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32화 (129/170)

-그랜드크로스 (호주 예선)

“여기서 만날 줄이야.”

이번 시즌 한국 리그 우승을 차지한 VT스타즈가 같은 그룹에 배치됐다.

조추첨이 완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 최고의 팀은 과연 누구?>

<최근 상승세인 스타서퍼, 국내 1위 VT스타즈에 도전장!>

<월드챔피언십 그룹 D조, 한국 2팀의 상위 토너먼트 진출 가능성 낙관적.>

국내 커뮤니티에선 좋은 그룹 배정으로 한국 두 개 팀이 안정적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어 좋은 대진이란 반응이 줄을 이었다.

4대 리그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게 유럽인지라 다들 일관된 예측이 나왔다.

-ㄹㅇ 꿀대진;;

-이정도면 거의 날먹이지.

-연습 안하고 내내 놀아도 토너먼트는 진출할 듯.

-심지어 꿀대진에 매치업도 흥미진진하자너~ ㅋㅋ

다만 팬들의 기쁨과는 대조적으로 우리팀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

“두 번이나 붙어야 하는 거지?”

“지면 말 좀 나오겠는데.”

월드챔피언십 그룹스테이지는 각 팀이 두 번씩 붙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즉, 우린 D조 일정을 치르는 동안 VT스타즈와 두 번이나 대결해야 했다.

다들 침묵하고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큰 부담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고꾸라지길 바라는 팬들이 제법 있는데 이번에 패할 경우 상당한 악플이 달릴 수도 있었다.

이것을 의식해 팀원들이 주눅이 들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흐흐. 이날을 기다려왔다!”

“너두? 나두.”

왠지 모르겠지만 제레미와 유호영이 의기투합해 결전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자자! 모두 기죽지 말고 한 번 해보자고요!”

***

“이번 대회 만만치 않겠는데.”

“언젠 뭐 만만했나요. 작년에 결승도 못 갔는데.”

“야야,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룹 C조의 라운드 1차전이 마무리된 날, VT스타즈 선수들은 경기를 돌려보며 전력을 분석 중이었다.

평소 분석팀의 도움을 많이 받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다.

C조에서 주목할만한 팀은 북미 2시드를 차지해 올라온 블랙이글스, 한국 2시드를 받은 원라이프였다.

둘 다 토너먼트에서 만났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강팀들이었다.

“아무래도 블랙이글스가 좀 더 나은 것 같지?”

“조금 정도가 아닌데요.”

“지금 블랙이글스는 솔직히 만나기 꺼려질 정돕니다.”

월드챔피언십 개막전까지만 해도 팬들은 전년도 우승팀인 S.솔리드를 제일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C조 경기가 마무리된 오늘, 평가는 빠르게 뒤바뀌고 있었다.

-야. S.솔리드도 위험한 거 아냐?

-블랙이글스가 저렇게 강한 팀이었나?

-살벌하다;;;

평가가 반전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피케였다.

북미 최고의 아크나이트로 평가받는 피케의 합류가 블랙이글스를 약점이 없는 강팀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본래 블랙이글스는 사이클론과 타우러스, 걸출한 두 명의 딜러에게 의지해 달려온 팀이었다.

하지만 피케가 합류함으로서 디펜스 부분이 상승, 팀의 밸런스가 크게 좋아졌다.

“어느 정도인 것 같아?”

코치의 질문에 이세준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시간을 전부 써야 할 정도요.”

“그 정도라고?”

그의 대답에 코치는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적잖이 놀랐다.

이세준의 공격력은 의심할 여지 없는 한국 톱클래스, 비록 유니크가 버티고 있다곤 하나 녀석을 제외하면 전 세계로도 적수가 없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그런 이세준이 일대일 대결로 시간을 전부 소모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평가했으니 놀랄만했다.

“밸런스가 엄청 좋아요. 섣불리 달려들면 오히려 제가 체력이 밀린 상태로 경기가 이어질 테고 저쪽이 가드를 굳히면 제가 뒤집기 힘듭니다.”

“허···그렇다면 네가 발을 묶어둔 사이 3:3 대결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단 얘기군.”

“쉽지 않을 걸요. 저쪽에도 재능 있는 딜러가 둘이나 있으니까.”

“머리 아프구만. 그건 그렇고, 일단은 눈앞의 경기에 집중해야 하잖아.”

코치는 내일 대진표를 붙여둔 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세준아. 자신 있지?”

VT스타즈는 올해 공격적인 투자로 많은 것을 이뤄냈다.

시중에 풀린 최고급 장비와 스킬을 공수했으며 시즌 초반, 눈여겨 봐둔 즉시 전력감 선수를 영입했다.

덕분에 VT스타즈는 작년의 패배를 복수하며 한국리그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대가 없는 투자는 아니었다.

장비와 스킬, 선수영입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업계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은 게임단 하나 운영하는데 돈이 들어봐야 얼마나 들겠어라고 하지만 실제로 소모되는 비용은 훨씬 많은 편이었다.

자세한 규모는 선수들조차 몰랐지만 정보를 귀동냥한 코치 말론 경기장 건설을 포함해 100억대 금액이 소모됐다고 했다.

VT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만한 돈을 썼으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야 했다.

