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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67화 (164/170)

계획대로 (1)

유니크가 승리의 기쁨을 함성으로 표출하며 배틀아레나를 들썩거리게 만든 그 순간.

본사에서 경기를 모니터링 하던 니콜라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브라보!”

그것은 단순한 팬심에서가 아닌,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선수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정말 미친놈이군···.”

“이걸 어떻게 이긴 거야?”

“분석 결과 안 나왔어?”

“조금 걸린답니다.”

다른 직원들의 반응 역시 니콜라이와 비슷했다.

분명 보리스의 피지컬은 유니크를 앞서고 있었다.

그 말인즉, 보리스는 유니크의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경기 내내 보리스는 흐름을 주도하고 있지 않았던가.

“역시 원인은 아까 준비한 독인가?”

“수면 꽃을 조합한 독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죠. 수면 꽃에 그 정도의 독성은 없거든요. 게다가 상대는 프로 아닙니까. 그런 영향을 끼칠 정도라면 이미 시즌 중에 소문이 돌았을 겁니다.”

직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으며 수군거리는 사이 분석 팀에서 전해온 결과물이 모니터를 통해 넘어왔다.

“유니크의 수면 꽃을 베이스로 한 배합독은 이번이 첫 등장···. 이거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전 세계에서 유니크가 최초라는 뜻이야.”

직원들은 분석 결과를 살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이아는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 관여하고, 개발하고 길을 여는 게임이다.

자율성과 창조성을 강조한 게임이다 보니 시스템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진 않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합이었다.

수십만 가지의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짓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감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이 된다.

이 모든 길을 준비하는 건 그동안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겼지만 가이아에선 실시간으로 개발에 관여하는 AI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진짜 처음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던전 비밀 통로 쏙쏙 벗겨먹을 때부터 뭔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정말이지···어처구니가 없네.”

“이거 세간에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믿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나도 안 믿기는데?”

결과를 받아든 직원들은 다들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조합 세계 최초란 뜻은 이 조합 자체를 실전무대에서 처음 선보였다는 뜻이 된다.

처음 창조되는 조합 아이템의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이 조합 완성 순간에 랜덤으로 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무대도 아니고 월드챔피언십 결승에서 최초 조합으로 완성한 아이템을 활용한다?

수면 꽃의 위력이 선수급 플레이어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완전 도박은 아니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분석 결과를 본 니콜라이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여러 과일을 한데 모아 주스를 만든다고 해보자고. 아무 과일이나 집어 갈아 넣는다고 해서 그게 해산물 맛이 날 가능성은 0에 가깝지.”

“그야 그렇지만 이건 독인데요? 제가 약학에 관해선 무지하다지만 유니크는 저 독을 조합하기 위해 무려 열 가지가 넘는 재료를 배합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성능이 나올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오늘 처음 만든 독인데요.”

“지난 플레이 데이터를 살펴보면 유니크는 비시즌 기간에 꽤나 많은 시간을 약학에 투자했어.”

“무도가인데요?”

“필드플레이를 하면서 틈틈이 배합 연습을 한 기록이 남아있거든.”

니콜라이의 말을 듣고 있던 직원 일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유니크의 기록을 참고했다.

확실히 약초학과 독에 대한 기술 단련을 부지런히 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라면 실전 훈련만으로도 바쁠 텐데 대단하네.”

“이 정도는 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어찌 됐건 이번 일로 정보 유출 의혹은 사그라들겠군요.”

“그렇겠지?”

유니크가 정상에 올랐을 때부터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소문.

가이아 관계자들은 유니크가 본사와 강력한 커넥션을 유지하는 게 아니냐며 꾸준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도 그럴게 처음 선보이는 대형 던전의 특수 장치를 제집처럼 찾아내는 건 물론이고 신규 보스의 패턴을 훤히 꿰뚫는 유니크의 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그런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유니크 옹호파는 단순히 그의 운이 좋을 뿐이며 이 모든 건 그의 상식을 벗어난 눈썰미와 게임감각이라는 주장을 펼쳤었다.

물론 그간 해낸 성과가 성과인지라 옹색한 변명처럼 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늘 배합독의 위력은 본사내의 그 어느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이번 결과는 유니크의 천재성, 강한 운을 증명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저게 운이란 말이야?”

“어이가 없네.”

본사의 모든 직원이 유니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이번 승리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승리의 여신이 유니크의 옆을 지키는 것만 같았다.

“저런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힘들겠지.”

“그러게요. 가이아가 한 수십 년 운영된다면 모르겠지만요.”

유니크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자 불편함을 느낀 직원 일부가 툴툴거렸다.

“게임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모르는 거야. 다른 라운드도 스타서퍼가 이길 거란 보장은 없지.”

“하긴 유니크도 간신히 따낸 승리니까. 전체적인 피지컬 레벨이 오딘의 우위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유니크가 더할 나위 없는 플레이로 역전을 이뤄내긴 했으나 팀의 승리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오딘의 우세를 논하는 가운데 니콜라이는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거야 말로 모르는 일이지.’

그곳엔 찬물을 뒤집어 쓴 오딘측 벤치 상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니크가 어렵사리 만들어 낸 흐름이었다.

스타서퍼의 정신적 지주인 그의 1승은 이번 결승전에서 가장 중요한 1승이 될 수도 있었다.

이제 관건은 남은 라운드.

만약 스타서퍼에 배합독같은 비장의 카드가 더 남아있다면?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펼쳐질 수 있었다.

*

‘이런 망할 놈이.’

본능적으로 손을 들 뻔한 오딘의 감독은 문득 이곳이 숙소가 아님을 떠올렸다.

