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2)
세계 대회로 가는 지역예선.
팬들의 환호 속에 가이아 본사에선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일처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아무 것도 없어!”
“검사결과 안 왔어?”
“문제없다고 하는데 어떡하지?”
“골치 아프군. A급 명단에서도 아무 증거를 찾지 못했어.”
가이아 본사 모니터링 부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붙잡고 씨름 중이었다.
원인은 도핑,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어느 팀이 약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제보 때문이었다.
유니크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본인은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만 가이아의 감시 부서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운영담당인 니콜라이는 유니크의 연락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올림픽을 앞둔 시기, 작은 것 하나라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
하물며 그것이 승부 조작과 연관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본사에선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가이아 팀 중 약 3할에 해당하는 팀 명단을 확정, 즉시 도핑검사에 돌입했다.
이렇게 많은 팀을 검사할 필요는 없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소수 팀만 조사할 경우 팬들이 의아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의심이 가는 팀들만 추려 조사하면 여러 가지 말이 나올 수 있기에 일부러 범위를 넓힌 것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미리 시스템에 익숙해지고자 도핑검사를 실시한다.
이것이 본사에서 내세운 명분이었고 그렇게 수십 개에 달하는 팀이 도핑검사에 들어갔다.
그 중 A급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게임 팀.
본사에서 매긴 등급 A는 도핑을 했을 확률이 가장 높음을 의미했고 명단엔 팀 오딘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솔이 오딘의 이름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이미 그가 연락을 취하기 전부터 본사는 오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상태였던 것이다.
꼴찌 팀의 반란.
가이아 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너무나 좋아할만한 스토리지만 모니터링 부서는 오로지 수치를 분석할 뿐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오딘의 수치는 뭔가 이상한 데가 있었다.
최근 몇 경기에서 팀에 소속된 선수들의 피지컬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기적적인 리그 연승.
물론 장비나 오더에 변화를 줘서 성과를 올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를 고려했을 때, 분명 상식선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만약 특정 팀이 약물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문제가 불거진다면?
올림픽 종목 채택 취소는 물론이고 e스포츠 업계 전반에 걸친 핵폭탄이 될 수도 있었다.
회사 입장에선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일.
그러나 애석하게도 공개 실시한 도핑검사에선 아무런 문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보고만이 올라왔다.
특별히 고강도의 검사를 실시했는데도 말이다.
A급 명단에 이름을 올린 팀들에게선 그 어떠한 불법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정말 실력이 급성장하기라도 했단 말이야?”
“검사 보고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우리로선 더 파고들 동력을 잃어버린 셈이야.”
“이렇게 단기간에 선수가 성장하는 케이스는 지금껏 없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심을 한 거잖아.”
“어쩌면 이게 또 다른 첫 번째 케이스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랜드 마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유니크, 모니터링 부서가 그를 부르는 별명은 그랜드 마스터.
서버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내에서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가이아를 한 것 같은 익숙한 몸놀림.
다른 선수와는 몇 계단 이상 차이나는 컨트롤, 전략.
심지어 처음 보는 던전을 마치 공략법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공략을 해댔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한 때 모니터링 요원 모두가 유니크의 문제를 잡아내고자 달려들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한 달에 걸친 밀착 감시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 그가 게임을 잘한다는 것, 그리고 운이 더럽게 좋다는 것뿐이었다.
“이게 유니크와 같은 특이한 경우라 이건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 현재로선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유니크는 가이아에 첫 걸음을 디딜 때부터 이미 완성된 유저였다.
하지만 A급 명단에 이름을 올린 팀들은 갑작스레 실력이 성장한 케이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유니크가 가능하다면 이들도 얼마든지 그런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위에선 뭐래?”
“일단은 문제가 없으니 넘어가자는 거지. 자신하는 모양이야. 고강도 검사에서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면 올림픽 때도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말이야.”
그들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유럽 지역 예선에 참가한 오딘이 기어이 마지막 진출 티켓을 따내는 장면이 생중계 중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울리는 환호.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유럽 전체가 매료됐다.
“아무 문제없어야 할 텐데···.”
