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40화 (137/170)

엠퍼러 (3)

1라운드 승리를 거두며 좋은 출발을 한 스타서퍼는 이어진 2라운드에서도 기세를 이어나갔다.

제레미가 애덤을 잡아낸 것이다.

애덤 보이드, S.솔리드 유일의 다크레인저.

1라운드에서 무도가를 격파, 2라운드에서 다크레인저를 잡아냄으로써 우리 팀은 매우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다.

김민준이나 유호영이 비록 전성기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지만 이미 마도사로서 강력한 힘을 지닌 것만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기량이 만개하며 실력이 급성장한 유성철까지.

지금 우리 팀엔 출격 준비를 마친 마법사가 셋이나 있었다.

그러나 S.솔리드는 이미 암살계 카드를 2장이나 소비한 상황, 개인라운드를 우리가 쉽게 이끌어갈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벽람초원에서의 3라운드.

우린 과감히 유성철을 내보냈다.

음양사, 웬만해선 개인전에 진출하는 일이 드문 클래스다.

하지만 우리 팀은 유성철을 믿고 있었다.

식중독으로 골로 갈 뻔한 순간에도 컨디션을 유지하며 제 몫을 다한 그는 최근 일대일 훈련에서도 물이 올라 있었다.

나나 제레미가 아니고선 유성철을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나이 고작 열일곱, 나이를 생각하면 소름 돋을 정도의 재능이었다.

“맙소사. 어디서 이런 선수가 나타났죠?”

“스타서퍼의 나이트버드 선수가 S.솔리드의 오디세이아 선수를 찍어누르며 3라운드까지 가져갑니다!”

“스타서퍼! 정말 놀랍습니다. 파죽의 3연승!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자리잡은 세계 각국의 중계진들은 이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북미리그의 디펜딩 챔피언인 S.솔리드가 이렇게 끌려갈 줄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만약 토너먼트가 아니라 그룹 스테이지나 예선전이었다면?

S.솔리드는 힘 한 번 못 쓰고 3:0 패배를 당한 격이었다.

활짝 웃는 스타서퍼의 팬들, 그리고 우울한 얼굴로 경기장을 굽어다보는 솔리드 팬들.

하지만 팬들의 상반된 반응과 달리 양 팀 벤치의 분위기는 비교적 침착했다.

“방심하지 말고 이대로 침착하게 가자.”

“예!”

스크림을 하는 동안 고작 3할대 승률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전에서는 제법 좋은 성과를 거둔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니크와 헤븐메이커라는 세계 레벨의 플레이어 두 명을 보유한 덕분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그때와 다르게 유성철까지 날아다니는 상황, 하지만 S.솔리드의 저력은 팀전에 있었으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중계진이 목이 터져라 외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4라운드 맵이 공개됐다.

“원신의 수림이야?”

“수림이 나왔네. 코치님, 누가 나가죠?”

“그거야 뭐···.”

원신의 수림, 유구의 천칭과 더불어 마력조성 3레벨인 중규모 맵.

마력조성 레벨이 높기 때문에 마법사가 단독으로 출격하기 좋은 맵이었다.

리그에선 원신의 수림에 마법사 카드가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암살자를 내보내는 경우가 제법 많지만 지금 S.솔리드 쪽엔 남은 암살계 카드가 없었다.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웃어주는군.”

장승표 코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비비며 말했다.

이번 경기만 잡아내면 4:0으로 게임을 완전히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창단 첫해, 세계 대회 우승!

그 놀라운 업적을 코앞에 두자 팀원들도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특히 이름이 불릴 수도 있는 어린 친구들의 긴장도가 더욱 높았다.

스타서퍼에 남은 마법사 카드는 김민준과 유호영.

내내 조용하던 감독이 고갤 끄덕이며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4라운드에 나설 선수가 확정됐다.

“김민준.”

“네.”

“준비됐지?”

“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선수로서의 완성도를 볼 때 유호영보단 김민준이 조금 더 높은 게 사실이었다.

호흡을 가다듬는 김민준에게 다가간 나는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저쪽은 아마 제리가 나올 거야.”

S.솔리드에서 강력한 마법사 카드라고 하면 제리와 마이클이지만 마이클은 3라운드에서 유성철에게 덜미가 잡혔다.

팀이 벼랑 끝에 내몰린 와중에 S.솔리드가 기댈 곳은 제리뿐이었다.

