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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48화 (145/170)

이 정도라면 (2)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좋은 팀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1군 소속인데 연봉이 그래서야···.

그냥 다른 팀으로 옮겼으면 그보단 나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할 수 없었다.

“우리 팀이니까 자리 만들어주는 거야. 고맙게 생각해!”

“한솔이 너 자꾸 2군 들락거리면 연봉 깎이는 거 알지? 잘하자?”

“아, 오늘 경기 개 같네! 팀에 사람 새끼가 없어!”

하루가 멀다고 들어오는 압박에 나는 그저 버티는 것에만 온 힘을 쏟았다.

그래도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다.

가끔 나보다 더 못하는 친구들이 팀에 들어올 때면 나를 향한 압박도 옅어지곤 했으니까.

그러나 팀에 있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팀이 바라보는 나는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다.

귀한 자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치기엔 아까운, 계륵 같은 존재.

적당한 돈을 쥐여주고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값싼 탱커.

K퀘스트는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심을 엄청나게 깎아내렸다.

고작 팀전에서밖에 뛰지 못하는 선수를 이 정도로 대우해주는 팀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연봉을 더 받고 싶다고? 그럼 우승에 기여를 해라.

우승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승리에 적절한 기여를 해!

나는 타 팀 선수와는 물론이고 팀 동료와도 눈치싸움을 해야 했다.

항상 비교를 함께 지적이 날아드니 성인군자라도 멘탈이 나갈만한 그런 환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4년을 보냈다.

자그마치 4년, 프로게이머에겐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물론 국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계 어느 팀을 가더라도 실력이 애매한 선수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타서퍼는 꿀과 희망이 넘쳤다.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놨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경기 외적인 걸로 선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팀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선수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팀은 지금 이 시점에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나는 선수들이 팀을 옮길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 포장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 속엔 내 경험이 녹아있는지라 리얼리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물론 너희가 그런 대접을 받을 확률은 낮아. 좋은 선수고, 실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외국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 언어적응 문제, 세금을 냈을 때 줄어드는 연봉에 대한 부분은 경험이 없으면 바로 알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

해외로 돌다 다시 국내에 돌아왔을 때, 같은 액수의 돈을 만지려면 연봉을 최소 두 배는 더 받아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그곳에 정착한다면 상관없지만 번 돈을 다시 국내로 들여올 때 상당한 세금이 발생하는 탓이다.

“연봉은 팀이 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의 무게야. 그 무게가 떨어져서 팀을 옮기겠다는데 비난받을 이유는 없어.”

지난 한 해 동안 스타서퍼는 선수 친화적인 운영에 신경을 써왔다.

단 하나, 선수의 가치책정 부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겉은 완벽한 빵인데 핵심인 크림에 물음표가 뜬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팀에서 우리에게 답을 준 게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

팀에 새로 합류하게 될 민우진이 부모님을 모시고 신축 숙소를 찾았다.

연봉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작년 한 해, 국내 가이아 1부 리그 프로게이머 평균연봉은 1억5천이었다.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게임의 메이저지역 연봉 수준이 너무 짠 게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국내 리그 역사가 2년밖에 안 됐단 점을 생각해야 했다.

민우진은 번갯불에 콩 볶듯 도장을 찍었다.

연봉 2억5천만 원.

그 소식을 들은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바짝 섰다.

2억 5천,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다.

리그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 물론 우리가 놀란 건 단순히 금액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거 상당히···.”

“가능성 있는 거 아냐?”

고액 계약을 맺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팀이 1부 승격에 성공했지만 프로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에게 좋은 계약을 안겼으니 세계 대회 우승에 일조한 기존 팀원들이 기대를 품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라고?”

계약을 마치고 나온 김정수는 양손으로 손가락 일곱 개를 펼쳐 보였다.

7억이었다.

액수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든 건 안도감이었다.

팀이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

지난 시즌 동안 김정수의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다.

만약 2부 리그가 아니었다면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월드챔피언십에서 그는 출격 기회를 잡지 못했다.

김정수는 분명 성장했다.

