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50화 (147/170)

무신(武神) (2)

5개월 전, 가이아 운영 총괄 회의에선 심각한 얼굴을 한 사내들이 여럿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재 게임업계를 이끄는 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의 역할은 거대 공룡인 가이아가 갑작스러운 밸런스 붕괴나 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가 아무리 좋은 인재라 해도 게임이 향후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부분은 새롭게 등장하게 될 스킬이나 지역, 던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예상하는 데 있었다.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슈퍼 등급의 시나리오를 지금 가동하기엔 꽤나 위험한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오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슈퍼등급 시나리오.

가이아 내에서도 강력한 힘을 유저에게 쥐여주게 되거나 게임 내 판도를 흔들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지닌 것들을 뜻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앞둔 지금, 회의장 내 인원들은 갑론을박을 펼치며 설전을 벌였다.

무신(武神)이라 이름 붙인 시나리오를 이번 시즌에 여느냐를 두고 벌이는 언쟁이었다.

기획 자체는 게임 오픈 전부터 있었으나 가장 최근에 오픈한 시나리오와 비교해도 아주 강한 힘을 지닌 이벤트.

무신은 그런 슈퍼등급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다시 말해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발생할 때 게임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신입니다. 다들 잊으셨습니까? 무신의 자질 업적을 달성한 인구는 네 번째 시즌을 앞둔 지금도 백 명이 채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엔 가장 위험한 인물이 껴있죠.”

“위험하다니, 말이 심하시네.”

“유니크가 무슨 폭탄이라도 됩니까?”

“그럼 그게 어디 평범한 유저입니까? 자색궁전 비밀 통로를 대번에 찾을 때부터 느낌이 싸했지만, 그는 던전의 특수 이벤트를 발견하는 데 뭔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중에 누군가 고의로 유출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홍보팀이 제일 의심스럽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제임스! 말조심해!”

이들이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한 명의 유저였다.

닉네임 유니크, 가이아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한국의 프로게이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유니크지만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가이아 본사 내부엔 그를 싫어하는 인원도 제법 있었다.

그들의 상식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러 차례 일어난 탓이다.

일 년을 준비해 오픈시킨 이벤트가 통째로 그에게 털리는 일이 매 시즌 벌어졌다.

덕분에 지난 시즌 동안엔 내부 유출자를 잡기 위해 한동안 회사가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가이아를 위해 공을 세운 선수를 부정한 방법을 쓴 사람 취급하는 건 옳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유니크가 아니었음 가이아가 이렇게나 빠르게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거랑 이건 다른 문제죠.”

“뭐가 어떻게 다르죠?”

“아무튼, 달라요.”

“여보세요. 반대하려면 그에 걸맞은 타당한 증거를 제시하세요.”

“내기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번 슈퍼등급 시나리오에서 가장 큰 혜택을 얻게 될 첫 번째 유저가 유니크라는데 걸겠습니다.”

당당한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사실 찬성하는 사람들도 내심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부 유출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했다면 아무 문제 없으니까 강행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장치를 유저 한 명이 독식할 확률이 조작이 아니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느냐고요! 이건 독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점점 목소리를 키우며 싸우던 그들은 결국 지지부진한 회의 끝에 슈퍼등급 시나리오 가동으로 최종 합의를 내렸다.

사실 유니크가 내부와 어떤 커넥션을 가졌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준비해둔 시나리오를 계속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매 시즌 새 컨텐츠를 준비해야 하는 기획 및 개발팀의 업무 강도는 지금도 상당한 상태였다.

그렇게 무신의 비밀을 풀게 될 던전이 네 번째 시즌에 배치됐고 시즌이 중반에 이른 시점이 되자 가이아 관리팀의 이목이 던전에 집중됐다.

보물을 찾는 유저들이 던전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

아마 가이아 본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들었더라면 유니크 입장에선 억울할 만했다.

왜냐하면, 그 역시 무신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으니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게임 내의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알맹이만 쏙쏙 골라 먹은 건 분명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신은 알려진 게 없는 존재였다.

‘개판이네.’

예상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이 무너진 결계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칼부림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어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버에서 처음 열리는 던전은 좋은 장비를 획득할 확률이 올라가는, 그야말로 커다란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난다.