이제 곧 제리가 나올 거란 사실을 중계진과 관중석에서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북미에서만 3년을 뛰며 기량이 만개한 제리와 차기 세계 최고의 마법사가 될 재목인 김민준의 대결.

기대되는 매치업이었다.

“대책은요?”

“대책은 무슨.”

지금 여기서 뭔가를 더 얹어준다고 해서 민준이에게 도움이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도리어 머리만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단지 부담 가지지 말 것을 주문했다.

“연습한 대로만 해.”

“연습한 대로···.”

“네 실력이 아직 제리에게 살짝 밀리는 건 사실이야. 녀석은 3년 동안이나 팀을 우승시킨데다 월챔 우승 경험까지 있으니까.”

우승 경험은 선수로 하여금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실력을 키워주는데 큰 효과가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이런 경험들이 쌓여야 선수로서 눈이 뜨인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리는 이미 높고 넓은 시야를 갖춘 최정상급 선수였다.

“부담 가져봤자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우린 이미 3승이나 확보했잖아. 네가 진다고 해서 경기가 끝나는 것도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도 잡아볼게요.”

그리 말하는 녀석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김민준은 원래 팀 내에서 알아주는 강심장이었다.

원래 체전을 준비하며 무대를 오간 덕분인지 그의 담력은 웬만한 성인을 압도할 정도였다.

“너라면 충분히 승리할 자격이 있어.”

“만약 제가 이기면 MVP는 제가 타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의 대화를 한발자국 떨어져서 듣고 있던 제레미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내가 4라운드에 나갔어야 하는데.”

전에는 몰랐는데 제레미 이 녀석, 관심받길 꽤나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똑같은 라운드 1승이지만 다른 라운드에 비해 관심이 더욱 쏠린 게 부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딱 하나만 이야기를 해주자면···.”

난 민준이에게만 들려줄 요량으로 귓가에 대고 조용히 이야길 전했다.

조언을 들은 녀석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뭔데. 나도 알려줘!”

“조금만 기다려 봐.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까.”

팀원끼리 비밀이 어딨냐며 투덜거리는 제레미를 뒤로하고 난 씩 웃어 보였다.

어쩐지 이번 조언이 제법 먹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김민준이 제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배틀아레나에 모인 수십만 명의 사람들 중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벤치를 지키는 스타서퍼 인원들과 스타서퍼의 극성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커리어가 탄탄한 제리를 응원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김민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스타서퍼 팀원들의 생각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첫째, 김민준의 실력이 살짝 밀리는 건 사실이나 극복 불가능한 정도의 큰 격차는 아니라는 점.

김민준은 한솔이 팀을 만들기 위해 한국으로 리턴하며 제일 먼저 점찍어둔 선수였다.

마법사로서 세계 최고 어태커의 반열에 오르게 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소유자.

비록 담금질할 시간이 부족해 아직 그 기량이 전부 피어나진 않았으나 한솔은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김민준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주문했다.

현재 스타서퍼엔 다수의 팀원들이 있으며 다 같이 훈련에 참여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같은 훈련을 소화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성인인 김정수가 소화하는 트레이닝을 중학생인 정대환이나 유호영에게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김민준은 팀 내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고강도 훈련을 지속해왔다.

본래 권투 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전을 준비했기에 체력의 밑바탕이 탄탄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겐 보기 드문 끈기가 있었다.

대체 왜 이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격전을 매일 치르다 보면 선수들은 훈련을 지속할 동기를 잃곤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되는 거 아냐?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내 성적은 잘 나오는데?

힘든 훈련은 선수로 하여금 자기합리화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김민준은 달랐다.

그는 한솔과 만난 이후 지금까지 요령을 부리거나 게으름을 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솔은 그런 김민준을 보며 문득 무섭단 생각까지 하곤 했다.

만약 자신이 자연의 기운이란 사기급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만큼 훈련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김민준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어느 날 한솔이 훈련을 군말 없이 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형처럼 강한 선수가 되고 싶어서요.”

정한솔처럼 강한 선수가 되고 싶다.

즉, 세계 1위가 되고 싶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최고가 되고 싶은 열의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친구였다.

물론 이뿐만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그의 승리를 예측하는 또 하나의 근거, 그것은 바로 스코어에 있었다.

현재 스코어 3:0.

