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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51화 (148/170)

무신(武神) (3)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이아 세계에서 무력으로 최고 정점에 군림하는 프로팀 소속 길드의 횡포는 예전부터 익히 돌던 소문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이미지 관리를 중시하는 프로팀에서 길드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생각하면 그걸 가만둘 리 없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들은 예외였던 모양.

던전 내에 있는 길드라면 다들 보물을 찾아 들어온 건 마찬가지일 텐데 모가지를 운운하며 큰소릴 치는 폼을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럼 한 번 날려 보시든지.”

“뭐?”

눈을 부릅뜨며 날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이 뜨악하게 변했다.

입구에 사람이 몰렸을 땐 노출을 피하고자 얼굴을 가렸지만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로리그에 관련 있는 자라면 내 얼굴을 모를 수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유니크?”

내가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녀석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만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상대를 마주친 것에 대한 당혹, 왜인지 모르겠으나 일종의 분노 또한 섞여 있었다.

“전투준비!”

리더로 보이는 녀석의 명령에 VT스타즈 길드가 재빨리 진형을 갖춘다.

솔직히 의외였다.

나를 알아보면 어떻게든 협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던전 초반부는 이미 확실하게 벗어난 상황, 여기서 상위 길드끼리 부딪쳐봐야 후발주자만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인원도 이쪽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린 아직 60 가까운 인원이 남아있는 데 비해 VT스타즈는 고작 마흔 명을 밑돌았다.

여기까지 도착하는데 고생깨나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달려들다니, 한 번 날려보라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할 만한 말이었나?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VT스타즈의 선두에 선 녀석들이 이유를 외쳐댔다.

“세준이 형의 원수!”

생각지도 못한 외침과 함께 양쪽 무력이 충돌했다.

젠장, 이세준 멘탈이 깨진 걸 왜 나한테···.

심지어 그 녀석은 중동 갔잖아!

은퇴한 것도 아니고 해외리그로 가버린 녀석의 원수를 왜 나한테 찾는단 말인가.

더 길게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코앞까지 달려든 아크나이트의 시선을 사선으로 그은 열양지로 분산, 소리를 완벽히 죽인 어퍼컷을 꽂자 상대의 몸이 컥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진다.

가이아는 게임이지만 인체의 급소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격당하면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을 불러일으킨다.

체력 바라는 개념이 있으니 바로 리타이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찰나의 순간이 중요한 전투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렇게 한 명을 쓰러트린 뒤, 곧바로 그림자 발자국을 이용해 격전지를 누비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은 무도가를 가져온 게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크나이트였다면 적들의 눈을 속이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었을 테니까.

“공우야! 뒤! 뒤!”

VT스타즈의 반응은 제법 날카로웠다.

기둥이 빠져나간 후유증으로 리그 하위권을 맴돌고 있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3대 강팀으로 불렸던 팀.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1군으로 올라 리그 데뷔를 노리는 2군이었다.

우리 팀만큼은 아니어도 VT스타즈에 들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이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지금은 당당히 우리 팀 탱커가 된 정대환을 면접에서 떨어트릴 정도다.

날카로운 공격이 머리칼을 스쳐 지나간다.

한 명을 넘기고 보니 어느새 VT의 포커싱은 내게 맞춰져 있었다.

다 죽더라도 날 이곳에서 끌어내겠단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죽여!”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인원을 향해 교룡뇌조를 시작으로 열양지, 항마장, 용의 충격을 빠르게 뿜어냈다.

리그였다면 마력의 분배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하지만 이곳은 필드다.

포션을 통해 부족한 마력을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엔 충분히 적의 공격을 분산시킬만한 지형지물도 있었다.

동서남북, 네 개 방위로 칼을 꽂아둔 제단으로 몸을 날려 적의 공격을 피하는데 불길한 소리가 발밑에서 울렸다.

제단의 윗부분을 밟자 모종의 장치가 발현된 모양이었다.

함정?

드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단에 빛이 뿜어져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던전 내의 함정은 무엇이든 간에 걸리면 좋지 않은 게 대부분인지라 어떻게든 피해보려 했지만 빛이 몸을 덮치는 속도는 운룡비형보다도 훨씬 빨랐다.

“진형 갖춰! 진형!”

강렬한 빛에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상황 속에 들리는 건 우리 팀이 아닌 다른 이들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혼자 날뛰던 탓에 아군과 분리된 게 틀림없었다.

여섯, 아니 여덟 명은 되겠는데?

발소리로 미루어 짐작할 때 열 명 가까운 인원이 나와 함께 다른 장소로 전이된 상황.

