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56화 (153/170)

먹구름 (3)

성철이가 쓰러진지 사흘째.

그 사이 숙소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대부분은 가이아 운영 관계자들이었다.

프로게이머가 게임하다가 캡슐 안에서 혼절한 사상 초유의 사태.

그러나 아직 인터넷 기사엔 이번 일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운영측에서 이번 일이 알려지는 걸 필사적으로 막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회 흥행은 물론이고 내년도 계획에까지 차질이 생길 겁니다.”

관계자의 말에 코치는 애가 쓰러졌는데 흥행이 문제냐며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직 성철이가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자야할 시간에 자지 않고 수면을 거부하며 게임에 극단적으로 매달리는 경우,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는 있었다.

하지만 성철이처럼 며칠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경우는 없었다.

이건 정말 큰 문제였다.

병원을 드나드는 관계자들마다 얼굴색이 하얘진 것도 당연했다.

VR게임이 유저의 머리, 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성철이가 쓰러졌단 사실이 알려지면 언론마다 이런 기사가 쏟아져 나올 터였다.

가이아의 급성장으로 수익이 악화된 기존 게임계는 물론이고 e스포츠의 올림픽 진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업계가 이 소식을 반길 게 분명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이아로 대두되는 VR기술과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팀 분위기는 바닥을 쳤다.

안전문제를 이유로 게임에 접속조차 할 수 없었고 우린 그저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안한 상황에 팀원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그들을 다독이며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괜찮아. 성철이는 금방 일어날 테니까. 곧 연습도 다시 시작할 거고.”

나의 확신에 찬 말투는 팀원들이 안정을 되찾는데 퍽 도움이 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그의 회복을 자신한 건 단순히 안심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분명 그때 기운이 빠져나갔어.’

다급히 접속을 종료하고 쓰러진 성철이를 캡슐 안에서 빼낼 때, 그의 몸을 붙잡은 양 손을 통해 몸 안에 있던 자연의 기운이 이동하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었다.

이것은 분명 좋은 징조였다.

자연의 기운은 지금까지 도움을 주면 줬지 한 번도 피해를 준 적이 없었다.

무한한 체력과 게임의 운을 지배하는 능력까지.

나는 어쩌면 성철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모된 기운은 이미 회복을 해놨으니 혹시 유성철이 각성하게 된다면 스타서퍼는 한층 더 강해지는 셈이었다.

“후, 다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야? 얼굴들이 왜 이래. 누가 보면 너희가 쓰러진 줄 알겠다. 다 잘 풀릴 거다. 걱정 붙들어 매라.”

이번 일의 해결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감독은 숙소에 들러 팀원들을 챙겼다.

“내일 새 기계가 들어올 거야. 안정화 검사를 여러 번 거친 접속기라고 하니 아무 문제없을 거고.”

“곧바로 연습을 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상관없지만 막내들은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멀쩡히 게임을 하던 동료가 갑작스레 쓰러졌으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국가대표 1번 시드인데 연습을 더 미룰 순 없잖냐. 대회도 코앞이고. 한솔이 너도 힘든 거 알지만 조금만 더 부탁하마.”

본래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은 이런 데서 단호한 면모를 보였다.

스타서퍼가 무너지면 그린 엔터도 큰 타격을 받을 테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박감독이 냉혈한이라는 이야긴 아니다.

그는 나와 있는 자리에선 여러 번 성철이를 두고 불쌍한 아이라고 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작자들 같으니라고.”

감독이 짜증스런 얼굴로 언급하는 대상은 바로 성철의 부모였다.

성철이 쓰러진 날, 이것이 단순히 혼절이 아님을 깨달은 감독은 곧바로 그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자식이 쓰러졌단 이야길 들으면 부모 된 입장에서 얼마나 놀라겠는가.

당시 감독은 병원에 도착할 부모님에게 폭언, 욕설, 심하면 몇 대 맞을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귀한 아들을 데려가서 이 사달을 냈다고 말이다.

그러나 감독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성철의 부모가 보인 행동은 감독의 상식에서 아예 벗어난 것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감독이 들은 건 그저 그 녀석이 자초한 결과이니 알아서 해달라는 냉담한 반응 뿐.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겪은 감독이 성철을 불쌍히 여기는 건 당연했다.