과거 K퀘스트 시절의 모습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선수라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혹독한 훈련에도 그는 S급 벽을 넘지 못했다.

A급 선수까진 도달했지만 S는 재능의 영역이었다.

K퀘스트였다면 어땠을까.

너는 중요한 순간에선 힘을 못 쓰지 않으냐며 어떻게든 선수를 깎아내리기 바빴을 것이다.

거긴 흠집을 내고 자존심을 건드려 연봉을 줄이는 데 혈안이 된 인간들이 모인 곳이었다.

만약 스타서퍼가 김정수를 그런 식으로 대우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서퍼는 달랐다.

경기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걸친 그의 영향력을 인정했다.

김정수의 활약이 경기 내적으로 살짝 미비한 건 분명하나 그는 팀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 들어온 오퍼에 대해 선수들이 조언을 구한 것도 그였으니 말이다.

팀이 제시하는 계약서가 정말 좋은 조건이란 점엔 다들 이견이 없었다.

그렇게 팀원들이 웃으며 계약을 완료하는 사이,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우리 에이스가 왔구만!”

처음 그린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을 땐 변호사가 한 명이었는데 이번엔 인원이 좀 더 많았다.

압박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서대표를 포함해 다섯 명이나 되는 관계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한솔아. 네가 제일 마지막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프로 팀에선 키맨이 되는 에이스 선수와 제일 먼저 계약을 진행한다.

구심점이 될 카드를 먼저 맞춰놔야 나머지 선수들과 계약을 맺을 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팀이 내 계약을 마지막으로 미뤄놨다는 건 그만큼 계약을 성사시킬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전원 계약 성공했다.”

박감독이 코밑을 훔치며 말했다.

“내일이면 다른 팀에서 볼멘소리 좀 나오겠네요.”

가이아는 계약 전반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스템.

타 팀 선수들이 스타서퍼는 이렇게 준다는데 우린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선했다.

“사인···할 거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모두가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조건이 참 좋네요.”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의심할 여지 없는 국내 최고 대우다.”

자랑맞구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랑할만했다.

계약서에 적힌 총액 51억 원, 한국에서 나온 계약이라곤 믿기 힘든 규모의 액수였다.

실력으론 한국이 세계 최고지만 수익이 가장 잘 나는 리그는 역시 중국과 미국이었다.

중국은 인구가 압도적이고 미국은 시장이 잘 꾸려진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액수, 전 세계로 넓혀봐도 가장 큰 규모의 계약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우리 팀 선수들은 기본연봉뿐 아니라 향후 3년간 팀 전체 수익의 20퍼센트를 인센티브로 받기로 한 상태, 이제 우리 팀 선수 전원은 돈방석에 앉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우리와 광고 계약을 원하고 있었다.

“약속 지켰네.”

서대표가 말했다.

연봉만큼은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그는 확실히 지킨 것이다.

“감사합니다.”

프로에게 있어 연봉은 곧 자존심, 서대표는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S.솔리드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았지만 국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달랐다.

오랜 세월, 이 업계에서 겪었던 고생에 대한 보상을 한꺼번에 받은 기분이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하지.”

*

가이아의 네 번째 시즌.

국내에서 연봉 50억 돌파 선수가 나왔다는 소식은 하루가 안 되어 각 커뮤니티마다 퍼져나갔다.

-말세다. 겜돌이 연봉 50억 ㅋㅋㅋ

-유니크 모름? 50억 받을 가치 있는 선수라고!

-3년 간 게임에서 진적이 없다잖아. 사람 아님 저거;;

-아~ 나도 프로게이머나 해야겠다. 돈 좀 벌어볼까?

-네 다음 브론즈.

내 예상대로 스타서퍼의 계약 기사 발표 후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도 S급인데, 나도 A급인데 스타서퍼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슷하게는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논리를 들고나온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그 소식에 슬쩍 웃을 따름이었다.

대규모 광고 수입 없이 우리 팀 규모의 계약이 가능한 팀은 국내에 일성뿐이었다.

