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입니까? (3)
최종면접 전, 참여자들의 스펙이 담긴 서류를 살피는데 대표가 폭탄 하나를 던졌다.
“오늘 면접, 촬영 들어갈 거야.”
“네.”
게임팀에서 새로 인원을 충원할 때 면접을 녹화해두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인원이 많을 경우, 누굴 뽑아야 할지 애매할 때 다시 한 번 참고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고 혹시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장단점을 되짚어보는 용도였다.
K퀘스트같은 비교적 작은 규모에 팀에서도 면접 당일 영상 정돈 따놓았으니 그린엔터쯤 되는 회사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나온 대표의 말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영상은 편집 없이 인터넷방송으로 생중계될 거고.”
“예?”
“대표님. 면접을 생중계하시려고요?”
감독조차 아무것도 몰랐단 눈치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내 차분해졌다.
대표가 갑작스레 일을 벌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여성부 리그에서 건전한 수익구조를 내려면 화제성이 필요한 건 다들 동의할 거야.”
“하지만 대표님. 이제 면접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았습니다.”
“내가 준비해뒀어. 퀄리티가 딱히 좋을 필요도 없고, 요는 대중들에게 우리 팀에 어떤 선수가 있다는 걸 알리는 거니까. 그리고 현장에서 누가 반응이 좋은지도 알 수 있고.”
조용히 이야길 하는 대표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차가웠는데 꼭 다른 사람 같았다.
평소 우리 팀을 찾아와 이야기했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사전 고지는요? 해둬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처리해뒀어.”
“처음부터 보도자료 돌렸으면 주목도가 훨씬 올랐을 텐데 아쉽네요.”
“아니.”
감독의 말에 서대표가 고갤 저었다.
“만약 그랬으면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찾기가 더 힘들었을 거야.”
이번에 서류를 보내온 여성부 인원은 총 2500명.
그중에서 서류에서 1차로 걸러지고 남은 것은 300명뿐이었다.
“우리가 외부 송출 목적으로 공개오디션을 진행한다고 했으면 굳이 게임에 뜻이 없는 인원까지 몰렸을 테니까.”
“그건 그렇네요.”
그린엔터테인먼트는 국내 기획사 중에선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규모라고 했으니 대표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려서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폰으로 슬쩍 기사를 살펴보니 이미 회사에서 뿌린 보도자료가 e스포츠란은 물론이고 연예 기사에까지 진출해 있었다.
‘얼마나 보러 오려나?’
아무리 기사를 냈다지만 당일 기사인 데다 방학시즌이라 사람이 많이 모일까 싶었다.
수십 명? 아니지. 그래도 회사 규모가 있는데.
연예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리그를 좋아하는 가이아 팬들에겐 꽤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도 있었다.
*
스타서퍼 배틀 아레나.
1군으로 승격된 우리 팀을 위한 전용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무슨 일임?
-여기까지 왔으면 다 알고 온 거지. 왜 모르는 척함?
-생각보다 사람 많네. 님들도 면접구경 하러 옴?
-ㅇㅇ 비시즌 기간에 보기 드문 흥미진진한 떡밥.
-우린 투표 못 해?
-이거 오디션 서바이벌 아니거든? 우린 그냥 구경꾼임.
-까비.
서대표, 박감독, 그리고 나. 채린이와 양소림까지 오늘 공개 면접 평가인원은 총 다섯 명.
보도자료의 영향인지 면접이 시작하기도 전에 500명이 넘는 구경꾼이 좌석을 채웠고 그렇게 나이츠캣의 멤버를 선발하는 면접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그린엔터의 새로운 여성부 팀, 나이츠캣 인원 선발 면접을 보러와 주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는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양소림.”
“서채린입니다.”
-크으.
-채린쟝···.
-그린엔터가 양대리그 다 씹어먹겠네.
-일반부는 유니크가 버티고 있고 여성부는 채리니가 지킨다!
면접 진행을 위해 양소림과 서채린이 무대에 오르자 관중들의 반응이 제법 좋았다.
특히 채린이는 국내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 상위 등수였기에 제법 인지도가 탄탄한 편이었다.
-호들갑 오지네.
-아. 서채린이 누군데?
-채린쟝 모름? 쌉뉴비신가;
-여성 유일 그마 in50 찍는 랭커임.
-ㄹㅇ로 그마임??
-찐 그마 맞음.
“그럼 지금부터 나이트캣 공개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1번 참가자 들어와 주세요~.”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참가자가 무대 위에 올랐을 때 더욱 커졌다.
