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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52화 (149/170)

무신(武神) (4)

스타서퍼는 가이아 팬들 다수가 인정하는 최고의 팀이다.

그런 팀에서 딜을 가장 많이 넣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나다.

최근엔 팀원들 보호 위주로 아크나이트를 플레이 하다 보니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무도가를 잡을 때면 데미지 MVP는 언제나 내 차지였다.

피지컬이 좋아서냐고? 물론 피지컬이 좋은 것도 있지.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포션.

마력 포션은 필드플레이와 랭크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다.

소모한 마력을 다시 채워주는 아이템, 하지만 이 마력 포션도 만능인 건 아니었다.

바로 포션을 과다 복용할 경우 느껴지는 피로 때문이었다.

마력이 모자라면 포션을 마시고 플레이어는 필드플레이 내내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나른함, 조금 심해지면 전신무력감 등을 느낀다.

왠지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는 그런 기분 말이다.

유저라면 누구나 장시간 필드 플레이 상황에서 이런 피로를 호소한다.

이럴 때 최고의 방법이 무엇이냐?

전투를 쉬어주는 거다.

캠핑 도구 꺼내서 모닥불 하나 피워두고 15분에서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에 남아있던 피로가 사라진다.

아마도 이건 유저들이 장시간 게임을 하면 일정시간은 휴식을 취하라는 기획의도였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간혹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처럼 최상위 던전 보스와 싸울 때였다.

던전 보스를 잡기 위해선 당연히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1시간 이상의 격전 도중 피로가 쌓여 치명타를 당하는 일은 프로급 길드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VT스타즈 인원들은 황룡을 잡으러 가기 전, 포션 사용에 관한 루틴을 조율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잠시 협력을 하기로 했지만 나한텐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데미지 기여에 따라 아이템을 분배하기로 했으니 그들로선 내가 적절히 공격을 넣다 보스한테 당해주는 그림을 원할 터였다.

어쩌면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은근슬쩍 방치를 할 수도 있었다.

힐을 받아야 할 상황에 힐이 들어오지 않으면 딜러는 쓰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어림없지.

나는 전투 돌입 전, 여유로운 자세로 몸을 둘둘 말고 있는 황룡을 바라봤다.

내 수중에 들어있는 마력 포션의 개수는 72개.

특급 랭커라고 해도 휴식기 없이 포션을 10개 이상 마시면 정상적인 플레이가 힘들다.

반응이 느려지며 어지러움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

그러나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포션으로 피로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것이 내가 필드에서 압도적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 이유였다.

*

“이야기 다 끝났으면 시작하지.”

임시 파티장권한이 내게 넘어온 상태.

파티장은 장비를 알아서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에 친분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선 상당한 권력이 있었다.

말 그대로 파티장이 장비를 먹고 튀면 남은 사람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한단 뜻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랜덤 즉시 지급 등의 장비분배 시스템이 생겨났지만 많은 파티들이 여전히 파티장 주도하의 장비 분배를 선호했다.

아마 VT스타즈에선 파티장을 넘기고 싶지 않았겠으나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상대는 2군 출신 선수들, 가능성은 낮지만 고가의 장비를 들고 도망치면 내가 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자 녀석들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사람을 모함하다니! 우리가 왜 들고 튀냐! 그렇게 말할 것 같으면 너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잖아!”

“생각이란 걸 좀 하시지. 내가 장비 분배로 사기를 칠 거 같으면 이 영상 그대로 포럼에라도 올리면 되잖아? 안 그래?”

리그에도 얼굴 한 번 보인 적 없는 후보생과 세계대회 우승 출신의 프로게이머.

결국 VT스타즈에서 내게 파티장을 넘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니크가 장비를 먹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잘 따라와.”

내가 달리자 나머지 녀석들이 뒤를 쫓아왔다.

레이드 첫 인사로 열양지를 퉁기자 퍽하고 둔탁한 소리가 용의 비늘을 두들겼다.

그것이 신호였다.

용의 굵은 몸통이 정지자세를 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내 손에서 엄청난 양의 폭탄이 쏟아져 나와 비늘 표면을 빨갛게 달궜다.

“폭탄?!”

“벽력탄!”

VT스타즈는 고막을 울리는 폭음에 깜짝 놀랐다.

벽력탄이라고 불리는 이 물건은 대회에선 사용 금지지만 필드에선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연금과 주조라는 비주류 스킬을 상당한 경지에 이른 유저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라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데미지를 늘리는 덴 좋은 선택이었다.

“저래서 기여도대로 장비를 분류하자고 했구나!”

“약은 녀석!”

뒤에서 옹알대는 와중에도 VT스타즈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비싼 장비를 양껏 풀어 보스를 타격할 때마다 클리어 확률이 올라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장비를 얻으려면 보스를 쓰러트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과는 반대로 내 표정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보스의 방어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다.

벽력탄의 위력은 교룡뇌조보단 조금 떨어지는 수준, VT스타즈가 예상한 것처럼 기여도를 올리기 위해 이 비싼 물건들을 풀었는데 황룡은 간지럽다는 듯 울어대며 반격을 날렸다.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든 벼락이 VT탱커 둘을 저 멀리 날려 보냈고 그제야 저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벽력탄이 상위 랭커의 스킬보단 약하다곤 하나 무시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그런 공격을 간지럽다는 듯 받아냈으니 이 공략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나만 또 고생하겠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갈팡질팡하는 VT스타즈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만약 저들이 2군이 아니라 1군만 됐어도 이보다 훨씬 좋은 대처를 했을 텐데 말이다.

영리한 황룡은 눈을 번뜩이며 나를 제치고 허둥거리는 인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이곳에서 누가 약자인지를 간파한 게 틀림없었다.