유저들이 악을 쓰고 서로를 공격하는 이유였다.

장비 욕심이 났는지 길드원이 다급하게 이야길 꺼내보지만, 한솔은 고갤 저었다.

이미 무기에 치여 유저들이 눕고 있었다.

이 아비규환의 필드를 뚫고 들어가자니 길드원들이 입을 피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니나다를까 사태가 다소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스타서퍼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리는 인원들이 보였다.

대부분 프로게임팀 출신의 길드였다.

“지금 들어가면 우리 피해만 커져요. 입구만 해도 상당한 규모의 대형 던전입니다. 먹을 게 충분할 거 같으니 조금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려보죠.”

지켜보기로 하고 자릴 잡았지만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도 없었다.

이런 때를 이용해 기습하려는 무리가 주변을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탓이었다.

긴장이 풀어진 경쟁자를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미리 제거하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스타서퍼 길드는 후드를 눌러쓰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으면 누군가 알아보고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 유니크.

그리고 그가 이끄는 한국 최고의 길드.

실력이 모자라도 호승심에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나설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솔의 예상은 곧 현실이 됐다.

“블루유니온이 입구에 있다!”

“와아아아!”

블루유니온, 유니온TV라는 이름의 대형 스트리밍 기업 휘하의 프로게임팀.

프로팀 휘하 길드가 입구 근처에 있단 사실을 알아차린 네임드 길드들이 함성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진을 치고 합동 공격에 나섰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프로팀을 상대로 실력발휘 해보겠냐는 기분과 평소 프로팀 길드에 눌려지내던 설움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멍청하긴.’

한솔은 자신만만한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블루유니온은 애초에 후드를 눌러쓰는 등의 모습을 감추는 행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희 같은 파리들이 앵앵대봐야 우리한텐 안 돼! 라고 말하는 듯한 자신감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마법이 터지며 충돌이 일자 잠시 잠잠해졌던 분지의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졌다.

“어딜 감히!”

“우린 블루유니온이다!”

전투 초반엔 블루유니온 쪽이 압도하는 그림이었다.

리그가 진행 중인 탓에 1군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2군 및 연습생이 대거 공략에 대거 참여한 상황, 프로팀 연습생이 한두 달만 숙소 밥을 먹어도 일반인 랭커와 실력이 몰라보리만큼 차이 난다는 게 이 바닥 정설이었다.

난다긴다하는 콜로세움 상위권 랭커들의 체력이 블루유니온의 손에 걸려 갈려 나갔다.

하지만 그 기세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프로리그와 일반 필드전의 결정적 차이, 바로 마력 때문이었다.

시합에선 체력을 회복시킬 수단이 힐 스킬뿐이며, 마력을 회복할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필드에선 미리 준비한 마력 포션을 마시면 마력을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다.

포션은 콜로세움 포인트를 통해 구매하는 게 대부분.

일 년 내내 콜로세움을 뛰며 등수를 올리는 데 모든 시간을 쏟는 사람들과 가끔 필요할 때만 랭크게임을 찾는 프로게이머.

어느 쪽이 더 많은 포션을 비축해 뒀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물처럼 포션을 마셔대며 강공을 퍼붓자 블루유니온이 유지하던 전선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일단 균형이 무너지자 입구가 뚫리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입구가 열렸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틈을 타 스타서퍼도 대열에 합류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 입구에서 힘자랑하며 적을 만드는 일이었고 그 제일 멍청한 일을 블루유니온이 해냈다.

모르긴 몰라도 힘을 과신해 이 사태를 주도한 녀석은 팀에서 쫓겨나게 되리라.

[던전, 영웅의 시험대에 입장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횃불이 가지런히 늘어선 회랑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 모험가들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어디로 가죠?”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사람, 바닥에 침을 뱉어 방향을 정하는 사람 등, 서로 바삐 흩어지는 와중에 한솔은 조용히 주변 인적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벽 좀 쳐줘요.”

그의 말 한마디에 길드원들이 벽을 치고 서서 한솔의 모습을 완벽하게 숨겼다.

