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 (3)
뭘 듣지 말라고?
서둘러 달려온 성철은 당황한 듯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된다느니, 뭔가를 막으려고 하면 정말 큰일 날거라는 등의 이야기였다.
대부분은 이 환청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였는데 그중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내가 죽어?”
그는 대답 대신 고갤 끄덕였다.
“근데 너는 이런 걸 다 어떻게 알았어? 내 머릿속에 말소리가 들린 건 또 어떻게 알고.”
“그게 원래 제가 들었어야 하는 거라서요.”
원래 자신이 들었어야 한다라.
뭐 미래라도 보는 그런 능력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최근 성철의 폼이 물이 오른 것도 이해가 됐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듯한 움직임은 천부적 재능이란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음. 이런 목소릴 평소에도 듣고 있었다면 네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 건데. 그건 그렇고, 이게 갑자기 나한테 나타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는 건 성철이 쓰러지고 나서 내가 녀석을 구해줬다는 것 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내 기운이 넘어가며 녀석의 특별한 능력 중 일부가 내게도 흘러들어온 게 아닐까.
“이미 들어버린 이야기는 어떡하지? 누가 막 애들 칭찬하면서 우리 팀 박살내자고 작당모의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거기까지 말했을 때 성철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남한테 자신이 본 걸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절대로!”
“알, 알았어.”
더 말했다간 입을 막는 게 아니라 목이라도 조를 분위기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형이 앞으로 무얼 보건 간에 그걸 가지고 남의 인생에 간섭하려고 들면 안 된다는 걸요.”
“정해진 운명은 뭐 막을 수 없다 그런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 반동은 고스란히 형이 입을 거고 자칫하면 큰 사고를 겪게 될 수도 있어요.”
그건 좀 무서운데.
“하지만 이번에 들은 건 이미 너한테 얘기했잖아?”
“그러니까 문제죠. 재수 없다면 시합 전에 팔이···.”
녀석은 그러면서 내 팔을 흘깃 보는데 뒷말을 흐렸어도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젠장.
겨우 머릿속 장면 몇 마디 한 거 가지고 시합 전에 팔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그건 쫌 심하잖아.
“기왕 말한 김에 몇 가지만 더 물어보자. 이거 내 상상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그건 애매해요.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일 수도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일일수도 있어요.”
“진짜 애매하네. 그럼 내가 이 정보를 가지고 뭔가를 막으려고 하면?”
“본 걸 누군가에게 말하지만 않으면 최소한 죽진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럼 됐지 뭐.”
내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지 성철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
“형이 지금은 웃고 계시지만 이게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에요. 정말로요. 일을 이렇게 만들어서 면목이 없어요.”
그렇게까지 심각할 건 아닌 거 같은데.
나는 급속도로 침울해져 가는 녀석의 어깨를 탕탕 두드렸다.
“걱정하지마! 너도 알겠지만 내가 몸뚱이하난 엄청나게 튼튼해.”
어쩔 땐 내가 진짜 인간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니까.
“성철아. 내가 문득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주기 힘들면 그냥 답변 안 해도 돼. 요즘 네 폼이 완전 고점 찍었잖아.”
“네.”
“그게 아마도 네 능력하고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혹시 나도 너하고 비슷한? 힘을 낼 수 있을까?”
지금 내게 중요한 관심사는 나도 모르는 새에 위험에 빠졌느냐 아니냐 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성철이에게서 받은 이 능력을 실전에 응용할 수 있는지, 그것이 내겐 더 중요했다.
한 번 죽어봐서 그런가?
목숨이 위험하다는 경고는 사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남에게 떠벌이지만 않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하는 모양이고, 기왕이면 기운 일부와 교환한 이 능력을 실전에서 활용하고 싶었다.
비록 강철체력의 정도가 전에 비해 조금 떨어졌다곤 하나 성철이처럼 상대의 수를 예측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이미 의심할 여지없는 세계 최정상 프로게이머였지만 여전히 실력 향상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더 강해지고 싶다.
더 올라가고 싶다.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아 내 이름을 e스포츠 역사에 남기고 싶단 그런 생각.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꾸는 꿈이지만 나는 그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성철이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철이가 내놓은 답은 내가 원하는 답과 거리가 좀 있었다.
