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35화 (132/170)

팀 게임 (2)

스타서퍼 vs 블랙이글스 월드챔피언십 4강전.

경기장은 시작부터 구름 관중이었다.

대진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미 배틀아레나의 티켓이 전부 매진됐다는 기사가 여러 번 뜰 정도였다.

-2부 출신이라고 까대기만 했던 녀석들 모두 대가리 박아!

-스타서퍼 아니었음 남의 집 잔치 구경하는 거였음 --;;

-스타서퍼 까던 인간들 다 어디감?

-VT랑 원라이프 떨어지니까 빤스런 했음

4강에 안착한 유일한 한국 팀.

스타서퍼에게 보내는 한국 팬들의 지지는 대단했다.

관중석 동쪽을 중심으로 스타서퍼 로고가 새겨진 흰색 깃발이 무수히 휘날렸다.

그러나 블랙이글스도 만만찮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블랙이글스를 응원하는 북미 팬의 숫자가 엄청났다.

유니크의 명성이 북미에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S.솔리드의 유니크와 스타서퍼의 유니크를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검은 독수리가 눈을 반짝이는 흑색 깃발이 서쪽을 중심으로 펄럭였다.

흑백이 대비되며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고 관중의 함성은 양 팀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유니크으!

-다 밟아버려!

-타우러스!

-결승 북미 내전 가즈아!

VT스타즈와 첫 경기를 치를 때도 함성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국가대항전, 그것도 최정상이라 평가받는 팀들 간의 대결이 되자 이건 완전히 전쟁터였다.

“1라운드는 민준이가 나간다.”

우린 처음부터 작전을 시도했다.

내가 나올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블랙이글스에선 피케가 선봉으로 나올 확률이 제일 높았다.

피케, 북미 최강의 아크나이트.

이미 데뷔할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녀석이 경험치를 먹고 성장해 무서운 선수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사이클론, 타우러스, 피케, 누굴 만나든 라운드를 따낼 자신이 있지만 다른 팀원들은 아니었다.

가령 우리 팀의 1승 카드인 김민준, 유호영은 사이클론을 상대로 내긴 불리했다.

S.솔리드를 떠난 이후 압박감에서 벗어났는지 사이클론은 내가 기억하던 시절의 무도가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에 비해 우리 마법사는 아직 성장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안 그래도 상성이 불리한데 질 확률이 높은 승부를 할 필욘 없었다.

반대로 탱커인 피케가 상대라면 김민준도 충분히 할만 했다.

맵의 여하에 따라 피케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일방적인 게임을 펼칠 수도 있었다.

자, 그럼 어디 상대 패를 보실까?

중계진이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진행을 하는 것도, 귀가 터져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도 전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고도의 집중력 속에 보이는 건 오직 상대 팀 벤치의 움직임이었다.

[1라운드 - 망자의 광장]

[스타서퍼 아크위자드 vs 블랙이글스 아크나이트]

희비가 엇갈렸다.

스타서퍼 응원측은 비명을, 블랙이글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대진을 맞춘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맵이 문제였다.

망자의 광장, 몸을 피하기 힘든 맵인데다 마력조성 1레벨 맵, 마력 조성 레벨이 낮으면 마력 효율이 떨어져 마법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김민준에겐 최악의 전장이 당첨된 것이다

피케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으며 돌진했다.

문득 김민준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자신의 재능을 전신으로 뿜어내던 유망주, 녀석은 불리하다 해서 게임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비석을 밟고 날아오르며 내민 손에서 작은 화염구 수십 개가 쏟아져 피케에게 향했다.

불줄기가 마치 소나기처럼 내리는 상황, 피케는 방패를 내미는 대신 검을 프로펠러처럼 휘두르며 마법을 막아냈다.

-세상에!

-피케!!

-저게 돼?

-스킬이 아니라 피지컬이야? ㄷㄷ

게임을 즐길 줄 아는 놈이었다.

방패로 막았으면 마력 소모가 적었을 텐데 굳이 검을 휘두른 것은 기선제압의 목적이 담겨 있었다.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피케는 공중에서 부유중인 김민준을 향해 검기를 방출했다.

총을 쐈다 해도 믿을 만큼 빠른 공격에 김민준의 옷자락이 퍽소리와 함께 뚫렸다.

-안 돼!

-당했나?

스타서퍼 팬들은 놀라 소리쳤지만 난 냉정하게 결과를 판단했다.

‘아니야. 공격은 옆구리를 스쳤어.’

