장 피하려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김동혁을 짓밟은 순간부터 그런 결과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겪게 되는 것은 머리 속에서만 각오했던 것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지숙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겠다던 예전의 각오 때문에 아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지숙의 비밀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형우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말다툼을 했는데, 그 새끼가...저보고 '니미 창녀'라고 욕했습니다."
형우의 말에 담임과 학생주임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머리속에 아이들이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한 명이 '니미 창녀다.' 라고 욕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입이 험한 아이들간에 흔히 쓰는 욕 중 하나였다.
굳이 뜻을 풀이 하자면야 '너희 엄마는 창녀다.' 라고 풀이 할 수 있겠지만, 요즘 청소년들 중에 그걸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받아 들이는 아이는 없었다.
그냥 씨팔이나 개새끼 처럼 흔히 써먹는 욕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니미 씨팔이나 니미럴 같은 욕도 '니 애미랑 씹질 할 놈.' 이란 뜻이다.
욕의 본 뜻을 따지고 들자면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패륜적인 욕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뜻을 일일이 풀이하면서 받아 들이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형우는 말다툼 중에 그런 욕을 들었다고 상대 아이를 반 죽여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 겨우 그거 때문에 애를 그 모양으로 줘팼다고? 그게 말이 돼?"
학생주임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선생들 역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욕 같은 것은 훤하게 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 욕을 들었다고 흥분해서 날뛸만큼 순진하지 않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윽박에 형우는 화가 났다.
자신은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했던 일을 학생주임은 별것 아닌 일로 취급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형우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럼 엄마를 욕하는 놈을 가만 둡니까? 선생님 같으면 선생님 어머니한테 창녀라고 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형우가 고함에 학생주임이 잠시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형우의 말을 이해하고는 얼굴을 구기며 형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짜악.
성인 남자의 거센 손바닥에 얻어 맞자 형우는 의자에서 나뒹굴었다.
"이런 개자슥이! 너 방금 뭐라 그랬어?"
학생주임은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어 부쳤다.
담임선생이 그를 말렸다.
"어허. 주임선생님. 참으세요. 아직 애잖아요. 제가 잘 다독거려 볼테니, 나가서 흥분 좀 가라 앉히세요."
"아우. 내가 이놈의 선생질을 때려 치든가 해야지."
학생주임은 가슴을 쾅쾅 치며 나가 버렸다.
담임, 최진성이 쓰러진 형우를 일으켜 앉히며 물었다.
"괜찮으냐?"
최진성은 다른 선생들과 달리 권위 같은 것을 내세우지 않고 학생들과 격식 없이 지내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학생들과도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형우는 그를 힐끗 쳐다 보고는 대답 없이 의자에 앉았다.
"후우. 주임 선생님이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는 말아라. 그건 그렇고, 진짜 그런 이유 때문에 싸움을 한 거냐? 정말 그게 다야? 체육선생님 말씀으로는 뭔가 원한 같은 거라도 있는 것 같았다던데 말이야."
최진성 역시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말리는 선생 앞에서 까지 폭력을 휘둘렀을 거라고는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속사정을 모두 알지 못하는 한, 다른 사람은 형우의 행동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그런 변명이라도 꾸며서 한 것은 자신이 화를 낸 이유를 단순화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냥 보통 싸움처럼 가벼운 말다툼에서부터 시작 된 것으로 여겨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지숙 역시 형우가 화를 낸 것이 자신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폭력의 정도가 심한 것만 빼면 싸움 이유로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지나가다 어깨만 툭 건드려도 주먹질부터 하고 보는 피끓는 청소년들 아니던가?
그저 형우는 그런 피끓는 아이들 중에 조금 더 피가 정신 나간 놈 정도로 취급 받으면 그만이었다.
"정말 그게 다야?"
최진성이 확인조로 다시 물었다.
형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게 답니다."
그리고 형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결국 싸움은 평소 김동혁을 마땅찮게 생각했던 형우가 사소한 말다툼 중에 흥분해서 폭행을 가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리고 이틀 후, 지숙이 학교에 불려갔다.
형우의 처벌 문제와 치료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딱딱한 분위기의 상담실에 지숙과 형우, 김동혁과 그의 모친이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이틀 만에 보는 김동혁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얼굴은 온통 붓고 멍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코는 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는 지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그는 맞은 데가 아픈 지 연신 인상을 쓰고 형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작 형우와 눈이 마주치면 채 1초 이상을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버렸다.
