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46화 (143/170)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입니까? (4)

한국예선 통과 이후, 월드챔피언십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던 때, 제레미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형. 혹시 요즘 슬럼프야···?”

일대일 훈련중이던 제레미는 내게 슬럼프가 아니냐며 조심스레 이야길 꺼냈다.

“왜 갑자기?”

당시 스타서퍼는 2부 리그 생활을 마무리 짓고 더 나아가 세계대회 진출권을 따낸 상태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진출권을 두고 다툰 지역예선전에서의 활약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만약 괜찮은 활약이 아니었다면 우리 팀은 식중독과 더불어 월드챔피언십을 TV로나 보는 신세였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슬럼프 이야기를 꺼낸 제레미의 생각이 궁금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오해할 일 없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내가 형이랑 같이 게임한지도 제법 오래됐잖아?”

녀석의 말을 들으니 벌써 프로게이머를 다시 시작한 지 시간이 제법 오래 흘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3년을 꽉 채워가는 시점이었다.

“요즘 형이랑 같이 훈련을 하다보면 뭔가 거슬리는 게 있어.”

“거슬리는 거?”

“이번 시즌, 우리 그래도 제법 육성도 열심히 했잖아. 꽤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육성이란 던전을 돌며 캐릭터를 강하게 해줄 장비, 스킬등을 구하는 일을 뜻한다.

한국 서버에 있는 1군 프로팀 중에 가장 많이 공략에 성공한 팀이 우리였으니 육성이 잘 된 건 사실이었다.

“시즌이 지날 때마다 더 좋은 장비를 구하고, 그렇게 선수들 스탯이 조금씩 좋아지잖아.”

“그렇지.”

“그럼 당연히 매년 움직임도 좋아지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형의 움직임이···.”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

“크흠. 혹시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단 얘기야.”

제레미는 혹여 내가 기분이 상할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러나 난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웃음이 났다.

“네 말이 맞아.”

“···맞다고?”

웃는 나와 달리 제레미는 다소 심각한 얼굴이 됐다.

“형은 이게 웃겨? 이거 심각한 일이야. 알잖아. 멀쩡하던 선수 피지컬이 둔화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는 거.”

사실 선수 피지컬이 내려가는 이유가 하나밖에 없진 않다.

멘탈이 흔들릴 정도의 큰일을 겪거나, 부상 등의 이유로도 피지컬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물론 나는 최근에 큰일을 겪지도 않았으며 부상과도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다.

이것을 알기에 녀석이 콕 집어서 걱정을 하는 것이다.

“아니 근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형 나이가 벌써 고점 찍고 내려갈 나이는 아니란 거야. 너무 빠르다고.”

“걱정 안 해도 돼. 기량이 떨어진 적은 없으니까.”

나는 알고 있다.

내 기량이 언제 떨어지게 되는지.

만약 별 일 없다면 내 기량이 서서히 하락하게 되는 시점은 스물셋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 셈이다.

“그렇지? 내가 그냥 착각한 거지?”

“아니. 네가 착각한 것도 아니야.”

“뭔데 대체?”

“내가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건 맞아. 다만.”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느리게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 말에 제레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녀석만 놀란 건 아니었다.

“사실 나도 좀 놀랐어. 이걸 우리 팀에서 눈치 채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 연습 때는 그래도 가감을 덜 한 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형이 하는 말은···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지? 언제부터?”

“S.솔리드와 스크림 하고 난 이후부터.”

“그때 우리 성적이 안 좋아서?”

“아니. 선수들이 내 움직임에 많이 익숙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S.솔리드뿐만이 아니었다.

1부 리그 승급전, 스크림, 그리고 한국 예선전까지.

나와 붙었던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이제는 전보다 내 공격을 더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래도 형은 매번 이겼잖아?”

“이겼지. 하지만 언제까지? 지금 이 시간에도 다른 팀들은 내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어. 내가 얼마나 더 빨라졌는지, 스킬 데미지는 몇 퍼센트나 늘어났는지를 두고 하루 종일 분석을 돌려대겠지.”

사실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게이머의 플레이는 프레임 단위로 분석되는 게 이 바닥 생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당 선수의 밑천은 완벽히 파헤쳐지며,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선수간 격차가 점점 좁혀지는 구조다.

특히 정규 시합의 경우 관전 시스템이 어찌나 좋은지 그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1인칭 시점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어딜 보고, 무엇으로 판단하며, 어떤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는지 나를 뺀 모든 선수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내가 의도적으로 비슷한 수준에서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면 다른 팀에선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게 유니크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다. 그런데 만약 중요한 시점에서 아주 잠깐씩만 공격이 빨라지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두들겨 맞겠지.”

