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34화 (131/170)

팀 게임 (1)

그룹 D조의 2회차 라운드가 종료됐을 때, 우리 팀은 벤치에 모여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조 1위 확정, 멘탈이 무너진 VT스타즈는 힘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선수가 무너진 게 아니라 이세준 혼자 휘청거린 셈이지만 그가 팀의 리더였기에 경기력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쌓아둔 승수가 있기에 조 2위로 토너먼트 진출은 성공했지만 대다수 팬들은 VT스타즈의 활약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이제 우리가 믿을 건 스타서퍼 뿐이야?

-우리 원라이프도 빼놓지 말라구 >_<

-2위 팀한테 기대 안 해요~.

-원라이프도 예전 원라이프가 아니더라.

한국 팬들은 이제 남은 희망은 스타서퍼밖에 없다며 입을 모았다.

한국은 전 세계 팀 중 여덟 개만 오를 수 있는 토너먼트에 3개 팀을 전부 올리는데 성공했지만 조 1위를 확정지은 것은 스타서퍼 뿐이었다.

C조에 속해있던 원라이프가 블랙이글스에게 2패를 당한 것이다.

반면 북미는 토너먼트에 3개 팀을 모두 1위로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S.솔리드에 이어 블랙이글스, 심지어 예선을 뚫고 B조에 합류했던 레드불스까지 모두 1위를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시 우승은 솔리드인가?

-블랙이글스도 만만치않아.

-레드불스 경기력은 어떻고. 비프로스트의 피지컬은 세계 최상위 레벨이잖아.

-말하고 보니 다 북미 팀이네?

관중들이 우승팀을 논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1위 팀 명단을 확인하며 고갤 끄덕거렸다.

‘차라리 잘 됐다. 8강에서 탈락할 확률은 낮아졌어.’

그룹스테이지에서 1위로 올라온 팀들이 조 추첨을 진행하기에 1위 팀 간엔 4강을 가기 전엔 만날 일이 없었다.

S.솔리드와 블랙이글스, 레드불스를 8강에서 만날 일이 없단 점은 우리 팀에겐 호재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행요원들이 나를 무대 위로 다시 불렀다.

D조를 끝으로 그룹스테이지의 모든 경기가 끝났으니 바로 조 추첨식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무대 위에 모인 선수들은 그룹스테이지를 1등으로 통과한 팀의 주장들이었다.

우리 팀을 제외하면 전부 북미 출신, 다들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다? 실력이 퇴보했던데. 그래도 한국에선 게임 할만한가봐?”

깐족거리는 녀석은 타우러스, 처음 프로에 데뷔할 무렵에 그렇게 혼나고도 입을 터는 걸 멈추지 않았던 녀석이다.

“그 손 떨리는 거나 어떻게 좀 하고 얘기하지?”

그리 말했더니 타우러스가 화들짝 놀라 손을 쳐다봤다.

속은 걸 눈치 챈 녀석이 버럭 소리치는 걸 고갤 돌려 무시했다.

그 옆엔 월드챔피언십 첫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한 레드불스의 주장, 비프로스트가 자릴 잡고 있었다.

그는 타우러스와 달리 작은 목소리로 내게 귀띔했다.

“월챔 전에 솔리드랑 스크림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스크림 일정이나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는 걸 사전에 차단하는 이유에서다.

“글세.”

“이거 왜이러시나. 야박하게. 너 북미에 있을 때 내가 얼마나 칭찬을 많이 했는데.”

그렇긴 하지.

비프로스트는 리그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내 실력을 높이 평가했던 인물이다.

프로씬에는 프라이드가 강한 친구들이 많아 공적인 자리에선 좋은 얘길 늘어놓다가도 사석에선 딴소리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 점에 비추어볼 때 이 친구는 인성이 괜찮은 편이었다.

“북미까지 와서 스크림할 정도면 한두판 했을 것 같진 않고.”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야?”

“솔리드가 스크림 성적이 아주 좋거든.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내가 먼저 말하지. 우린 이번 시즌 3할 정도밖에 못 이겼어.”

젠장. 3할이라니. 우리랑 똑같잖아!

그말인즉, 레드불스 역시 만만찮은 전력을 지니고 있단 뜻이었다.

이거 진짜 만만히 볼 수 없겠는걸.

내 표정을 읽었는지 비프로스트는 그쪽도? 라고 되물었다.

난 입을 여는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조 추첨은 무난히 진행됐다.

