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의 근성 (1)
“그는 전설입니다. 이번 준결승전에서 자신의 역량을 한계 이상으로 발휘한 선수 아닙니까. 우승은 당연히 스타서퍼가 아닐까요?”
“정한솔처럼 특별한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는 무도가와 아크나이트라는 서로 다른 클래스를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 다루고 있죠. 혹시 아나요? 결승에선 마법사라도 들고 나올지.”
“프로씬에서 일대다 전투의 승리란 환상 같은 겁니다. 선수들간의 격차가 클 수는 있어도 그들은 엄연히 프로니까요. 일대다 전투가 성립될 수 없는 구조죠. 그런데 이 상식을 유일하게 무시하는 선수가 유니크입니다. 그는 거의···신이죠.”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게임이라지만 글쎄요. 코끼리랑 개미를 꼭 누가 더 큰지 대봐야 아는 건 아니잖습니까.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스타서퍼의 승리를 예상할 겁니다.”
S.솔리드와의 준결승을 치르고 난 이후, 가이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관계자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스타서퍼의 월챔 연속 우승을 예견했다.
난 이번 준결승에서 아크나이트로 1대 5를 버티다 상대의 주력 딜러를 끊어내며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관중에게 각인된 나의 실력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
오죽하면 안티 팬조차 우리가 우승할 거라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예측은 알나스르와 오딘의 경기 이후 반전되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세준, 더원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톱클래스 기량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결과는 믿을 수가 없군요. 대체 오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스코어 4대 0.
알나스르의 압도적 완패.
경기장엔 온통 오딘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했고 대다수 관중은 그들의 승리를 축복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고개 숙인 이세준과 눈물을 훔치는 어린 선수들에게 향해있었다.
알나스르는 우리와 시합을 했어도 쉬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강팀.
그런 알나스르가 퍼펙트게임을 당했다.
양 팀의 격차가 확연하다는 증거였다.
문제는 이런 간극이 정당한 노력과 실력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데 있었다.
저런 개자식들···.
e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드는 약물 사용.
고개 숙인 알나스르 선수들을 보고 있노라니 쉬이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내 전신을 감쌌다.
저들의 그간 해온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부정한 방법에 의해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분위기속에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또 다른 문제와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바로 우리 팀원들이었다.
분노와 참담함이 한데 섞인 내 감정과 달리 팀원들은 이번 경기를 보며 위축 되어있었다.
도저히 개인전에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조금 전 오딘의 경기력은 분명 다른 레벨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복제 된 내가 선수로 줄줄이 대기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아. 이걸 어떻게 하면 좋냐···.”
코치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는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부터 쉬었다.
나도 해결책을 떠올려봤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정확한 건 직접 겨뤄봐야 알겠지만 스크린으로 드러난 오딘의 개인전 실력은 나와 거의 비슷했다.
내가 질 확률도 분명 존재했고 설령 이겨도 3:1 스코어가 될 확률이 높았다.
“얘들아. 훈련하러 가자.”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면서 털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
나는 애들을 캡슐에 먼저 밀어 넣고 전활 걸었다.
“바쁘세요?”
“바쁩니다!”
니콜라이는 일이 많은지 다소 짜증스런 기색이었다.
“오딘 때문에 전화하셨죠?”
“네.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맞아요?”
“미칠 노릇입니다.”
니콜라이는 이를 갈며 돌아가는 사정을 설명했다.
“팀 오딘에 대해선 분명 엄격한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올림픽위원회가 주관하는 수준의 테스트를 말이죠. 하지만 별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왜 미칠 노릇이란 겁니까.”
“준결승 전 모니터링에서 측정된 오딘의 데이터가 리그 평균을 아득히 넘었거든요. 원래 이런 걸 외부 공개 하면 안되지만 유니크 선수니까 터놓고 얘기할게요. 몇몇 지표에선 유니크 선수보다도 높은 기록이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다마다.
분명 1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지역 최하위권인 유럽 리그에서도 바닥을 기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세계 최고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도 팀원 전부!
“니콜라이. 이건 말이 안 돼요. 백 번 양보해서 유럽에서 저와 비슷한 레벨의 선수가 나오는 건 가능하겠지만 한 팀에서 같은 날 같은 시기에 이렇게 실력이 좋아질 순 없단 말입니다.”
