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1)
팀 오딘.
유럽 리그 최하위였던 팀, 그런데 최하위였던 그들이 최근 몇 경기 동안 상위 팀을 연거푸 잡아내며 기세가 가파르게 올랐다.
그들의 경기를 모두 분석한 뒤, 나는 확신했다.
약물.
지금도 그 두 글자만 들으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갑자기 경기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약물을 의심하는 건 너무 간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도핑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남들보다 좀 더 이런 쪽에 날카로운 촉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엔 대체 왜? 라는 물음이 끊이질 않았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시기에 약물이 나타났지?
적어도 내가 약물 문제에 휩쓸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진 앞으로 4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건 아닐까?
XG게이밍 이전부터 약물은 이미 유럽 리그뿐만 아니라 해외 리그에 파다했는데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리 영상을 돌려봐도 이 오딘이란 팀이 도핑을 했을 확률이 높은 상황.
문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냔 점이었다.
“저 인간들 약물 복용한 게 틀림없습니다!”
대뜸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거 아닌가.
내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나름 발언권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이건 조용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단숨에 이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는 핵폭탄이었다.
심지어 가이아는 내년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
선수의 약물파동이 터지면 전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내가 본사 입장이라면 이 모든 걸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고 싶을 터였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내가 원하는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 테고 말이다.
*
“오빠 요즘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
“있는 것 같은데···.”
가이아 내에 위치한 소규모 훈련장.
훈련을 하다 말고 멈춰 선 채린이가 무기를 한 바퀴 옆으로 돌린다.
아주 깔끔하고 재빠른 궤적,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완성도였다.
저 완성도를 발판으로 채린이는 당당히 리그 공격 포인트 선두를 차지하며 금년도 MVP를 달성했다.
“그렇게 보여?”
“요즘 훈련 하다보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막 창설된 나이트캣의 팀 훈련을 돕는 게 지금 내 역할 중 하나.
입으론 아무 고민 없다고 했지만 실은 고민이 있었고 그게 무의식중에 움직임으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리그와 플레이오프 일정이 모두 끝난 상황.
이제 전 세계 팀들은 월드챔피언십이라는 연중 최대 행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 최대 행사에 약물 사용이 의심되는 팀이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단 점이었다.
팀 오딘은 스타서퍼가 작년에 걸었던 길을 가려하고 있었다.
지역 예선전의 바닥부터 올라와 세 번째 진출권을 따내 미국으로 가는 길 말이다.
비록 오딘은 리그 승률이 저조해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지만 정규리그 마지막 즈음에 보여준 경기력으로 인해 많은 유럽팬들의 주목을 받는 상태였다.
일각에선 이 팀이라면 세계 강팀과 붙어도 해볼만하단 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
간만에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팀의 실력이 사실은 약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안 그래도 재력으로 승부하는 게임이란 소릴 듣는 판에 이미지가 지하실로 꺼질 판이었다.
“무슨 고민인데요. 말해 봐요.”
“월드챔피언십 때문에.”
“월챔요? 우리 팀이 고민할 거리가 있어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실력이 급상승한 오딘은 정말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약물의 힘은 직접 맞아본 내가 잘 알고 있다.
퇴물이 돼서 해외 리그를 전전해야 했던 말년의 나를 마치 젊었을 때로, 아니 그 이상의 피지컬을 갖게 해주는 물건이었으니까.
그뿐인가? 중동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알나스르도 경계 대상이었다.
알나스르는 우승컵을 거머쥐며 아직 전력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중동에서 그만한 전력을 가진 팀이 없어서이기도 한데 주요 경기를 보다 보면 팀 운영이 세련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자릴 호시탐탐 노리는 S.솔리드 또한 건재했다.
생각보다 우릴 견제할 팀이 많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아무 걱정거리 없는 사람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저는 오빠가 전부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어련하시겠습니까.
내 팬클럽 부회장인 채린이는 아마 우리 팀이 길바닥에 나앉아도 부활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 만큼이나 우리 팀을 지지했다.
“한솔이 형~.”
“아, 방해꾼 왔다.”
내내 기분 좋아보이던 그녀는 훈련장에 등장한 민준이를 보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내가 이 말을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네. 시간 좀 지켜요. 시간 좀!”
단숨에 훈련장 중앙으로 달려온 그는 날 붙잡고 있던 채린이를 향해 파바밧 쏘아대기 시작했다.
“너무 훈련 오래하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미안~.”
“부회장님···이런 식으로 사리사욕 채우면 직권남용으로 권한 회수합니다?”
“아앗! 안 돼!”
부회장직 철회카드를 꺼내자 그녀는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더니 부리나케 모습을 감췄다.
“데뷔 노선 틀더니 이제 숨길 생각도 없네!”
민준이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린엔터가 준비해온 걸그룹이 여성 프로게이머 팀으로 주력 노선을 틀면서 채린이의 의사 표현은 확실히 전보다 과감해진 데가 있었다.
“형. 빨리 가죠. 팀원들 기다려요.”
“미안.”
“형이 미안할 게 뭐 있어요.”
“크흠. 내가 딱 끊었어야 했는데.”
나이트캣의 훈련 코치가 내 역할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스타서퍼의 주장 역할이었다.
현재 우리 팀은 4대 메이저리그 우승 자격으로 월드챔피언십 그룹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
다른 팀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그동안 신규 지역을 개척하거나 최전선에 위치한 난이도 최상위의 던전을 공략해 장비 격차를 더 벌리는 게 우선이었다.
“결정은 했어요?”
“아니 아직.”
김민준이 내게 물어본 결정이란 바로 저번 영웅의 시험대를 공략하며 나온 장비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한국 리그 우승을 이루는 동안 나는 새로 얻은 자원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전부 보관해둔 상태였다.
