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1)
“4라운드의 승자는 또 한 번 오딘! 이렇게 오딘이 무너진 균형추를 다시 맞춥니다!”
-와아아아아!!!
-오딘!
-오딘!
-오딘!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오딘의 기세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리 2라운드를 내줬지만 다시 2라운드를 가져오며 균형을 맞춘 상황.
장내엔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오딘을 외치는 함성이 들끓었다.
보통 한쪽의 기세가 이렇게 오르면 다른 쪽은 선수 욕을 하느라 정신없는 편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조금 전 보여준 정대환의 실력은 분명 비웃음을 살만한 레벨의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 잘해서 더 빡치네.
-방어 탄탄하긴 하더라.
-방어 잘한 건 인정한다 이 말이야. 근데 왜 이번 라운드에서 냈냐고 아 ㅋㅋㅋㅋㅋ;;
-아! 내가 알아냈다!
-뭘?
-감독이 이번 라운드에 실드나이트를 쓴 이유를!
-뭔데?
-뭐임? 그냥 미쳐가지고 그런 거 아님?
-멀쩡한 감독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수준 ㄷㄷ;
-몸 풀게 해주려고 그런거임. 확실함. 이제 팀전이잖아. 실드나이트 역할이 중요하니까 미리 몸 풀게 하려고 나가라고 한 거 100퍼임.
-아. 어린 친구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4라운드를 소모한 거다?
-ㅇㅇ. 확실;
-나가 뒤지셈;;
-월챔 라운드를 긴장감 풀어주려고 버리는 감독이 있으면 아마 제정신 아닌 건 확실할 듯 ㅋㅋㅋ
-쩝. 기왕 이리 된 거 다음 팀전에선 제발 캐리 좀 해줘!!
-믿어라. 팀전에선 다시 황제가 나올지어니.
-유멘!
-유멘!
이제 남은 건 팀전 뿐.
관중들은 이 위기를 타개할 영웅을 찾았고 역시나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나였다.
여기까진 단추를 잘 끼웠는데 말이지.
유호영이 대체 어떤 미래를 본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녀석은 분명 최대한 버텨주길 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저 피지컬 괴물 놈들을 상대로 2:2의 스코어를 만들었으니까.
결승전을 몇 번이고 다시 치른다한들 이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긴 어려웠다.
“수고했어.”
“이번 경기 괜찮았죠?”
“물론이지.”
난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정대환은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했다.
그는 3분간 뛰어난 방어로 오딘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단지 공격 수단이 빈약해 승리하지 못했을 뿐, 현재 활동하는 그 어떤 실드나이트도 이보다 잘할 순 없을 거라 생각될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쫌 하더라?”
“쫌? 너는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동갑내기 친구인 유호영과 정대환이 투닥거리는 사이, 우린 서둘러 팀전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부턴 미지의 영역이다.”
장승표 코치는 다소 염려스러운 얼굴이었다.
팀전은 개인전과는 다르게 상당한 변수가 존재했다.
팀원 한 명의 판단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며 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활용하는 스킬 시너지는 개인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팀전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선 데이터 활용이 필수 요소였다.
상대가 자주 사용하는 조합은 어떤 것인지.
그것을 파훼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딘의 팀전 데이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단 점이었다.
오딘이 팀전을 가졌던 건 유럽리그가 진행중이었던 시절이 마지막이었다.
녀석들은 월드챔피언십 지역예선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압도적인 화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우릴 제외한 팀들은 전부 팀전까지 가지도 못한 채 침몰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오딘의 팀전 데이터는 유럽 리그 때가 마지막이다. 거의 3개월 전 이야기지.”
가이아의 상위 프로팀은 일 년 내내 스펙업을 하는 게 평균이다.
365일 중에 여유만 있으면 하루도 안 쉬고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스킬, 전략을 준비한단 이야기다.
그런데 3개월이라니, 3개월이면 예측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가능했다.
당장 우리 팀만 하더라도 신규 장비를 손에 넣어 ‘왕의 귀환’ 조합을 써먹지 않았던가.
“뭐, 저쪽도 우리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진 않을 거야. 이건 희소식이네.”
코치의 말에 팀원들은 모두 고갤 끄덕였다.
이번 준결승을 제외하고 우리가 팀전을 치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근데 한 가지 변수가 생겼지. 지금 우리가 준비한 옵션 중 상당수가 못 쓰게 됐다는 거야.”
