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49화 (146/170)

무신(武神) (1)

과거 한국의 에이스였던 두 선수가 해외 팀에서 재회했다는 소식은 가이아 팬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딱 그 정도일 뿐이었다.

이 팀이 향후 한국의 월드챔피언십 연속 우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시점에서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도 그럴게 가이아의 경우 국적이 다른 선수는 1군에 최대 3명, 같은 시합엔 2명까지 밖에 내보내지 못한단 로컬 룰이 존재했다.

다시 말해 더원과 이세준이 있어도 나머지 선수를 순수 아랍에미리트 선수로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이아에선 최소 두 명의 에이스만 있으면 지진 않는단 말이 있지만 그것이 통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국 리그까지다.

월챔에 올라오는 팀들은 전부 세계 레벨의 팀들이기에 어느 한 명이 구멍일 경우 우승은 어려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뜬금없이 해외에서 슈퍼팀을 만들고 있는 그녀의 존재.

백은하는 조합의 시너지를 이용해 선수의 실력을 끌어올리는데 빼어난 재주를 가진 부류였다.

내가 알던 미래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5인 팀전 체제, 그리고 중동까지.

이 모든 게 맞물리면 어떤 커다란 흐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7월, 가이아 리그가 반환점을 돌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스타서퍼는 완벽하게 리그를 장악했다.

오죽하면 다른 팀 팬들도 우리와 붙는 날엔 손을 놓고 3:0으로 지나 3:1로 질까 내기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리그보단 필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자만했다거나 방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어떤 엔트리를 내도 리그는 이길 수 있었기에 향후 월챔을 대비해 장비 육성에 공을 들일 뿐이었다.

헤르메스의 전담지원을 받는 우리는 정보 면에서는 모든 프로 팀을 통틀어 조금이라도 앞서나갈 수 있었다.

돈이 된다 하는 고급 정보 대다수가 그들을 거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보의 가치를 높이 사주는 게 헤르메스뿐이었고 돈을 벌고 싶은 유저들 입장에선 상당히 좋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내가 연락을 받은 게 이맘때였다.

-유니크님에게. 상당히 긴급 정보를 전달해 드립니다.

긴급 정보?

헤르메스에서 긴급이란 두 글자를 붙인 적은 손에 꼽았지만 그 때마다 우리 팀은 큰 이득을 거뒀다.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정보라야 긴급을 붙이는 셈이다

-동쪽의 신대륙 황화 깊은 곳으로 특급탐험가들이 향했습니다. VT스타즈 2군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특급탐험가들이란 수많은 던전 탐험가들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유저를 말한다.

프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선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자들.

5월부터 9월까지 바쁜 리그 일정을 보내는 프로 선수들과 달리 그들은 한 해의 모든 시간을 오롯이 던전 탐사에만 바친다.

온라인 마켓 시장에 풀리는 최상위 레어리티 장비들의 상당수가 이 특급탐험가들의 손에 의해 발굴된다.

가치 있는 보물만을 찾아 서버 구석구석을 떠도는 사람들이 한 점을 향해 달리고 있단 건 분명 뭔가 일어나고 있단 증거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점은 VT스타즈의 2군이 선두에 섰다는 것이다.

스타서퍼는 예외지만 대다수의 프로팀은 2군을 굴린다.

숙식을 해결해주며 1군과 동일한 방식의 트레이닝을 소화, 싹수가 보인다 싶으면 내부평가전을 거쳐 1부리그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게 2군 선수들이다.

그러나 2군을 단순히 훈련을 통해 1군에 올릴 목적으로 뽑는 프로 팀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다수의 팀들이 2군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레어 등급의 장비 확보였다.

리그가 시작하기 전 시즌 초반, 4월까진 각 팀 1군 선수들을 주축으로 프로팀 산하 길드가 활발히 서버를 휘젓고 다닌다.