1라운드 패배만 해도 거지같은 분위긴데 벤치에서 선수를 치는 광경이 스크린을 타고 나간다?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터였다.

그는 턱을 긁는 척 하며 입가를 가리고 말했다.

“끝나고 보자.”

“···죄송합니다.”

넋이 나간 듯한 보리스를 두고 감독은 이를 갈았다.

경기 중만 아니었다면 이곳을 뒤집어엎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팀 이미지에 적어도 신경이란 걸 쓰는 인간이었다.

간신히 화를 가라앉힌 그가 입을 열었다.

“주목. 보리스가 3분을 다 썼다.”

시간을 꽉 채웠다는 이야기에 오딘 선수들 얼굴에 옅은 그늘이 스쳤다.

마치 그것이 큰 문제라도 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압도적으로 이겨라. 압도적으로. 숨도 못 쉬게 몰아붙여서 승리를 따내오란 말이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빠르게 이길 것을 주문했고 선수들 역시 반드시 그러하겠다는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너희의 실력은 이미 세계 최강이다. 그건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어. 가서 승리를 쟁취해라. 너희는 이미 저 녀석들을 부술 준비가 됐어!”

오딘 감독이 열을 올리며 다음 라운드 플레이를 주문하는 동안, 스타서퍼에선 작전 논의가 한창이었다.

스크린에 뜬 다음 라운드 전장은 벽람 초원.

장애물이라곤 전혀 없으며 언덕이 몇 개 있을 뿐인 무한의 초원 맵이었다.

“벽람이네.”

“올 것이 왔군.”

장애물이 없기에 벽람 초원에선 피지컬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을 때, 이번에 오딘이 내보낼 클래스는 아마도 아크나이트일 확률이 높았다.

언뜻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몸을 숨길 수 없는 개활지에서 아크나이트를 낸다는 건 스스로 마법사 계열의 제물이 된다는 뜻이니까.

아크나이트는 기본적으로 물리 방어력이 높은 클래스라 암살계통에겐 강력한 면모를 보이지만 마법사에겐 다소 무력한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아크나이트는 그런 약점마저도 극복한 무결점의 플레이를 보이곤 했다.

예를 들면 피케 같은 선수.

화살보다도 빠른 마법을 검으로 가를 수 있는 순발력을 지닌 선수라면 마법사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도 대응이 가능하단 정도지 상성의 불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건 역시 정면 돌파인가?

-흐음. 어려운 질문인데.

-스타서퍼엔 템페스트라는 S급 아크나이트가 있어. 그간 오딘이 마법사를 상대로 연전연승한 걸 생각했을 때 같은 클래스로 맞불작전에 들어갈 확률이 높지.

-근데 오딘 애들 피지컬 미쳤는데 맞불작전이 승산 있을까?

-템페스트가 좋은 선수인 건 맞지만 오딘의 아크나이트는 훨씬 좋은 선수야.

-아;; 벤치에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너무 궁금한데.

소리는 듣지 못하고 벤치 풍경만 볼 수 있는 관중들은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잠시 뒤, 양측 선수가 공개되자 모두가 입을 크게 벌렸다.

-미스틱이라고?

-여기서 마법사를 낸다고? 진심?

-다른 팀 마법사들이 어떻게 털렸는지 보고도 이러네 ㅋㅋ

-그래도 모르긴 해. 미스틱도 실력으론 위저드계열 탑티어 아님?

-인정;

-유니크만 아니었으면 어딜 가든 에이스했을 선수임.

미스틱 유호영.

유니크가 직접 발굴해 합류시킨 최고의 엘레멘탈 마스터.

출전준비를 마친 그가 마지막으로 이번 라운드 작전을 되새기고 있었다.

*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대부분에서 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도 그 말엔 어느 정도 동감한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그것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연달아 터지면 그것은 운이 나빴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채팅창을 슬쩍 보니 조금 전 1라운드 결과는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열을 올리는 오딘 팬들이 많았다.

아주 틀린 이야긴 아니었다.

1, 2라운드의 전장 순서가 바뀌었다면 나는 배합독을 쓸 수 없었을 테고 변수 없는 초원은 내게 불리했을 테니까.

지난 일주일간 내가 머리 터지게 고민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약 1라운드 전장이 변수 창출이 불가능한 맵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팀전으로 가는 길을 열려면 어떻게든 1승을 따내야 했다.

물론 내가 1라운드를 이긴다면 좋겠지만 졌을 때를 대비한 상황도 염두에 둬야만 했다.

내가 무너진다고 결승전을 통째로 버릴 순 없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내가 패했을 때의 상황까지도 가정해 밑그림을 그렸다.

솔직히 나말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아직 리그에 등장한 적 없는 작전, 비장의 한 수를 나만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내가 1라운드를 따냈다.

우리 팀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이었다.

나는 파이팅을 하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호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알고 있지? 우리 1라운드는 다소 도박이었다는 거.”

“알죠.”

“그런데 우리가 이겨버렸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형이 이기는 건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어요.”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긴장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긴장은커녕 호영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긴장되지 않아?”

“전혀요.”

세계 무대 결승전을 치르는 자리건만 유호영은 평상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니, 무엇에 자극을 받았는지 더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떨릴 리가 없잖아요.”

“음?”

“전부 형이 말한 대로 되고 있으니까.”

호영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전장을 미리 보고 선수를 낼 수 있는 2라운드와 4라운드.

이 때 벽람 초원이 등장하는 건 이미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아참, 시간을 좀 끌어줘.”

“시간을요?”

“3분을 적절히 활용해서 이겨달란 뜻이었어.”

“시간 꽉 채우란 얘기죠?”

“그래.”

“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외침과 함께 유호영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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