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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72화 (169/170)

The Last (2)

눈을 뜨자 빌딩의 숲이 보인다.

인적이 전혀 없는, 인류가 사라지고 난 도시는 꼭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팀전 전용 전장, 환영도시였다.

전장에 발을 디딘 순간 육체에 버프가 들어온다.

“재생의 바람!”

“물의 수호벽!”

밀러의 자연회복계열 버프, 유호영의 방어력 증가 버프였다.

우리 팀은 이번 팀전에서 오딘을 잡기 위해 다소 무리수를 뒀다.

바로 4인 가디언 공략.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4인으로 가디언 공략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상당한 리스크였는데 거기다 비숍인 민우진 대신 하이프리스트인 밀러를 투입하는 선택을 했다.

유저들이 가장 사랑하는 힐러로 1순위에 꼽히는 클래스가 비숍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부활이라는 가이아 최고의 스킬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 혹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레이드가 터질 위기를 막아줄 수 있는 클래스는 비숍이 유일하기 때문에 그 가치는 프로리그에서도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밀러를 기용한 건 오로지 작전 때문이었다.

이번 라운드에서 내 역할은 팀이 4인으로 레이드를 완료하는 동안 시간을 버는 것.

피지컬 괴물인 오딘 녀석들 다수를 상대로 버프 없이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에 어찌보면 반쯤 강제 된 선택인 셈이다.

그렇게 버프를 두르고 한참을 적진을 향해 달리던 나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상대가 보이질 않아···?

게임 시작 이후, 난 직선거리로 상대 본진을 향해 달려왔다.

만약 상대가 점수 거점을 먼저 노리는 동선을 짰다면 나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거점을 노리는 건 아니란 말인데.

환영도시에서 노릴 만한 포인트는 딱 세 곳.

자이언트 가디언, 점수 거점, 오우거 로드다.

만약 오딘이 거점으로 오는 게 아니라면 오우거나 가디언으로 향했단 이야기가 된다.

차라리 공략이 쉬운 오우거 쪽으로 향했다면 그나마 우리에겐 다행스런 일이 된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만약 오딘이 가디언 쪽으로 향했다면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

자칫하면 4:5로 싸우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는 다급히 방향을 틀어 상대가 가디언으로 향했을 때 도달했을 지점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마력이 쑥쑥 빠지는 걸 느끼며 한참을 달리자 전방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오딘의 본대였다.

이번 목적은 저번처럼 단신으로 돌격해 적을 휘젓는 게 아니라 시간끌기, 숨을 고르고 공세를 취하려는데 머리 위에서 쐐액 하고 강공이 날아들었다.

“윽.”

피하기엔 너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폭음과 함께 열 걸음 이상 뒷걸음질 하고 나서야 간신히 충격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야. 그걸 막네.”

“역시 유니크인가?”

내 앞을 가로막고 나타난 녀석은 둘.

1라운드에서 나한테 깨졌던 무도가 보리스, 웨폰마스터 카이저였다.

조금 전 공격은 내 접근을 알아차리고 즉흥적으로 날린 공격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단독으로 움직여 공략해오리란 걸 알고 있던 눈치였다.

게다가 둘이나 되는 인원 배치.

나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후. 차라리 잘 된 일인가?

나한테 인원이 둘이나 배치됐다면 적어도 팀원들이 단숨에 쓸려나갈 확률은 적었다.

오딘이 아무리 피지컬이 뛰어나도 머릿수 하나 차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럼 신나게 한 번 놀아볼까?”

수적 우위를 잡은 녀석들은 내게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보리스 한 명으로도 충분히 강적인데 둘이라니.

아무리 버프를 두르고 있어도 버티는 게 최선이었다.

먼저 손을 써온 건 보리스였다.

1라운드 패배를 씻고 싶은 모양인지 아주 독이 바짝 오른 모습이었다.

푸른 기운이 어린 장력이 내 시야를 가리고 들었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흘리자 풍압을 받아낸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냥 장력이 아니라 독장인 듯 했다.

나는 넘어질 듯 뒤로 누우며 공격을 회피, 교룡각으로 반격했다.

교룡각은 교룡뇌조와 달리 초월급 스킬이지만 그 위력까지 약한 건 아니었다.

프로에 갓 입문한 어린 선수들은 무조건 최상위 스킬이 최고인 줄 알지만 진정한 톱클래스 선수들은 오히려 상급, 초월급 스킬 활용에 무게를 둔다.

특히 팀전에선 그런 경향이 더욱 도드라졌다.

팀전은 개인전과 달리 시간이 매우 길다.

호흡을 길게 가져갈 때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바로 마력 관리.

