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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36화 (133/170)

팀 게임 (3)

주변은 온통 블랙이글스 응원뿐이었다.

내 공식전 첫 패배, 물론 팀전의 승패는 개인 혼자만의 능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이름값과 명성이, 블랙이글스 팬들을 포효하게 만들었다.

반면 우릴 응원하던 한국 팬들은 거의 나라를 잃은 기색이었다.

충격 받은 팬들을 뒤로 하고 다급히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아직 게임은 끝난 게 아니었다.

7판 4선승제로 진행되는 토너먼트 매치, 아직 역전의 기회가 남아있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유호영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김민준은 상태가 조금 낫지만 역시 침울한 상태였고 밀러는 반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작전 시간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침착하게 얘기해봐.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5라운드의 흐름이 궁금했다.

작전대로라면 자릴 잡고 있던 건 우리 쪽이었으니 타격을 입히는 쪽은 우리였어야 했다.

“제가 설명할게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민준이 입을 열었다.

“저격은 완벽했는데···.”

“완벽했는데?”

“피케가 검으로 마법을 갈라버렸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나.

물론 마법사가 뿌린 공격을 검으로 자르거나 쳐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저격에 사용된 스킬은 다른 것도 아니고 마도사 전용의 다인스킬.

그것도 헤르메스가 특별히 공수해온 화력계 스킬이었다.

그것을 검으로 갈랐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

난 믿을 수 없어 되물었고 민준이는 고갤 끄덕였다.

난 재차 확인하기 위해 코치쪽을 바라봤다.

“혼자서 갈랐어. 붉은 색 검이 번쩍이는데 마법이 쑥하고 갈라지더라니까. 관중들도 치트아이템 아니냐고 욕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붉은색 검? 설마?

나는 떠오르는 장비가 있어 인상을 썼다.

최상급 마도사가 펼치는 다인스킬을 가를 정도의 장비라면 그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고 붉은색 검은 그 중에서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피케가 마검을 얻었나?

마검 레바테인, 고위 마법을 흔적도 없이 집어삼킬 수 있는 장비로 마법사들에겐 절망이라 불리는 무구였다.

스타서퍼가 다른 팀과 비교해 조금이라도 앞서가며 장비 파밍에 성공한 건 사실이지만 레바테인급 네임드 장비는 개척도와 상관없이 운이 따라줘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운이란 게 전생에서 7년을 게임한 나조차 획득 방식을 모를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없었다.

일반 보스 레이드 방식으로는 구할 수 없는 네임드 장비, 그것이 다른 녀석도 아니고 피케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상당히 끔찍한 일이었다.

“시간 얼마나 남았죠?”

“2분!”

피케가 마검을 들고 있다면 모든 전략을 새로 구상해야 했다.

스타서퍼가 팀전에서 쓰는 조합은 마법사에 기대는 비중이 큰 조합, 이 베이스를 2분 내에 바꿔야만 했다.

“잘들어.”

나는 김민준과 유호영을 향해 말했다.

“너희 실력이 결코 떨어지거나 해서 조합을 바꾸자는 게 아니야. 피케가 들고나온 그 검, 아마 마검일거야.”

“마검? 그런 게 있어?”

제레미 뿐만 아니라 팀 인원 모두가 처음 듣는단 반응이다.

“길게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짧게 할게. 피케의 검은 마법을 집어삼켜.”

“아니 그게 말이 되나. 그럼 상성이고 뭐고 죄다 무시한다는 소린데?”

제레미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탱커는 기본적으로 마법사에게 약한 존재다.

물리방어력이 뛰어난 반면 마법저항력이 약한 탓이다.

하지만 마검의 존재로 그 상성을 채울 수 있다면 탱커는 완전무결, 약점이 없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마검에도 약점은 있어. 클래스 체질을 변화시키거든. 본래 탱커가 물리방어력에 강점을 지녔다면 지금 피케는 오히려 물리데미지에 취약한 존재가 된 거야.”

“뭐 그런 장비가 다 있어. 좋아 그건 그렇다쳐. 하지만 장비야 갈아 끼우면 그만인데?”

제레미의 반문에 고갤 흔들었다.

“마검이 괜히 마검이 아니지. 일단 한 번 장비하면 저주를 풀기 전까진 해제 못해.”

“해제를 못한다고?”

“보통 저주가 아니라서 신전에 들르기 전까진 마검을 쓸 수밖에 없을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공략 기회가 있지만···. 근데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모르는 게 어딨어?”

“그건 그렇지···.”

팀원들은 이번에도 운영진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겠거니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우리 법사 듀오를 빼자고?”

“그럼 누굴 채울 거야?”

