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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44화 (141/170)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입니까? (2)

해가 바뀌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한국 e스포츠 기사란을 제일 먼저 달군 것은 이세준의 은퇴선언이었다.

스타서퍼에게 깨진 이후 월드챔피언십 본선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팬들의 걱정을 사던 이세준.

새 시즌에 맞춰 시작하는 VT스타즈 공략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이러다 급 은퇴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파다했는데 그것이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안 돼!

-이세준 못 잃어! 우리 에이스 못 잃어!

-너 없으면 VT 망해···ㅠㅠ

-세준아!!! 으아아아아!

비록 멘탈이 무너져 컨디션이 저조했다곤 하지만 기량은 여전히 훌륭한 선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목놓아 이세준의 이름을 부르짖던 VT팬들은 잠시 뒤, 분노의 화살을 스타서퍼로 돌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스타서퍼의 에이스, 나를 향한 분노였다.

-저 자식만 아니었으면···!

-저 자식이 뭐냐. 저 새끼라고 하자!

-씨팔···이건 완전 개 같은 일이라고 ㅜㅜㅜㅜ

VT팬들이 격렬한 분노를 토해내는 건 이세준이 남긴 은퇴메시지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최고가 되지 못하면 속에서 불이 끓어 종일 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노력해도 내 생전에 그 선수를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어찌할 도리 없이 힘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이런 나약한 선수를 끝까지 응원해준 팬 여러분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이세준이 남긴 메시지는 제법 장문이었지만 VT팬들이 분노한 건 딱 이 대목이었다.

팀의 에이스가 은퇴를 결심하게 만든 선수.

팬들에게 남긴 편지엔 ‘그 선수’ 라고만 했을 뿐,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기운 빠져서 팬질 못하겠다.

-야. 니들이 그러면 VT는 어떠케!

-나도 현타 오지게 옴. 회복해서 돌아오도록 하겟따.

-오늘부터 스타서퍼 안티한다. ㅡㅡ

핫이슈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세준의 충격 은퇴 기사가 올라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원라이프가 선수 일부와 재계약에 실패했다는 기사가 떴다.

문제는 그 재계약 실패 명단에 더원의 이름이 들어있단 점이었다.

더원이 누구인가.

유니크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이세준과 한국리그를 양분하던 스타 플레이어다.

그런 그가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해외로 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원라이프 팬들의 멘탈이 바스러진 건 당연했다.

-아니 ㅡㅡ. 올해 국내 리그는 무슨 재미로 봄?

-안 그래도 별로 기대 안했는데 이럼 진 쌉노답 리그 아님?

-진짜 졸라 보기 싫다.

스타서퍼와 함께 3강으로 평가받던 VT스타즈, 원라이프가 리그 시작도 전에 터져버린 상황.

스타서퍼의 독주가 예상됐기에 이런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당 팀 팬들의 불만과 달리 인터넷 여론은 비교적 얌전했다.

-아니 뭐 선수 한명에만 의존하는 팀이 더 이상한 거 아님?

-이제 다 같이 스타서퍼 응원하자구요 ^ㅅ^

-어차피 그 친구들 있었어도 갓타서퍼한테 안됐자너.

-팩트폭행 자제좀;;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후 스타서퍼는 엄청난 숫자의 팬을 거느리게 됐다.

일부 조사에선 리그를 시청하는 인원의 절반이 스타서퍼 팬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고의 팀엔 자연스레 팬들이 몰리기 마련, 한국 가이아 팬들은 이번 기회에 스타서퍼가 월챔 2연속 우승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에이스가 빠지거나 전력이 부실한 다른 팀엔 아무래도 기대감이 영 떨어지는 탓이었다.

“자자,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욱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긴장 풀지 말고!”

“코치님. 웃음기부터 좀 빼고 말하시죠.”

“어? 내가 웃었나?”

타 팀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건 좋지 못한 일이지만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스타서퍼의 국내 리그 제패가 거의 유력한 상황이었다.

나도 진지한 표정을 고수하긴 했지만 이건 우승하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격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데 이번엔 엉뚱한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

“이거 진짜예요?”

“당장 다음 패치부터 적용한다더라.”

나는 위에서 내려온 패치 내용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다른 자잘한 패치는 뒤로하더라도 선수라면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팀전 인원수 조정?”