전설급 스킬의 위력 좋은 거야 모든 유저들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위력이 뛰어난 공격은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막무가내로 스킬을 낭비하다간 게임 끝나기도 전에 마력고갈로 도리어 패배를 당하게 되는 셈이다.

교룡각이 보리스의 허벅다리 안쪽을 박차며 통쾌한 타격음을 냈다.

녀석의 얼굴에 잠시 고통의 빛이 어렸지만 정작 수세에 몰린 건 나였다.

반쯤 누워있는 내 목을 향해 은빛 검광이 날아들었다.

카이저의 연계였다.

그냥은 피할 수 없는지라 난 차라리 벌렁 누워버렸고 그 상태에서 발을 구르며 위기를 벗어났다.

누운 채로 다리만 휘적거리며 움직이는 모양새가 솔직히 보기 좋진 않지만 목에 칼맞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내 체력이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버티곤 있지만 확실히 불리한 국면이었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군.”

-누가 누구보고 쥐새끼래.

-상대 선수에겐 들리지도 않는데 왜자꾸 말 거는 거임? 병신이야?

-이대일로 다구리 치는 놈들이 아가리만 터네 ㅡㅡ

-유니크님 제발!!!

난 몸을 튕기듯 회전하며 연달아 들어오는 보리스와 카이저의 공세를 받아냈다.

왼손으론 항마장, 오른손으론 교룡뇌조를 뿜어냈고 그걸로 모자라 다리를 들어 용의 충격을 뿌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불리한 상황인데도 나는 침착함 속에 길을 찾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걷는 기분이었다.

-뭐지? 미친놈인가?

-키아아아아!!!!

-보고 막는 거임?

-보고 막을 레벨이 아닌데.

-일인칭 시점으로 봐라. 진심 눈 돌아간다.

-저건 사람 새끼가 아니다.

-느이 팀엔 이런 선수 없제?

-지금 이 순간 신이 된 남자;; 갓니크;

매섭게 들어오는 공세 속에서 나는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계를 넘어서는 날카로운 감각!

이세준과 격돌했을 때 컨디션이 최상이었던 날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의 기운 때문인가?

압도적 피지컬을 지닌 두 녀석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자연의 기운이었다.

자연의 기운이 세차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전신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순간 벼락같은 교룡뇌조가 뿜어졌다.

엄청난 핸드스피드에 깔끔한 공격이 들어갔다.

오딘을 상대로 처음 먹이는 클린 히트였다.

1라운드 땐 여유롭게 내 공격을 보고 막던 녀석이 지금은 분명 버거워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씨발.”

“아니 갑자기 공격이 빨라졌다고! 진짜 괴물인가?”

내가 매섭게 반격을 가하자 녀석들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이 멍청한 녀석들은 무슨 공격을 해야할지 육성으로 의견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이세준이나 더원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플레이였다.

가이아 리그에선 자신의 목소리가 상대 선수에겐 들리지 않지만 일부 선수는 입술 모양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읽어내곤 했다.

때문에 육성으로 중요한 전략을 말하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

“마력을 퍼부어! 스킬의 질로 몰아붙이면 돼.”

머저리들.

짧은 시간에 승부를 보려한다면 내가 해야 할 플레이는 정해져있었다.

나는 이형환위를 뿌리며 그림자를 생성,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며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냈다.

수비에 전념하자 녀석들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노리는 바였다.

운룡비형과 이형환위를 풀로 돌리며 공격을 회피하는 건 마력 부담이 상당했지만 상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전설급 스킬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보리스와 카이저의 얼굴엔 땀방울이 바삐 솟고 있었다.

-어어?

-이거 아닌거 같은데?

-마력 왜 역전 됐냐?

-야이 새끼들아 마력관리 해가면서 공격해야지. 프로라는 새끼들이;;

-Fuck!!!!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어떻게 저렇게 피하냐고!!

-핵 쓴거 아니냐!

-핵 맞아~ 개잘핵 ^^

-이야. 마력 녹는 소리 달달하다 달달해.

-마력 블랙홀 ㅋㅋㅋㅋㅋㅋ

-시대를 교체한다느니 주접떨더니 당해버렸죠? 역겹죠?

-백년은 이르니까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 ㅋㅋㅋㅋ

숨 한 번 쉴 틈조차 없던 폭풍의 1분.

딱 1분이 지나자 보리스와 카이저는 눈빛을 주고받더니 내게서 거릴 벌렸다.

이런 방식으론 힘만 빠진다는 걸 이제 깨달은 것이다.

“안되겠어. 너 먼저 가서 합류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카이저가 먼저 전장을 이탈했다.

마치 처음부터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잽싼 행동이었다.

녀석이 본대와 합류하면 아군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카이저의 뒤를 잡으려는데 보리스가 장력을 날리며 견제를 해왔다.