-원라이프도 이정도 계약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국내리그 우승도 간당간당한 팀한테 50억짜리 계약을 해주라고? ㅋㅋㅋㅋ

-기업이 무슨 자선봉사단체인 줄 아시나;

-그래도 그린엔터랑 일성그룹이랑 규모 차이가 넘사인데?

-대기업다운 씀씀이를 보여줘라!

원라이프 팬들은 선수들이 좋은 계약을 받길 원했다.

그래야 에이스가 빠진 팀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테니까.

하지만 일성그룹은 오히려 칼을 빼 들고 나섰다.

성적을 내지 못한 팀에겐 돈을 쓰지 않겠다는 듯 원라이프는 허리띠를 바짝 졸랐다.

에이스였던 더원의 이탈, 대규모 연봉삭감까지.

원라이프의 기세가 꺾이는 건 당연했다.

여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지는 5월에 접어들자 팬들의 환호가 다시 시작됐다.

리그 개막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한 치도 빗나가지 않네요.”

“사기 팀이지.”

시합 중에 이렇게 여유로운 팀이 얼마나 있을까.

리그 초반, 스타서퍼는 엄청난 기세로 승수를 올렸다.

팀전으로 돌입하기 전에 개인전에서 승부가 나는 경우가 전부였고 3:0 퍼펙트게임도 심심찮게 연출됐다.

월드챔피언십의 경험이 팀원들의 성장을 가속했고 그 결과로 스타서퍼는 무적의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VT스타즈를 비롯해 3강이라 불렸던 그 어느 팀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히 원라이프와 VT스타즈의 추락은 팬들에게도 제법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한 때 세계 대회 우승을 놓고 다투던 팀이 아니던가.

하지만 두 팀은 에이스의 부재가 너무 컸던 탓인지 하위권을 맴돌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DT게이밍만이 과거 3강의 자존심을 지킬 따름이었다.

시합하는 족족 승리하는 무적의 팀.

스타서퍼의 팬 숫자는 연일 가파르게 늘어났다.

게시판엔 연일 우리 팀 이름이 불렸으며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팀의 자격에 가장 어울리는 팀은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 모두 행복의 비명을 지르기 바빴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외부에서 볼 땐 모르겠지만 시즌이 계속되며 나는 조그마한 불안요소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실전 경험 부족이었다.

“이건 뭐 일부러 질 수도 없고.”

실전 경험 부족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팀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때문에 스타서퍼는 일부러 패하는 게 아니고서야 5라운드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팀전을 하고자 스크림을 요청하면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스크림은 실전보다 긴장감이 떨어져 상대 선수의 예리한 맛이 떨어졌다.

이것은 올해 팀에 들어온 민우진에게 있어 상당히 큰 문제였다.

상대가 전력을 다해 부딪혀오는 실전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는 것.

민우진은 충분히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지만 아직은 원석에 가까웠다.

게다가 녀석의 클래스는 힐러.

팀전이 아니면 경기에 내보낼 수조차 없었다.

팀이 너무 강한 탓에 신인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변경된 5인 체제 때문에라도 민우진은 반드시 성장시켜야 하는데···.’

팀 인원도 이제 열 명이 됐기에 내부적으로 5:5 연습이 가능하긴 해도 이것만으론 아무래도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막내에게 실전 경험치를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솔아! 기사 확인해봐!”

대형 포털의 e스포츠 기사란에 걸린 하나의 기사.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중동의 한 프로게임팀에 대한 기사였다.

뭐지?

중동,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각종 스포츠계에 상당한 자본력을 구가하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과거에선 중동이 가이아 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적이 없었다.

그래서 관심 밖에 있었는데 기사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슈퍼 플레이어, 이세준과 더원. UAE 프로게임팀 ‘알나스르’ 일원이 되다.]

은퇴한 줄 알았던 선수들이 중동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기사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모두가 기사를 보며 톱클래스 플레이어가 왜 중동에 갔는지를 주목했지만 내 시선을 끄는 핵심은 기사 중간에 있었다.

[···더불어 알나스르의 전략을 책임질 코치 자리엔 과거 원라이프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는 백은하 코치가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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