*
세계 대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 스타서퍼는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정해진 훈련을 이어나갔다.
말 그대로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훈련이었지만 멈추는 법은 없었다.
“지금 흘리는 너희의 땀방울이 너희의 손에 우승트로피를 가져다줄 것이다!”
감독은 날마다 꽥꽥 소릴 내며 연습실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
여기가 게임 팀인지 올림픽 선수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국 프로 팀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훈련이 빡세다곤 하지만 이건 그 단계를 명백히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러나 포기를 입에 담는 선수는 없었다.
팔다리가 덜덜 떨려도 끝까지 훈련을 소화해낼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나였다.
내가 묵묵히 훈련을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며 선수들은 이 훈련을 전부 끝내야 비로소 나와 같은 걸음을 디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프로게이머들은 대게 승부욕이 엄청나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이세준 같은 선수도 있지만 속으로 조용히 불꽃을 태우는 타입도 있다.
그리고 그 경쟁 심리는 꼭 다른 팀을 향해서만 뿜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 팀 선수들의 마음속엔 내 자리도 있었다.
언젠가 넘어서야 할 상대 : 유니크. 같은 식으로 말이다.
나를 너무 좋아하는 제레미, 김민준, 유호영 같은 선수도 마음 한구석엔 나를 넘어서고 싶은 욕구가 잠재돼있다.
이 셋은 내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선수들, 이만한 재능을 가지고 가장 높은 자리에서 경쟁하는 선수라면 당연히 투쟁심도 남다른 법이다.
“제엔장!”
이제는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 제레미는 기합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체력 게이지 0.
녀석은 끝내 올해도 나와의 대련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두고 봐! 다음번엔 다를 테니까!”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북미에서부터 지금까지 숱한 대련을 가졌지만 여전히 처음 만난 상대를 대하는 것처럼 열의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
만약 회귀 전의 나였다면 가능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겠지.
한두 달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벽을 느끼면 어떤 사람이든 길을 잃게 된다.
나는 안 될 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사람은 넘을 수 없어.
가슴 한 구석에 그런 마음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제레미는 달랐다.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를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끼지 않고 반드시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마음먹는 의지.
더 놀라운 건 이런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선수가 이 녀석 한 명 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나와요. 이제 내 차례니까.”
축 늘어진 제레미를 질질 끌어낸 뒤 무대에 올라선 유호영이 눈을 반짝인다.
“그럼 이번엔 엠퍼러로 해볼까.”
“오늘은 다를 겁니다!”
아크나이트는 탱커, 엘레멘탈 마스터는 마법사.
상성은 마법사 쪽의 우위다.
하지만 나와의 대련에서 클래스 상성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봐주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보옥결계검이 부드럽게 뽑힘과 동시에 유호영의 지팡이가 마법을 쏟아낸다.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마법 세례에 내 시야가 순간 푸르게 물들었다.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 뒷받침 되지 않는 다면 나올 수 없는 기교였다.
평범하게 시야를 다 덮을 정도로 스킬을 연발하면 마력이 고갈돼 꼼짝도 못할 테니 말이다.
마법사에게 마력 고갈은 곧 패배.
유호영은 본인의 노하우로 상대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방위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충분히 마력을 관리 중이었다.
실력이 더 늘었어.
방패와 검으로 마법을 받아내는 사이, 의도치 않은 각도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쇄도했다.
가이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화려함 그 자체인 격전, 하이레벨 공방전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유호영이 날카로운 공격으로 점수를 따가자 김민준이 소리친다.
“나랑 할 때는 저 패턴 안 당했는데!”
우리 팀의 위자드 라인을 책임지는 김민준과 유호영.
둘은 무척이나 호흡이 잘 맞았지만 알게 모르게 경쟁심을 불태우는 사이기도 했다.
아크위자드와 엘레멘탈 마스터.
포지션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둘 다 뛰어난 적색계열 데미지 딜러 클래스.
