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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68화 (165/170)

계획대로 (2)

가이아의 프로리그가 시작된 이래 벽람초원은 지형 변수가 제일 적은 맵으로 불려왔다.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초원 위에서 승패를 가를만한 요소는 선수 개인의 능력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맵에 대해 파고들길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차츰 다양한 전략이 개발됐고 시즌 6년차에 이르러 벽람에서도 드디어 쓸만한 전략이랄 게 등장했다.

바로 마법을 이용해 직접 맵을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이 6년차란 시간은 내가 죽기 전의 이야기.

다시 한 번 프로게이머의 길을 걷는 지금에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였다.

내 머릿속엔 7년에 걸친 가이아의 기상천외한 전략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그것을 당장 활용할 수는 없었다.

효과가 극대화되는 전략이란 대부분 사람, 스킬, 장비, 3박자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략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황이었다.

스타서퍼의 창단 이후 난 미래에 필요한 전략자원은 어떻게서든 손에 넣었다.

아마 팀 입장에선 내 요구를 들어주는데 애를 먹었을 거다.

당장 쓰지 않을 장비며 스킬을 끊임없이 요청해댔으니 말이다.

“한솔아. 대표님 또 한숨 쉬셨다. 너 이거 은퇴하기 전까지 다 쓸 수는 있겠냐?”

“나중엔 저한테 고맙다고 하실 겁니다.”

“부디 그래야 될 텐데 말이지. 안 그럼 나도 일찍 짐 싸야해!”

이따금 불만스런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팀은 내 요구를 최대한 수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간의 준비가 빛을 발할 날을 맞이했다.

바로 월드챔피언십이란 일 년 중 가장 큰 무대였다.

“제가 전에 말한 적 있죠. 저한테 고맙다고 할 거라고.”

“이게 이렇게 된다고···?”

나는 무대를 오르는 유호영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고 박감독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던 계획이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

[2라운드 - 벽람 초원]

[스타서퍼 엘레멘탈 마스터 vs 오딘 아크나이트]

-여기까진 예상대로네.

-아니 근데 왜 미스틱이야? 레이저도 남아있잖아.

-미스틱이 못하는 건 아닌데 솔직히 이 선택은 조금 아쉽네.

-전투력은 아크위자드가 상위호환 아님?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임 ㅡㅡ;

-쓰읍···. 그래도 일단 상성은 먹었으니까 한 번 지켜보자.

스타서퍼를 응원하는 라이트 팬들은 선수 선발을 확인하고선 다소 불만을 토했다.

김민준을 거르고 유호영을 내보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같은 마법사 계열이라면 전투력이 높은 건 역시 아크위자드다.

엘레멘탈 마스터는 아무래도 버프를 전하는 역할도 겸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순수 전투력으론 아크위자드를 이기기 힘들었다.

김민준, 유호영 모두 스타서퍼에선 최고의 마법사들이지만 아무래도 대인 전투력은 김민준 쪽이 우세한 게 사실이니 근거가 있는 불만이었다.

관중이 투덜대는 사이, 유호영의 지팡이가 전방을 향하더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마법이 아크나이트의 방패를 두들기는 동안 지팡이에선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튑니다! 초원 위로 엄청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어요.”

“이거 설마 기후 변화 마법입니까?”

중계진은 이해할 수 없단 투로 유호영의 마법 시전을 지켜봤다.

마법사는 치고 빠지는데 능하며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는 클래스지만 분명 약점도 존재했다.

그 약점 중 하나가 바로 마법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유호영은 조금 전 화염계 마법 견제를 통해 짧은 캐스팅 시간을 손에 넣었다.

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이 틈을 이용해 강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 마법을 완성했을 것이다.

허나 유호영의 마력에 의해 완성된 마법은 강한 공격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날씨조절 마법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플레이 하는 거임?

-가능성이 없다고 겜 던지는 거 아냐?

-fuck. 다시 안 올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많은 관중이 유호영의 플레이를 비난했다.

그도 그럴게 상대가 무서운 기세로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오딘의 아크나이트 트리톤.

그는 앞서 치룬 토너먼트에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증명해낸 선수였다.

특히 상성상 불리한 마법사를 상대로도 가공할 실력을 발휘했는데 그 패턴은 대부분 상대에게 접근 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의 고속 공방전으로 몰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웬만한 탱커라면 상대 마법사가 쏟아내는 화력을 뚫고 들어가질 못한다.

하지만 트리톤의 검엔 상대의 마법 중심을 정확히 찌를 수 있을 정도의 정교함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유호영이 쏟아낸 마법은 이미 녀석의 검에 걸려 전부 찢긴 뒤였다.

S자로 스텝을 밟는 트리톤의 잔상이 전장에 남기 시작했다.

도무지 탱커라곤 믿기 힘들 정도의 민첩성이었다.