“그건 아마도 힘들 것 같아요. 일시적일 확률이 높거든요. 그러니 당분간만 조금 조심해 주세요. 형이 혹시라도 다치면 저 잠도 못잘 것 같아요.”
일시적인 힘이라니 아쉬운 걸.
하지만 일시적이라고 해도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만이라도 유지된다면 활용할 여지는 충분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데 연습 좀 도와줄래?”
“연습이요···?”
“네게 받은 능력 사용하는 연습.”
*
연습을 시작한지 딱 3일이 지나자 성철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했다.
그룹스테이지 기간 동안 성철이를 붙잡고 훈련에 매달린 결과 나는 이 신비의 능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것.
이건 더할 나위 없이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성철이는 연습을 도와주며 연신 이건 말이 안 된다며 중얼거렸지만 엄연히 현실이었다.
나와 겨루는 선수들의 움직임과 사고가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폭격을 넘어 그룹스테이지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킹오브몬스터는 올해도 건재합니다! 유니크!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건재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합니다. 그가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하는 걸까요!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선수입니다.”
-홀리 쉿!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원래 그룹 A조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우리의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스타서퍼의 토너먼트 진출을 위한 꿀무대.
그런 무대에서 성철의 예지 능력이 내 손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자 이렇게 게임이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게 술술 풀렸다.
내 플레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팀원들의 기량도 더욱 물이 올랐다.
결과는 당연히 그룹 전승.
해외 도박사들은 우리 팀에게 불침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불침함 이름을 달고 가라앉은 배가 떠올라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어쨌든 전 세계에서 스타서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물론 모든 팀이 우리처럼 손쉬운 게임을 가진 건 아니었다.
북미의 재도약을 이뤄내겠다며 포부를 밝혔던 블랙이글스는 오딘에게 박살이 났고, 알나스르는 S.솔리드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어려운 1위를 달성했다.
“드디어 이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기다렸을 겁니다.”
“7판 4선승제로 진행되는 토너먼트야 말로 각 팀의 진정한 저력을 볼 수 있는 무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보다 더욱 강해진 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떤 대진이 나올지 기대되네요.”
중계진이 한껏 흥을 돋우며 네 명의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룹스테이지 각 조 1위 팀의 주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다들 표정이 저번 추첨 때와는 달리 굳어 있었다.
그룹스테이지는 2위를 해도 다음 무대에 진출 할 수 있지만 토너먼트는 완벽한 외나무다리다.
한 번 미끄러지면 뒤가 없기에 신중하게 조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꿀조!
-유니크! 너한테 걸었다!
-스타서퍼! 믿고 있다고!
-ㅋㅋㅋㅋ 이건 솔직히 선물 가져가라고 떠미는 수준이지.
시합 때와 달리 추첨식은 팬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스타서퍼와 내 이름을 외치는 관중의 비율이 상당했다.
우승팀 맞추기 이벤트 때문이었다.
우승팀을 맞추면 랜덤박스를 주는데 그 박스라는 게 상당히 좋은 스킬이나 장비가 나올 확률이 높아 가이아 유저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박스를 받길 원했다.
현재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팀은 우리 팀이었고 그 결과, 상당한 관중이 우리 팀의 꿀 대진을 원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솔직히 스타서퍼에 걸어도 뭐라고 할 거 없지.
-뭘 뭐라고 할 게 없어. 박스 하나에 영혼 판 자식아!
-꼬우면 니들도 스타서퍼만큼 하든가. 괜히 그래 ㅡㅡ
“각 팀 주장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나는 라인 앞에 선 나머지 선수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주목하는 건 B조를 1위로 뚫고 올라온 오딘의 주장이었다.
오딘 팀의 아크위자드 베놈.
그룹스테이지에서 타우러스에게 패배를 안긴 장본인이었다.
음?
사회자가 떠드는 사이, 녀석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긴장하지 않은 게 나만은 아니었군.
녀석은 한껏 여유로운 태도로 내 시선을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정말 긴장 한 점 없는 얼굴이었는데 저게 연기라면 당장 프로게이머를 관두고 연기하러 가도 될 정도였다.
