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의 근성 (2)
지오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스크린엔 일찍이 준비해둔 각 팀의 결승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스타서퍼는 강한 팀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보다 더 강하죠.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우리 오딘의 차지입니다.”
오딘의 에이스 플레이어 보리스.
무도가 클래스로 가공할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그는 준결승에서 이세준을 꺾은 뒤 유니크의 강력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의 자신만만한 인터뷰에 배틀아레나의 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역시 보리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오딘은 무적이다! 오딘은 무적이다! 오딘은 무적이다!
-한국은 이제 퇴물이잖어 엌ㅋㅋㅋㅋㅋㅋㅋ
-오딘에 베팅안한 흑우 없제?
-리그 관계자들 승률 예측 ㄹㅇ 궁금하다.
-오딘의 압도적 우세 본다.
-스타서퍼가 해둔 게 있긴 해도 임팩트는 오딘한테 부족한 게 사실이니깐 ㅇㅇ;;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던 스타서퍼 팬들은 이를 갈며 때를 기다렸다.
-저 개새기들 말하는 것 좀 보소?
-고작 시즌 말미에 반짝 좀 했더니 아주 뵈는 게 없나봄.
-니들은 최단기 퇴물행이다. 두고 봐라. --
숨죽이고 있던 그들이 머리를 들고 목소릴 내기 시작한 건 스타서퍼의 사전 인터뷰가 시작 되고 나서였다.
최강의 도전자를 받게 된 전년도 챔피언 팀의 인터뷰를 맡게 된 선수는 당연히 유니크였다.
“오딘이요? 강한 팀인 건 사실입니다. 확실히 여느 팀과는 다른 파워가 그들에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킹치만···!
-갓치만!
-이제 반전 나온다.
“스타서퍼 사전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반드시 팬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무패 기록이요? 당연히 이어가야죠.”
-우리형! 우리형! 우리형!
-그 말을 기다렸다!!!
-갓니크! 갓니크! 갓니크! 갓니크!
-오딘 쉑들 꿀밤 마렵네 ㅋㅋㅋ 대가리 딱 대!
-ㅇㅈ 어딜 조무래기들이! 니들은 아직 우승할 준비가 안 됐다!
자신만만한 인터뷰.
유니크의 눈빛에서 팬들은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
사실 그들이라고 왜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오딘은 분명 스타서퍼에게 있어 역대 최강의 도전자임에 틀림없었다.
선수 하나하나가 각 클래스 최상위 레벨에 도달해 있었으며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조그마한 약점도 보이지 않는, 완전체 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니크의 인터뷰는 그런 팬들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켰다.
스타서퍼 쪽의 기세가 되살아나자 욱한 오딘 팬들이 앞다퉈 목소릴 냈다.
-ㅋㅋㅋㅋㅋ 실컷 웃어둬라. 느그 유니크 1라운드에 지옥 간다~
-응~ 지랄 마. 개소리 집어치워~.
-지옥 가는 게 누구인진 뚜껑 열어봐야지 ㅋㅋㅋㅋ;;
-지금까지 유니크한테 개소리하고 무덤 간 놈들이 한둘인가?
- ㄹㅇ ㅋㅋㅋㅋ 수레로 한가득이지.
양측 기세가 불타오르는 걸 넘어서 잿더미로 변하기 직전, 캐스터의 외침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엔트리가 올라왔습니다! 맙소사! 정말 놀라운 대진입니다!”
-아;;
-뜸들이지 말고 빨리 쫌!
-일부러 끄는 거 어지럽다고오!!!!
이들이 극도의 흥분 상태인 이유는 단 하나.
양측에서 나오는 1라운드 선수가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그간 스타서퍼는 높은 확률로 유니크를 선발로 내보내왔다.
‘스타서퍼의 선봉은 무적이다.’ 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스타서퍼의 1라운드 승률은 압도적.
만약 오딘이 이를 의식하고 있다면, 그리고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면 1라운드는 아마 개인전 최대의 빅 매치가 될 확률이 높았다.
-유니크야? 엠퍼러야?
-제에발···. 엠퍼러도 좋지만 난 유니크를 보고 싶다!
-아니 님들 준결승 벌써 잊음? 캐리하려면 속도 보단 단단함과 한방을 갖춰야 한다고.
-엠퍼러가 유니크보다 단단하긴 하지;
-그래도 정한솔은 유니크임;
“양측 1라운드 선수와 클래스를 공개합니다!”
어떤 클래스가 출전할 지를 두고 투닥거리던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오늘은 이름을 헷갈릴 필요가 없습니다!”
-와아아앜!!!!