“당연히 한명은 너.”

“아이 참, 또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 또 한 명은?”

“대환이로 가는 게 좋겠는데.”

“저, 저요?”

조용히 듣고 있던 정대환은 자신을 콜했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우린 마법사가 다 빠졌지만 저쪽엔 타우러스가 남아있어. 원거리 견제를 완벽히 받아낼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정수 형이나 정환이 형도 가드 되는데요?”

“아니야. 아크나이트 디펜스 능력으론 제대로 방어 못 해.”

아크나이트 역시 탱커 계열이라 방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실드나이트 보단 그 역량이 떨어졌다.

“형이랑 제레미 형 능력이면 굳이 제가 방패 안 들어도 공격 전부 피할 수 있잖아요.”

“공격은 그냥 피해? 그럼 보법 밟아야 되는데 마력을 써야 하잖아. 마력을 온전히 보존, 접근할 수 있느냐가 이번 승부의 핵심요소야.”

“너 왜자꾸 빼려고 그러냐. 자신 없냐?”

제레미의 지적에 녀석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 심장이 쿵쾅거려서 터질 것 같거든요.”

“그러고보니 얼굴이 좀 뜬 거 같기도 하고. 이녀석 이대로 무대 올리면 기절하는 거 아냐?”

“내가 기억하기로 아마 그런 선수는 없었을 걸.”

긴장으로 경기를 망치는 선수는 있어도 기절하는 선수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나 혼자 오우거로드 잡으라고 하는 건 아니지?”

“이번엔 그 패턴 아니야. 걱정하지마.”

밀러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고 나는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였다.

이야기를 종합한 코치는 내 결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차피 그간 연습해온 정공법으론 확률이 낮다는 걸 그도 알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 그럼 정면 승부를 해보실까.”

*

-아, 제발.

-북미내전 보기 싫다고!

-이번에 이겨주면 내가 내년 일 년 동안 스타서퍼 원탑 국내팀 인정한다!

-쪼잔하게 일 년이 뭐냐! 난 평생 팬할게!

-인정이고 나발이고 유니크 끼고도 졌는데 되겠냐고···.

-흑. 게임 최강국 코리아는 어디로 사라져버렸어 ㅠ

-아재요 ㅠㅠ

-게임 최강 소리 들어본 지가 십년은 더 지났겠다;;

-갓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미 반쯤 내려놓은 팬들과 달리 내 머릿속에선 어떻게 해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이 진행중이었다.

마검 레바테인의 존재는 일단 조합을 바꾸는 것으로 차단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팀의 조합은 너무나 공격에 치우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근접전 스탯에 올인한 비대칭 조합.

그러나 모든 부분이 불리한 지표를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

“잘들어. 우리가 저쪽보다 유리한 게 딱 하나 있어.”

“그게 뭔데?”

“다인스킬. 클래스 전용의 다인스킬은 비 특화 다인스킬에 비해 더 강해. 저쪽이 5라운드와 같은 조합을 쓴다면···.”

“그러네. 아크나이트, 웨폰마스터, 아크위자드, 힐러니까. 클래스 특화 스킬을 못쓰는구나?”

“맞아. 안전하게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이번 라운드. 우리가 가져올 수 있어.”

“좋았어! 패배로 걸레짝이 된 한솔이 형의 명예를 다시 일으켜보자고.”

걸레짝이라니.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따지려는 찰나 주변 풍경이 변하며 다시 환영도시의 모습이 펼쳐졌다.

환생 이후 처음 맛보는 1패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꼭 무거운 짐 하나를 던 기분이었다.

“블랙이글스 녀석들 말이야.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정대환의 방패를 믿고 달려 나가는데 제레미가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 형도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해줬거든.”

“뭐야. 그게.”

“형 나중에 이 경기 꼭 다시보기 해 봐. 형 얼굴이 그렇다니까? 조금 전까진 똥 못 싸고 나온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한결 편해진 사람 같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승리에 대한 부담 같은 거 뭐 그런 거 털어낸 거 아냐?”

이자식, 눈치가 귀신이네.

그런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제레미는 코 밑을 슥 훑었다.

내 말이 맞지? 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잡담은 그만! 이제 곧 보일 겁니다.”

선두를 지키던 정대환이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동시에 타우러스의 환영인사가 거점 저 너머에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법에 목소리가 있다면 반갑다 이 자식들아! 하고 인사할 것만 같았다.

“인사가 매섭네!”

“집중해! 언제 측면에서 달려들지 모르니까!”

정면에선 타우러스의 포격이 쏟아지는 상황, 언제고 사이클론과 피케가 기동력을 살려 옆을 칠지 알 수 없었다.