하지만 공격을 피했음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한 번 공격을 흘리고 나면 턴이 돌아오기 마련인데 피케의 공격은 물흐르듯 이어지며 김민준을 압박했다.

이대로 있다간 말라죽을 위기, 김민준은 손에서 벼락을 뿜어 반격을 시도했다.

마도사의 손에서 터진 벼락은 순식간에 흉흉한 폭풍으로 변해 주변을 강타했다.

같은 벼락의 힘이라고 해도 교룡뇌조와는 전혀 다른 위력의 스킬이었다.

강한 마법에 상대가 잠시 물러선 틈을 타 김민준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애썼다.

본래 탱커는 상성상 마법사에게 불리한 클래스다.

하지만 그런 이점도 거리가 가까울 땐 아무 소용이 없었다.

1라운드가 하필 작은 맵이라는 점이 김민준의 발목을 잡았다.

방패로 마법을 방어하며 재차 피케의 검이 김민준을 향해 쏘아졌다.

김민준의 회피능력은 분명 세계 마법사 유저들 사이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 하지만 이렇게 좁은 맵이면 그런 장점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분 31초, 버티고 버티던 김민준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와아아!

-역시 피케!

-키야~ 마법사를 잡는 아크나이트!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내려오는 녀석을 위로해줄 시간조차 없었다.

“한솔아. 준비하자!”

코치가 나를 찾았다.

2라운드 맵은 잊혀진 사원, 가장 무난한 맵이었다.

팀은 빼앗긴 기세를 되찾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

상성의 유불리에 관계없이 반드시 1승을 가져오잔 계산이 깔려있었다.

[2라운드 - 잊혀진 사원]

[스타서퍼 무도가 vs 블랙이글스 웨폰마스터]

북미 최고의 암살자 사이클론, 그가 이번 라운드 나의 상대였다.

‘컨디션 좋아 보이네.’

어딘지 의기소침하던 작년과 달리 올해 사이클론의 기세는 매우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사이클론은 북미의 월드챔피언십 우승에 크게 기여할 운명을 타고난 남자였다.

내가 그의 운명을 크게 비틀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3, 2, 1.

카운트가 끝남과 동시에 전력으로 치고 들어오는 사이클론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의 인생은 원래대로 흘렀을까?

사이클론은 나 때문에 멘탈이 흔들려 S.솔리드를 뛰쳐나가 잠적, 블랙이글스에 둥지를 꾸렸다.

아무리 이 업계가 인성을 까다롭게 보지 않는다지만 팀 무단이탈은 활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사이클론이 본래 얻었어야 할 특급 스킬, 그림자발자국은 어찌된 영문인지 내게 들어왔다.

한마디로 나의 존재가 사이클론의 가치를 크게 떨어트린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들곤 했다.

내가 타우러스 같은 철면피였으면 덕분에 인생 꿀 좀 빨았수다! 하고 가볍게 넘겼을 테지만 차마 그렇게 생각할 순 없었다.

뻗어오는 검을 가볍게 감아 쳐내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평소 같았으면 공격 일변도로 게임을 제압했을 텐데 이번판은 상대 움직임을 보며 대응해 나가는 식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경기 양상이 조금 답답할 수는 있지만 히드라스피릿 같은 변칙 스킬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카운터를 내며 조금씩 체력을 갉아먹었음에도 사이클론은 눈하나 깜빡 않고 우직하게 공격을 계속했다.

다른 선수였다면 밀리는 체력 바에 초조해져 리듬이 흐트러졌을 텐데 과연 특급 선수였다.

눈을 부릅뜨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이클론의 공격이 더욱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선수였나?’

사이클론의 공격력에 새삼 놀랐다.

잘하는 선수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S.솔리드에 영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이클론이 펼치는 공격 수준은 이세준보다도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마치 자신의 한계를 넘어 각성한 것만 같았다.

이런 변이 있나···.

한계를 뛰어넘은 최상급 선수의 피지컬은 나로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 유리하게 만들었던 체력 상황이 다시 비슷해지려 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미쳤는데?

-사이클론이···!

-북미 최강이다!

순간 체력 바가 역전이 됐다.

사이클론의 검이 번쩍이더니 체력이 꺾인 것이다

스킬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한 액티브 스킬의 발동, 내가 이세준을 제압하며 선보였던 연계를 사이클론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선수였다.

시즌 중에 얻은 액티브 장비로 수없이 단련하지 않고서야 이런 완성도가 나올 리 없었다.