“후···여기도 지금 전쟁텁니다. 이미 본사내에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의견이 어느 정도 자릴 잡았습니다. 다만 증거가 없어서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어요. 약을 했으면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깨끗합니다. 무슨 수로 문제제기를 한단 말입니까.”
니콜라이는 조사가 계속 될 거라 했지만 결승전까지 큰 변화가 있을 확률은 적어보인다고 했다.
결국 이 위기는 우리 팀 스스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한 체 나는 그대로 게임에 접속, 팀원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평소라면 일대일 배틀로 훈련을 시작했을 테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팀 훈련으로 밀어붙일 참이었다.
스타서퍼가 그간 압도적인 실력으로 개인전 우위를 점해서 그렇지 팀전에서의 협력도 어딜 가서 꿀리는 팀은 아니었다.
괴물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려면 이쪽의 가지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무리 약을 쓴다 해도 시간을 들여 쌓아올린 협동력만큼은 단숨에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
*
결승전까진 일주일의 준비 기간이 있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에겐 짧기만 한 시간이었다.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 늘린 훈련량은 세계 1위였던 우리조차 녹초로 만들 정도였다.
“연습은 너흴 배신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 어차피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겠지만.”
원래 몸을 실컷 움직이면 어지간한 불면증은 사라지는 법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방을 돌아다니며 소리치는 코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코치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그렇게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이럴 땐 무한의 체력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싶었다.
그렇게 뒤척이고 있는데 문자 알림이 울렸다.
-형. 자요?
유성철이었다.
-잠이 안 와?
-형한테 체력 나눠받고 난 이후론 웬만하면 지치질 않아서요.
거짓말 하긴.
유성철이 내게서 자연의기운을 일부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또 엄청난 양은 아니었다.
내가 아주 가끔 미래를 보는 것처럼 성철이도 자연의 기운을 양껏 쓰지 못하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졸린 걸 참아가며 문자를 보낸 이유가 뭘까.
-내일 경기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뭘 당연한 말을 해.
-어떤 일이 있어도요!
-알겠어. 그거 말하려고 한 거야?
-네.
-어서 자라. 컨디션 조절도 프로의 덕목이다?
-형도요.
정말 별 말 아니었다.
절대 게임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뿐.
그 간단한 말을 끝으로 알림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간단한 말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성철 아닌가.
아마 내일 경기에서 일어날 무언가를 본 것일지도 몰랐다.
쉽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활로는 있다는 뜻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 수 있었다.
*
“얘들아! 일어나!”
이상하다.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주변이 부산스러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안대가 벗겨졌다.
눈을 채 비비기도 전에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장승표 코치였다.
“한솔아! 혹시 성철이 못 봤어?”
참고로 난 숙소에서든 원정에서든 독방을 쓴다.
그러니 성철이를 내 방에 와서 찾을 이유는 없었다.
“방에 없어요?”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불현 듯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적이 있지 않았나 싶은 기분 말이다.
그리고 뒤이어 코치가 애타게 말했다.
“성철이가 안 보여!”
“잠시 바람 쐬러 나간 건 아니고요?”
“아니야. 아니야. 우리 오늘은 다른 때보다 일찍 출발해야 해. 그런데 말도 없이 나갈 리가 없잖아.”
“전화는요.”
“두고 나갔어. 아이 진짜 미치겠네! 어딜 간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결승전을 앞두고 야반도주라고?
“큰일이다. 프런트에서도 못 봤대.”
감독에 말에 따르면 호텔의 어느 누구도 성철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오겠죠. 올 거예요.”
정수가 말했다.
아직 출발시간까진 여유가 있으니 식사하고 있으면 곧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성철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좆됐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제레미가 중얼거렸다.
“너 고운 말 쓰라고 했지.”
“형.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성철이가 오늘 작전의 핵심이잖아! 근데 사라졌다고!”
제레미의 말에 안 그래도 굳어있던 팀원들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일주일 동안 우린 단순히 팀 훈련만 한 게 아니었다.