타우러스가 팀의 발을 묶은 사이, 블랙이글스는 먼저 거점을 확보해 점수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허 막내야. 더 빨리 못 가냐!”

“젠장. 조용히 좀 해요. 완벽하게 마법 막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나!”

타우러스의 마법은 현란했다.

직선으로 뻗는 것 뿐만 아니라 곡선을 그리며 횡으로 날아드는 마법까지, 정대환은 그 마법을 전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적절한 거릴 두고 내가 뛰쳐나갔을 테지만 이번 라운드만큼은 한계까지 마력을 아끼는 중이었다.

팽팽하게 전신의 근육이 조여진 그 때, 마침내 거점의 코앞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가자!”

“옙!”

전투의 포문을 연 것은 정대환의 차징이었다.

흡사 코뿔소처럼 돌진하는 대환의 어택에 블랙이글스도 잠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점의 발판으로 인식되는 범위는 반경 3미터, 살짝 벗어난 정도로는 블랙이글스의 거점 소유권을 빼앗아 올 수 없었다.

“웰컴 투 USA!”

타우러스의 도발에 제레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려 여덟 명이 작은 원 위에 밀집한 상황, 잠깐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게임이 판가름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도가 둘에 실드나이트, 그리고 하이프리스트 하나.

철저하게 근접전에 무게를 둔 우리의 조합을 보고도 블랙이글스는 맞불 작전을 택했다.

자신있다 이거냐? 그래 좋다. 바라던 바다.

정대환이 방패를 벽처럼 세우고 적 진형을 무너트리는 사이, 나와 제레미는 그간 수도 없이 연습한 연계를 펼치며 적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나의 주먹과 제레미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위력이 예상보다 강했는지 적중당한 피케의 얼굴에 고통이 스쳤고 타우러스 또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마검 맞네.

꼭 피를 빨아들인 것만 같은 진홍빛 검.

내가 알던 마검, 레바테인이 틀림없었다.

마법사에겐 절망 그 자체지만 근접전에선 그저 특이사항 하나 없는 평범한 장검에 불과했다.

너희 딱 걸렸어.

자존심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랙이글스는 거점에서 물러나지 않고 맞불 작전을 택했다.

우리에겐 다행스런 일이었다.

거리가 벌어지면 저쪽엔 타우러스라는 원거리 옵션이 있지만 우린 아무것도 없었다.

피케의 검과 사이클론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날카로운 검의 폭풍을 자아냈다.

검격에 담긴 흉흉한 위력은 이것이 우리가 거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쪽의 반격이 시작된 순간, 블랙이글스는 그런 생각을 접어야 했다.

봉황이 우는 소리와 함께 나와 제레미의 손이 금빛으로 변했다.

연계 합격 난이도 최상, 무도가 2인 다인스킬의 꽃이라 불리는 봉황쌍비격이 처음으로 위력을 선보였다.

서로 수를 주고받길 오십여 합, 그러나 오십 번의 합이 오가는데 걸린 시간은 호흡 한 번 하기도 짧은 시간이었다.

현란한 쌍장에 유효타를 적중당하자 사이클론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피케야 방패로 막는 게 가능하지만 사이클론은 아니었다.

강골이네. 강골이야.

뼛속까지 울리는 기분이었을 텐데 사이클론은 용케 버티고 서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상황, 나와 제레미가 상대 듀오를 합격으로 밀어내는 사이 정대환 역시 타우러스를 원 바깥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거점의 불빛이 다시 점등하며 메시지를 알렸다.

[블랙이글스 팀의 거점이 스타서퍼에 의해 탈환되었습니다.]

“뭐해! 다시 들어가!”

악을 써대는 타우러스, 그리고 쉽사리 원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피케와 사이클론.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ㅋㅋㅋㅋ

-킹니크 ON!

-아;; ㅋㅋ

-이 헤븐메이커도 잊지 말라구!

-블랙이글스 애들 뒷목 잡겠네.

-야야. 반대쪽 봐라. 애들 씩씩 거린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제레미 또한 나와 같은 동작으로 손을 내민 상태.

그렇게 우리 둘은 손가락을 딱 붙여 까닥거리는 것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명백한 도발에 두 검사가 다시 한 번 맹공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뻔한 일.

김민준, 유호영과 달리 제레미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약한 프로 중의 프로.

게다가 나와 한솥밥을 먹은 지 3년차인 최고의 파트너였다.

이적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피케와 손을 맞춘 사이클론.

같은 클래스로 3년 간 호흡을 맞춘 나와 제레미.

어느 쪽의 팀워크가 더 뛰어날 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블랙이글스 딜러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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