그 움직임에 오딘 관중은 환호를, 스타서퍼 관중은 어어 하는 신음을 흘렸다.

누가 보더라도 곧 트리톤의 검에 유호영이 갈가리 찢길 참이었다.

‘죽어라.’

트리톤이 눈이 매섭게 빛을 발하며 전방을 향해 쑥하고 검을 찔러넣었다.

단순한 찌르기처럼 보이지만 트리톤이 내미는 찌르기는 분명 격이 다른 물건.

어느새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의 빗방울을 알알이 뚫고 들어간 트리톤의 검이 충격파를 터트렸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대기가 흔들리자 VIP석에 있던 일부 관중이 인상을 쓰며 고갤 돌렸다.

그들은 전부 월챔 경기에서 트리톤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는 마법사 클래스 선수들이었다.

그동안 아크나이트는 마법사의 밥이었다.

치고 빠지며 마법을 쏟아내면 아무리 디펜스를 잘하는 선수라 해도 피해가 누적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3분을 보내면 자연스레 라운드 승리를 따내는 게 그간 가이아 프로리그에서 볼 수 있던 패턴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달랐다.

트리톤은 마법을 먹는 괴물이었으며 아무리 순간이동으로 거릴 벌려도 끝내 쫓아오고야 마는, 마법사에겐 악몽 같은 존재였다.

‘천하의 스타서퍼라도 이번엔 어쩔 수 없겠지.’

트리톤에게 당한 기억을 떠올린 선수들은 내심 유호영을 응원하면서도 결국 패할 거라 생각했다.

전차 같은 파괴력을 갖췄음에도 바람처럼 움직이는 저 괴물이 마법사에게 쓰러지는 그림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쾅, 쾅, 쾅!!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타격이 바람을 뚫고 날아들어 유호영을 타격했다.

그 때마다 유호영의 전면에선 빛이 번쩍이며 푸른 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력으로 쌓아올린 방벽이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맥없이 터지는 광경이었다.

-트리톤!

-트리톤!

-트리톤!

-유럽의 황제!

유럽의 많은 이들이 트리톤을 유럽 최강의 선수라 평했다.

오딘의 에이스는 1라운드에서 유니크에게 패한 보리스지만 트리톤은 상성상 암살계에게 우위를 점하기에 그를 실질적 에이스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현역 선수들에게 누가 더 까다로우냐를 물으면 보리스와 트리톤의 이름이 반으로 갈리거나 트리톤이 살짝 우위일 정도였다.

보리스의 패배를 잊고 다시 분위기를 탄 오딘의 팬들은 목이 터져라 황제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에게 있어 트리톤은 새 시대를 열 인물!

끝을 모르고 치솟는 스타서퍼의 기세를 꺾어버릴 주인공이었다.

트리톤의 검이 순간 쑤욱 늘어지더니 여러 개로 불어나며 거대한 기세를 뿜어냈다.

눈으로 쫓기 힘든 고속의 움직임에 태산 같은 기세까지.

그 압도적 공격에 관중이 경악하는 순간 유호영을 중심으로 대폭발이 일어났다.

검기의 포효!

가공할 물리력이 유호영이 있던 자리를 마치 운석이 떨어지듯 헤집더니 대지와 하늘을 뒤바꿔놓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크나이트가 이런 스킬 위력을 지닐 수 있단 말입니까!”

“스킬명이 표시됩니다! 드래곤 브레이크라고 하는군요! 트리톤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처음 선보인 비장의 한수입니다!”

-와아아아!!

-홀리 쉣!

-갓리톤!!!

이만한 폭발력은 분명 아크나이트에게선 보기 드문 것이었다.

마법사 클래스를 다루는 프로 선수라 해도 이런 위력을 내려면 상당한 캐스팅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것을 단발의 중단 공격으로 만들었으니 관중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쓰러졌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

-그런 소리 하면 꼭 살아나더라. 설레발 자제 좀.

-ㅋㅋㅋㅋㅋㅋ 이건 못 참지.

오딘의 응원석 측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관중이 웃고 떠드는 사이, 트리톤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전장 위에서 차가운 시선을 유지했다.

그것은 그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살짝 얕았나?’

준비 동작도 거의 없다시피 한 중단 공격으로 이만한 위력을 내기 위해선 트리톤도 만만찮은 대가를 소모해야 했다.

절반이 넘는 마력이 이번 공격에 들어갔고 검의 내구도 또한 염려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대장간에 가면 될 일이지만 시합 도중 대장간을 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묵직한 공격보단 가벼운 속도전으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다짐하며 트리톤은 빗속을 응시했다.

비록 감각이 얕았다곤 하지만 조금 전 공격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이었다.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다시 한 번 상대를 몰아붙여 이 게임을 끝낼 참이었다.

콰르릉-!