작년엔 나와 이세준이 살짝 화젯거릴 제공했지만 올해는 그럴만한 관계가 없었다.

아니, 한 놈 있긴 했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토너먼트의 대진이 모두 완성됐습니다!”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무대 중앙에 토너먼트 일정이 떠올랐다.

[스타서퍼 vs 블랙포스]

[블랙이글스 vs 로열드래곤클럽]

[S.솔리드 vs VT스타즈]

[레드불스 vs 원라이프]

-개꿀인데?

-더할 나위 없는 대진이야.

한국 팬들은 안정적인 맛집이라며 대진을 칭찬했다.

나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블랙포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토너먼트에 올라온 팀 중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팀을 꼽으라면 이견의 여지없이 블랙포스가 분명했다.

“4강에서 보겠네. 각오해 두라고. 누가 최강인지 확실하게 알려줄 테니까.”

이 녀석은 욕이 안 먹으면 살 수가 없나?

비프로스트처럼 조용히 속삭이면 뒷말이 나올 일도 없다.

하지만 타우러스는 대놓고 나를 도발했고 고스란히 한국 팬들의 욕을 먹었다.

-저새끼 누군데 깝치냐?

-아 다른 팀한텐 다 져도 저 녀석한텐 안 된다!

-타우러스? 닉네임부터 맘에 안듬 ㅅㄱ

녀석을 밟아주고 싶은 마음이야 나도 마찬가지지만 일단은 눈앞의 경기가 우선이었다.

‘블랙포스가 아무리 토너먼트 최하위 팀이라도 방심은 금물이지.’

방심하다 고꾸라진 세계 정상급 팀들의 패배 역사는 내가 얼핏 기억하는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이 넘는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백 개 팀 중에 단 여덟 팀 아닌가.

아무리 저평가 받는다 해도 일단 8강까지 왔으면 기본 실력은 갖췄단 얘기다.

실컷 떠들어대기 시작한 타우러스를 보며 나는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나중에 보자 이 자식아.

*

월드챔피언십 토너먼트 일정의 시작, 팬들과 매스컴은 저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팀이 여럿이기에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법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두 개 팀을 제외하면 다들 비슷한 예상을 하고 있었다.

모두의 생각이 같다는 건 그만큼 시합을 펼치게 된 양 팀 격차가 크다는 걸 의미했다.

-일단 첫 경기는 무난하게 스타서퍼가 잡겠지?

-ㅇㅇ

-그걸 말이라고 해?

-ㅋㅋ;; 블랙포스가 너무 약하긴 하지.

-그럼 4강전은 블랙이글스랑 붙나? 그 재수없는 녀석 있는 곳.

-타우러스랬나? 눈물 날 때까지 유니크가 패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4강에 오를 팀으로 스타서퍼, 블랙이글스, S.솔리드, 레드불스를 꼽았다.

VT스타즈는 이세준이 무너져 사람들의 기대치가 떨어졌고, 백은하가 사라진 원라이프는 시즌 초부터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상했던 그대로의 그림이 그려지자 사람들의 눈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건 모르겠지?

-모르지.

-유니크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긴 한데···.

-팀원들이 좀 약한 게 아쉽다.

8강 토너먼트가 뻔히 예측이 되는 승부였다면 4강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S.솔리드와 레드불스의 시합은 대체로 S.솔리드가 우세하단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스타서퍼와 블랙이글스는 대립각이 바짝 선 것이다.

개인전에서 내가 질 거라 생각하는 팬들은 없었다.

일대일 전투에서 유니크는 그야말로 무적이란 평가, 하지만 7판 4선승제로 진행되는 토너먼트 전에서 밸런스가 좋은 블랙이글스의 승리를 점치는 비중도 상당했다.

게임은 결과를 뻔히 아는 것보단 한치 앞을 모를 때가 더욱 재미있는 법, 다만 팬들이 즐겁다고 선수들도 즐거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민준아! 반응이 느려! 이건 눈으로 보고 막으면 늦어! 외워!”

“제레미!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들어와!”

블랙이글스와의 일전에 앞서 우리 팀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나갔다.

으르렁거리며 팀원들을 밀어붙이는 건 무한 체력을 지닌 내 몫이었다.

훈련에 녹초가 된 팀원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형 미쳤나봐···.”

“나 죽어!”

“팔! 팔이 안 움직여!”

“그 정도로 안 죽어! 다시 간다!”