“음···.”
준비해둔 조합 일부를 못 쓰게 된 이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유성철 때문이었다.
유성철의 직업인 음양사는 개인전에선 다소 아쉬운 면모가 있지만 지역 버프가 가능하고 정찰용으로도 쓸 수 있는 식신 스킬이 있어 팀전에선 전 세계적으로 기용률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유성철이 자리를 비운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됐건 지금 당장 우린 메타를 역행할 수밖에 없었다.
“자, 다들 의견 하나씩 내보자. 어떤 조합이 괜찮겠어.”
코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잽싸게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스타트를 끊은 건 제레미였다.
“오늘 경기 보니까 저쪽 암살계 컨디션이 좋아요. 한솔이 형이 이기긴 했지만요.”
“그랬지.”
“적이 암살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 이쪽도 맞추는 게 좋겠죠.”
“일리 있는데? 너랑 한솔이로 무도가 페어를 맞춰서 대응하자는 거지.”
“네.”
“저는 다른 의견입니다.”
제레미의 의견에 김민준이 제동을 걸었다.
“저쪽 암살계 컨디션이 좋은 건 맞지만 꼭 힘싸움을 고집할 필요는 없죠. 애초에 오딘이 피지컬 괴물인 건 다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면충돌은 최선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저랑 호영이를 넣고 오브젝트 런을 거는 게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가디언과 오우거 로드 중에 어느 쪽을?”
“여기선 오우거 로드겠죠. 안전하기도 하고요. 아무리 오딘이 강해도 한솔이 형이 버프 받으면 해볼 만 할 겁니다.”
“음. 일리 있어.”
오딘의 컨디션 좋은 암살자 카드에 대항해 이쪽도 무도가 카드를 맞추자는 제레미의 의견.
암살자보단 오브젝트 공략에 유리한 마법사를 채용해 오브젝트 공략을 시도하자는 김민준의 의견.
양쪽 모두 근거는 있었다.
물론 둘 다 완벽한 작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상대가 그걸 예측을 못할까? 우리가 오딘 견제를 피해 오브젝트를 잡을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그러면 형이 한솔이형이랑 페어 한다고 해서 상대 암살계를 차단할 확률은요? 그거야 말로 높지 않은 확률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뭐? 너 그거 우리 팀 무도가 시너지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
“그럴리가요. 한솔이 형이 두 명이면 이런 걱정 안하죠.”
빠직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 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기 시작한 두 녀석을 코치가 말리는 사이 팀의 맏형, 김정수가 입을 열었다.
“상대가 암살자 카드를 꺼낼 확률이 높다면 적극적으로 오브젝트 공략에 나서기보단 점수 거점 먹고 오브젝트 견제만 나설 확률이 높지?”
“응.”
“거점 방어를 하며 힘싸움을 하기엔 성철이가 없어서 힘에 부치는 상황이고.”
“그렇지.”
“한솔이 네 생각엔 우리가 팀전에서 오딘을 잡으려면 정공법이 맞는 거 같아?”
그의 질문에 내 머릿속에서 즉시 시뮬레이션이 실행됐다.
양 팀이 정면충돌.
그리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가는 팀원들.
나는 어떻게 버틸 수 있다지만 팀원들은 지형 변수의 극적인 응용이 아니면 전면전을 이기기 힘들었다.
“아니.”
“나는 미끼 작전이 제일 낫다고 생각해.”
미끼 작전.
선수 한 명을 미끼로 던져 상대의 움직임을 일방적으로 감시하는 한편, 아군은 나머지 인원으로 오브젝트를 공략하거나 원하는 위치로 끌어들여 폭딜을 넣는 작전을 뜻한다.
과거엔 팀전 인원이 넷으로 제한 돼 미끼 작전이 성립하기 어려웠지만 다섯 명이 된 지금은 한 명을 제외해도 나머지 인원으로 오우거 공략이 충분히 가능했기에 무난한 작전 중의 하나였다.
“내가 시간 끄는 동안 오우거 로드 공략을 하고 합류?”
“그건 너무 무난하지.”
“···설마?”
“넷으로 가디언 공략이 답이라고 생각해.”
자이언트 가디언.
녀석을 공략하면 필드에서 이미 리타이어 한 선수를 되살리거나 벤치에 있는 선수 한 명을 필드로 소환하는 게 가능했다.