일반 유저 사이에서 날고 긴다 하는 랭커들도 프로가 속한 길드가 공략에 나설 땐 몸을 사린다.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장비가 앞서도 밀릴 판에 1군 프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상급 장비로 도배하는 인종이니 랭커들이 기를 못 펴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고 5월이 지나면 랭커가 다시 살만해지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1군 프로 선수의 빈자리를 2군이 채우기 때문이다.

2군 선수들이 비록 1군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지만 그들 역시 일반 랭커들이 볼 땐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다.

다수의 프로 팀들이 그런 2군을 앞세워 필드 장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

VT스타즈가 움직였다면 그곳엔 반드시 VT스타즈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참석을 해보시겠습니까? 하루 만에 해치울 수 있는 거린 아닙니다. 리그도 계속 진행하셔야 할 테고.

-헤르메스에서 볼 땐 어떻습니까? 2군이 움직였다고 해도 정말 갈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이 연계 퀘스트는 최소 석 달 이상 진행됐다고 합니다. 게다가 VT뿐만 아니라 일반인 레벨의 탑클래스 길드도 여럿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랭커가 최소 6백 명은 있을 겁니다.

6백 명, 가치 있는 던전을 선점 할 수 있다 해도 너무 많은 인원.

나는 충분히 그곳에 갈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겠습니다. 길 안내를 부탁드리죠.

*

정말 그곳에 있는 물건의 가치가 상당하다면 우리 팀 전력을 온전히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프로 선수에겐 무엇보다 리그가 중요한 법, 결국 그곳에 가는 건 나와 민우진 둘로 한정됐다.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은 우리 팀이 아무리 압도적인 경기를 할지언정 항상 온전한 전력을 보길 원한다.

그런 와중에 우리 팀 전력의 태반이 빠져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팀 내 인기를 생각하면 내가 가는 것만 해도 큰 타격, 하지만 반드시 내가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장비 루팅은 한솔이 형이 최곤데?”

“황금 손이지.”

자연의 기운.

지금까지 스타서퍼가 던전을 돌며 슬쩍 기운을 흘려 넣은 것으로 이득을 본 장비 값을 생각하면 빌딩 정돈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박감독은 최고 인기스타를 리그 도중에 필드로 굴리는 것에 대해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결정을 내렸다.

“기왕 가는 거 잘 뽑아와!”

스타서퍼의 올해 목적은 리그가 아닌 월드챔피언십 2연속 우승.

최상위 레벨간 선수들의 싸움에선 장비가 아주 중요한 무기가 된다.

그렇게 나는 올해 합류한 막내를 데리고 헤르메스에서 준비한 유령군마가 이끄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리그는 괜찮으십니까? 팬들이 뿔 좀 나겠는데요.”

나와 나란히 앉아있는 민우진, 그리고 우리 앞에서 슬며시 웃는 남자.

남인수는 헤르메스 한국 지부 소속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 헤르메스와는 대부분 이 남자를 통해 거래가 오갔다.

얼굴만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에게 존대를 했다.

“괜찮습니다.”

“최소 이틀은 걸릴 겁니다.”

마법 스크롤만 찢으면 휙휙 도시를 이동할 수 있는 게임에서 던전 하나 공략하는 데 2일이나 걸린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마차를 타고 가며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개척된 대륙은 아예 다른 대륙에 위치하기에 일반 스크롤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황화에 일단 가려면 커다란 배를 타고 가야 했는데 배가 어찌나 큰지 마차를 통째로 실고도 자리가 남을 정도였다.

“가끔 자이언트 크라켄이라든지 세이렌 같은 보스 몬스터와의 조우가 이벤트로 나온다곤 하던데 뭐···걱정할 필요 없겠죠.”

갑판으로 나와 망망대해를 구경하던 남인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 말했다.

황화는 이번 시즌에 처음 등장했으며 가장 최근에 발견된 미지의 대륙, 완전히 신세계란 소리다.

그리고 그 신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 이 대형 목선이었다.

이것 말곤 달리 오갈 방법이 없다나?

어쨌든 그 때문인지 배에는 수준이 높아 보이는 유저들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각종 강력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신대륙에 여행객이 들락거릴 일도 없고 말이다.

