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 돌파 (4)
“어떤 것 같아.”
1부리그 소속 태건 스카이웨이 팀의 연습실.
코치는 선수를 모아놓고 스타서퍼와 스파클의 예선전 리플레이를 분석 중이었다.
“뭐, 소문대로 2부리그 중에서는 특별하네요.”
“그게 다야?”
“코치님. 아시잖아요. 스파클이랑 저희랑 실력 차이 많이 나는거.”
스파클이 1부 하위권 팀으로 분류된다면 태건 스카이웨이는 엄연히 중위권 팀으로 분류되는 곳이었다.
등수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실력은 최소 한계단 이상 난다는 평가가 지배적, 팀의 주장인 전대훈은 화면 속의 유니크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공략의 키포인트입니다.”
“그거야 다들 아는 사실이지. 하지만 그 어떤 팀도 유니크 봉쇄에 성공하지 못했다. 녀석은 월챔에서조차 이대일을 극복하는 진짜배기야.”
“걱정 마세요. 둘로 안 되면 셋을 붙여서라도 꺾겠습니다.”
월챔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티켓을 두고 살아남은 팀들의 2차 예선전.
스카이웨이의 다음 상대는 스타서퍼였고 경기는 바로 내일이었다.
“오늘 보니 몸 상태가 많이들 안 좋아 보이던데 어쩌면 5라운드까지 안갈지도 모르죠.”
“좋아! 녀석들에게 1부리그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줘!”
*
월드챔피언십 지역 예선 토너먼트 2차전.
-오늘은 스타서퍼도 고전 좀 할 걸?
-스카이웨이는 스파클같은 쩌리랑은 다르다 이거야.
-암. 1부의 매운맛은 아직 시작도 안했지.
2부에서 갓 올라온 팀에게 기존 1부 팀이 유린당하는 걸 원치 않는 팬들의 비중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런 팬들의 바람은 게임 시작과 함께 덧없이 사라졌다.
스코어 3:0. 스타서퍼의 압승이었다.
평소에도 체력이 좋았던 민준이의 회복으로 우리 팀 공격 라인업에 활기가 돌았고 스카이웨이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1부도 생각보다 할 만한데?”
“북미 원정에 비하면 훨씬 쉬웠어.”
이제 세계대회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기까지 남은 경기는 단 하나.
“남은 한 경기가 진짜야. 아직 긴장 풀지 마.”
가볍게 손뼉을 치며 시선을 모으자 팀원들이 수긍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우리의 마지막 상대는 바로 DT 게이밍이었다.
한국 삼대장중 하나로 불리는 강팀, 비록 2년 연속 원라이프와 VT스타즈에 가려 3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세 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이길 수 있으려나.
민준이같이 튼튼한 팀원들은 어느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지만 여전히 제 컨디션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DT게이밍은 스파클이나 스카이웨이와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의 강팀, 우리보다 강한 건 아니라지만 제 실력을 낼 수 없는 상태에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저녁을 깨작거린 다음엔 다시 훈련이 이어졌다.
선수들 상태가 메롱이라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은 다섯 명 안팎이었고 그마저도 강도를 낮춰서 진행해야 했다.
훈련을 진행하며 내가 가장 공을 들인 건 김민준과 유성철이었다.
내일 게임에서 활약을 기대할 수 있을 만한 친구는 여기 둘 뿐이었다.
“김민준! 수비가 비잖아! 네가 지금 아파서 느린 게 아니야! 너 이거 못 고치면 영원히 톱클래스론 못 올라가.”
“다시 할게요···.”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치며 다시 일어서는 녀석을 보니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보고 제일 먼저 영입했지만 그는 아직 열일곱의 어린 선수였다.
다시 일어선 김민준이 재차 움직이며 공격을 시도했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녀석의 입에선 약한 소리가 나오는 법이 없었다.
내가 치트와도 같은 능력을 부여받아 세계 최강이 된 것과 달리 녀석은 원래 세계 제일을 노릴만한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집중!”
집중이란 한마디에 녀석의 공수가 더욱 예리해졌다.
그렇게 10분을 더 훈련하고 난 뒤, 나는 훈련 종료를 외쳤다.
“헉헉···벌써요?”
“숨이 턱끝까지 찼으면서 무슨 벌써야. 훈련 목적은 내일 이기기 위한 거지 너 잡으려는 게 아니야. 제 컨디션도 아닌데 평소처럼 훈련했다간 퍼져.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
“그래도···.”
