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47화 (144/170)

이 정도라면 (1)

나이트캣 인원 선발전 이후 팬들의 관심은 스타서퍼의 멤버 모집으로 쏠렸다.

가이아 팀당 로스터 제한 인원은 최대 12명.

그리고 스타서퍼는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한 팀들 중 유일하게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팀이었다.

여성부와 마찬가지로 2500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우리 팀의 문을 두드렸으며 훨씬 더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누굴 뽑아야 할지 막막하네.”

막막하다는 말엔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다만 그 관점이 조금 달랐지만.

“이 선수는 어때?”

“흐음.”

“네 반응만 봐도 아닌 거 알겠다.”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한솔아?”

감독과 코치는 고갤 흔들며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조금 전 퇴짜를 놓은 선수는 이미 월드챔피언십 그룹스테이지에 진출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선수였다.

실력적 측면에선 가장 검증된 카드라고 할 수 있는 셈, 그런 선수를 퇴짜 놨으니 감독이 볼멘소릴 할만도 했다.

그러나 내 기준은 확고했다.

이번 인원 모집에서 나는 즉전감이 아닌 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선수를 뽑고자 했다.

내 전성기가 지나도 우리 팀을 캐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선수 말이다.

감독이 의견을 물은 후보는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더 많았다.

스물 넷, 지금이야 아직 선수 기량이 유지된다고 하지만 1, 2년 만 지나도 금세 피부로 느낄 나이였다.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라고.

이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한 건 옆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는 정수형 때문이었다.

그 역시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았다.

나이얘길 하면 분명 신경이 쓰일 터였다.

“즉시전력감으로 이만한 선수도 없는데. 아쉽네.”

감독은 입맛을 다셨다.

비워둔다고 좋을 것 없는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우고 싶은 눈치였다.

“이러다 올해도 아홉 명으로 진행하면 곤란한데···.”

지원자만 2500명, 그 중 그랜드마스터 유저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으며 현재 현역으로 뛰는 선수까지 있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 단 한 명도 뽑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인원을 추가 모집할 생각이 없었던 거 아니냐.

현역 선수도 컷 당할 정도라면 스타서퍼는 인원 모집을 안 하는 게 낫겠다 등의 이야기 말이다.

“얘들아. 정 안 되겠으면 딱 한 명이라도 뽑자. 한 명!”

팀원 모두에게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였지만 사실 나를 향해 하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에서 선수 뽑을 때 이토록 깐깐하게 구는 건 나밖에 없었으니까.

관계자들 입장을 생각하면 2500명 중에 최소 한 명은 뽑아야 할 판이었다.

설마 이 많은 사람 중에 유망주 하나 없겠어?

*

없네. 없어.

사람이 수천 명 모였는데 왜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걸까.

내 눈이 높아진 게 문제였다.

실제로 불과 1년 동안 경험치를 먹고 성장한 우리 팀 선수들의 기량은 놀라울 정도였다.

원래 세계 레벨로 성장할 선수를 데려다가 훈련시켰고, 그 결과 성장에 필요한 기간이 급격히 짧아졌다.

물론 1년 만에 이 정도 레벨에 오를 수 있다는 건 역시 재능의 영향이 컸지만.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팀이다보니 웬만한 지원자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뽑긴 뽑아야 하는데···.

대표가 인원 선발에 있어 내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곤 하지만 한 명도 안 뽑는 걸 묵인해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 타협 하자.

한 명이라도 일단 뽑아두면 할 말은 생기는 셈이니까.

그렇게 스스로 기준을 낮추고 면접 3일을 꽉 채웠을 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우릴 찾아왔다.

“나이가 열일곱?”

“네.”

“막내들이랑 동갑이네.”

그리 말한 코치가 내 쪽을 한 번 쳐다본다.

안다. 무슨 뜻으로 쳐다봤는지.

이만하면 네 기준에 적합한 인재 아니냐는 뜻이다.

중학생 듀오였던 정대환과 유호영도 해가 바뀌면서 고등학생이 됐다.

면접 마지막 날에 혜성처럼 등장한 민우진 역시 그들과 같은 나이였다.

클래스는 비숍.

힐러가 부족했던 우리 팀에게 꼭 필요한 인재였다.

“이만하면···.”

“프리패스 레벨인데요.”

다른 팀원들 역시 더 볼 것 없다면서 어서 뽑자는 반응이었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프로 팀에서 힐러의 몸값이 치솟은 상황.

원인은 이번에 변경된 5인 팀전이었다.

지금까지 스타서퍼는 밀러의 원힐러 체제를 고집해왔다.