진짜 실력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풋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거대한 괴물이 배를 공격해 온다고 해도 이만한 숫자의 고수라면 눈 깜짝할 새에 도륙이 날 터였다.

나와 민우진은 마차 밖으로 나올 때마다 챙이 커다란 모자를 눌러썼고 정말 웬만하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 서버에서 가장 유명인을 꼽아보라면 내가 제일 꼭대기에 오를 테니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린 열두 시간 이상을 배 위에서 보내고 나서야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황화대륙은 기존에 봐왔던 곳과는 달리 동양적인 색채가 많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꼭 무림에라도 온 것 같네요.”

“어이, 점소이. 여기 고기만두 하나.”

농담을 하며 항구 외곽을 돌자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이 우릴 알아보고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오셨네!”

“모두들 반갑습니다.”

“오늘은 우리끼리만 움직이는 거죠?”

“부회장님 섭섭해서 어떡하나~.”

우릴 반긴 것은 스타서퍼 길드의 멤버들이었다.

고수도 다구리엔 장사 없다고, 이번 공략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나와 민우진 둘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다들 준비는 마쳤죠?”

“예.”

남인수가 말한 준비는 바로 말이었다.

우린 마차로 이동할 건데 이들이 말이 없으면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린 신대륙의 깊은 곳으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남인수는 유령군마가 쌩쌩 달리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지붕으로 올라가 푸른 매가 물어다주는 편지를 읽으며 우리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던전 주변에 강력한 결계가 있다는군요. 결계를 풀 때마다 몬스터가 쏟아져서 고생 깨나 하는 모양입니다. 아직 프로 팀 소속은 VT스타즈 하나 뿐인 거 같고요.”

“형. 이럼 우리가 뒤통수치는 그림이 되는데 괜찮겠죠?”

“뭐, 감정이야 좀 상하겠지만 그렇다고 눈 뜨고 보물을 내줄 순 없잖아?”

미지의 던전을 누구보다 먼저 공략하는 팀은 처음에 한정해 더 높은 레어리티 보정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매번 시즌 초엔 던전 공략을 앞두고 피를 보는 전투가 서버 각지에 빈번했다.

다만 프로팀들 간에 공략하는 경우엔 이런 일이 적은 편이었다.

공략하는 방향이 동서남북으로 크게 갈리기도 하고, 서로 죽음으로 인한 로그아웃 패널티를 하루라도 받으면 손해이기 때문에 알아서들 피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같은 목표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이기에 아무래도 충돌을 피할 수 없을 듯 했다.

“우리에겐 다행인 게 서로 눈치를 보느라 결계를 해체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남인수는 선두가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씩 웃었다.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이 우리한테 웃어주는 모양입니다.”

매가 물어다 준 정보로 파악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우리가 제 때 던전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점, 또 하나는 정말 그곳에 보물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었다.

VT스타즈 2군, 1군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긴 하겠으나 그래도 프로 팀 소속 인원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공략에 애를 먹을 정도의 결계라면 분명 그 안에 있는 것이 평범한 던전일 리가 없었다.

*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마차로 날아드는 매의 횟수도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매를 통해 편지를 읽은 남인수의 표정도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터졌다는데요?”

“뭐가요?”

“지들끼리 붙고 난리가 났답니다.”

곧 결계가 열릴 것 같자 기회를 엿보던 누군가가 재를 뿌린 모양이다.

메시지를 읽어보니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담겨 있었다.

안되는데!

나는 다른 것보다도 누군가가 던전에 먼저 들어가는 것을 걱정했다.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 길드원들을 모아 작은 산을 넘었다.

이미 산을 넘기 전부터 저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치솟던 상황.

“와···.”

“개판이네?”

헐레벌떡 산등성이를 넘은 길드원들이 저 아래에서 벌어진 참극을 보며 중얼거렸다.

6백 명이라더니···.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엔 족히 수천은 되는 인원이 무기를 꺼내들고 엉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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