-ㄷㄷㄷ;;
-커여웡;
-프로게이머 뽑는 거 아니었어?
-ㅇㅇ
-비쥬얼 뭔데;
1번 면접자가 무대 위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팬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을 수 있을 만한 참가자임엔 분명했다.
감독을 통해 비쥬얼까지 챙기잔 이야길 들었을 땐 그게 되겠나 싶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미 서류를 통해 확인했지만 오늘 면접에 참가한 인원 상당수가 아이돌 지망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자, 그럼 자기소개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꼭!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골드 수문장! 열일곱 살 김이나입니다.”
-ㅁㅊ 처음부터 강력하네;
-이거 코미디였냐고 ㅋㅋㅋ
-골드 수문장이래 아 ㅋㅋ
-미안하다. 사랑했다.
-구라 아니고 지금 물먹다 흘렸다.
외모에 대한 감탄은 잠시뿐, 그녀의 소개에 관중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골드라니. 아무리 여성부가 기존 리그에 비해 문턱이 낮다고 하지만 그래도 골드는 너무 심하다는 채팅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평가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2500명의 참가자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회사에서 요구한 던전 공략 리플레이를 첨부해야 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비색의 동굴이었다.
인면지주가 보스로 군림하는 B급 던전 중에선 제법 난도가 높은 곳이었다.
B급 던전.
이미 많은 던전들이 새로 개발됐기에 A급이 아니면 상위던전 취급도 안 해주는 레벨이지만 그래도 초보자들은 감히 손댈 수 없는 곳임엔 틀림없었다.
“저 친구가 1번이네?”
1번 참가자를 본 박감독이 아는 체를 한다.
2500개의 리플레이 중에 인상을 남기려면 웬만한 재능으론 안 될 일이었다.
물론 나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김이나는 이번 미션을 솔로로 공략한 몇 안 되는 친구였다.
“오늘 면접은 저와 채린이가 실력검증을 할 예정입니다. 선발 인원수를 딱히 정해놓진 않았다는 점, 미리 알려드려요.”
-인원수를 딱히 안 정해놓았다는 게 무슨 말이지?
-세 명 뽑을지 열 명 뽑을지 모르겠다. 뭐 그런 거 아닐까.
-그거 맞는 듯.
-근데 검증녀 티어는 어디임? 서채린인가 하는 친구는 그마라며.
-소림이 저 친군 마스터쯤 되나?
-소림아~! 티어 알려줘어!
관중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양소림은 당당히 가슴을 펴며 정보창을 공개했다.
“저는 현재 플래티넘입니다. 하지만 성장 중이니까요!”
-하지만 킹장중 ㅋㅋㅋㅋㅋ
-하도 자신감 넘치길래 못해도 다이아는 되는 줄 알았다;;
-그냥 낙하산이자너 ㅋㅋ
-이 팀은 그냥 서채린만 믿고 가야겠는데?
실전평가를 위한 무대는 잊혀진 사원.
선수 잠재력을 평가하기엔 밸런스가 좋은 전장이었다.
실력보단 흥미 위주로 보면 될 것 같다며 킬킬거리던 관중들은 평가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경기에 빠져들었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실력이 예상외로 훌륭했던 것이다.
-이게 골드라고?
-검증녀 플래도 말이 안되는데?
-다이아 수문장이 딱 팩트만 말해준다. 이거 ㄹㅇ 위장티어임. 저 실력으로 골드, 플래는 말이 안 됨.
-싸우면 질 자신 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나이트캣 멤버들을 내가 직접 가르쳤으니까.
채린이도 프로 레벨에 올리려면 가르칠 게 많았는데 플래티넘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남을 가르치는 자질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양소림의 실력이 급성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반응이 좋네요.”
“한솔이 네가 볼 땐 어때? 저 김이나라는 친구. 가능성 있어 보여?”
“뒤에 얼마나 많은 실력자들이 남아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하지만···.”
“하지만?”
“제게 결정권이 있다면 뽑을 겁니다.”
“이유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직접 붙들고 훈련시킨 선수와 비교적 팽팽한 전투를 해냈으니까.
서류에 적힌 김이나의 플레이 경력은 이제 4개월 차, 허위로 작성한 게 아니라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여성 플레이어에게선 보기 드문 다크레인저 클래스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럼 뽑아야지.”
내 설명을 들은 서대표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쳤다.
아직 저 친구 뒤로 299명이나 되는 참가자가 남아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저 친구 뽑으시려고요?”
