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 (2)
원래는 오딘의 이름을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갑자기 내가 주시하고 있다 하면 그간 해왔던 행동에 무언가 변화를 줄지도 모르고 그것이 녀석들의 부정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었다.
물론 알나스르를 주목하고 있다는 건 진심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의 많은 가이아 유저들이 그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알나스르는 그룹리그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들의 실력을 어느 정도 증명해보였다.
더원과 이세준의 결합은 비록 우리 팀만큼은 아니라지만 회귀하기 이전에 볼 수 없던 슈퍼스타들의 조합이었으며 시너지 또한 훌륭했다.
과거에도 전성기가 짧은 편이었던 이세준은 알나스르 활동을 통해 마지막 남은 게이머 황금기를 불태우고 있는 셈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들의 위험성을 S.솔리드와 같은 급으로 여겼다.
국내 톱클래스였던 이세준, 더원 쌍두마차의 견인, 그리고 백은하의 전략이 합쳐진 알나스르는 아주 다채로운 컬러를 지닌 팀이었다.
경계 대상 1호로 알나스르를 꼽자 북미팬 일부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금은 리그를 떠났지만 한때 몸담았던 내가 북미 팀을 언급해주길 바랐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경계 대상 1호라는 게 실력적으로 누가 제일 뛰어나 보이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실망감도 잠시, 그룹스테이지 일정이 시작되자 팬들의 관심은 온전히 경기로 옮겨졌다.
실망한 채로 있기엔 이 자리에 모인 프로게이머들이 만들어내는 무대가 너무나도 화려했다.
*
그룹스테이지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은 B조와 C조로 집중됐다.
실력적으로 최고라 평가받는 팀은 당연히 우리였지만 A조엔 우리와 어깨를 견줄만한 적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 팀의 경기를 많은 한국 팬들이 응원했지만 아무래도 일방적인 경기보단 접전이 예상되는 쪽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었다.
“이쪽입니다.”
B조 일정이 있는 날.
우리 팀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배틀 아레나 VIP석에 자릴 잡았다.
호텔에서 보면 평면 스크린으로 경기를 보게 되지만 이곳에선 첨단 카메라 뷰를 통해 선수 시점으로 더욱 세밀한 관전이 가능했다.
VIP석은 주변과 차단이 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는 게 가능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토너먼트에서 맞붙게 될 상대 팀의 전력을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B조 일정의 첫 경기는 북미 2번 시드로 그룹스테이지에 직행한 블랙이글스, 유럽의 희망인 팀 오딘이 맞붙는 경기였다.
시작부터 대박매치인 셈이었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배틀아레나 내에 거대한 함성이 끊이질 않았다.
“한솔이 안목이 대단하긴 해.”
“저요?”
“저기 있는 애들. 네가 유럽 지역 예선 할 때부터 찍은 애들이라며? 지금이야 다들 주목하지만 그 때만 해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행운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지.”
박감독이 코밑을 훔치며 말했다.
이 시점에서 오딘의 부정을 염두에 둔 사람은 아직 나뿐이었다.
감독이나 코치, 다른 팀원들의 눈에 비치는 오딘이란 팀은 그저 숨겨져 있던 재능이 급격히 폭발한 팀, 그 정도에 불과했다.
“어디 에이스가 찜한 재능이 어디까지 통하나 보자고.”
오딘이 승리를 거둘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전력을 궁금해했다.
정말 그들이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 통할만한 팀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경기 시작과 함께 풀려나갔다.
정령의 화산에서 펼쳐진 1라운드.
오딘의 아크위자드 베놈이 블랙이글스의 주장 타우러스를 기세 좋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베놈! 베놈의 라이트닝 블레이드! 타우러스 맵 끝까지 몰렸습니다!”
타우러스는 시종일관 상대의 마법을 막아내기 급급했고 급기야 마력 관리를 잘못해 커다란 손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 팬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 건 당연했다.
타우러스가 누구인가.
북미에서 가장 많은 안티 팬을 보유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재능과 실력으로 블랙이글스를 이끄는 팀의 간판스타다.
북미의 수많은 마법사들 중 전투력으론 첫손가락에 꼽을만한 타우러스인데 이번 라운드에선 여지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며 땀을 흘리는 그의 표정은, 이번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했다.
“타우러스 선수! 또 한 번 공격을 허용합니다. 긴장한 걸까요? 반응이 늦습니다!”