만약 올 시즌도 결승문턱을 밟지 못하면 모기업의 투자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이세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이죠. 히드라 스피릿을 보고 막는 괴물이라지만 이건 못 막을 테니까.”

“하긴 그렇지.”

이세준의 말에 코치가 끄덕거린다.

올해 VT스타즈가 투자한 금액 중엔 유니크를 잡기 위한 스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고의 어태커를 잡기 위한 비밀무기, 그것을 떠올린 이세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벌써 기대되네요. 유니크가 쓰러졌을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말이죠.”

*

그룹스테이지 4일차, D조의 첫 번째 라운드가 진행되는 날.

세간의 관심은 VT스타즈와 스타서퍼에게 쏠려 있었다.

나머지 두 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수준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었다.

유럽은 가이아 4대 메이저 리그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지역인데다 호주에서 올라온 그랜드크로스는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첫 번째 주자로 나선 VT스타즈는 타이탄실드를 큰 격차로 찍어누르며 3:1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이어진 스타서퍼와 그랜드크로스의 경기.

스타서퍼가 3:0으로 깔끔하게 시합을 마무리 짓자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유니크! 북미로 돌아와!

-한국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다이나믹G.C에 자리 비었어!

-무슨 개소리야! 유니크는 돌아와도 S.솔리드로 와야지!

북미 팬들은 유니크가 다시 북미로 돌아오길 희망했다.

그가 2년간 북미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기억하는 팬들이 아직 많았다.

특히 S.솔리드의 목마름이 강했다.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차이가 좁혀졌단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초특급 실력파로 분류되는 피케가 준우승팀인 블랙이글스에 합류하며 그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 S.솔리드가 무패 우승을 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 입장에선 유니크가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 너도 돌아와라!

-킹븐메이커!

“크으~!”

이따금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면 제레미는 괴상한 추임새와 함께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감독님, 코치님. 저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응? 뭐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요. 팬들이 아직 절 기다리고 있단 말입니다. 아~ 내년엔 연봉 얼마나 올려주실지 기대된다.”

“······.”

굳이 제레미처럼 티를 내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아마 내년 연봉을 책정하는데 있어 그린엔터 입장에선 머리깨나 아플 터였다.

올해까진 2부리그에다가 신인이었던지라 적은 연봉으로도 선수들을 잡아두는 게 가능했지만 올해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대폭 인상은 불가피했다.

이미 국내 3위 팀인 DT게이밍을 지역 예선전에서 격파했으며 캘리포니아 예선에선 전투력으로 유럽 1, 2위를 다툰다고 평가받는 마스터 디코이를 쓰러트렸다.

해당 팀에 소속된 선수들이 평균연봉이 5억을 넘는다는 걸 고려할 때 스타서퍼의 연봉총액은 훌쩍 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왔는데 아직도 경기 시작 안 함?

-경기는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아니;; 이런 경기 말고. VT스타즈랑 스타서퍼 안했냐고;;

-ㅇㅇ. 맨 마지막임.

-아 인질 에반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어있던 배틀아레나의 빈자리가 점차 꽉 차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실물 경기장이었다면 30만석을 전부 채우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월드챔피언십은 게임을 하듯 전 세계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했다.

세계 톱클래스를 다투는 두 어태커의 충돌은 가이아 팬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한 매치였기에 관중석이 가득 차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가 이길 거 같음?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유니크지.

-이세준이 뭐 보여준 건 있음?

-그 친구가 캐리해서 올해 한국리그 우승했대잖아.

-한국 리그 우승이 뭐 별건가?

-한국이 겜 잘한다는 것도 옛말 아니야?

-???

-한국 팀 우승은 고전 게임에서나 가능하지 ㅎㅎ;;

-누가 쥐새끼마냥 찍찍대냐?

-가이아 고전게임 되는 거 보고 싶은가봄 ㅋㅋ

오늘은 북미 팀 경기가 없음에도 날 선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니크를 응원하지만 세계 대회 우승국이 바뀌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북미 팬들과, 가이아 최강국이 되길 바라는 한국 팬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 채팅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을 때 캐스터 큰 목소리로 아레나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무대! 아직 패배가 없는 두 팀이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화산처럼 터지는 환호 속에 스크린에 큼지막한 양 팀 로고가 떠올랐다.

양쪽 모두 2승 0패, 이번에 지는 쪽은 1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양 팀에서 제출한 1라운드 명단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맙소사! 이건 정말 빅매치군요. 여러분이 그토록 고대하던 매치가 성사됐습니다!”

-와아아아아!

-ㅆㅂ!!!

-이래놓고 이세준, 유니크 아니기만 해봐.

-그럼 캐스터 때려죽여도 무죄임.

-아 ㅋㅋ 끔찍한 소리하지 마.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무도가! VT스타즈의 에이스. 이.세.준!”

-설마 진짜?

-여기서 이 그림이 나온다고?

-소름 돋았다;

-양 팀 다 노빠꾸로 간다!

“이를 상대하는 선수! 전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어태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함성이 경기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람인지 익룡인지 모를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내가 무대 위로 올랐다.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가이아의 신!”

이거지.

경기장을 꽉 채운 열렬한 함성, 새삼 일 년 만에 내가 월챔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타서퍼의 에이스! 유.니.크! 지금부터 D조의 마지막 매치! 그 1라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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