결승전이 쉽지 않음을 느낀 우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지원을 요청했고 가장 확실한 도움을 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메인 스폰서인 헤르메스였다.
가이아의 귀중한 정보를 제일 많이 알고 있다는 최고의 정보단체.
헤르메스는 인맥을 총동원,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최고급 장비를 공수해오기 시작했다.
물론 맨입으로 장비를 공급해주는 건 아니었기에 서대표의 과감한 결단이 함께한 일이었다.
그 결과, 짧은 시간이지만 팀은 한층 더 전력 강화를 꾀할 수 있었고 그 중 가장 득을 많이 본 게 성철이었다.
무도가나 아크나이트는 원래도 인기가 많은 클래스라 경쟁이 너무 심했지만 음양사는 주류 클래스에 비하면 장비 경쟁이 비교적 덜한 편인 것도 주 이유였다.
불과 일주일 사이 성철의 장비를 교체하는데 들어간 돈이 3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선수가 사라졌으니 감독과 코치 입장에선 이런 날벼락이 없을 터였다.
호텔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
다들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나만이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던 게 설마 이거였나?
자신이 갑작스레 사라지고 팀이 빠질 패닉에 대응해 넌지시 언급을 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한 건 반동인지 뭔지 그것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명백했다.
일단 성철이를 제외한 인원으로 결승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선수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시작을 못하는 건 아니니까.
경기를 진행하는덴 문제가 없으니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감독님.”
“어? 어.”
“일단 배틀아레나로 가죠. 성철이가 늦게라도 호텔에 올지 모르니까 사람 한 명만 남겨두면 되잖아요.”
“지금 우리끼리 가면 경기는 어떻게 하고. 걔 늦으면 오늘 경기 참여 못 해!”
“성철이 없어도 경기는 해야죠. 우리 이대로 기권 패 할 거 아니잖아요. 일단은 진정하고 이동하시죠.”
나는 그리 말하며 감독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무 급하게 도착하면 애들 멘탈 추스를 시간도 부족할 겁니다.”
감독은 그제야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일주일간 스펙 업그레이드를 받은 유성철을 중심에 두고 팀전에만 매달렸는데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으니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 지금은 일단···경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지.”
“근데 성철이 없어진 거 대표님은 아세요?”
“······.”
감독의 침묵이 곧 답변 대신이었다.
*
“박민석이 너 애들 관리를 어떻게···! 사람 된 줄 알았더니 이거! 아! 야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소문이 참 빨리도 퍼진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뒤쪽 복도에선 머리 뚜껑 열린 서대표에게 감독이 옴팡지게 깨지는 중이었고 대기실은 성철의 행방을 묻는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Oh my god!”
“게임 괜찮겠어요?”
“아, 스타서퍼 정말 응원하고 있었는데. 힘내요.”
관계자들이 팀원들보다 더 야단이었다.
나도 전생까지 합하면 10년을 선수로 뛰었지만 부상도 아니고 결승전에 선수가 사라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어메이징한 사건이니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었다.
“후. 우리도 조금 더 미뤄보겠지만 일단 경기를 시작하면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1라운드가 시작되면 유성철 선수는 이곳에 도착해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이러니 대기실 분위기가 좋겠는가.
컨디션이 엉망이라는 게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프로게이머의 슬럼프는 실력적인 부분보다 멘탈 문제가 더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합 전 멘탈 관리는 무엇보다 승리의 중요 요소다.
그런데 우리 팀은 게임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멘탈이 흔들렸다.
이런 젠장.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뒤로 하고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멘탈 잡고 잘해보자는 뻔한 이야긴 안 할게.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
“······?”
“무슨 일이 있어도 게임을 쉽게 포기하진 말자. 설령 지더라도 끝까지 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개인전을 지더라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잔 말이야.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기를 쓰고 버텨야겠지. 많이 아프기도 할 거야.”
“끔찍한 하루가 되겠는데.”
“끔찍해도 좋고, 처절해도 좋아. 일단 버텨. 버티고 버텨서 정보를 뜯어내면···.”
상대는 본래 초특급 선수가 아니었던 녀석들.
피지컬만 차이난다면 정보전이 부각되는 팀전에서 활로를 뚫을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다.
“내가 반드시 길을 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