“선수 보는 안목은 자네보다 이 친구가 훨씬 낫잖아?”
“그렇죠.”
“그리고 관중 반응도 좋고. 우리 회사 에이스하고 관중들 의견이 일치하면 안 뽑을 이유가 없지.”
*
-퀸이나 무조건 데뷔다.
-이나갓; 겜 시작한지 4개월 차라 함 ㄷㄷ
-너희들 지금 다 뭐보냐?
-무슨 떡밥임?
-근데 이나의 뒤를 이을만한 포텐셜 빵빵한 인재가 보이지 않는군.
-ㄹㅇ;;
-이나만한 인재가 많을 순 없지.
면접이 길어짐에 따라 자릴 채우는 관중의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1일 차 면접 참가자는 총 백 명.
인터넷 게시판을 타고 공개 면접 이야기가 날개 달린 듯 퍼져나갔다.
500명으로 시작한 아레나 관중 숫자는 어느새 2만 명을 돌파한 상태였다.
던전 공략을 위한 파티 구인에 실패한 사람, 원래 가이아 경치 구경하는 게 취미인 사람, 면접자들의 가족, 서류전형에서 떨어진 사람, 비시즌 기간 떡밥을 찾아 헤매는 떡밥 족들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이 모여 상당한 숫자를 이루고 있었다.
“인터넷 시청 중인 사람까지 합쳐서 6만 명 넘었다고 합니다.”
“내일은 더 들어오겠는데? 2일차, 3일차에 평가 점수가 높았던 친구들이 많지?”
“예.”
“출발은 괜찮네. 기대해도 괜찮겠는데.”
대표는 썩 괜찮은 스타트라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면접을 지켜봤다.
무대 위에선 힘이 빠진 양소림을 대신해 서채린이 나서 테스트 인원을 평가 중이었다.
면접 속도가 빨라진 건 이때부터였다.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최상위 실력자가 맘먹고 실력 발휘를 하니 공격 한 번을 받아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일부 참가자는 이런 법이 어딨냐며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까지 했다.
-왐마;
-거의 독보적인데?
-저 정도면 여성부 리그 아니라도 경쟁력 있지 않아?
-좀 쉬엄쉬엄 해;;
관중들의 만류에도 채린이의 공세는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합도 받아내지 못하는 참가자는 팀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흔치 않은 대규모 관중 앞에서의 공개 면접.
인정사정없이 몰아치는 평가자.
참가자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잠시 수그러들 즈음 한 명의 소녀가 무대 위에 섰다.
“안녕하세요. 가이아 2년차 유저. 비숍이 주특기인 열아홉 살 명효정이라고 합니다.”
힐러라는 말에 관중들은 이번에도 틀렸다는 듯 잡담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이런 공개면접에서 힐러는 역량을 평가하기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힐러의 덕목은 힐을 잘주는 것이다.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타이밍을 맞춰 힐을 꽂는 능력.
그것을 가장 잘 알아보려면 무대 위에서 평가할 게 아니라 던전을 가야 했다.
-힐러는 따로 면접 보는 게 좋지 않았으려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나 봐.
-그래도 다른 직업들하고 똑같이 전투로 평가받는 건 좀 불공평한데.
-다들 몰라서 그렇지. 힐러도 피지컬 중요함. 월챔 봐봐. 토너먼트 팀 중에 피지컬 딸리는 힐러 있나.
-그래도 다음 참가자는 힐러 아니면 좋겠는데.
저마다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서채린의 검이 상대방을 향했다.
웨폰마스터의 검.
지금껏 저 검의 첫 한 방을 버텨낸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 힐러에게 기대를 거는 관중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참가자의 손이 번쩍 들리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저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괜찮다면 심사위원석에 앉아계신 유니크님에게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채린이의 눈썹이 살짝 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었다.
어떻게 해요? 하고 물어보는 눈빛.
무대 중앙에 쏠려있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서대표는 편한 대로 하라는 눈치였고 나는 그녀의 질문이 궁금했다.
“명효정씨라고 하셨죠?”
“네.”
“질문하셔도 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면접과 별로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면 본인에겐 좋을 게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던져왔다.
“후우···유니크님. 이건 순전히 제 착각일수도 있는데요. 혹시 최근에 기량저하를 느끼고 있진 않으신가요?”
아주 잠깐의 침묵, 그다음엔 웃음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농담도 참 여러 가지라며 깔깔거리는 그 분위기 속에 오직 내 입꼬리만이 올라갈 생각도 없이 멈춰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