누구랑 붙든 상관없다 이건가?
녀석에게선 우리가 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아우라가 잔뜩 흘러나왔다.
실제로 유럽 유저의 상당수는 우승 팀 예측으로 오딘을 찍었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차라리 오딘을 뽑고 싶다.
오딘의 피지컬에 전 세계가 놀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정한 방법을 써서 만든 것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걸 나만 알고 있다는 점이지만.
피지컬 측면만 놓고 보면 오딘은 우릴 포함해 어느 팀과 붙어도 밀릴 것 같지 않았다.
이게 약물의 무서운 점이었다.
하위권에서 놀던 팀이 단숨에 세계대회 우승권에 가까운 전력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약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오딘의 가장 큰 약점을 꼽아보라면 바로 경험치의 차이.
최근 주가를 가파르게 올리긴 했지만 오딘의 연전연승은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공격 한 방에 승부가 갈리는 극한 상황에 돌입한다면 충분히 실수가 나올만한 여지가 있었다.
즉, 녀석들이 토너먼트를 거치며 경험치를 쌓기 전에 박살을 내버리고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유니크 선수.”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어 또 뵙게 됐습니다. 반갑네요.”
“저도 이렇게 많은 팬들 앞에 설 수 있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A조 1위로 진출하셔서 가장 먼저 조 추첨을 하게 됐는데 마음속에 뽑고 싶은 상대를 정해두셨습니까?”
“네.”
“혹시 괜찮다면 그 팀이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건 뽑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제가 괜한 질문을 했군요. 자자 여러분! 그렇게 유니크 선수를 외치면 제가 진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어떤 매치가 성사될지 기대하고 계시잖아요?”
캐스터는 양팔을 펄럭이며 관중을 진정시킨 뒤 내게 추첨을 해달란 신호를 보냈다.
-태양은 하나뿐!
-아무나 걸려라!
-아, 우리 팀은 뽑지 말아주세요!
관중들의 흥분 속에 나는 공을 뽑아들었다.
-아?
-Fuck!
순간 장내에 상당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건 친정팀에 대한 배신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쉽···. 아침에 똥 싸는데 왠지 이렇게 될 거 같더라니;;
-더럽게 똥 얘기 하지마라;
내 손에 들린 공 안에 들어있던 팀의 이름은 북미의 자존심, S.솔리드였다.
각 조 1위 팀은 다른 그룹 1위 팀과는 바로 붙을 일이 없기에 내가 S.솔리드를 뽑을 확률은 4분의 1이었다.
S.솔리드가 접전 끝에 알나스르에게 무너져 조 2위로 올라온 탓이다.
하필 S.솔리드네.
오딘이 경험치를 먹기 전에 뿌리를 뽑아버리겠단 내 계획도 빗나간 데다 2위 진출 팀 중 가장 강한 상대를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지라 나는 덤덤한 태도로 대진이 완성되는 걸 지켜봤다.
[스타서퍼 vs S.솔리드]
[로열드래곤클럽 vs 워리어스]
[오딘 vs 프로젝트 파이어]
[알나스르 vs 블랙이글스]
오딘과 알나스르는 반대편 블록이었다.
두 팀 중 어디가 올라오든 결승에 가기 전까진 만날 일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알나스르의 선전을 응원했다.
이세준과 더원, 새로운 뜻을 가지고 새 출발과 함께 당당히 월챔에 진출한 그들이 약물 팀에게 밟히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반대편 대진에 관심을 거두고 우리 팀 일정을 재차 확인했다.
이제는 온전히 토너먼트에 집중할 차례였다.
그룹스테이지야 다른 팀 분석에 신경 쓰면서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었지만 S.솔리드는 우리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대였다.
“유니크 선수! 가장 먼저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최근 더욱 기량이 올랐다는 평을 듣고 계신데 토너먼트에 임하는 간단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만약 그룹스테이지가 5판 3선승제가 아니라 7판 4선이었다면 조 1위는 S.솔리드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솔리드의 경기력은 물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녀석들만 물이 오른 게 아니란 점에 있었다.
“지금 제 컨디션은 가이아를 시작한 이래 최고조에 도달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 날 가이아의 정점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