하지만 5인 체제의 쏟아지는 데미지를 감당하기엔 원힐러는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아예 기동성을 살려 노힐러 조합을 쓸 게 아니라면 힐러가 최소한 둘은 돼야한다는 게 스크림을 통해 검증된 업계 반응이었다.

“마력을 낭비하는 버릇도 없고. 딜레이를 조절하는 능력도 인상적이네요.”

“가, 감사합니다.”

내 고평가가 의외였는지 그는 말을 더듬었고 감독은 이제 됐다며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민우진씨. 이제 한 식구 됐으니 말 편하게 할게. 다음주에 부모님 모시고 도장 찍으러 와!”

*

새 식구의 합류에 맞춰 스타서퍼도 다음 스텝을 밟아나갔다.

시즌을 통틀어 가장 큰 미션 중 하나인 연봉협상이었다.

말은 안 해도 팀원들 모두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월드챔피언십 우승상금이야 온전히 챙겼지만 올해 우리 팀 선수들이 받은 금액은 1부리그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단적인 예로 정대환이나 유호영의 경우, 연봉이 6500만원이었다.

중학생이 만지기엔 너무 큰돈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올해 보여준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이건 완전히 헐값이었다.

십수년 전만 해도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불투명한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그런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 대중들도 어떤 선수가 얼마를 받는지 기사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스타서퍼 이번에 연봉 얼마나 올려줘야 돼?

-20억씩 팍팍 줘라!

-ㅋ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1억도 못 받았던 애들인데.

-내 돈 아닌데 뭔 걱정?

-괜히 돈 아낀다고 지랄하다가 해외에 뺏기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광고도 팍팍 들어오기 시작했다던데 설마.

스타서퍼는 현재 금액에서 0을 하나 더 붙여도 남는 장사라는 게 업계 중론.

헤르메스를 비롯해 광고 체결을 원하는 기업들이 현금을 안겨다줬으니 재정도 아주 양호한 상태였다.

“형. 근데 연봉이 맘에 안 들면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더 달라고 해야지.”

“그래도 안주면요?”

서대표가 돈이 있는데도 후려치기를 할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다면 팀을 갈아타는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을 하고 체결된 단년 계약이었다.

팀 생활을 하며 먹은 장비를 토해낼 일도 없고 위약금을 물을 일도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말자.”

알아서 잘 챙겨주리라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안자고 있으면 잠시 이야기 괜찮을까?”

새벽 2시.

내 방을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김정수였다.

프로게이머 숙소 일과가 늦게 끝난다곤 하지만 원래는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야?”

“눈치가 귀신이네.”

문을 닫은 그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릴 낮췄다.

“계약 때문에.”

“계약?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S.솔리드에선 12월에 계약 연장을 추진했지만 스타서퍼는 사정이 달랐다.

애초에 대다수의 팀들이 연봉 협상을 3월 중에 처리했다.

굳이 시즌을 한참 남겨두고 계약을 진행해 득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거 새나가면 안되는데 얘기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뭔데 그래.”

그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우리 팀 애들 전부 단년 계약인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없지.”

“오퍼가 들어왔어.”

“형한테?”

“아니. 정환이한테.”

김정환. 우리 팀의 아크나이트 기둥 중 한 명.

원래 트레이더스 365팀의 리더가 될 인재였지만 운명이 바뀌었는지 그는 작년 면접을 통해 우리 팀으로 왔다.

지역예선전과 본선에서도 상당히 인상 깊은 활약을 남기며 이제는 우리 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력 중의 한 명이었다.

“무슨 오퍼?”

“중국 팀 브로커가 자꾸 연락을 해온다더라. 자기네들이랑 계약하자고.”

“팀은 모르고?”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집을 통해 연락이 왔다는 얘기만 들었어.”

집에 연락이 온다는 건 부모님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선수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왜냐고? 우리 팀이 세계 최고니까.

프로게이머는 돈으로 말한다지만 이 정도 레벨이 되면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 법이다.

게다가 스타서퍼가 선수들에게 박하게 구는 팀은 아니지 않은가.

월챔 우승을 이루고도 K퀘스트 시절과 같은 대접을 받았으면 나부터 탈출했겠지만 적어도 대표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못 심각한 김정수의 표정을 보니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팀은 모른다고 했고, 그럼 금액은? 금액도 뭐 들은 거 있는 거지?”

침을 꼴깍 삼킨 그가 어렵사리 운을 뗐다.

“3천만 위안에 다년 계약을 제시했다고···.”

“맙소사.”

3천만 위안.

다른 사람이면 이게 얼마지? 란 생각부터 했겠으나 중국 리그를 뛰었던 나는 곧장 한화로 변환이 됐다.

50억이었다.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온 거야?”