“오딘의 슈퍼 에이스 보리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스타서퍼의 선수! 무패의 신화! 킹오브 몬스터! 최강의 무도가 유니크으으으으!”
스타서퍼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찢었고 오딘 팬들은 볼멘소릴 냈다.
캐스터가 편파 응원하는 거 아니냔 불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계진은 쉬지 않고 유니크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기 바빴다.
-유니크만 띄워주는 거 꼴 뵈기 싫네 ㅋㅋ;
-저러다가 지면 뒷감당 가능하겠냐?
-니들한테 질 일 없어 ㅆ새기들아!
-유니크님이 니 친구냐? 님 자 붙여서 공손하게 언급해라.
-킹니크!
-킹니크!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남은 건 실력을 겨루는 일 뿐.
입장 배경음에 맞춰 양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그들은 싸우던 것도 잊고 목 놓아 선수들 이름을 외쳤다.
지상 최강의 선수가 누구인지 가려질 시간이었다.
*
무대에 올라 맵이 변화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오늘의 전략을 상기했다.
우리 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선봉을 맡았고 오딘에선 나를 맞이해 팀의 에이스를 내세웠다.
그리하여 성사된 무도가 대 무도가 매치업.
오딘이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면 여기까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수순이지만 이다음이 문제였다.
천하의 이세준을 상대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꺾어 낸 보리스의 피지컬은 분명 괴물 중의 괴물.
나는 준비기간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하면 이 괴물을 잡아낼 수 있을지를 두고 갖은 고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피지컬 측면에선 약점이 없었다.
압살까진 아니더라도 이 녀석은 이세준을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말 미쳤단 소리가 절로 나오는 움직임이었다.
더 무서운 건 오딘의 모든 선수가 매 경기마다 더욱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역예선 때의 오딘과 본선이 전혀 달랐고 준결승과 그룹스테이지가 또 달랐다.
오딘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마다 봉인을 한 단계씩 풀 듯 더 강력한 힘을 드러내 보였으니 결승에서라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만약 이번 최종전에서 상대의 속도가 한층 더 스펙업 된다면?
나조차 녀석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을지 몰랐다.
이런 내 고민이 느껴졌는지 팀원들도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차라리 엠퍼러로 출전하지 그래요? 보옥결계검에 방어무시 7할 옵션도 달려 있잖아요. 정타 한 방이면 상대 눕힐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유니크를 고집할 필욘 없지 않아요?”
“한솔이형 준결승에서 대단했잖아. 검 한 방에 건물도 샤샥.”
물론 엠퍼러 출전을 고민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은 아마도 풀세트 접전이 될 확률이 높았고 상대 플레이어 조합을 볼 때 단단함 보단 전장을 휘저을 수 있는 속도가 필요했다.
상대의 마법사 라인을 제거하려면 암살 클래스의 힘이 절실한데 이 모든 짐을 제레미에게만 맡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어쩔 수 없지. 초심을 찾는 수밖에.”
“···? 초심이요?”
나는 오래 전, 처음 1군 데뷔를 했을 시절을 회상했다.
연습생 중에선 충분히 두각을 드러냈지만 피지컬이 부족해 기라성 같은 1군 선수들이 노는 리그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강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 할 수 있는 걸 전부 시도했다.
팀원들이 상대 선수 분석을 한 번 하면 나는 열 번을 했고 남들이 훈련을 1시간 할 때 나는 하루 종일 게임 속에서 매달렸다.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가이아는 게임 내에서 이뤄지는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초현실 게임.
내가 변태도 아니고 종일 쳐 맞고 있으면 기분 좋을 리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게 이것뿐이어서였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게임을 관두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를.
근데 떠오르는 게 없었다.
프로게이머에 푹 빠져 사느라 솔직히 바깥소식은 거의 깜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내가 이제 와서 재능에 벽을 느끼고 관둔다 해서 다른 일을 지금보다 더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게임은 사회보다 훨씬 공평한 데가 있었다.
가이아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없던 재능을 연습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장비를 구하려 애쓰면 그 갭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었다.
그 땐 진짜 힘들었는데···.
어떻게든 1군 리그에 붙어 있으려 애썼던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자 흐릿한 길이 보였다.
내 장점 중 하나였던 정밀 분석.
자연의 기운과 타고난 피지컬에 의해 잠시 잊고 지냈던 내 무기였다.
난 그간 있었던 오딘의 경기를 다시 훑으며 분석 팀이 놓치고 지나갔을지 모르는 정보 찾기에 주력했다.
“이 녀석은 호흡 관리가 조금 불편하네. 메모···.”