공격할지, 수비할지 고민하던 난 은신을 유지한 채 조용히 한발 물러나 이 빛이 수그러들길 기다리기로 했다.

던전의 트랩이 작동한 것은 틀림없으니 어떤 위협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빛이 사그라지자 주변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무지 던전 지하 어딘가라곤 생각할 수 없는 아예 다른 공기가 느껴지는 공간.

푸른 잔디밭에 숨겨진 형형색색의 꽃들은 싱그러운 활력을 사방에 뿜어내고 있었다.

던전 내에서 이런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는 경우는 몹시 드문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전이 장치가 있는 던전의 십중팔구는 상당한 보물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바로 보스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

자색궁전 때 사막으로 전이됐던 일을 떠올리며 주변 경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법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이쪽과 달리 VT스타즈의 무리는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였다.

당장 주변에 적의 그림자가 보이는 건 아니나 이들은 내가 근처 어딘가에 모습을 숨기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심해! 언제 놈이 덮쳐올지 몰라.”

덮칠 생각 없는데.

적어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전까진 먼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 쳐 그들과 거리를 벌리며 주변 탐색에 나섰다.

5분여를 둘러보자 대강 어떤 지형에 전이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은 고립된 섬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을 둘러싼 망망대해가 나온 것이다.

남은 것은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이었다.

아마 이 작은 섬 어딘가에 나를 제단으로 돌려보내 줄 장치나 NPC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을 구석구석 살펴본 결과,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전이장치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강력한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단 점이었다.

황룡, 황색의 커다란 용이 무언가를 감싸고 섬 중앙에 자릴 잡고 있었다.

꼬리만 흔들어도 주변 지형을 우습게 박살 낼 정도의 크기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을 모두 더듬어도 저만한 크기의 몬스터를 보는 것은 드물었다.

한마디로 말해 혼자서 공략하기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

유니크의 신규 던전 공략을 관찰하던 가이아 본사 직원들은 험한 소릴 뱉었다.

“운이 저렇게 좋을 수 있나?”

“난 애초에 이번 시나리오 오픈에 회의적이었다고.”

보스 방으로 가는 숨겨진 관문, 그것은 다른 것을 건드리지 않고 제단 꼭대기를 살포시 밟는 게 첫 번째였다.

만약 제단의 다른 부위를 먼저 건드리면 거대한 광장에 다시 한 번 인간 형태의 수호병들이 나타나 극한의 대결을 하게 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 녀석은 대체 무슨 행운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타 길드와의 교전 중에 단숨에 함정을 돌파해버렸다.

평소 유니크의 독주를 못마땅해 하던 입장에선 정말이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다.

영웅의 시험대의 최대 난관이라 할 수 있는 황룡은 아무리 유니크라도 혼자 잡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주변에 같이 떨어진 유저들은 유니크와 적대관계 있는 유저들.

이번에야말로 유니크가 던전 클리어에 실패할 것으로 생각한 순간 모두의 예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아무래도 저 친구들은 유니크가 미운 모양이야.”

“왜 아니겠어. 유니크가 있는 이상 저들의 리그 우승은 힘들 텐데.”

“하긴, 에이스 견제는 어느 대륙이나 마찬가지지.”

“부디 여기서 탈락했으면 좋겠군.”

유니크의 공략이 실패하길 기다리며 화면을 응시하던 그들의 눈은 잠시 뒤 커다랗게 변했다.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유니크가 제 발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마력이 다 떨어졌나 보지?”

아까부터 던전 클리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찾아다니던 녀석들은 내가 나타나자 눈을 부라렸다.

“마력은 얼마든지 남았어.”

마력포션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자 녀석들이 움찔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불과 수 초 만에 동료들이 박살 나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대화하자.”

“무슨 대화.”

“섬 중앙에 보스로 보이는 용이 있어. 녀석을 잡지 못하면 던전클리어는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지. 아마도 우리가 첫 공략대야. 첫 공략에 레어리티 보정 확률이 높은 건 다들 알고 있지? 잠시 원한을 접어두고 협력하자.”

내 말에 리더로 보이는 녀석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개소리! 공략에 실패할지언정 네놈 만큼은 끝장내주마.”

흉흉한 기세로 무기를 앞세운 녀석들을 보며 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위에서 이세준의 원수니 뭐니 떠들어대던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많이 억울하거든? 그 녀석은 그저 해외 리그로 돈 받고 이적한 것뿐이잖아. 그걸 왜 내 탓을 하지?”

“닥쳐! 세준이 형은 너 때문에 은퇴한 거라고!”