“모두 피해!”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황룡의 몸통이 VT스타즈를 완전히 헤집어놓았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황룡은 비늘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속살이 보였고 무척이나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저 녀석보다 더 처참한 상황은 도리어 이쪽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땅 위에 일어서 있는 인원은 고작 두 명뿐, 나머진 전부 리타이어 해 필드를 떠났거나 간신히 숨만 붙어 땅을 기고 있었다.

“죽어!”

피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친 남은 인원들은 비틀거리는 용을 향해 난도질을 가했다.

나도 서둘러 포션의 병뚜껑을 따 입에 털어 넣은 뒤 공략 마무리에 동참했다.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올려 더 많은 장비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뒤, 용의 몸이 빛을 뿜어내며 무너지자 VT스타즈가 환호성을 질렀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보스를 마침내 쓰러트린 것이다.

신규 시즌의 베일에 감춰져 있던 던전을 공략했단 사실에 뿌듯하던 것도 잠시, 기이한 안개가 사방에서 몰려와 시야를 완전히 장악했다.

회귀하기 전을 통틀어 보스 공략 후 이런 적이 처음인지라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작은 종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출력됐다.

<무신의 연계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무신?

문득 가이아 초기에 적성시험 SS등급을 받아 업적을 따냈던 일이 기억났다.

★전설급 업적 - 무신의 자질

적성시험 SS등급을 받아 30일 이내로 교관에게 승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보상 : 던전, 무신이 잠든 곳의 출입이 가능해집니다.

회귀 이후 처음 따낸 전설급 업적.

이곳 던전이 이름이 무신과 관련이 없기에 생각도 못했지만 아마 이곳은 퀘스트 연계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장소였던 모양이다.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여기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선택지가 1회성이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테니까.

전설급 업적 연계 퀘스트로 등장하는 선택지가 1회성인 경우는 드물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수중에 남아있는 포션은 열한 개.

이것으로 퀘스트를 마무리 지을 수 있길 바라며 나는 수락을 눌렀다.

그러자 안개가 다시 물러나며 공간을 만들었고 조금 전에 잡았던 황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2라운드 같은 건 아니겠지?

다 죽어가던 보스가 모종의 힘을 받아 빵빵해진 체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건 가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쌩쌩해진 황룡을 일대일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황룡과의 2차전은 아니었는지 황룡의 몸이 빛을 뿜더니 점차 줄어들었고 이내 사람의 형상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꼿꼿이 허릴 세우고 날 바라보는 노인은 황룡이 인간으로 변하면 저렇게 생겼을 거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무신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인간이 이곳에 왔는가.”

노인이 손을 가볍게 흔들며 그리 말하자 예전에 겨뤄봤던 전직 교관과의 승부가 떠올랐다.

지금이야 가볍게 이길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교관은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았다.

그만큼 지금 앞에 있는 노인의 기세는 매서웠다.

언제 공격을 해올지 몰라 긴장하고 있는데 노인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진 빛이 내 이마 중앙을 관통했다.

조금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그대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 이미지는 모든 것을 부수는 강철의 주먹이었다.

거대한 바위는 물론이고 대지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 만약 실전에서 이것을 맞출 수 있다면 최강의 공격력을 손에 넣는 셈이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바람을 밟고 달리는 신묘한 보법, 공중에서도 방향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어 마치 마법사이 공중부양 스킬을 가볍게 압도하는 이동스킬이었다.

만약 보법을 선택한다면 안 그래도 민첩이 극에 달한 무도가에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마지막 스킬은 조금 전 두 개의 스킬보다도 훨씬 기이했다.

머릿속 영상이 전혀 화려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그것의 진가가 드러나자 내 입에선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스킬은 바로 압도적인 내성, 정신력 강화였다.

저것을 얻는다면 독, 저주 등의 갖가지 디버프 스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무형권, 무형보, 무신결, 그대는 이 셋 중 무엇이 제일 탐이 나는가.”

이름만 들으면 신(神)자가 들어간 무신결이 제일 좋아 보였다.

하지만 다른 것들도 너무 좋은데···.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편할 대로 하게. 다만 너무 오래 고민하면 시험이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이야.”

갓 뎀. 역시 선물은 그냥 주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험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단 말에 난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무신결로 하겠습니다.”

“호오, 탁월한 선택이군. 그럼 자네가 보물을 얻기 적합한 인재인지 간단한 시험을 해보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오싹할 정도의 속도.

프로리그에서 마주친 그 어떤 선수보다도, 던전의 그 어떤 보스보다 빠르고 강한 주먹이었다.

젠장!

피한다고 피했는데 코에 시큰한 감각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게 틀림없었다.

구로관과의 전투 이후 두 번째였다.

“잠, 잠깐! 잠깐만요! 규칙은 말씀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먹을 들고 날 쥐잡듯 패려던 노인은 그 말에 우뚝 멈췄다.

“3분을 버티면 무신결을 내어주지.”

3분이란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아이템 보관함에 넣어뒀던 포션과 버프용 물약을 있는 대로 삼켰다.

던전 공략을 위해 준비한 버프물약은 일시적이지만 폭발적인 전투력 증가를 가져왔다.

“준비를 마친 듯하니 다시 시작해보지!”

전직시험 때와 마찬가지로 타이머가 나타나며 180초의 숫자가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퍽소리도 아니고 주먹에서 쾅소리가 난다.

내 머릴 날려버릴 기세로 대포알 같은 주먹이 날아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코피는 한 번이면 충분했다.

“제법이군!”

‘반드시 따낸다!’

용의 충격으로 노인의 주먹을 받아낸 다음 반격을 쏟아냈다.

번뜩이는 교룡뇌조가 노인의 수염 뒤에 숨은 목덜미를 노리며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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