녀석은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눈치였다.
운동인 아니랄까봐 이제 몸이 좀 풀린 모양이다.
“아쉬우면 나랑 성철이 훈련하는 거나 지켜보고 있어.”
“네.”
관객 한 명을 구석에 앉혀 놓고 다시 일대일 훈련을 시작했다.
***
월드챔피언십 마지막 티켓의 주인을 가리는 자리.
관중석은 게임을 시작하기 30분 전에 가득 차 만석을 이뤘다.
-DT!!
-DT!!
-DT!!
벤치에 입장한 우리 팀은 생소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적지, 우린 지금 적지 한가운데 있었다.
“살벌하네.”
사방에 DT게이밍의 이름을 외치는 함성뿐이었다.
드문드문 스타서퍼의 이름을 외치는 팬도 있긴 하지만 그 숫자가 DT에 한참 밀리는지라 거의 티가 나질 않았다.
2부 리그는 물론이고 이번 예선전을 치르는 동안에도 응원이 밀린적은 없었는데 처음 역전을 당한 것이다.
“이게 3위 팀의 인기인가?”
제레미는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실눈을 뜨고 관중석을 살폈다.
“그래도 경기 시작하면 응원은 안 들리잖아?”
“그래. 경기 들어가면 똑같아. 자, 다들 편하게 가자!”
김정수가 나서서 팀원들을 독려했다.
분위기를 다잡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열화와 같은 환호가 터져나왔다.
오늘 시합의 도전자는 스타서퍼, 도전을 받는 입장인 DT 게이밍이 벤치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이 열띤 반응을 보였다.
-정.상.현!
-정.상.현!
-1부의 자존심을 보여줘라!!
정상현, 국내에서 웨폰마스터를 제일 잘 다루기로 정평이 난 DT게이밍의 에이스.
경기장은 에이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관중에게 있어서 오늘 정상현은 무너진 1부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줄 구세주였다.
“젠장.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우리도 이제 1부인데 말이야. 차별하나?”
“신생팀은 어쩔 수 없지.”
구시렁거리는 팀원들을 두고 나는 천천히 운을 뗐다.
“만약 오늘 우리가 진출을 못 한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 말하자 코치의 어깨가 들썩였고 제레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왜 시작도 안했는데 초를 치고 그래?”
“한가지는 꼭 해야할 게 있어.”
“그게 뭔데?”
프로 팀이 세계대회 진출 말고 꼭 해야할 게 대체 뭘까.
모두가 그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DT게이밍을 응원하는 저 수많은 팬들, 저 팬들이 우리 팀을 응원하게 만드는 거지.”
이미 스파클, 스카이웨이 팀과 경기하며 스타서퍼는 전과 비교해 훨씬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였다.
몸이 아파도 어떻게든 경기를 이겨내는 팀을 보면 누구라도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것이 설령 최애 팀이 아니어도 말이다.
스타서퍼를 2번째로 응원한다는 관중 숫자가 크게 늘었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최선을 다하자 이 말이야.”
“당연한 소릴 왜 멋있는 척하면서 말해? 이 형은 가끔 이렇게 폼잡을 때가 있···읍.”
왼손으로 제레미의 입을 틀어막고선 팀원들의 손을 한자리에 모았다.
“기합 한 번 시원하게 넣고 가자. 스타서퍼!”
“화이팅!”
도무지 환자들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힘이 담긴 외침이었다.
*
올해, 모 대학 연구팀은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를 1라운드에 배치하는 건 되려 승률을 떨어트린단 결과를 발표했다.
가이아는 2, 4라운드의 맵을 보며 유리한 전장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므로 필승 카드를 불확실성이 높은 1라운드에 배치하는 건 전술적 손해라는 개념이다.
실제로 전세계를 살펴봐도 1라운드에 최고의 카드를 배치하는 팀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내에선 이세준을 보유한 VT스타즈 정도였고 2부를 포함하면 우리 스타서퍼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지난 예선전과 마찬가지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 1라운드는 정환이가 나간다.”
코치는 미리 정해둔 플랜대로 1라운드에 김정환을 올렸다.
실력 있는 아크나이트 유망주 김정환, 가이아를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재능은 확실한 친구였다.
