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게임 (1)
커뮤니티 게시판, 포털 e스포츠 기사, 공식 홈페이지.
유저들이 모인 곳은 어디에서나 같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크린 속에서 코치는 싱글벙글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전 세계 어디서도 우리 같은 팀은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인터뷰어가 웃으면서 되묻는다.
“실력적으로요?”
“물론 우리 팀이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만 왜 우리 팀이 그토록 강한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짤막한 코치의 이야길 뒤로 하고 우리 팀원들의 훈련 영상이 공개됐다.
“저는 원래 레전드 오브 챔피언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아! 레전드 오브 챔피언. 정말 유명한 게임이죠.”
“가이아가 나오기 전까진 e스포츠계를 나름 풍미했었죠.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저희 선수들은 훈련에 정말 성실하게 임합니다. 물론 톱클래스 팀에 속한 선수들이라면 어느 정도 훈련이 뒷받침 되고 있긴 하겠죠.”
“스타서퍼가 지금처럼 강한 이유가 훈련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일반 유저들은 몰라도 선수들은 압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12시간 이상을 오롯이 훈련에 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요. 더 놀라운 건 애들이 그 과정 속에서 불평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 선수도 여럿이 모이면 저마다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인지라 한 명 쯤은 투덜거릴 만도 하거든요. 적어도 제가 봤던 팀들은 다 그랬습니다.”
코치가 말을 이어가는 사이 스크린에선 우리의 체력 훈련 장면이 공개됐다.
그것은 확실히 프로게임 팀으로선 이질감이 드는 광경이었다.
어린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훈련장에 모여 웨이트를 통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e스포츠 선수들이라고 해서 체력 단련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것이 상당히 특이한 광경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한 번도 싫다는 소릴 꺼낸 적이 없습니다.”
“아주 힘들어 보이네요. 다 큰 성인도 따라가기 쉽지 않겠는데요?”
“물론입니다.”
코치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팀 자랑을 늘어놓자 유저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훈련은 다른 팀도 하는 거 아님? 왜 호들갑임?
-니들이 뭘 몰라서 그래. 내가 그래도 프로 연습생 출신인데. 싫은 소리 하나도 안하는 팀은 지구상에 없다.
-어디 연습생인데?
-폰습생?
-아; 그건 알 거 없고! 아무튼 스타서퍼는 진짜 미친놈들만 모인 곳이란 거임. 이건 아는 사람만 안다. 원래 프로게이머가 저렇게 조용히 훈련 할 수가 없는 종족임.
-그럼 뭐 코치한테 반항이라도 해?
-아니;; 반항한다는 게 아니고 당연히 힘들다든지 쉬고 싶다든지 그런 이야기정돈 한다는 거지. 그런데 그냥 훈련만 묵묵히 받아들인다? 쟤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인거임. 훈련기계!
스타서퍼의 영상이 끝난 다음엔 S.솔리드의 차례였다.
이쪽은 땀내 나는 훈련보단 할 땐 하고 쉴 땐 쉬어주는 모습이 대비를 이뤘다.
스타서퍼가 프로게이머 톱이 되려면 훈련도 당연히 최고로 많이 해야 한다!를 보여줬다면 S.솔리드는 프로 생활이 꼭 힘들기만 한 건 아니라는 측면을 부각시켰다.
3회 연속 자국 리그 우승.
커다란 부를 획득한 선수들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며 여가시간엔 무엇을 하는지, 훈련보단 자유생활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난 솔직히 한국의 닭장식 훈련에 회의적이지만 이걸 S.솔리드가 이긴다면 게임의 신이 훈련보단 먹고 놀길 좋아하는 거겠지.
-니들이 다 틀렸다! 이건 전략을 숨기기 위한 솔리드의 기획 영상이니까!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어차피 우승은 스타서퍼임.
영상을 두고 양 팀 팬들이 설전을 벌이는 사이, 배틀아레나 대기실에선 장코치가 마지막 점검을 준비했다.
“화장실 다녀오고 싶은 사람?”
“진작 다녀왔죠.”
“후. 준비한 만큼만 하자. 그럼 우리가 다 이긴다.”
코치의 얼굴엔 자신감이 드러났고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합 한 번 넣고 가자.”
“넵.”
“하나, 둘, 셋. 스타서퍼!”
“파이팅!”
“얍!”
“아. 얍 누구냐?”
다들 해맑게 웃으며 옆구리를 찔러대는 게 긴장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얼굴이었다.
작년에도 겪어본 무대이기도 하고 준비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으니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최근 며칠간은 내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았다.