‘던전 탐색에 정답은 없지만 확률을 높일 순 있지.’

한솔의 품 안에서 나온 건 가루였다.

금색 가루가 던전 바닥에 떨어지자 그것은 작은 말로 변해 투레질했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곳이 곧 스타서퍼가 향할 방향이었다.

“갑시다.”

크기를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의 대형 던전에서 갈 길을 정해주는 아이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이아의 던전 시스템은 공략 시간 8시간을 초과할 때부터 던전 안의 몬스터들이 급격히 강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절약하는 게 던전 공략의 열쇠인 셈, 스타서퍼는 다행히 이 금색 가루를 싼값에 구할 수 있었다.

팀의 뒤를 봐주는 제1 스폰서 헤르메스 덕분이었다.

스타서퍼가 승승장구할수록 광고를 체결한 헤르메스에게도 이득이 되는 관계.

방향을 정한 스타서퍼 인원들은 어두운 통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향할수록 트롤러를 마주칠 확률이 줄어든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처음 입구에서 갈라질 때만 해도 주변에 인원이 제법 많았는데 이젠 거의 보이질 않았다.

점점 더 쉽게 처리하기 힘든 적들이 튀어나오다 보니 어느 시점에선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다친 사람 없어요?”

“젠장,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이 안 보이는데요.”

“여기도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쓴 길드원들이 기침을 하며 몸을 털어냈다.

영웅의 시험대란 이름의 던전은 내 기억 속에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미래가 바뀜에 따라 등장한 새 던전인 모양, 문제는 던전의 난이도가 지극히 높아 길드 인원이 고생을 하고 있단 점이었다.

아무리 신규 대형 던전이라지만 중간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길드원 둘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실력으로 따지면 한국 서버 최상위에 있는 스타서퍼다.

그런데도 아군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원인은 예상치 못한 던전 패턴 덕분이었다.

영웅의 시험대는 기이하게도 대형 몬스터보다 인간형 적이 더 많이 등장했다.

평소 커다란 드래곤이나, 골렘, 황소를 잡던 길드원들에겐 다소 생소한 적이었다.

그래도 커다란 짐승을 잡는 것보단 같은 크기의 인간형 적을 상대하는게 편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가이아를 완전히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단 인간형 적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

몸집이 작은 만큼 더 빠르고 날렵한데다가 지능이 뛰어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해온다.

이를테면 진형을 짜고 덮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형, 전력 손실이 꽤 큰 거 같아요. 이러다 던전 공략 실패하는 거 아니에요?”

옆에 따라붙은 민우진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중간 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스무 명 넘는 인원이 탈락했다.

처음 던전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인원이 80명이나 됐는데 말이다.

‘아크나이트로 올 걸 그랬나?’

헤르메스에서 던전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때, 나는 어떤 클래스로 던전 공략에 나설지를 고민했다.

아무래도 팀원들을 보호하기엔 아크나이트가 좋지만 던전 외적인 문제로 다른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점을 생각하면 무도가가 더 편하기도 했다.

결국 저울질 끝에 유니크로 나섰더니 생각보다 아군 피해가 심했다.

“뭐, 우리가 이 정도면 다른 길드들은 피똥 싸고 있겠지.”

“그건 그렇죠.”

“다들 괜찮으세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던전 공략하다 죽는 게 뭐 하루 이틀인가요.”

공략대의 사기도 나쁘지 않은 상황, 혹시 모를 장기전에 대비해 나는 서둘러 일행을 이끌었다.

“오오.”

좁은 통로, 갑자기 벽을 뚫고 창을 찔러 오던 병사들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길드원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던전 내부의 대형 광장, 밝은 빛이 중앙에 내리는 그곳에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제단과 함께 검이 거꾸로 꽂혀 있었다.

보물 혹은 함정.

하지만 설령 함정이더라도 일단은 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보물을 찾는 유저로서의 본능이다.

천천히 경계하며 제단 쪽으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목소리가 광장을 흔들었다.

“움직이지마!”

다른 방향의 통로에서 쏟아져 나온 무리들이었다.

“움직이지마. 모가지 날려 버리기 전에. 이제부터 여긴 VT스타즈가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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