구타 가해자와 피해자간가 의례 그렇듯, 몸의 고통이 형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겨진 듯 했다.
김동혁이 아파서 낑낑거리자 김동혁의 모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아. 니가 뭘 잘했다고 끙끙거려?"
어머니의 엄한 목소에 김동혁이 궁시렁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김동혁의 모친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였다.
"육성회장 주민정이에요. 제가 동혁이 엄마에요."
그녀는 처음 지숙을 보자 마자 악수를 청하며 자신의 이름 부터 밝혔다.
보통 누구누구 엄마입니다 라고 밝히는 학부형들과 판이하게 다른 인사였다.
결혼이나 주부라는 단어 안에 자신의 이름이 묻히는 것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자립형 여성인 듯 했다.
주민정은 김동혁이 말했던 대로 상당한 미인이었다.
얼굴은 동그란 계란형이었는데, 눈이 크고 코가 오똑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입이 크고 입술 역시 두꺼워서 서구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다만, 눈꼬리가 살짝 찢어져 있고 머리 스타일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로 잰듯이 반듯하게 정돈된 채 틀어 올려 상당히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그 매력을 감소시켰다.
몸매는 지숙보다 훨씬 풍만하고 살집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평소에 관리를 많이 하는 지 뚱뚱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눈에는 빨간색 뾰족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인상이 더욱 엄격하고 날카롭게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도도한 부잣집 사모님과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반쯤 섞여 있는 외모였다.
아이들 앞에서는 그토록 흔들림 없던 최진성도 주민정 앞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쩔쩔맸다.
"그, 그래서 그냥 단순한 말다툼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만큼 담임인 제 입장에서는 서로 좋게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진성은 싸움의 원인과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땀을 닦았다.
그가 설명한 원인과 과정은 평소에 두 학생의 사이가 좋지 않았었고, 사소한 말다툼과 욕설로 그 감정이 터져서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굳이 학부형들 앞에서 '니미 창녀' 라느니 '니미럴' 이라느니 하는 험한 단어를 쓸 필요성은 없었기 때문에 싸움의 발단이 되었다는 욕설에 관해서는 대충 넘겼다.
그 외에도 최진성은 몇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학부형들이야 알고 있을 리가 없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싸움에 관해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평소에 김동혁이 공공연히 학교 짱 행세를 하는 것을 눈꼴시게 여기던 전학생, 기회를 노리다 김동혁이 말실수로 흘린 욕설을 빌미로 삼아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패버렸다는 소문이었다.
굳이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김동혁을 두들겨 팬 것은, 이제부터 자신이 학교 짱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린 것이라고 했다.
그 소문 때문인지 학생들 사이에선 서로의 가족에 관련되는 욕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불문율까지 생기게 되었다.
최진성 역시 그런 소문을 얼추 들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선생 입장에서 학부모들에게 차마 '당신들 아이들이 학교 짱 자리를 놓고 싸운 것 같다'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꺼낼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말다툼으로 인한 우발적 다툼이라는 말 뿐이었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주민정이 팔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학교측에서는 어떻게 처벌을 하겠다는 건가요?"
"저, 저희 교무회의 결과로는 유기 정학 이주에 근신 십일 정도로......"
주민정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그의 말을 끊어 먹었다.
"뭐라고요? 애를 이꼴로 만들어 놨는데, 고작 이주 라고요? 진단이 전치 삼주가 나왔어요. 삼주면 고소감이라고요. 이사장님이 하도 조용히 넘어가자고 부탁하고, 또 동혁이하고 같은 나이에 민증에 빨간줄 긋고 인생 망치게 하는 건 심한 일 같아서 학교에 처분을 맡기겠다고 한 건데, 이주라니요? 선생님은 그게 합당한 처사라고 생각하세요?"
똑 떨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최진성의 목이 움츠러 들었다.
"물론 동혁이 어머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이제 졸업도 몇 달 안 남았는 데다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게다가 전적으로 형우 잘못만 있는 것도 아니고......"
최진성이 조심스럽게 변명을 하자 주민정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욧? 그럼 우리 동혁이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싸움이 일어난 원인이 동혁이가 말실수를 한 것이......"
"얻어 맞은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에요? 저 애는 멀쩡하고 우리 애는 만신창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애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요?"
주민정의 말에 옆에 있던 김동혁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 엄마. 나도 맞기만 하진 않았어. 잘 보면 저 새끼 얼굴에도 멍 좀 들었......"