게임 시작부터 유호영이 불러들인 먹구름은 이제 천둥 번개를 동반하며 더욱 거센 비를 뿌리고 있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폭우가 쏟아지니 트리톤은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경계했다.

‘제길. 흔적을 놓쳤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크나이트가 암살계처럼 예민한 감각으로 먹고 사는 직업도 아니고 마법사처럼 숨어있는 상대를 스캔하는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트리톤은 방어 자세를 취하며 체력 바가 표시 된 상태창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2분 21초.

체력은 95대 26퍼센트로 자신의 압도적 우위였다.

어차피 이대로 상대가 빗속에 몸을 숨기고 시간을 끈다면 자신의 승리로 끝날 뿐이었다.

그는 단 하나, 대규모 마력이 감지되지 않는가 하는 점에만 모든 신경을 쏟았다.

아크나이트의 기감이 암살자보다 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처에서 벌어지는 대마법 캐스팅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돈 아니었다.

캐스팅이 필요 없는 소규모 단발성 마법은 자신의 검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니 대규모 마법만 주의하면 이번 라운드를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한 감독님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섣불리 움직이다가 혹여 상대에게 역전의 기회를 허락해 패한다면?

그것만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검을 몸 앞에 세우고 경계하던 그 때, 저 멀리서 대규모 마력이 운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몸을 숨기고 저 멀리까지 이동한 모양이었다.

‘대략 200미터 정도인가? 충분히 대응 가능한 거리다.’

트리톤은 유호영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자신을 해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내구도가 다소 염려스럽긴 했지만 자신의 검은 아직 마법을 충분히 제압할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트리톤은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저게 뭐야?

-흙벽?

트리톤을 중심으로 지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씨가 궃은 바다처럼 지면이 흔들리더니 이내 트리톤의 두 다리가 지면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흥!”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으려는 수작이라 생각한 트리톤은 발에 힘을 주며 지면을 박찼다.

급작스레 떨어진 폭우와 알 수 없는 힘이 지면을 약화시키긴 했으나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덴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될 연주의 서막에 불과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가 싶던 트리톤의 앞에 나타난 건 거대한 흙벽이었다.

거대한 진흙으로 된 해일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트리톤의 검이 빛을 뿜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해일이 반으로 갈라졌지만 손맛은 좋지 않았다.

‘흙이 너무 무르다!’

진흙으로 된 해일은 단단한 흙벽을 파괴할 때보다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칼로 물을 벨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트리톤은 진흙 파도를 상대하기 위해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수미터짜리 해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그 어디에도 몸을 피할 탈출구가 없는 것이 눈앞에 닥친 상황이었다.

‘마력 승부를 펼치겠단 속셈인가···?’

트리톤은 손아귀에 힘을 주고 매섭게 검기를 뿜어냈다.

이 정도로 지형을 조종하려면 상대 역시 막대한 마력을 소모중일 터, 이젠 어느 쪽의 마력이 먼저 떨어지느냐의 승부였다.

전력으로 방어태세에 들어간 트리톤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높이가 10미터도 넘는 진흙 파도에 맞서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분노한 대자연에 맞서는 것처럼 보였다.

‘계산대로라면 녀석의 마력이 먼저 고갈될 것이다.’

사방 수십미터에 달하는 지형을 의지대로 주무르기 위해선 엄청난 마력이 소모된다.

트리톤은 그 점에 집중하며 승부에 임했다.

거대한 진흙 해일은 그 기세가 제법 흉흉하지만 매몰되지만 않으면 사실 큰 문제도 아니었다.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은 트리톤의 얼굴엔 다소 여유가 넘쳤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전지적 시점으로 지켜보는 관중은 전혀 다른 시선을 하고 있었다.

그중엔 앓는 소릴 내는 관중도 적지 않았다.

그 대다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호하던 오딘측 팬들이었다.

-안 돼!!!!!!!!!!!!

-저게 뭔 말도 안 되는 마법이냐?

-제발 옆을 봐! 제발 옆을 봐! 제발 옆을 봐! 제발 옆을 봐! 제발 옆을 봐! 제발 옆을 봐!

-장비도 아예 저 마법 전용으로 싹다 맞추고 나왔네.

-어쩐지 방어력이 종이장이더라 씁;;;

팬들의 애타는 외침은 선수에겐 닿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걱정하던 사태가 발생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돌기둥에 부딪힌 트리톤이 비명과 함께 수 미터를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파도 속에서 튀어나온 유호영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그가 손짓을 한 번 할 때마다 단단한 돌기둥이 솟구쳐 트리톤을 강타했는데 그 충격음이 어찌나 살벌한지 관중이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거인이 주먹을 휘두르는듯한 충격에 트리톤은 결국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고 가득 차있던 체력은 삽시간에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장비와 스킬, 사람의 3박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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