VT스타즈 전에서 내 경기를 보고 벼락치기로 연습한 게 아닌 건 확실했다.

제길!

수세에 몰리자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났다.

열일곱 살로 다시 태어난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피가 식는 걸 느끼며 그림자발자국을 밟았다.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는 움직임, 사람이면 반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이클론처럼 동체시력이 좋은 녀석이면 더더욱.

잠시 내 모습을 놓치고 당황하는 틈을 노려 연계공격이 무섭게 틀어박혔다.

서로 한 번씩 연계공격을 주고받은 뒤론 지지부진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서로 웬만한 스킬로는 타격을 입힐 수가 없는 수준인데다 연계공격을 양껏 퍼붓기엔 마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불꽃과 함께 쏟아지는 정면으로 쏟아지는 검격을 용의 충격으로 맞받아치는 순간,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전장을 꿰뚫었다.

43대 38로 접전 끝 승리.

결과를 확인한 뒤엔 슬쩍 사이클론 쪽을 바라봤다.

전광판을 확인하는 사이클론의 눈빛엔 그 어떤 두려움이나 아쉬움도 없었다.

‘웃고 있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 사이클론은 웃고 있었다.

이 경기가 몹시 즐겁다는 듯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정수리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수세에 몰렸구나!

평소 같았으면 진땀나는 한끗차 승부에서 재밌었다며 웃는 건 나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은 긴장이 좀처럼 풀리질 않았다.

이것은 그동안 내게 도전했던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와는 명백히 다른 흐름이었다.

도전자들은 긴장하고 나는 여유를 머금고 임한다.

이 대전제가 완벽히 뒤바뀐 것이다.

망설임 없이 무대를 내려가는 사이클론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거라고.

*

1라운드 블랙이글스 피케 승리.

2라운드 스타서퍼 유니크 승리.

3라운드 스타서퍼 헤븐메이커 승리.

4라운드 블랙이글스 타우러스 승리.

양쪽 모두 2승을 올리며 승부의 균형추가 맞춰진 상황.

그리고 돌입하게 된 팀전 제 5 라운드.

스타서퍼에겐 악몽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저게 말이 되는 템이냐고!

-영자가 치트 써준 거 아니냐 ㅡㅡ?

-아, 이건 아니지.

-장비 선넘네;;

스타서퍼 뿐만 아니라 한국 팬 모두가 5라운드를 지켜보며 고함을 쳤다.

환영도시에서 펼쳐지는 5라운드, 스타서퍼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스위치 전략을 시도했다.

재빨리 오우거로드 전에 돌입하는 척을 하며 길목에 마법사 듀오를 배치, 접근하는 적 팀을 요격하는 전략이다.

무시하면 되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상대 팀 입장에선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스타서퍼엔 유니크라는 세계 최강의 어태커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존재에게 오우거로드의 버프가 부여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5라운드 중간까지의 전개는 마스터디코이전 때와 흡사했다.

밀러가 단독으로 오우거로드의 시선을 끄는 한편, 김민준과 유호형은 저격 준비를 마쳤다.

유니크는 조용히 그림자발자국을 쓰고 은신, 조용히 상대가 동쪽으로 이동하길 기다리다가 거점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사이클론과 힐러 한 명이 잠시 자리에 남아 주변을 경계하는 통에 시간이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기까진 모든 게 완벽했다.

아무런 피해 없이 거점을 확보했으니 남은 건 블랙이글스의 뒤를 잡아 기습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틀어졌다.

유니크가 상대의 뒤를 잡기도 전에 아군 체력 바를 표시하는 곳에 붉은 색으로 X표시가 그어졌다.

김민준과 유호영이 순식간에 리타이어 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러의 생존 여부에도 X자가 그어졌다.

‘이게 대체?’

황급히 공략 지점으로 달려가는데 도로 앞을 막아선 블랙이글스 팀이 있었다.

“혼자 남았네?”

유니크 입장에선 꼴보기 싫은 녀석 1순위.

타우러스가 팔짱을 끼고 씩 웃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도발하는 타우러스를 향해 콧대를 때려줬을 텐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타우러스를 포함해 사이클론과 피케, 힐러까지.

전력이 멀쩡한 상태인 블랙이글스를 상대로 유니크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젠장, 드디어 이 날이 왔나.’

최선을 다해도 결과를 뒤집기엔 역부족.

유니크가 뛴 공식 라운드 첫 1패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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