사실 이 경우엔 양쪽의 말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월드챔피언십에서 우리 팀에게 깨진 이세준은 정말로 은퇴하려고 했을 것이다.

내가 앞장선 스타서퍼가 녀석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겼으니까.

다만 녀석이 다시 몇 개월 만에 현역복귀를 하게 만든 건 아마도 백은하의 역할이 지대했을 터, 이미 불꽃이 사그라든 그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다.

다시 선수 생명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은퇴한 것도 아니고 다시 리그로 돌아온 마당, 굳이 화를 낸다면 내가 아니라 복귀를 다른 팀으로 하겠다고 결정한 당사자에게 해야 마땅했다.

“끝까지 나와 싸우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해주지. 여기서 사리분별 못 하고 나하고 싸우면 너희는 간신히 온 기회마저도 놓치게 된다는 걸.”

진지한 나의 말에 녀석들의 발이 멈춰 섰다.

나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너희는 2군이지. 1군도 아니야. 물론 재능 있는 몇 명은 운 좋게 데뷔 무대를 가질 수도 있겠지.

“······.”

“그런데 가이아는 애석하게도 순수하게 피지컬로만 승부가 결정 나는 게임은 아니잖아? 훌륭한 선수에겐 장비와 스킬이 따라줘야 한다는 건 다들 동의할 거야.”

프로 1군 무대를 두드리는 많은 선수의 경우, 피지컬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를 벌리는 것이 바로 그 밖의 요소들, 장비와 스킬이었다.

“VT스타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많은 팀이 2군을 1군 선수 장비 구해다 주는 용병쯤으로 생각하지. 그렇게 열심히 던전을 돌다 원하는 장비를 구하면? 써보지도 못하고 헐값에 프런트에 넘기기 일쑤고, 그래야 다음번 엔트리 조정 때 신경 써주겠다는 말을 하니까. 시합이 간절한 2군 선수에겐 협박 아닌 협박이지. 안 그래?”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VT스타즈 녀석들은 어느새 침묵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데뷔하고 싶으면 프런트에 장비를 넘기지 마.”

“뭐?”

“너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협상 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고.”

“그런 짓을 했다간 영영···!”

“계속 2군에 남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희 중 계약 기간 길게 잡은 사람 있어? 아마 없을걸? VT스타즈 씩이나 되는 팀도 싹수가 보여야 장기계약으로 붙잡아둘 테니까.”

장기계약을 받으려면 연습생의 실력이 좋아야 한다.

그것도 보통 좋은 수준이면 어림도 없다.

다른 팀에서 데뷔해도 충분히 즉시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선수급이어야 한다.

만약 VT스타즈의 12인 명단이 이미 가득 찼는데 다른 팀에 주긴 아까운 인재일 경우, 팀은 해당 선수에게 고액 연봉을 안겨다 주며 장기계약을 맺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녀석들은 그런 급 선수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랬다면 최소한 리그에 얼굴 한두 번쯤은 비췄을 거고 내 머릿속에 인상이 남았을 테니까.

“VT스타즈 정도면 팀을 떠날 때 장비 전부 토해놓고 가라는 노예계약까진 안 맺었을 거고. 그럼 차라리 그 장비 가지고 다른 팀에 가서 요구해. 프런트에 장비 넘길 테니 주전 기회 몇 번이라도 달라고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시장에 내다 팔든가. 그럼 데뷔는 못 해도 한 몫 챙길 수 있잖아? 계속 거짓말에 속으면서 노동 착취당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

녀석들은 조용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기서 좋은 장비가 나올 거라고 확신하는 거냐? 우리가 데뷔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당연하지.”

“무슨 근거로?”

나는 흔들리기 시작한 녀석들에게 쐐기를 박아 넣기 위해 당당히 말했다.

“나 유니크야. 세계 최고의 선수, 나 혼자서도 너희를 전부 쓰러트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저기서 좋은 장비가 나온다는 확신이 없었으면 너희랑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 자식이 끝까지 재수 없네. 해보자 이거냐?”

“참아.”

성격 급한 한 명이 욱하는 걸 주변 동료들이 뜯어말린다.

“장비 분배는?”

“공평하게. 데미지 기여도로 분배하자. 단, 내가 먼저 집는 조건으로.”

“···좋다. 받아들이지.”

VT스타즈의 인원은 여덟 명, 기여도로 분배하자는 내 조건은 자신들에게 썩 유리한 조건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자신감에 넘치는 녀석들을 보며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억눌렀다.

고맙다. 산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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