“네게 경의를 표한다. 유니크. 하지만 팀 레벨은 우리가 우위, 승리는 우리가 가져간다!”

그 때부턴 다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보리스는 조금 전까지완 전혀 다른 패턴으로 날 압박해 들어왔다.

마력 소비가 효율적인 스킬을 골라 내밀었고 나를 쓰러트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발을 붙들려는 의도만이 엿보였다.

그것도 전략뿐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런 나쁜 새끼.

카멜레온이 색 바꾸듯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대번에 바꾸는 보리스를 보며 내 안에 분노가 더 커졌다.

프로게이머가 필드에서 자신의 패턴을 완벽히 바꾼다는 것.

그것은 곧 자신에게 재능이 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였다.

라운드가 끝나고, 숨을 고르고 패턴을 정비하는 건 1군 리그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도중, 그것도 공수가 오가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 자신의 패턴을 바꾸는 건 분명 재능이 뒷받침 되어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전략 실행력은 약물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다시 말해 보리스는 약물이 아니더라도 프로로서 일정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약에 취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내던져버린 플레이어.

나는 더욱 강하게 보리스를 몰아붙이며 공격을 쏟아냈다.

강화된 용의 충격이 꽂힐 때마다 보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입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숨은 헐떡거리고 전신이 비명을 지르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입이 열리는 것이다.

난 회귀 이후 처음으로 분노에 몸을 맡겼다.

감정이 깃든 내 주먹은 평소보다 투박했지만 파괴력은 평소보다 뛰어났다.

“거칩니다! 유니크! 보리스를 완벽히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1라운드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

“보리스! 휘청입니다! 대위기!”

-뭔데 진짜 ㄷㄷ;

-유니크 갑자기 약 빨았음?

-눈빛 봐라. 무슨 일이 있어도 담가버리겠단 의지.

-독하다 독해. 이래도 안 쓰러져? 이래도?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그만 죽어라 쫌.

기회를 잡은 나는 이를 악물고 공세를 취했다.

보리스는 나의 분노에 찬 강공에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언제든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피지컬이 있었다.

한 번의 실수면 내가 먹힐 수도 있는 상황.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던 보리스의 오른손이 독수리 발톱처럼 구부러졌다.

위기의 상황에서 뽑아낸 강한 조법.

나는 이 지점이 승부수라고 판단, 곧바로 왼쪽 팔뚝을 들이밀었다.

으적 하고 보리스의 손가락이 내 왼 팔뚝에 박히며 피가 튀었다.

살에 손가락이 박히는 소리라곤 믿기 힘든 살벌한 소리.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 오른손이 벼락을 터트리며 보리스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얻어맞은 충격에 보리스의 얼굴에 고통이 번진다.

아마 바람 빠지는 소리가 냈으리라.

그리고 그 찰나의 경직을 틈타 내 몸이 빙글 돌았다.

초근접 거리에서 터진 교룡각이 보리스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이게 결정타였다.

경직을 당해 나무토막처럼 몸이 굳은 보리스는 스킬을 전혀 받아내지 못하며 그대로 침몰, 체력 바를 지키지 못했다.

개인전이었으면 주먹을 불끈 쥐고 숨 한 번 돌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런 젠장!

보리스의 초상화 불빛이 꺼지며 회색이 된 사이 아군 체력 바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저쪽에서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단 증거였다.

마력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회복을 기다릴 수 없었다.

전력으로 마력을 짜내 가디언이 있는 자리로 달려가자 수세에 몰린 팀원들이 보였다.

“유니크가 다시 전장에 합류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뒤집기엔 녹록치 않군요! 보리스가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손가락을 통해 뿜어진 열양지가 김민준에게 붙어있던 카이저를 떼어냈다.

하지만 이미 빈사상태였던 유호영이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안 돼!!!!

-아 쫌만 더 버티지···.

-서렌 각 떴다.

-이건 서렌 쳐도 무죄임. ㅇㅇ;;

-ㅁㅊ넘들. 프로가 서렌 치는 거 봄?

-난 봤는데? 북미에선 일상인데?

-저거 거짓말임. 북미 애들 근성 좋아 ㅡㅡ

-다들 닥쳐. 이번 판은 유니크 할아버지가 와도 졌어.

여기가 5라운드의 분기점이었다.

인원수는 같지만 이쪽은 완전 만신창이, 저쪽은 아직 여력이 크게 남은 상태였다.

만약 유호영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버프를 돌려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을 테지만 팀원들이 체력도, 마력도, 어느 것 하나 오딘에 비해 유리한 점이 없었다.

8분 52초.

5라운드 녹색불의 주인이 오딘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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