“요즘 이런 연락이 자꾸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건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렸단 뜻.

이건 선수를 욕할 게 아니었다.

김정환이 올해 팀에서 보장받은 금액은 7천만원.

50억하고는 하늘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나 그 금액이 결코 터무니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중국은 스타급 플레이어와 고액 계약을 체결하기로 유명했고 김정환의 주가는 올 한 해 엄청나게 폭등한 상태였다.

국내에서 3대장으로 불렸던 DT게이밍의 정상현을 상대로 날카로운 수를 선보였으며 유럽의 기사라 불렸던 마스터라를 상대로 월챔에서도 활약했다.

이 모든 게 고작 프로 데뷔 일 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나이 올해 열아홉, 나이를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선수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힘든 금액이 사실이나 돈을 뿌리듯 쏟아내는 중국리그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었다.

아마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김정수의 성격 덕에 정환도 속내를 털어놨을 것이다.

“다른 애들은?”

“내가 아는 애들 중에선 없어. 한솔이 너는?”

“나?”

“나는 사실 오퍼가 들어온다면 제일 먼저 너에게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올해 내가 받은 연봉은 10억.

월드챔피언십 우승자 치곤 적은 액수인 게 사실이었다.

“혹시···한솔이 너는 팀 옮길 생각 있어?”

“그런 생각은 안 해봤지.”

대뜸 이번 시즌에 형편없는 계약서를 들이밀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형이 보기엔 어때? 다른 애들도 옮기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해. 우리 팀엔 네가 있으니까. 나는 되도록 이 멤버 그대로 유지해서 앞으로도 쭉 선수생활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음. 형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감독이나 코치가 연봉협상 시작 전에 돈 얘기를 입에 올리면 그림이 이상해질 수 있지만 선수끼리야 아무렴 어떻겠는가.

다음날 아침, 나는 조용히 선수 전원을 호출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직 여덟시네···.”

프로게이머 숙소의 하루는 빨라도 오전 아홉시가 넘어야 시작된다.

밤늦게까지 연습이 이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지금밖에 시간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장코치가 숙소에 올 시간이었으니까.

“주목. 우리 조금 있으면 계약서 새로 써야하는 건 알고 있지?”

계약 이야기가 나오자 반쯤 감겨있던 선수들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누군지 굳이 얘기 안할게. 할 필요도 없고. 현재 다른 팀에서 좋은 조건으로 오퍼 받은 친구들이 있단 얘기를 들었어.”

그 얘기에 정대환의 어깨가 아주 살짝 떨렸다.

반면에 김정환은 아주 차분한 태도였다.

시합 중엔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는데 그야말로 제대로 된 포커페이스였다.

“터놓고 얘기해서, 나는 이 멤버 그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어. 대표님이 형편없는 계약을 안겨줄 확률은 낮으니까. 팀이 제시하는 계약서 나올 때까지 만이라도 기다려달란 이야기야.”

이걸로 설득이 충분할까.

프로게이머에겐 돈보다 중요한 게 분명 있다.

하지만 가치관이 서로 다른 팀원들에게 그것을 알아달라고 하소연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팀은 단년 계약이야. 프로게이머가 원래 계약기간이 짧다곤 해도 이게 상당히 드문 케이스란 건 다들 잘 알 거야. 이러면 내가 꼭 회사 대변인이 된 거 같아서 이상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이야길 해볼게.”

전 세계엔 수많은 프로팀이 존재한다.

팀이 많으니 분위기도 천차만별, 좋은 팀이 있는가하면 나쁜 팀도 존재한다.

나는 잠시 팀원들에게 이야길 들려주기 위해 과거를 떠올렸다.

연봉협상에 관한 기억이었다.

*

“야! 정한솔 어딨어!”

“예!”

“들어오라 그래!”

“저 왔습니다. 감독님.”

“일로 와서 앉아.”

아직도 생각난다.

방 안에 깊게 배있던 담배 쩐내.

맨날 할 일도 없으면서 선수들을 방에 부를 때면 바쁜 척하던 감독.

어떻게 아냐고?

심심하면 어제 본 드라마 얘길 하면서 괴상한 전략을 들고 오는 게 그의 일과였으니까.

“싸인해.”

“···저.”

“뭐 인마.”

“······.”

“어디 아프냐? 왜 말이 없어.”

내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감독은 별꼴을 다보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정수도 싸인했다. 엔트리도 가뭄에 콩 나듯 들면서 자리 축내고 있는 거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싫어? 싫으면 싸인하지마. 말고 짐 싸서 나가.”

연봉 2000만 원.

그것이 K퀘스트가 바라보는 유니크의 가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