공격력은 한 살이라도 나이를 더 먹은 김민준이 우위였지만 본래 타고난 게임 적 재능은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근엔 유호영이 엘레멘탈 마스터만의 특색을 살려 공격 패턴의 다양화를 꾀하는 일이 많아졌고 김민준도 이에 질세라 패턴을 연구, 곧장 실전에 써먹는 일이 반복됐다.
어느 한쪽이 좋은 결과를 내면 그것을 금세 자기 것으로 흡수해 발전시키는 괴물들이었다.
월드챔피언십 이후 둘은 굉장한 기세로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는 과거 한국 마법사 원톱이라 불렸던 더원과 붙어도 충분히 승산 있는 레벨에 도달해 있었다.
“오늘까진 내 승리네.”
기합과 함께 검으로 어깨를 찌르자 유호영은 꽥 소릴 내며 바닥을 굴렀다.
상당히 아플 텐데도 녀석은 벌떡 일어나 엄지를 들어보였다.
이제 다음 대련 상대가 올라올 차례였다.
서로 떠들며 대련을 구경하던 주변 팀원들의 분위기가 살짝 잦아들었다.
다들 이 결투에 집중하는 기색이었다.
내 다음 대련 상대는 바로 유성철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사실 유성철은 내가 생각한 최고의 딜러라인에 없던 인물이다.
물론 면접 당시 그를 적극 추천한 건 나였지만 그건 단순히 그가 검증된 카드였기 때문이지, 민준이나 호영이처럼 세계 최고 선수가 될 재목이어서는 아니었다.
국내에선 희귀 클래스인 음양사.
유성철이 음양사를 잘 다루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음양사라는 직업 자체가 일대일 대결에 특화된 직업이 아니었다.
아크위자드가 대인전 공격 특화라면 엘레멘탈 마스터는 공방 밸런스형.
음양사는 팀전까지 아우르는 올라운더형인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재 대련 중에 나를 가장 몰아붙이는 상대는 다름 아닌 유성철이었다.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팀이 위기에 빠졌던 식중독 사건 때.
그 때를 기점으로 유성철은 늘 제 몫 이상을 하는 선수였고 지금은 팀 내 랭킹전에서도 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중이었다.
유성철이 무도가인 제레미나 아크나이트 김정수, 적색계 마법사를 가리지 않고 잡아낼 정도에 이른 것이다.
“뭔가 성철이 형이랑 대련하면 느낌이 싸하지.”
“맞아. 한솔이 형하곤 완전 다른데···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내 수가 읽히는 느낌?”
상대의 수를 읽는다.
패턴과 스킬을 조합해 상대를 공격하는 게임이니 수를 예측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유성철은 뭔가 달랐다.
그와 상대하는 사람은 마치 내 생각이 오픈된 것 같은 느낌이라 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대련에서 유성철은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움직이곤 했다.
내가 훨씬 빠른데도 연거푸 공격이 막히는 경험은 솔직히 소름 돋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리그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아니었다면 진즉 패배를 경험했을 터였다.
그리고 녀석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
유성철은 게임 중에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가이아는 가상현실 게임, 맞으면 통증이 느껴지고 손맛 또한 남다른 게임이다.
회심의 공격을 실패하면 아쉽기 마련이며, 원하는 대로 판이 흘러가지 않으면 당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유성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을 구기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이게 말이 되나 싶어 더욱 아프게 때린 적도 있었는데 그의 포커페이스는 완벽히 다른 차원의 경지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항마장과 열양지를 쏟아내 보지만 공격이 정타로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로 공격이 지지부진하면 경기는 자연스레 판정전으로 들어간다.
섣불리 들어갔다간 반격 당할 것 같은 느낌에 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유성철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안 돼!”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 한 번도 큰소릴 낸 적 없는 녀석이 목이 터져라 소리친 것이다.
그 외침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나는 시합이라는 것도 잊고 몸이 굳고 말았다.
뭐가 안 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그가 정말 다급히 낸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솔아! 뭐야!”
이 찢어지는 외침을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모니터링 중이던 코치는 깜짝 놀라 연신 나를 불렀고 나는 말문을 더듬으며 달려 나갔다.
“···성철이가 쓰러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