이번에 지면 S.솔리드는 꼼짝없이 4:0이라는 성적표로 월드챔피언십을 끝내야 했다.

디펜딩 챔피언이란 소릴 들으며 달려온 솔리드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결과였다.

아무리 제리가 긴장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팀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이 중대한 라운드에서 압박을 받지 않을 리 없었다.

반면 김민준은 설령 지더라도 팀이 만회할 기회가 몇 번이고 남아있는 상황, 이 차이는 프로선수에게도 생각보다 크게 작용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면?’

어쩌면 김민준이 북미 최고의 마법사를 잡아낼 수도 있었다.

“4라운드 경기! 지금 막 시작했습니다!”

관중의 포효와 함께 양 선수가 잔디를 밟고 도약하며 상대를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벽람초원, 장애물이라곤 볼 수 없는 드넓은 초원 맵.

게다가 양 선수의 클래스도 같은 상황.

이럴 땐 거의 변수 없이 실력, 그리고 시즌 내 파밍한 장비와 스킬의 역량으로 게임이 갈리게 된다.

경기 당일 발생하게 될 운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셈이다.

“두 선수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거릴 좁히고 달려듭니다!”

-누가 보면 근접인줄 알겠네.

-둘 다 마법사 맞아?

시작부터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붉고 푸른 광선이 양쪽 머리칼을 스치며 날아다녔고 그 거리는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대개 근접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붙으면 쓸 수 있는 스킬이 제한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법사는 움직임이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원거리 전문 클래스가 근접전까지 날래면 그거야말로 사기소리 듣기 딱 좋은 일이다.

그러나 둘의 공방은 시작부터 암살자가 치고받듯 격렬했다.

가까이 달라붙어 마력으로 몸을 보호, 주먹을 뻗으며 초근접 마법전을 펼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저격용으로나 쓸법한 마법이 코앞에서 쏟아지는 광경에 관중들은 연신 숨을 삼키거나 탄성을 터트렸다.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역시 대단한 꼬마다!’

‘과연 북미 최고의 마법사···.’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두 선수는 상대방을 높이 평가하며 공방을 이어나갔다.

분명 제리의 실력이 조금 더 높은 게 사실이지만 한 번의 실수로 결승전이 완전히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의 공격력을 제약하고 있었다.

치명타를 노리며 마법을 주고받던 둘은 문득 상대의 플레이가 자신과 닮았음을 깨달았다.

‘유니크!’

그리고 둘은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동시에 떠올렸다.

세계 최강의 어태커를 상대로 일대일 훈련을 해오다 보니 아무래도 방어하는 방식이나 패턴에서 공통점이 제법 많았다.

상대에게서 익숙한 자의 향기를 느끼자 제리의 긴장감이 한결 누그러졌다.

이것은 김민준에게 분명한 손해였다.

그동안 스코어의 압박에 시달렸던 제리의 공격이 점차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관중들이 보기엔 똑같았으나 직접 마법을 주고받는 당사자 입장에선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제리가 이번 라운드의 흐름을 가져가고 있었다.

‘좋아. 이대로 밀어붙이면 게임을 굳힐 수 있겠어.’

체력의 우위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리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일격에 승패를 확정 짓기보단 천천히, 안전하게 승리를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김민준의 오른손에서 푸른 벼락이 뿜어졌다.

“교룡뇌조!?”

중계진은 물론이고 관중들까지 놀라 화들짝 소리쳤다.

유니크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스킬, 어째서 교룡뇌조가 지금 이 무대에서 등장했는지 다들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건 제리였다.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교룡뇌조에 제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반응, 자세를 무너트리면서까지 회피를 시도했다.

그것은 거의 본능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게 대체···?’

제리는 김민준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대체 자신은 왜 상대의 공격을 동작이 무너져가면서까지 피했으며, 상대는 어떻게 교룡뇌조를 썼는가.

그 이유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들어온 것은 상대방의 흐릿한 웃음이었다.

꼭 작년에 팀을 떠난 녀석이 짓곤 했던 미소와 비슷했다.

‘···똥 밟았다!’

모든 것을 깨달은 제리의 눈썹이 와락 찌푸려지는 그때, 김민준이 꽁꽁 아껴둔 스킬 연계가 불을 뿜었다.

유니크의 등을 쫓으며 무수한 훈련을 반복, 직접 그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아가며 힘들게 익힌 마도사 전용의 연계기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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