다만 가디언은 프로 레벨에서도 공략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팀전 인원이 4인 제한이던 시절엔 공략률이 한자릿수 대에 머물러 있을 정도라 세간에선 자이언트 가디언 때문에 인원 제한이 늘어난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리스크를 지지 않고선 이길 수 없는 상대인거 같아서. 부담된다면 무난하게 오우거를 공략해야겠지.”
싸우고 있던 두 녀석도 어느새 귀를 열고 작전을 경청중이었다.
“젠장. 이럼 내 자린 또 없잖아?”
제레미가 머릴 벅벅 긁었다.
넷으로 가디언을 공략하려면 강요되는 필수 조합이 있었다.
일단 탱커, 힐러, 그리고 딜러 둘.
안정성을 높인답시고 힐러를 둘 넣으면 딜이 모자란다.
그럼 딜러 둘을 누구로 채우게 되냐의 문제가 남는데 이건 이견 없이 마법사 확정이었다.
근접 딜러는 가디언의 범위 공격을 피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탓이었다.
“가디언 공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잖아. 이해 좀 해 줘.”
“어쩔 수 없지.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이 밖에도 여러 작전이 언급됐지만 유성철이 빠진 상황에서 승리 가능성을 높이려면 다소 위험 부담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디언 공략으로 결정한 거다.”
“옙!”
“넵.”
“믿는다. 한솔아.”
감독은 내 어깨를 텅텅 두드렸다.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나였다.
넷으로 안전하게 가디언 공략을 하는 것도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그 동안 오딘이 우리 팀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내 역할이었다.
문제는 우리 감독이 날 너무 믿는다는 거다.
솔직히 보리스 그 새끼도 간신히 눕혔는데 나 혼자 오딘 새끼들 다섯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눕지만 않아도 평생 까임방지권은 받아야 할 각이었다.
그러나 내 입은 맘과는 달리 아주 바른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역시 우리 에이스. 언제나 듬직해!”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준비의 시간이 끝나고 무대의 막이 다시 올랐다.
-제발!!!!!!!!!!!!!!!!!!!!!!!!!!!!!!!!!!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까지만 이겨주세요 제발 ㅠㅠ
-집문서 걸었냐? 애들 왜 이래?
-믿고 봐라 쫌. 우리 형은 너희들 기대 배신한 적 없잖아 ㅋㅋ;;;
-근데 상대가 너무 강해서 걱정댐···.
-우리 형이라니 건방지게. 유니크님이라고 존칭 안 붙이냐?
-얘들아 저길 봐라!
-허미; 유니크님이 날 보셨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본 거 아니고 저 본거임
-긴장하지 말고 편히 보라는 싸인임.
-여유 만만한 거 보소.
-저 모습을 보고 누가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겠냐.
-ㄹㅇ루 그냥 동네 산책 나온 사람이지 ㅋㅋㅋ
무대로 올라가는 타이밍.
난 관중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평소 내가 하지 않을 행동이었기에 관중은 그에 화답, 열렬한 함성을 쏟아냈다.
관중의 열띤 함성은 팀의 사기를 돋운다.
내 적극적인 제스쳐는 배틀아레나의 기세를 단숨에 우리 쪽으로 끌어오기에 충분했다.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지만 실은 멀쩡하지 못했다.
아마 다시 태어난 이래 가장 긴장한 순간인 점엔 분명했다.
이렇게 여유로운 척을 해서라도 내 속내를 감추고 싶었다.
프로게이머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인간은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횟수의 게임을 한다.
그 과정 속에 태어나는 수많은 선수와 결과들.
위대하다 일컫는 선수들조차 수많은 승리, 그리고 패배를 경험한다.
하지만 난 아직 패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가이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됐고 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내 대기록이 깨질까를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긴장하는 이유.
그건 이 시합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하는 탓이었다.
만약 상대가 오딘이 아니었다면, 그저 우리와 같이 훌륭한 선수들이 모여 올라온 팀이었다면?
설령 지더라도 결과를 받아들이고 내년 시즌을 준비했으리라.
프로게이머에게 단 한 번의 패배가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결승전을 시작했을 때부터 서서히 내 몸을 달구기 시작한 자연의 기운이 외치고 있었다.
이 시합을 이겨 저들을 꺾는 게 네가 다시 태어난 이유라고!
여기가 이번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이다.
“자! 마침내 양 팀 선수들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껏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인 양 팀! 역대 최고의 결승전! 그 마지막 승부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