단순히 좋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나조차도 내 경기 능력치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마 내 상태가 팀원들의 사기에 조금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럼 어디 한 번 휘저어볼까.
무대를 달굴 시간이었다.
*
“스타서퍼 선수들이 무대로 올라옵니다. 들리십니까! 이 엄청난 함성 소리를요!”
“전사의 심장이라도 지닌 걸까요. 긴장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시 2회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팀에 걸맞은 모습입니다. 그에 비해 S.솔리드 쪽은 표정이 조금 굳어있죠?”
“지금 막 양 팀 엔트리가 들어왔습니다. 오늘 정한솔 선수는 아크나이트를 선택했습니다.”
“정말이지 끝을 알 수 없는 선수입니다. 무도가로서도 최고의 선수이지만 탱커의 자질도 두말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다소 의아한 선택인 건 사실입니다. S.솔리드는 오래전부터 마법사 라인업이 강한 팀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아크나이트를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싶거든요.”
-팀전이야.
-팀전까지 갈 거 생각하고 엠퍼러 준비한 거임.
-1라운드에 바로 나오겠지?
-큰 경기 1번은 무조건 유니크 고정임.
-유니크 아니라 오늘 엠퍼러임.
-하,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시펄 몬스터를 어떻게 이기냐고!
1라운드의 시작.
넝쿨이 기둥을 타고 올라온 신전이 눈앞에 펼쳐짐과 동시에 나는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나를 상대하기 위해 솔리드에서 제일 첫 번째 타자로 내보낸 선수는 클레이소드라는 닉네임을 쓰는 아크나이트였다.
여기서 S.솔리드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e스포츠를 떠나 승패를 결정하는 모든 시합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할 경우 다소 위험한 도박을 해서라도 승률을 높여야 할 때가 있다.
S.솔리드에겐 바로 지금이 그런 때였다.
아마 솔리드는 내가 유니크로 나오길 바랐을 거다.
그럼 상성의 유리를 등에 엎고 싸울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다소 실망한 기색도 잠시, 클레이소드는 검을 털고 자세를 잡았다.
양손을 좌우로 크게 늘어트린 보기 드문 자세였다.
판금갑옷을 걸치고 있음에도 어쩐지 그에게서 고고한 학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럼 어디 실력을 보자.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눈앞을 스쳤다.
세검을 찔러넣는 상대의 공격은 확실히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보고 막기 까다롭다.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선수에겐 확실히 강력한 무기가 될 터.
특히 무기가 두 개 라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사정없이 날카로운 검격이 파고들었다.
엇박자를 타며 스킬이 날아오자 방패는 소나기를 맞듯 따닥 소릴 내며 흔들렸다.
-잡을 수 있나?
-클레이가 엠퍼러를 어떻게 잡아 ㅋㅋㅋㅋ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야지.
-레벨이 아예 다르다고!
관중은 어림없는 소리 말라며 나의 승리를 지지했지만 클레이소드가 그 정도로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실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올해 데뷔해 키운 선수가 이 정도면 최소한 피케 정도로는 성장할 듯 싶었다.
날 몰아붙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긴장이 묻어나던 녀석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 게임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걸 느꼈으리라.
그와 동시에 더욱 교묘하게 약점을 파고드는 소드 스킬.
12연격에 달하는 빛줄기가 양 손에서 뿜어지자 잠시 주춤하던 응원이 폭발적으로 일었다.
라이트스톰.
가히 빛의 폭풍이라 부를만한 스킬이 양손 도합 24개의 공격으로 뿜어져 나를 덮쳐왔다.
-클레이!
-클레이!
-클레이!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내가 노리고 있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게임 시작 이후 수비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방어에 치중하던 내 검이 잔상을 흩뿌리며 상대의 스킬 틈새를 파고들었다.
12연격을 쏟아내는 것처럼 무겁고 강한 스킬들은 그 관성이 일반기보다 강한 편이다.
다시 말해 한 번 스킬을 쓰면 시스템이 정해둔 대로 몸이 흘러간단 소리다.
이것을 중간에 끊는 건 가능하지만 톱클래스 선수 사이에선 그런 플레이가 전부 손해였다.
스킬 캔슬 반동으로 마력이 빠지는 탓이다.
클레이소드 입장에선 한 번 검을 뽑았으니 도로 무를 수 없는 순간이었고 나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면 되는 상황.
다만 저 스킬엔 불확정성이 존재해 조심해야 했다.
난 상대의 공격이 어디로 휘어질지 예측하며 시간을 쪼개기 시작했다.