“이게 말이 되냐? 무슨 부모가···.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우리가 자릴 잘 지켜내는 게 성철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힘내보자. 험한 세상 홀로 살아가려면 주머니가 빵빵해야 하거든.”

“예.”

*

유성철이 눈을 뜬 건 그가 쓰러진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숙소로 돌아온 그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변해 있었다.

전에도 말수가 적고 침착한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거기에다가 알 수 없는 신비감이 더해져 말붙이기 힘든 느낌을 자아냈다.

다만 그렇게 느낀 건 나뿐이었는지 다른 팀원들은 녀석의 귀환을 격하게 환영하며 소릴 질렀다.

“왜 이제 돌아와!”

“몸은 괜찮아?”

“얘들아! 환자 붙잡고 흔들지 마라!”

이제 막 돌아온 성철은 훈련이 하고 싶다며 게임을 하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감독과 코치는 당연히 반대 했지만 그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감각을 올려야 한다고 극구 주장했다.

게이머 사이에선 3일만 게임을 쉬고 와도 실력이 떨어진단 이야기가 있다.

월챔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짧은 훈련을 허가했다.

“성철이는 환자다. 다들 살살해 살살!”

“예~.”

대답은 냉큼 했어도 이 녀석들 눈빛을 보니 살살할 생각이 없었다.

팀 내 랭킹전에서 유성철은 최근 성적은 부동의 2위.

이때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광경을 일부는 쓴웃음으로 지켜봤지만 대련이 시작되자 상황은 완전히 급변했다.

성철의 음양사가 압도적인 기세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플레이를 보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놀랐다.

일주일 동안 죽은 듯 잠자다 온 녀석의 플레이가 전보다 더욱 날이 서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자면서도 게임만 하다 왔어?”

클래스 상성상 그간 우위를 점했던 제레미도 성철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대 위를 뒹굴었다.

예전엔 그나마 틈을 노려볼 수 있었다면 지금은 더 먼 곳으로 떠나버린 느낌, 상황이 이쯤 되자 팀원의 관심은 나와 유성철의 대결로 쏠렸다.

오늘의 유성철이라면 리더를 잡을 지도 모른다!

이런 기대감이 훈련장 내에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감독이 훈련을 급히 중단시키고 나선 것이다.

“자자, 몸풀기 훈련은 이걸로 끝!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해라. 성철아.”

“아, 감독님 이걸 말리시네. 딱 좋았는데.”

“제레미 넌 조용히 해.”

아마도 감독은 나와 훈련하다 쓰러진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성철도 이번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오후 연습을 끝내고 다들 샤워를 하러 사라지는데 성철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형. 저 드릴 말이 있는데요.”

나도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대체 쓰러지기 전에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소릴 질렀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으니까.

“푹 자다와서 그런지 얼굴색은 전보다 낫네. 아픈덴 없고?”

“예. 몸은 이제 괜찮아요. 그보다 중요한 게···음.”

“뭔데?”

날 불러세운 뒤에도 성철은 한참을 뜸을 들였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라고 말하자 그는 한숨을 폭폭 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번 대회요.”

“대회? 월챔?”

“네.”

“월챔이 왜?”

“안 나가면 안 되겠죠···?”

“네가?”

“아뇨. 형이요.”

다른 친구가 이야기했으면 내가 월챔을 왜 안 나가겠냐며 웃었겠지만 성철의 표정은 웃어넘기기엔 너무 진지했다.

“왜? 대회 나가면 내가 죽기라도 한데?”

그것이 결정타였다.

웃으면서 말한 게 무안해질 만큼 성철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이게 정말 농담이 아닐 거란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지한다는 것.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는 알고 있지만 이미 내 존재 자체가 비현실이어서 그런지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왜, 어떤 식으로 죽느냐는 거였다.

설마 또 총에 맞는 거 아냐?

양복 걸친 고릴라가 나를 쏘던 모습이 떠올랐다.

“형. 이번 대회는 위험해요.”

“어떤 점이 위험하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자세한 건 더 말 못해요.”