-야이 쓰레기 자식아! 입을 털었으면 실력으로 보여줘야 할 거 아냐!
-fuck···. 이래놓고 무슨 우승을 노린다고.
-아 ㅋㅋㅋㅋ 유니크 형님이 북미에 있을 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젠 하다하다 유럽 예선 따리 팀한테도 처발리고 있네.
-아 장난 그만하고 빨리 이기라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블랙이글스 팬들이 악을 써보지만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판정패까지 끌고 간 타우러스가 대단했다.
그만큼 오딘의 아크위자드의 실력이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이 자식들 힘을 숨기고 있었네!”
오딘의 파워 플레이에 혀를 내두른 감독은 잽싸게 민준이를 찾았다.
“민준아. 만약 너였으면 이길 수 있었겠냐?”
“······.”
민준이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그것은 민준이가 감독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아마 감독이 다른 선수에게 의견을 물었어도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타우러스의 패배가 확정된 순간, 우리 팀 모두는 오딘의 경기력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그 충격 정도는 같은 마법사 유저들이 훨씬 컸다.
그것을 눈치 챈 코치는 실전에 들어가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다독였지만 여전히 팀원들의 얼굴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그나마 평소 긴장을 적게 하는 편인 김정수가 조용히 내게 귓속말을 할 뿐이었다.
“쟤네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다.
그것이 지금 오딘의 전투력을 표현하는 정확한 말이었다.
비 선수인 감독이나 코치는 정확히 느끼지 못했겠지만 선수들의 눈에 비친 오딘은 정말 괴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길 수 있겠지?”
김정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했다.
내 입에서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맘이 놓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진즉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한 내 머릿속은 이미 빨간 불이 켜진지 오래였다.
반응속도가 유럽 예선 때하곤 또 달라졌다.
녀석들이 부정한 방법을 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유럽 예선 때만 해도 스타서퍼가 전력을 다하면 꺾지 못할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타서퍼는 서로 다른 팀의 에이스가 될 선수들을 한 팀에 모아놓은 지상 최강의 팀이니까.
오직 1등, 세계 최고를 위해 모인 선수들이다.
그런데 전력을 개방한 오딘의 힘은 그야말로 상상이상, 괴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은 모르겠어. 오딘의 남은 선수들의 실력을 봐야해.”
만약 나머지 선수들마저 저런 힘을 지녔다면.
상상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
오딘과 블랙이글스의 경기는 북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결과 3:0.
비록 2시드로 올라왔지만 파워는 S.솔리드에 밀리지 않는다고 평가받던 블랙이글스가 퍼펙트게임을 당했다.
이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유럽 팬들마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
인터넷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진짜 미친 게임이었다.
-와···. 우리 이번에 진짜 우승 하는 거야?
-이제 메이저 지역 1대장은 우리 유럽이다!
-경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울어버렸습니다.
-나 배틀 아레나에서 직관하는데 너무 빨라서 멀미날 뻔 했자너 ㅋㅋㅋ
-솔직히 오늘 경기를 보기 전엔 우리가 한국을 넘어설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생각이 바뀜. 이미 넘어섰음 ㅋㅋㅋㅋㅋ
-오딘은 진짜 가이아 그 자체다. 이제 오딘이 가이아를 평정할 것이다!
고작 한 경기에 불과했지만 오딘의 플레이에 세계가 들끓었다.
이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더 볼 것도 없이 오딘이라는 글이 홍수를 이룰 정도.
다른 때 같았으면 타 지역 팬들이 이런 의견을 가만 두고 볼 리 없지만 이번엔 반격하는 힘이 다소 약했다.
블랙이글스를 3:0으로 제압하는 건 어느 팀이라도 힘든걸 아는 탓이다.
퍼펙트 스코어엔 타우러스 뿐 아니라 피케, 사이클론까지 제물로 들어 있었다.
다들 북미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연 선수들 아닌가.
그런 선수들이 다 박살이 났으니 오딘을 우승 팀으로 미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연습하자. 이거 연습해야 돼!”
충격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난 제레미가 제일 먼저 연습실로 향했다.
물론 다들 알고 있었다.
현재 우리 팀 선수들의 기량은 어느 정도 완성에 올라선 상태, 여기서 연습량을 늘린다고 극적인 변화를 얻을 순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기를 보고도 가만있으면 잠을 자기 힘드니 땀이라도 내려는 생각이 강했다.