“최상위 프로 레벨에선 그런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르니까.”

“근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어차피 형은 매년 빨라지고 있잖아. 시즌이 새로 열릴 때마다 더 좋은 장비가 나오니까. 숨겨둔 밑천이 계속 늘어나는 셈이고. 굳이 그렇게 꽁꽁 아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씁쓸히 웃었다.

“제레미. 잘 기억해 둬. 이 바닥에서 영원히 강해지는 선수는 없어. 아무리 장비가 좋아져도 마찬가지야. 언젠간 너도, 그리고 나도.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올 거야.”

아무리 장비와 스킬이 좋아진다 한들 선수가 계속해서 고점을 갱신할 순 없다.

선수의 기량 성장도 어느 시점에선 멈추기 때문이다.

어디 멈추기만 하나? 고점을 찍고 나면 언덕을 내려오듯 천천히 내리막을 타는 게 자연의 섭리다.

별 일 없다면 난 스물셋에 고점 찍고 내려올 운명이었다.

2년 정도 남은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내 한계를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이 전략이 통한다면 난 조금 더 오래 정상에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엠퍼러의 활약 또한 이런 전략의 연장선에 있었다.

무도가에 비해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탱커는 다른 팀들로 하여금 내 한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줄 터였다.

버티고 또 버틴다.

리그 우승과 세계대회 우승,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는 모두 차지했지만 아직 물러날 때는 아니었다.

내게 두 번째 삶을 선사한 약물러들을 다시 보기 전까진 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

“···솔아. 한솔아? 그래도 뭐라고 대답은 해주는 게 좋지 않겠어?”

제레미와 나눴던 이야기 속에 빠져있던 나를 현실로 불러들인 건 박감독의 목소리였다.

“뭐, 시답잖은 이야기긴 하지만. 딱 봐도 그런 애들이야.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무 거나 던지는 애들. 우리가 공개 오디션 한다고 하면 저런 애들이 한 트럭이다. 한 트럭.”

박감독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 있는 채린이, 서대표까지.

면접은 이쯤 하면 됐고 저 친구는 빨리 무대 아래로 돌려보내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명효정씨. 질문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그 질문의 답을 지금 해드리긴 좀 곤란합니다. 다른 건 더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으음···?”

전혀 의외였던 것일까.

박감독은 내 답변에 놀라는 눈치였고 서대표 또한 의외다 싶은 얼굴이었다.

기량저하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답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없습니다.”

“그럼 면접 계속 하겠습니다. 대련 상대는 서채린 선수가 해줄 겁니다.”

*

그날 오후, 가이아 게시판엔 내 이야기가 안 나오는 곳이 없었다.

내 얼굴이 굳어 명효정을 노려보는 사진은 이미 사방으로 뿌려진지 오래였다.

-이거 뭐하다 나온 짤방이야?

-유니크 기량 저하래.

-뭔 개소리야 그게;;

-유니크 나이 스물 하나 아님?

-맞음.

-21살이 무슨 피지컬 저하야. ㅡㅡ

-답변 회피하던데? 사진 속에 얼굴 굳은 거 안 보임?

-이거 진짜면 스타서퍼 이번에 ㅈ된거 아니냐?

나는 루머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한솔아. 정말 무슨 작은 문제라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 일을 지켜보고 있는 게 나 뿐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린엔터에서 스타서퍼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이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휴가 중에 이 소식을 들은 팀원들이 이게 다 무슨 일이냐며 문자를 보내올 정도였다.

하와이에서 해변 사진을 보낸 제레미만 빼고 말이다.

“당사자가 아무 문제없다는데 우리까지 너무 호들갑 떨지 말자고. 그보다는 오늘 면접자 중에 인상 깊었던 사람을 추리는 게 우선이니까.”

면접이 끝났으니 인원을 추려야 했다.

다섯 명의 사람이 각기 매긴 점수를 종합해 평균 점수가 높은 인물들의 서류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최종 확정은 2, 3일차 면접을 전부 끝내고 하실 거죠?”

“그렇지. 이건 그냥 시간 절약을 위해 의견을 미리 조율하는 거고.”

“저는 이 친구요.”

나이트캣의 리더인 양소림은 제일 먼저 김이나를 추천했다.

“아마 면접 3일차까지 전부 다 끝내도 이 친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거 같아요.”

“저도 동의요.”

“음. 이 친구 확실히 눈에 띄었지. 스타성도 있고.”

김이나 외에도 높은 점수를 받은 여러 인원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이름은 없었다.

지금 게시판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힐러.