블랙이글스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역시 사이클론, 피케, 타우러스 3인방이었다.

타우러스는 마도사였기에 내가 연습을 해줄 수 없지만 사이클론이나 피케는 가능했다.

암살과 탱커, 둘 다 나름 자신 있는 분야였다.

거친 일대일 훈련 속에 내가 집중한 분야는 단연 연계공격이었다.

VT스타즈와의 일전에서 처음 공개한 연계 공격은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기록으로 남은 내 공격 속도는 약 0.1초.

인간이 보고 지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공격이었다.

세계 톱클래스의 피지컬을 지닌 이세준이 갑작스레 내 공격을 디펜스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람이 보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닌 것이다.

“다시 한 번 설명해줄게. 연계 공격을 하려면 머리로 미리 생각을 하는 거야. 너희는 이해할 수 있지?”

나는 김민준과 유호영을 필두로 한 마법사 라인을 바라봤다.

“입으로 스킬명을 외치지 않아도 집중해서 생각하면 그 스킬을 바로 캐스팅 할 수 있잖아.”

“네.”

“그거랑 같아. 내가 스킬 사이에 장비의 효과를 넣겠다고 생각하면 스킬 간극 사이를 채울 수 있어.”

“뭔지 알 거는 같은데···너무 어려운데요?”

미리 생각해둔 대로 움직인다.

설명은 참 간단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이아 안에서 유저는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한 존재, 하지만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리진 못했다.

연계공격은 사람의 인식 한계를 시험하는 시스템.

평소라면 자각할 일 없는 시간의 작은 틈을 이용하는 셈이니 적응이 쉬울 리 없었다.

“일단은 막는 것부터 하자. 연계는 쓰는 것보다 막는 쪽이 더 쉬워. 히드라스피릿 생각하면 돼. 정해진 방향 따라 공격이 날아오잖아. 연계도 마찬가지야. 정해진 루트로 들어온단 말이야.”

훈련을 거듭할수록 팀원들의 얼굴에서 점차 색이 빠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무도가의 공격을 몇 번이고 당하다보면 육체적 고통 뒤에 무력함이 따라붙었다.

“이건 이해가 안 돼.”

“뭐가.”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 아냐?”

나와 계속 함께했던 제레미가 말했다.

“이 연계 공격, 막는 건 쉽다고 했지만 순 헛소리야. 이걸 쉽게 막을 수 있으면 그 자식은 세계 디펜딩 챔피언이야. 혹시 굳이 이런 것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뭐 그런 거야?”

제레미는 내가 지금껏 연계 공격을 쓸 수 있음에도 힘을 감춰두고 있던 게 아닌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외계인이냐? 힘을 계속 숨기면서 대충 맞춰서 시합하게?”

“형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내가 밉다.”

“저 형은 인간 아닐 수도 있어···.”

우두커니 대화를 듣고 있던 유성철이 중얼거렸다.

“용의 충격, 교룡뇌조, 전부 초고속 스킬이야. 이렇게 빠른 스킬 사이로 액티브 효과를 넣으려면 장비도 그만큼 좋아야지. 그런 장비가 이번 시즌에 처음 등장했으니 당연히 그 전엔 쓸 수 없는 게 당연했고.”

“연습은 대체 언제 했는데? 형이 생각해낸 연계 공격을 위한 장비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나도 방금 해봐서 알잖아. 이거 짧은 시간 내에 익힐 만한 기술 아니야. 몰래 혼자 연습했다고 할 생각은 아니지? 나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형이랑 같이 훈련하는 사람이야.”

다른 때 같으면 내 편을 들었을 마도사 친구들도 침묵을 지켰다.

직접 당해보니 제레미의 말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언제 이 기술은 언제 익혔어요? 하는 의문이 가득담긴 눈빛이었다.

죽기 전에 매일 같이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연습했다고 할 순 없는 노릇, 결국 옹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려워? 장비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 딱 들지 않아?”

“···?”

“딜레이 없이 즉시 발동하는 장비와 스킬 연계. 아 이렇게 쓰면 괜찮겠다는 촉이 오잖아. 그럼 잠들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거지. 내일은 이렇게 해보자. 별로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게···다야?”

고개를 끄덕이자 입술을 우물거린 제레미가 외쳤다.

“더러운 세상!”

그렇게 땀을 한 바가지씩 쏟으며 팀원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있으려니, 어느새 블랙이글스와의 결전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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