엠퍼러만 쓸 수 있는 보옥결계검까지도 말이다.
가이아는 시합 도중에 클래스를 변경할 수 없지만 장비나 스킬 세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것을 중요한 때에 사용하면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한 번 찌를 수 있는 무기가 되는 셈이다.
“그냥 엠퍼러로 하지 그래요. 결계검하고 다른 것들 분리하기엔 효율이 아쉽잖아요.”
“그러기엔 내가 준비한 판이 아깝잖아.”
내가 준비한 판이란 바로 속도 한계를 뜻했다.
나이트캣 면접 때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작년 월드챔피언십 이후 일 년이 다 되가는 지금, 대부분의 선수들이 내 속도 한계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공들여 짜둔 트랩인만큼 이것을 써먹으려면 다시 한 번 유니크를 꺼내야 하는데 무신결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실전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였다.
“민준아. 유럽 지역예선 선발전이 언제였지?”
“유럽이요? 한국보다 조금 빠르니까 아마 내일모레쯤? 근데 갑자기 유럽은 왜요?”
“일단 오늘 공략은 중단하고 회의실에 모이자. 우리 팀 전부 보여줄 게 있어.”
*
나는 팀원들을 모니터링 실에 불러 모아 그동안 혼자만 알고 있던 오딘의 데이터를 돌리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집중하며 영상을 지켜봤다.
그리고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가장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어떤 것 같아?”
“실력이 많이 좋아졌네요.”
“연패 후 시즌 막판 연승, 드물긴 하지만 없는 경우도 아닌데 왜 이걸 보라고 한 거야?”
“모두의 생각이 듣고 싶어서. 이게 통상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
“으음.”
모두가 나의 질문에 고민하더니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핵? 핵인가?”
“아니면 우리처럼 커다란 스폰서라도 들어왔나? 헤르메스같은 정보 업체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런 곳에서 푸쉬를 해준다면 확실히 도움이 됐겠지. 장비도 바뀐 것 같고.”
굳이 장비를 바꾼 건 장비 변경으로 인해 스펙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눈속임일 터였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약물의 ‘약’자도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이것을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할 수 없겠단 사실을 깨달았다.
남다른 안목을 갖춘 팀원들도 저들의 도핑을 의심하지 않는다.
누가 과연 그들을 의심해 조사에 나설 것인지를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오래간만에 니콜라이에게 연락했다.
시차를 생각해 그가 슬슬 출근할 때를 맞춰서였다.
“오래간만에 연락드렸습니다. 니콜라이씨.”
“어어?”
내가 연락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그는 몇 초 동안을 머뭇거리다 아! 소릴 연발했다.
“유니크씨!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별 일 없으셨죠?”
“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 그런데 갑자기 무슨···일로 전화를?”
전에는 일이 없어도 안부를 묻던 니콜라이지만 내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후엔 점점 연락이 뜸해졌었다.
아마 그 배경엔 미국의 인기스타에서 한국의 인기스타가 된 게 나름 큰 몫을 했을 거다.
“제가 가이아에 직접 연락드릴 만한 분이 니콜라이씨 말곤 없어서요.”
“그곳은 슈퍼스타에 대한 관심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하하.”
사실 연락하고 지내는 관계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팀적으로 연락하는 지역 관계자가 몇 명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저 관리를 담당할 뿐, 진짜 큰 문제가 터지면 언제나 본사의 힘에 기대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이 문제를 굳이 그들과 논의해서 얻을만한 건 없다는 뜻이었다.
“최근 내부에 뭔가 도는 이야깃거린 없습니까?”
“이야기···거리요?”
한참을 머뭇거린 그는 어렵사리 답을 했다.
“오해를 사고 싶진 않지만 기밀 같은 걸 특정 팀에게 알려드리긴 힘든···.”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예를 들자면 승부 조작, 약물, 뭐 기타 등등이요.”
“헉.”
숨넘어가는 소리가 울린다.
화상 통화가 아니라지만 분명 니콜라이의 얼굴이 하얗게 됐을 것 같았다.
“설마 이거 그렇고 그런 제보입니까?”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니콜라이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만약 어떤 이야기가 떠돌았다면 내게 제보하려고 연락했냐는 말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아직 본사내에선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게 없는 모양이네요.”
“없죠. 없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선에선 없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단어 하나하나 끔찍한 것들이잖습니까. 그런 게 하나라도 터졌으면 제가 몰랐을 리 없죠.”
“그렇군요.”
“그럼 유니크씨가 그런 사건을 제보하려고 전화주신 건 아니라는 거죠?”
“예. 그건 아닙니다.”
세상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니콜라이.
이것만 봐도 본사가 얼마나 이러한 사건을 경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승부조작은 모르겠지만 약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내년에 올림픽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e스포츠 계에 약물 사건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월챔 시작하기 전에 강력한 도핑 검사가 이뤄질 겁니다. 아, 이게 아직 안내 공고가 나가기 전이라 유니크씨는 모르셨겠네요.”
듣던 중 다행인 소리지만 내 불안감이 풀린 건 아니었다.
내가 총에 맞고 호수로 떨어진 시기는 2036년.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앞두고 리그 전체에 강력한 도핑검사가 행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XG게이밍은 어땠는가.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나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도핑에 걸리지 않는 무언가를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만약 오딘이 XG게이밍과 같은 종류의 도핑 방식을 이용했다면, 이번 검사에서 아무런 흔적도 검출되지 않을 확률이 있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상황은 최악, 나처럼 내부고발을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도핑 사실을 폭로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터였다.
“갑자기 불안한데요. 정말 별 일 없는 거 맞죠?”
“예. 아직까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