“한 명의 이름이 없네요.”

“누구?”

“명효정이요. 채린이랑 했던 실전 테스트도 꽤 괜찮았는데 없어서요.”

내 말에 다들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채린아. 네 뒤에 있는 점수표. 그것 좀 줄래?”

다섯 명의 점수를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난 이유를 알았다.

나 빼곤 그녀에게 좋은 점수를 준 사람이 없었다.

평균 점수가 바닥으로 가라앉았으니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 것이다.

“꼭 그 선수가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들이 많잖아?”

박감독의 말에 난 단호히 고갤 저었다.

“이 친구요. 눈이 좋습니다.”

“눈이 좋아?”

내 경기를 보며 기량저하를 연결 지으려면 최소한 내 시합을 밀리초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했다.

이건 세계 1군 팀 중에서도 대형 분석 팀을 갖춘 몇 안 되는 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일개 개인이 해냈다.

아마도 그녀의 눈썰미는 일반인의 레벨을 아득히 넘어서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오늘 왔던 힐러 중에서 피지컬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힐러는 힐만 잘 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위급한 순간엔 스스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탱커나 딜러가 힐러를 우선으로 보호하는 건 사실이지만 시합이 격해지다 보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 한두 번 씩은 발생하기 때문이다.

“눈이 좋은데 너한테 기량 저하를 들먹인다고?”

눈이 좋으니까 그런 얘기를 한 겁니다만.

그러나 난 그녀에 대한 오해를 적극 해명하진 않았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 먼저 아군을 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구구절절이 제레미에게 했던 이야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면접에 참가한 힐러중에서 이 친구의 능력은 제법 괜찮았던 게 사실입니다.”

“난 잘 모르겠던데···.”

“저도요. 굳이 뽑을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많이 약하던데···.”

아니야. 채린아.

그건 네가 너무 강한 거고, 그 친구 재능은 진짜배기야···.

분명 면접 당시, 그녀는 채린이의 검 끝을 미숙하게나마 붙잡고 있었다.

웬만한 참가자들은 눈 깜빡하는 사이 일격에 당할 정도로 빠른 공격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눈이 좋다는 뜻이다.

“자자, 아마 한솔 군은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무언가를 본 모양이야. 이렇게 하지.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나도 더 괜찮은 힐러가 없으면 그 친구를 영입하기로.”

*

처음엔 면접이 조금 요란스럽지 않나 싶었지만 결국 서대표의 의도는 적중했다.

3일에 걸친 나이트캣 멤버 선발 면접 동안 십만 명이 넘는 가이아 유저들이 나이트 캣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공식 중계 채널에 접속한 실시간 인원만 그 정도인데다 인터넷 각지에서 생성된 게시물을 고려하면 실로 대단한 효과였다.

생각보다 강력한 파급력에 부랴부랴 우리 면접을 따라하는 여성부 팀들이 줄을 이었다.

물론 우리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둔 팀은 없었지만.

“저···감사드립니다.”

인원선발이 모두 끝나고 한자리에 모여 축하하는 자리.

나는 명효정에게 인사를 받고 있었다.

“감독님이 알려주셨어요. 원래는 안 뽑힐 수도 있었는데 엄청 좋게 평가해주셨다고요.”

어찌나 고개를 숙이는지 머리칼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회사를 위해 옳은 선택을 한 거니까. 진짜로 명효정씨가 재능이 없었으면 내가 추천하지 않았겠죠.”

딱히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녀의 얼굴이 몹시 붉었다.

“저, 괜찮으시면 싸인 한 장만···.”

“어···이거 우리 팀 유니폼이네요.”

스타서퍼의 유니폼, 그것도 유니크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그녀가 들고 있었다.

“혹시 제 팬이에요?”

“네!”

잠깐 이야길 들어보니 그녀는 북미 시절부터 내 경기를 챙겨봤다고 했다.

한참 월드챔피언십에서 내가 해낸 활약에 대해 떠들던 그녀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었다.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다.

“면접 땐 정말 죄송했흡니다.”

“음? 아아. 기량 얘기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제가 괜히 쓸데없는 이야길 해서 네티즌들도 시끄럽고···.”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나까지 안쓰러울 정도였다.

별로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는데 말이다.

오히려 내겐 잘 된 일이었다.

대중뿐만 아니라 진짜로 내 실력에 대해 의심하는 프로 팀도 생길 테니까.

하지만 이 불쌍한 친구가 계속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조금 거북했다.

내 팬이라는데.

그래서 아주 조금만 비밀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때 못했던 대답, 지금 들려드릴게요. 제 기량, 아주 멀쩡합니다. 시즌 시작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