같이 패치 내용을 확인하던 팀원들 모두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미래가 또 변했다.’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7년간을 가이아 프로 선수로 뛰었지만 팀전의 인원은 끝까지 네 명 고정이었다.

물론 유럽에서 뛸 당시에 팀전의 인원수를 조정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적어도 적용이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유럽에서 뛰었던 해는 2036년.

올해가 31년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너무나 빠른 변화였다.

“그럼 이제 5라운드를 넷이 아니라 다섯 명이 하는 거네?”

당장 문제 될 건 없었다.

스타서퍼에 모인 선수들은 각 클래스 최고 레벨의 선수들.

넷이건 다섯이건 팀 평균 전력이 떨어질 일은 없었다.

다만 염려스런 부분은 내가 5인 체제로 돌아가는 리그를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다는 점이었다.

팀전은 단순히 선수의 피지컬로만 승패가 갈리는 영역이 아니었다.

장비와 스킬세팅, 그리고 조합시너지를 고려해야 했다.

단순히 인원 구성이 한 명 늘어나게 되는 것뿐이지만 5명이 된 이상 이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할 수 있을 터였다.

부디 조합 잘 짜는 천재가 다른 팀에 안 나타나길 바라야겠군.

그리 생각하며 우린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시즌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

5인 체제 전환 패치 이후 랭크 게임.

첫 패치를 경험한 유저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전보다 나은데?

-뭔가 빵빵 터지는 느낌이 좋네.

-솔직히 넷으로 조합 짜면 맨날 그게 그거였는데 5인은 아예 다르다니깐?

전과 비교하면 더욱 빠른 전개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호평을 한 건 아니었다.

상위 레벨, 그랜드마스터와 프로 선수 대부분은 이번 패치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게임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헝클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거 아차하는 순간에 그냥 간다.

-진짜 힘드네. 특히 탱커 애들이 개고생이야.

-그래도 실드나이트는 쓸 수라도 있지. 아크나이트처럼 애매한 직업은 어쩌라는 건데?

네 명이었을 때는 생각도 못 했던 화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화력 차이가 단순하게 한 명 더 붙은 수준이 아니었다.

유저들이 작성하는 게임 데이터 지표를 보면 선봉에서 아군을 지키는 탱커의 리타이어 비율이 엄청나게 오른 상태였다.

특히 아크나이트가 이번 패치에서 제일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실드나이트도 버티기 힘든 공격을 아크나이트가 버틸 수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크나이트의 공격력이 순수 딜러 클래스처럼 강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공격과 방어 양쪽 모두 세미 포지션을 유지하던 아크나이트는 상대 딜러진의 순간 화력을 버텨내지 못했고 이런 흐름을 스타서퍼라고 피해갈 순 없었다.

“이거 우리 팀 저격 아니에요?”

“패치가 조금 역겨운데?”

“무슨 생각으로 패치한 건지 모르겠네.”

패치 후 국내 프로 팀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크림을 잡았다.

그렇게 성사된 DT게이밍과의 첫 번째 스크림.

DT게이밍은 원거리 클래스가 아주 탄탄한 팀이었다.

리더인 정상현은 웨폰마스터였지만 그를 제외하면 포격사, 다크레인저, 아크위자드, 엘레멘탈 마스터까지.

화끈한 장거리 공격을 쏟아내는 덴 일가견이 있는 팀이었다.

DT게이밍과의 스크림에서 우린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야 했다.

패배.

월드챔피언십에서 우릴 우승으로 이끌었던 왕의귀환은 DT게이밍을 상대로 전혀 통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스크림에서 우린 끝까지 왕의 귀환만을 고집했지만 끝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내가 다른 팀원들보다 오래 버티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다른 팀원들이 썰려 나가고 나만 남아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된 것이다.

“이거 저격 패치 맞아. 빼박이야.”

스크림으로 진땀을 뺀 밀러가 소파에 엎어져 말했다.

“우리가 우승컵 들어올리니까 배알이 꼴린 거야. 확실할걸? 북미팀 아니라 이거지.”

제레미의 뇌피셜이었지만 팀원들은 맞는 것 같다며 고갤 끄덕였다.