파바밧 하는 사이 열두 번의 공격을 모두 방어, 반격으로 인해 몸이 경직된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방패가 녀석의 얼굴을 향해 날았다.
-오우.
-뭐야!
-미친놈 아냐. 저거 뭘로 막은 거야?
-보고 막은거 아님?
-그게 가능하다고?
-킹니크!
나는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밀리는 상대를 붙잡고 늘어졌다.
올해 경험치를 잔뜩 먹여 키운 상대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 이런 와중에도 내 공격을 잘 방어해냈다.
스킬을 전부 반격당해 당혹스러웠을 텐데도 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놓친 게 있으니 그것은 내가 무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도가 유저와 아크나이트 유저는 공격의 사고방식이 아예 다르다.
회귀하기 전의 나는 그걸 몰랐지만 이제는 잘 안다.
아크나이트는 공격 수단이 두 손으로 한정된다.
사실 누가 손만 쓰라고 정해둔 게 아닌데도 대다수 아크나이트 플레이어가 그리 움직였다.
그러나 무도가는 아크나이트와 달리 발을 적극적으로 쓰는 클래스.
나는 평소 유니크로 해왔던 것처럼 깊숙한 로우킥을 심어 상대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강렬한 충격이 연달아 네 번을 들어오자 클레이가 참지 못하고 발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의 피지컬론 내 검과 방패를 막는 것이 한계라는 점에 있었다.
어지럽지? 당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해.
그러니까 그냥 푹 누워서 쉬어.
왼쪽 오른쪽뿐만 아니라 아래에서까지 공격이 날아드니 클레이는 정신 못 차리고 흔들리기 바빴다.
초반 기세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기세가 완전히 넘어왔기에 나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여 녀석의 체력 바를 공략했다.
압도적인 승부.
보옥결계검은 꺼낼 필요도 없던 시합이었다.
*
“이게 아닌데.”
“변했어.”
벤치에서 시합을 지켜보던 S.솔리드 선수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이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한 노력은 상당했다.
팀 분석, 그리고 시뮬레이션.
분석 팀 역량을 총동원해 각 팀에 맞는 전략을 수립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상대는 역시 스타서퍼였다.
본선에서 만났을 경우 가장 어려운 상대.
하지만 1라운드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정한솔의 움직임이 그간 수집한 정보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좀 더 공격적으로 변했나?”
코치가 묻자 데니스가 고갤 끄덕였다.
“라이트스톰은 보고 반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닙니다. 아무리 상대가 천하의 유니크래도 마찬가집니다. 궤적이 미묘하게 비틀리거든요. 근데 조금 전 반격은···.”
“완벽했지. 덕분에 클레이가 경직에 걸렸고.”
“완벽을 넘어선 조금 기이한 느낌이었죠. 마치 궤적을 알고 막은 것 같았어요.”
“예언가도 아니고 랜덤 궤적을 어떻게 알고 막아.”
“그게 문제죠. 설마하니 저걸 보고 막을 수 있는 피지컬을 지녔다고 생각하긴 싫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도 녀석을 개인전에서 잡을 수는 없을테니까요. 다만 우리가 아는 유니크라면 불확실성에 모험을 하는 스타일의 경기는 지금껏 하지 않았습니다.”
유니크의 피지컬은 의심할 여지없는 지구 최강.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도 다소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에 특화되어 있었다.
분석팀에 따르면 스킬이 도중에 변하거나 데미지가 흔들리는 스킬을 상대로 할 때 유니크는 최대한 거리를 히트 앤 런을 구사하며 손해를 볼 여지를 주지 않는 플레이를 추구했다.
철저히 이득 보는 플레이만 해도 이길 수 있는 선수이기에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 플레이는 확실히 그간의 움직임과 달랐다.
패턴대로라면 라이트스톰을 뒤로 스텝을 밟으며 피해야 정상인데 앞으로 달려들더니 경직을 먹여 경기를 단숨에 끝냈기에 위화감이 있었다.
“즉 유니크는 평소와 달리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경기를 빨리 끝내는 쪽을 택했다?”
“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리가 끼어들었다.
“혹시 보고 막았다면 패턴이 딱히 변한 건 아니지.”
“1초에 열두 번이야.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공격이 떨어지는데 그걸 다 보고 막는다는 게 말이 돼?”
“···안 되지.”
솔리드 베테랑 선수들은 고갤 흔들며 다음 라운드를 준비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이제 중요해진 건 무도가 대신 아크나이트를 선택한 적 에이스를 봉쇄였다.
“차라리 잘 됐어. 아크나이트가 무도가보단 잡아두기 편하니까. 준비한 대로 팀전에 승부수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