“그 녀석 이름이 뭐였지? 보리스?”
“맞아.”
닉네임 보리스.
조금 전 경기에서 사이클론에게 승리를 따낸 오딘 측의 무도가였다.
“형이라면 이길 수 있지?”
“아마도. 근데 변수가 없는 건 아니야.”
보리스는 사이클론을 상대로 2분 42초의 승리를 거뒀다.
3분의 개인전 시간을 거의 꽉 채웠으니 사이클론도 나름 방어를 잘 했다는 얘기다.
만약 보리스라는 녀석의 숨겨진 밑천이 왕창 남은 게 아니라면 내가 녀석을 잡을 확률은 꽤나 높았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녀석에게도 숨겨둔 한 수가 있다면?
이번 생에서 내가 운이 아주 좋은 선수인 건 확실하지만 전세계 모든 선수 중에서 내가 제일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내가 영웅의 시험대를 통해 기연을 얻은 것처럼 다른 선수도 얼마든지 그런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거야 뭐 뚜껑 까보면 알 일이지. 아무튼 지금 상태로는 형이 이길 거라는 소리 아냐. 그 말을 들으니까 안심이 돼. 연습 시작하자.”
제레미를 시작으로 김민준, 유호영, 유성철까지.
나는 개인전에 나설 선수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훈련에 매진했다.
고통을 참아가며 독하게 달려드니 상대하려니 나도 자연스레 평소보다 힘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훈련장 바닥에 대자로 벌렁 누운 제레미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큭큭댔다.
“형도 사람이었네.”
“뭐?”
“사람이라고! 지금 캡슐 나가서 거울 좀 봐봐. 훈련은 잠시 쉬었다가 하자. 나 힘들어 죽겠어.”
“······?”
갑자기 거울 얘긴 뭐지?
휴식도 할 겸 정수기로 향해 물을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선 옆에 있는 거울을 보는데 그 안에 있던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어?”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땀으로 흠뻑 절어 있었다.
가이아 내에서 겪는 육체적 피로와 고통은 캡슐 안에 있는 육체에도 어느 정도 반동을 준다.
훈련으로 땀을 흘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당연했던 일이 내겐 당연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난 땀에 젖어본 일이 없었다.
심한 훈련을 해도 고작 땀이 조금 맺히는 정도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본 적도 없었으며 더는 못하겠다고 앓는 소릴 하지도 않았다.
지쳐본 적이 없으니까.
자연의 기운을 얻은 뒤 내 체력은 그야말로 무한의 건전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게이머 그 자체였다.
이제 보니 숨도 조금 찬 거 같은데.
가슴이 조금 답답함을 느끼며 나는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짐작 가는 이유가 몇 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역시 유성철이 쓰러졌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쓰러진 성철이를 캡슐 안에서 꺼낼 때, 내 몸 안에 있던 자연의 기운 일부가 성철이에게 흘러들어갔었다.
그것 외에는 최근 내게 변화를 줄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
성철이가 내 기운을 준 대가의 반동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일어나는 일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 증거로 오늘 훈련 중의 성철이의 몸놀림은 다른 때보다도 날랜 부분이 있었다.
내 능력이 성철이의 체질을 변화시켰다면?
설마 내 피지컬이 떨어진 걸까?
체력 유지 말고도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하고 곰곰이 훈련내용을 되짚어 보는데 순간 괴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오늘도 역시 대단했어! 너희들은 천재다!”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 기세로 우승까지 가는 거다.”
“예!”
“S.솔리드도, 스타서퍼도, 우리 적수가 아니야. 너희 자신의 능력을, 그리고 우리 팀의 능력을 의심치 마라.”
“예!”
갑자기 목소리가 들린 것도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그 대화 내용이란 것도 터무니없었다.
어떤 녀석이 이딴 소릴 해?
주먹을 불끈 쥐며 힘을 주는데 목소리가 뚝 끊기며 주변이 빠르게 조용해졌다.
황당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소리가 날만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게 대체···.”
나는 순간 내가 미치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간 자연의 기운 같은 초능력을 마음대로 쓴 대가로 정신 이상이 왔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납득은 갔다.
아무래도 오늘 훈련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헐레벌떡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성철이었다.
땀을 흘리길래 물 한 잔 마실 거냐고 묻자 녀석은 세차게 고갤 저었다.
그 대신 성철은 황당한 첫마디를 내게 꺼냈다.
“그거 형이 들으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