“거 왜 예전에도 한솔이 형이 리그 휘젓고 다니니까 암살자 칼질 오지게 해놨잖아. 이미 전력이 있는데 두 번이라고 못 하겠어?”

“DT애들은 우리 이겼다고 신났겠네.”

“그건 아닐 걸요?”

“어째서?”

“당연하죠. 이거 반쪽짜리 스크림이니까.”

반쪽짜리 스크림.

이번 DT와의 연습 경기는 반쪽짜리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았다.

개인전을 거의 제외하다시피 해서 스크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5인체제 전환 패치로 요동칠 리그를 미리 경험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스크림이었기에 양 팀 모두 팀전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팀전 밸런스가 이전하고 완전히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개인전은 그대로잖아요. 솔직히 DT가 우리랑 리그에서 붙었을 때 5라운드까지 갈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유호영의 말대로였다.

비록 팀전에서 물을 먹긴 했지만 이게 정식 게임이었다면 DT게이밍은 환영도시를 밟지도 못할 가능성이 상당했다.

에이스인 정상현을 제외하면 DT의 레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국내 팀 중에선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팀인 게 사실.

하지만 우리 팀과 비교하면 개인 전력이 약한 편이었다.

월드챔피언십을 경험하기 전의 스타서퍼라면 확실한 우위는 아니었겠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우승까지 하고 돌아온 스타서퍼는 더 이상 에이스와 유망주로만 꾸려진 팀이 아니었다.

팀원 하나하나가 1승 카드인 괴물 팀이 된 것이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한창 스크림 결과를 놓고 떠들던 와중에 내게 공이 왔다.

“음. 인재 영입을 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

“인재 영입요?”

“힐러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게임 내내 들더라고.”

“어? 나도 그 생각 했는데.”

“힐러가 둘이면 탱커한테 타격이 쏟아져도 버틸 만 할 것 같았어. DT처럼 극단적인 어태커 조합은 분명 시즌 초반에 힘이 떨어질 거야. 이건 슈팅 게임이 아니니까.”

“그럼 서둘러 인원 보충부터 해달라고 하죠.”

팀은 스크림 결과를 토대로 곧장 면접 일정을 잡았다.

부족한 포지션의 보충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한 바였다.

국내리그는 지금 전력으로도 충분히 정복할 수 있지만 스타서퍼는 월챔 우승팀이었다.

월드챔피언십에서 또 한 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려면 전력 보강은 필수였다.

*

면접 1일차.

작년엔 3일에 걸쳐 600명의 인원을 훑었지만 이번엔 규모가 아예 달랐다.

자그마치 5천 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쏠린 것이다.

이중 절반은 이번에 열리게 될 여성부 지원자였다.

“저한테 악감정 있으십니까?”

“아냐 아냐. 그냥 봐주기만 해도 돼. 슬쩍 눈길 한 번 주면 되는 쉬운 일이야.”

감독은 헤헤 웃으며 말했지만 난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일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대충 봐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여성부 지원자 레벨은 남성 지원자에 비해 한참 낮은 상태.

골드 이상이면 서류 통과를 시켰기에 대충 보기도 힘들었다.

감독 말대로 대충했다간 게시판에서 온종일 그린 엔터의 이름이 오르내릴 터였다.

맨날 얻어터지는 팀이라고 올라오겠지.

스타서퍼와 비교는 당연할 거고.

그나마 다행인 건 면접 일정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만약 동시 진행이었으면 대표 부탁이래도 못 할 일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래도 인원을 뽑는 일인데 우리 한솔이 없이 일이 되겠어?”

“그렇게 띄워주셔도 아무것도 안 나와요.”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다 살게.”

“대표님이 카드 주셨어요···?”

“······.”

정곡이었던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이제 한식군데.

대표가 맨입으로 일 시킬 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나는 마음을 다잡고 서류를 살폈다.

그래도 동료 팀이 꼴찌를 달리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아, 맞다. 대표님이 실력도 중요하지만 아이돌 시켜도 위화감 없는 멤버를 뽑아달라고 하셨거든?”

“···프로팀 선수 뽑는 거 아닙니까?”

“맞지. 맞는데. 비쥬얼도 고려해달라 이거지.”

“진심으로요?”

“진심.”

싸한 두통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비쥬얼 멤버라니, 굳이 내가 없어도 될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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