“네가 농담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나도 팀도 납득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번만 모른 척 넘어가주시면···.”

날 붙잡고 간절히 이야기하는 성철을 보며 나는 과거 제이슨이 내게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만 조용히 하면 우리 팀, 모두 행복할 거야.”

둘이 한 말은 뉘앙스도, 내용도 전혀 다르지만 내게는 어째선지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목숨 아까운 줄 알면 고개를 숙이라는 그런 제안처럼.

“성철아. 정말 고맙지만 난 이번 대회, 우리 팀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설령 총에 또 맞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할 일은 없었다.

내 답을 들은 성철은 눈을 질끈 감고 침묵했다.

“이 말을 하려고 그 때 소리쳤던 거지?”

아마도 성철은 그 때 무언가 봤으리라.

자연의 기운이 초현실적인 것처럼 그도 초현실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앞뒤가 맞았다.

난 무기력해 보이는 그의 어깰 두드리며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나는 괜찮을 거야.”

*

이번 월드챔피언십이 내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를 둘러싼 상황이 다소 위험해졌음은 알 수 있었다.

유성철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 건 단순히 다독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XG게이밍에 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적어도 그 땐 내가 죽을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내게 있어 매우 큰 차이였다.

성철의 경고를 들은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과연 나를 위협할만한 전개가 무엇일지를 예측하는 일이었다.

제일 의심이 가는 건 역시 오딘이었다.

그 때도 게임 팀의 부정행위를 폭로하려다 당하지 않았던가.

오딘이 불법 약물에 손을 댄 게 사실이고 그것을 내가 폭로하려다 문제가 생긴다는 가설이 현재로선 1순위였다.

사실 그것 말고는 내가 죽을 위기에 빠질만한 그림이 떠오르질 않았다.

‘문제는 가이아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거지.’

니콜라이에게 부정에 관련해 슬쩍 운을 뗀 것도 벌써 한참 전의 일.

그 뒤로 운영측은 전 세계 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강도 높은 도핑검사를 실시했다.

떡밥을 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추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본사 직원들이 전부 장님이 아니고서야 갑작스레 피지컬이 오른 오딘 팀은 검사대상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를 했음에도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이건 오딘이 어떤 식으로든 검사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녀석들이 분명 불법 행위에 손을 댔을 거라 생각하는 나로선 답답한 일이었다.

강도 높은 검사로도 잡아내지 못하는 불법 약물을 내가 무슨 수로 잡아낸단 말인가.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이 계속 흐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사실 오딘 게이밍은 진짜 유럽의 기적이었으며 부정한 행위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클린한 팀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마침내 월드챔피언십 미국 일정이 시작되자 내 생각은 다시 확고해졌다.

작년 스타서퍼와 마찬가지로 오딘은 세계 각국에서 참가권을 따낸 팀들 가운데 섞여 예선전을 시작했고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선두를 달렸다.

분명 그들의 경기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꼴찌였던 팀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본래 피지컬이 좋았던 선수들이 전략의 부재로 흔들리다 폼을 회복할 순 있지만 원래 피지컬이 딸리는 선수들이 급작스레 호성적을 거둘 순 없는 게임이 가이아였다.

지금 오딘의 변화는 분명 정상적인 방법으론 있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런 팀의 경기를 보며 유럽 팬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유럽의 희망!

-킹딘! 갓딘!

-오딘만 믿고 간다!

-솔직히 오딘 정도면 우승도 노려볼만 하지~.

-아 ㅋㅋㅋㅋ 벌써부터 설레발치진 말자. 근데 가능성은 있음. 확실함.

다른 메이저 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유럽, 그간 최약체라고 무시당해온 서러움을 풀어줄 대상이 오딘이 되어 나타났기에 팬들의 환호는 당연했다.

하지만 오딘의 눈부신 플레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것을 보며 슬픈 기분이 됐다.

존재해선 안 될 팀이 팬들의 사랑을 도둑질하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한 얼굴로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를 내려오는 오딘 선수들을 본 순간, 내 안의 슬픔은 분노로 변했다.

거짓과 사기로 무장한 강도들.

그런 흉악한 놈들이 내가 지키고자 했던 세계를 더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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