"시끄러 이 녀석아! 맞고 다니지 말라고 태권도 도장을 삼년이나 다니게 했는데, 그 모양으로 얻어 맞고 다녀? 엄마가 그랬지? 치료비 같은 건 다 책임져 줄테니 절대 맞고 다니지 말라고. 맞을 바에 차라리 니가 때리라고! 했어 안했어?"
"해, 했어."
"그런데 그렇게 맞고 들어 와? 어휴. 속상해. 널 아들이라고 둔 내가 불쌍하다."
주민정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그녀의 구박에 김동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그는 평소에 학교에서는 온갖 허세를 다 부리며 아이들을 휘둘렀고, 또 지숙에게는 범점할 수 없는 주인으로서의 카리쓰마를 보여 왔었지만 주민정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김동혁은 어려서부터 그녀에게 완전히 휘어잡힌 채 살아 왔다.
그가 첫 상대로 주민정과 비슷한 또래인 지숙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엄마를 마음대로 휘둘러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김동혁이 말문을 닫자 주민정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학교에 처분을 맡긴 것만 해도 제 입장에선 많이 양보한 거에요. 그러니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저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에요."
"합당한 처벌이라 하시면 어느 정도를 생각 하시는 지......"
최진성의 물음에 주민정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무기정학이죠!"
그녀의 말에 최진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학생에게 무기정학은 내린다는 것은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지만 형우에게만 일방적으로 그런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주민정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진성은 도저히 그녀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그뿐 아니라 이 학교 선생들 모두가 그랬다.
워낙 치맛바람이 쎈 학교인지라 그만큼 육성회의 권한이 강했고, 주민정은 그 중에서도 몇년 째 회장직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치맛바람 어머니들의 대표인 셈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드센 지는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이 자리에 함께 참석했어야 할 교감선생과 학년주임 선생이 피해 학생 어머니가 주민정이라는 말만 듣고, 병가를 내고 학교를 빠졌을 정도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담임을 맡고 있는 지라 빠질 수 없었던 최진성이 학교 측 입장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최진성이 어쩔 줄 몰라 버벅되고 있을 때,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던 지숙이 입을 열었다.
"저...동혁 어머... 사모님. 치료비와 보상은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심한 처사 만은......"
주민정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돈이라면 우리도 얼마든 지 있어요. 굳이 그쪽 신세 질 생각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분명한 처분 뿐이에요. 이건 단지 우리 아이가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이러는 것만은 아니에요. 이 학교 육성회장으로서, 댁의 아들에게도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확실히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댁의 아들이 어린 나이라도 잘못을 하면 당연히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알아야 나중에 또 이런 일을 안 일으키지 않겠어요?"
"하지만 형우는 나쁜 아이가 아니에요.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에요. 지금도 많이 반성 하고 있고 후회하고......"
지숙의 변명에 주민정이 뾰족한 고함을 질렀다.
"댁이 그렇게 아들을 감싸고 도니 이런 일이 일어난 거 아니에요? 자기 아들이라고 잘못 같은 건 안 할거라고만 생각하는 게 믿음이 아니에요. 부모들이 내 아들은 안그럴 거라고 감싸돌기만 하니까 수많은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는 거라고요. 아들을 믿고 싶으면 올바른 길로 확실히 인도한 후에야 믿으세요! 댁은 그런 소리 할 게 아니라 먼저 반성부터 해야 돼요! 이런 일이 생긴 진짜 이유는 댁의 그 아들에 대한 무책임한 믿음 때문이니까욧!"
지숙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러 말도 하지 못했다.
주민정의 언변은 대하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죄를 하러 온 자리에 원래부터 성격이 드세지 못한 지숙이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바탕 설교를 늘어 놓고 난 주민정은 자신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 지 톤을 낮춰서 다시 말했다.
"오해하진 마세요. 그쪽에 악감정을 가지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다만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 책임의 절반은 엄마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에요. 아들의 잘못을 책임지는 것도 엄마로서의 의무이니까요."
상담실 안은 오직 주민정의 단호한 설교만이 울려퍼졌다.
최진성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 사나운 암코양이 마음을 돌리긴 틀렸구나. 후우. 이제 한달 반만 있으면 방학인데, 학생에게 무기정학이라니.'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형우와 지숙 모자를 돌아 보았다.
그때, 지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의 잘못이 엄마의 책임이라는 말씀 잘 알아 들었어요.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행동에 주민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래서요? 받아 들이겠다는 건가요?"
지숙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리 그래도 형우가 무기정학까지 받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제가 대신......"