시합 중에 숨을 어떻게 쉬는지, 좌우 공격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눈을 깜빡이는 빈도나 스킬 패턴을 나만의 방식으로 분석하자 보이지 않던 정보가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꼼짝 않고 분석실에서 3일을 보내자 보리스라는 강적의 실체가 조금씩 보였다.
장장 72시간을 모니터만 보고 있었더니 이젠 1라운드 동안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지 저절로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그래. 게임은 피지컬로만 하는 게 아니지.
심층분석 결과 보리스의 약점은 바로 로지컬.
이세준을 이겼으니 피지컬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약빨로 최상위 선수가 된 탓일까?
상황 판단에 아쉬운 점이 몇 번 노출됐다.
만약 나였다면 하지 않을 실수였다.
목 딱 씻고 기다려라!
선수 분석을 완료한 다음 한 일은 전장 분석.
대회에서 쓰이는 맵은 지금까지 더 늘거나 줄어든 적이 없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 시즌엔 없던 대형 오브젝트나 일회성 아이템이 맵 곳곳에 배치되는 것도 전부 전장 변화의 일환이었다.
매 시즌, 전장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선수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변화를 연구하기 바빴다.
전장의 불규칙적 요소를 잘만 이용하면 승부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전장 분석을 시작하며 나는 열심히 손을 놀렸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10년 동안의 데이터 속에서 기상천외했던 변칙 전술들, 그리고 과거와는 달라진 현재 전장요소들을 조합해 어떤 전략을 쓸 수 있을지를 메모하는 시간이었다.
간단한 작업 같지만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가이아 리그엔 팀전에서만 쓰이는 환영 도시를 제외하고 여덟 개의 개인전 맵이 존재했다.
1라운드에 어떤 맵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모든 맵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남은 모든 시간을 분석과 전략 창출에 투자하다보니 어느새 내 몸은 결승전 무대 위에 있었다.
[1라운드 - 원신의 수림]
[스타서퍼 무도가 vs 오딘 무도가]
원신의 수림.
개인전 맵 중에선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곳.
나무가 울창하고 숲이 빼곡해 화공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맵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원신의 수림이라니 시작이 아주 좋았다.
전장 요소로 별로 이용할 게 없는 라플라타나 잊혀진 사원이었다면 변수를 창출하기 힘들었을 텐데 원신의 수림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넌 죽었다.
근데 그전에 준비 좀 하고.
나는 미리 세워둔 계획에 따라 운룡비형으로 숲을 누비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임?
-?????
-갑자기 주변 탐색만 하는데 이유 아는 사람 있음?
-뭐긴 뭐야 유니크가 쫄은 거지 ㅋㅋㅋㅋ
-시간 끌다가 한 대 툭 쳐서 이겨보겠다 뭐 이런 거 같은데?
-거품 딱 드러났죠? 유니크 역겹죠?
-거리 좁혀진다. 좀만 기다려라 ㅋㅋㅋㅋ
들릴 리 없는 관중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해할 관중은 아마 없을터.
일반 유저뿐 아니라 프로 선수를 포함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팬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나는 당초 목적대로 변수 창출을 위한 아이템 찾기에 주력했다.
금방 찾았네.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노란 식물을 발견한 나는 그대로 식물을 꺾어 미리 준비한 대나무 통에 집어넣었다.
-저게 뭐임?
-수면 꽃이잖아. 심해충아···.
-수면 꽃이네.
-근데 저거 효과 별로 없어;; 초보 상대면 모를까. 제대로 써먹기 힘든데 프로 레벨에 저거 효과 받긴 함?
수면 꽃.
압력을 줘 가루를 낸 뒤 면전에 뿌리면 상대의 호흡기를 통해 효과를 발휘하는 독초다.
물론 단독으로 쓰면 효과가 약한 녀석이기에 이것만으론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아니 쉽 진짜 뭐하는 거임?
-무도가 관두고 약초 채집가로 전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기 하랬더니 풀만 뜯고 있네.
-닥쳐. 유니크에겐 다 계획이 있으니까!
수면 꽃을 시작으로 원신의 수림에 존재하는 다양한 식물이 하나둘씩 내 손에 모이고 있었다.
어느덧 1라운드가 시작된 지도 1분.
한참 준비물을 모으고 있는데 나를 찾는 상대의 발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리자 무서운 얼굴로 달려드는 보리스가 눈에 띄었다.
운룡비형으로 거릴 벌리자 이를 악물고 달려든 상대의 양손이 매섭게 움직였다.
콰아아아-
새카만 먹물처럼 검디검은 장력이 주변을 휩쓸며 쇄도했다.
막기 힘든 장력 타입의 공세, 나도 장력을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항마장과 검은 장력의 충돌.
주변이 굉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