말을 하던 지숙이 갑자기 주민정과 김동혁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빌었다.
"...책임지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모두 부덕한 제 잘못입니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
지숙의 행동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주민정과 최진성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형우 역시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어, 엄마! 뭐 하시는 거에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제가 그만 둘게요! 이 딴 학교 제가 그만 둬 버리면 되잖아요! 어서 일어 나세요!"
형우는 정말 지숙이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그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많은 피해학생들의 부모 앞에 불려가 용서를 빌었던 지숙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적은 없었다.
형우는 급히 지숙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맞은 편에 앉은 김동혁의 얼굴을 보고 몸이 굳어 버렸다.
김동혁은 그와 지숙을 내려다 보며 소리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본 형우는 깨달았다.
지금 지숙이 하고 있는 굴욕적인 행동이 바로 김동혁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금 주민정이 아니라 김동혁에게 엎드려 빌고 있는 것이다.
김동혁을 그렇게 만든 자신의 앞에서.
'개...새끼......'
형우는 이빨을 바드득 갈았다.
분노로 손이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 김동혁을 다시 한 번 밟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눈 앞에 비참하게 엎드리고 있는 지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머리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소용돌이 치듯 맴돌았다.
뿌드득.
어금니가 갈리며 뼛가루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잇몸이 찢어지며 찝찌름한 피가 새어 나왔다.
꽉 쥔 주먹이 터져 나갈 것처럼 떨려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눈 앞에 엎드린 지숙을 위해 참아야 했다.
그때 당혹스러워 하는 주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결 되는 일이 아니에요. 어서 일어 나세요. 문제가 있으면 이성적으로, 대화로 해결을 해야죠."
똑부러지던 그녀 역시 두 사람의 행동에 너무도 놀랐던지, 말까지 더듬었다.
옆에서 남몰래 히죽거리며 웃던 김동혁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했다.
"엄마. 형우 아줌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봐주자. 형우도 반성하는 것 같고. 또 친구 사이에 다툴 수도 있는데, 괜히 그거 가지고 정학이니 뭐니 해버리면 다른 애들 사이에서 내 입장도 엄청 곤란해 져. 잘못하면 나 진짜 왕따 당할 지도 모른다니까?"
그 말에 주민정의 얼굴에 갈등이 떠올랐다.
3년간 육성회를 꾸려가면서 아이들간의 왕따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왕따 당할 지도 모른다는 김동혁의 말이 상당히 와닿았다.
잠시 갈등하던 주민정은 무릎 꿇고 엎드린 지숙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댁이 아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니 같은 엄마로서 더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네요. 좋아요. 치료비와 보상을 받는 정도로 끝내고 처벌은 요구하지 않겠어요. 정학이든 근신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최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주민정은 판사가 판결을 선언하 듯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상담실을 나가 버렸다.
인사도 없이 급히 나가는 것을 보면, 당황스러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김동혁이 그녀의 뒤를 따라나가는 척 형우에게 다가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니네 엄마 때문에 살아난 줄 알아."
그리고 이번에는 지숙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우리 엄마 마음을 돌리다니. 아줌마 대단하던데?"
그의 손이 닿자 지숙이 몸을 움찔하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뿌드득.
형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억제했다.
최진성 역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을 알았는 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형우 어머님. 우선 진정 좀 하시고 나중에 다시...저, 전 교무실에 가 있을테니 진정 되면 들리세요. 형우야. 어머니 위로 좀 해드려라......"
최진성은 상담실을 나가며, 아직도 바닥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 않고 있는 지숙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착하고 헌신적인 엄마를 모욕했으니......'
그는 어쩌면 형우가 싸운 원인이 진짜 그 욕 한 마디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상담실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자 상담실에는 형우와 지숙만이 남게 되었다.
형우는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지숙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것이 지숙에게 이런 굴욕을 안겨 준 것이다.
형우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해요."
그 말에 지숙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엄마가 미안해."
그녀의 목소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그냥. 그냥 형우한테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해요? 다 내가 잘못한 건데. 우리도 그만 일어 나요."
"그래. 일어 나야지."
지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어 나려던 지숙의 다리가 휘청거리며 다시 주저 앉는다.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내가 부축해 줄게요."
형우가 그녀의 팔을 잡고 부축해 주었다.
지숙의 가녀린 팔에 희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엄마도...나한테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줄까봐 이렇게 떨고 있었구나.'
형우는 지숙을 부축해 일으켜 준 후, 한쪽 어깨를 살짝 기울여 그녀의 백을 집으려 했다.
그때 형우의 눈에 지숙이 앉아 있던 자리가 보였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적시고 있는 희뿌연 물방울들.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지숙의 엉덩이를 보았다.
지숙의 치마가 물에 젖은 것 처럼 약간 얼룩이 져 있었다.
치마 색깔이 짙은 검은 색이라 거의 표가 나지 않았지만, 형우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숙이 흘린 보짓물이라는 것을.
지숙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굴욕적으로 엎드리고, 그 행위로 인해 흥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숙의 팔을 부축하던 형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지숙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형우야. 엄마 아파. 살살 잡아."
형우는 지숙의 부름에 정신이 들었다.
다행이 지숙은 아직 자신이 저토록 물을 많이 흘렸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형우는 지숙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달아 올라 있었다.
조금 전에는 그것이 굴욕적으로 엎드린 탓에 창피함과 수치심으로 상기 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흥분해서 몸이 달아 올라 있어서였다.
형우는 왠지 지숙이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떠올리고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뺐다.
"미안해요. 잠깐 나쁜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엄마. 어서 가요."
형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관리하며 지숙을 부축하여 상담실을 나갔다.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요."
형우의 말에 지숙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형우 너 아직 수업도 안 끝났잖아. 엄마 괜찮으니까 교실로 가. 그리고 엄마 교무실 가서 선생님도 만나 봐야 하잖아."
지숙의 말에 형우는 마지못해 그녀의 팔을 놓았다.
"그럼 엄마. 조심해서 가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하고요."
"호홋. 사고는 니가 쳐 놓고 왜 엄마를 걱정하니? 아들도 더 이상 사고 치지 마?"
그 말에 형우는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이번엔 정말로 실수였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에요. 정말이에요 엄마."
"알아. 엄마는 우리 형우 믿어. 그럼 엄마 갈게."
지숙은 상냥하게 웃으며 형우를 한 차례 안아 주고는 돌아섰다.
형우는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지숙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교실로 향했다.
그러나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복잡해서 도저히 수업을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업 시간의 복도는 마치 사람 없는 무인도와 같이 조용했다.
형우는 그 정적과 고독이 좋아 괜히 목적 없이 복도를 서성거리며 돌아 다녔다.
창가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자 담배를 피고 싶어졌다.
형우는 건물을 나와 자신만의 장소로 향했다.
비록 냄새는 나는 곳이지만, 학교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만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형우는 학교 구석의 창고 뒤의 버려진 화장실 건물로 걸어갔다.
화장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 밖에서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완벽한 그만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형우가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코너를 돌기 직전.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이 씨발년아! 니 년 아들새끼 때문에 존나 아프잖아! 이거 어쩔 건데?"
욕설의 뒤를 이어 살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철퍽철퍽!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흐느낌 소리.
"아흐흑. 주, 주인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바로 지숙의 목소리였다.
형우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가 항상 담배를 피던 공간. 그리고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등을 기대던 지저분한 화장실 벽.
지숙은 그 벽에 기대어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고, 김동혁은 그런 그녀의 항문에 자지를 꽂아대고 있었다.
퍼억퍼억.
"이 씨발년. 개 같은 년. 자식 새끼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씨발년아. 깡패로 키웠냐? 엉?"
김동혁은 자지를 박을 때 마다 지숙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찰싹찰싹.
"으흐흑. 죄,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지숙은 연신 용서해 달라는 말만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치마를 엉덩이 위까지 걷어 붙이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 올 때 부터 노팬티였던 모양이었다.
아까 상담실에서 바닥에 물이 흐른 것도 그 때문인 듯 했다.
지숙은 김동혁에게 맞을 때 마다 하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신음했다.
"하으응. 주, 주인님. 더, 더 세게...노예년에게 더 세게...엉덩이에 벌을 내려 주세요."
"그래 썅년아. 걸래 같은 년. 씨발년아 니 입으로 말해 봐. 내가 너한테 창녀라고 한 게 뭐가 잘못인데? 너
창녀 맞잖아 씨발년아. 너 우리 자지 없으면 못 사는 창녀 맞잖아."
김동혁은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자지를 쑤시는 걸 멈추고 지숙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뽀얗던 지숙의 엉덩이가 금새 새빨갛게 물들었다.
지숙은 숨막히는 소리를 내며 부르짖었다.
"흐으으윽. 맞, 맞아요. 주인님 말씀이 맞아요. 전 창녀에요. 주인님이 주는 좆물 받아 먹고 사는 창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