1라운드에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김정환을 내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유니크라는 필승 카드를 좀 더 아껴 상대 에이스를 노리는데 집중하겠단 계획이다.
지금도 관중석에서 연호하고 있는 정상현, DT게이밍이 자랑하는 에이스를 잡을 선수는 우리 팀에 나뿐이었다.
정상현의 클래스는 웨폰마스터.
김민준의 기량이 완전히 만개하고 제 컨디션을 되찾는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되겠으나 아직은 무리였다.
제레미라면 같은 암살계였기에 훨씬 해볼만했지만 애석하게도 오늘 제레미의 컨디션은 얌전히 벤치에 앉아있을 정도밖엔 안 됐다.
“양 팀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DT게이밍의 첫 번째 선수는 바로!”
쩌렁쩌렁한 환호가 바닥에서부터 쑥 하고 솟아났다.
“소드마스터 전.상.현!”
-우와아아아!
-나왔다!!!
-전상현이 1라운드라고?!
“이렇게 나오시겠다?”
전상현의 이름을 들은 코치가 아깝다는 듯 머릴 긁었다.
재빨리 상대편 벤치를 보니 나를 노리고 내보낸 카드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의 노림수를 간파했다 이건가?
김정환을 확인한 DT게이밍 벤치는 한숨 덜었다는 얼굴이었다.
저들은 1라운드 단골손님인 내가 올라오진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팀이 일방적 손해를 본 건 아니었다.
전상현은 DT에서 가장 확실한 1승 카드, 그런 카드를 상대로 오늘 컨디션이 꽝인 김정환을 매칭시켰으니 서로 주고받은 셈이었다.
1라운드 맵은 원신의 수림, 마력조성 3렙의 숲이 우거진 맵을 전장 삼아 양 팀 선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상대를 포착한 건 전상현이었다.
가벼운 풋워크에서 나오는 웨폰마스터 특유의 폭발적인 딜링, 전상현은 단검을 던지며 김정환을 향해 압박에 들어갔다.
은빛 섬광을 두르고 쇄도하는 전상현의 기운은 제삼자가 봐도 살벌한 것이었다.
마치 대마법을 적중 시킨듯한 충격과 함께 녀석의 손에 들린 양손검이 불을 뿜었다.
-이거지!
-1부리그의 맛이 어떠냐!
-애송이들에게 월챔은 아직 이르다!
타격음이 연달아 울리며 김정환의 발이 다섯 발자국 이상 밀렸다.
방패로 막았는데도 가드를 뚫고 들어온 충격이 체력을 갉아먹을 정도, DT게이밍 팬들은 신이나서 응원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대로 밟아버려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압박하며 공략에 들어가는 정상현의 기량은 실로 놀라운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어태커 타이틀은 내가 한국에 들어오며 주인이 바뀌었지만 이전까진 이세준과 정상현이 나눠 가지는 형태였다.
굳이 따지자면 정상현이 약간 밀리는 정도?
‘운때만 맞았더라면 우리 팀에 영입해봤을 텐데.’
정상현이라면 어느 팀에서도 환영할만한 인재다.
만약 그의 나이가 어렸다면 나는 그의 영입에 두 발 벗고 나섰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올해 스물셋, 월드챔피언십이 끝나면 곧 해가 바뀌어 스물넷이 된다.
프로게이머로선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였다.
이세준, 더원을 비롯한 국내의 내로라하는 S급 선수들과 접촉하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 선수들이 데뷔할 시절엔 한창 S.솔리드에서 2년 연속 리그 제패를 준비하고 있던 시절이기에 신경 쓰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이들은 전부 향후 2년 내로 기량 하락을 겪을 선수들이었다.
전생의 나도 거쳐왔던 흐름이다.
프로게이머의 피지컬 저하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스물셋 전후로 이루어진다.
만나이로 따지면 스물 둘, 너무 빠르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분명한 현실이었다.
피지컬이 최고 정점을 찍는 시기 이후부턴 경험치가 더해져 티가 나지 않을 뿐, 시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은 훗날 자신의 전성기가 20대 초반이었음을 고백했다.
심지어 이세준과 정상현 모두 고도의 피지컬을 요하는 암살계 클래스 아닌가.
이들이 몇 년 내로 어떤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 잘 아는 나로선 더 어린 유망주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구상하는 팀은 최소 5년간은 세계대회에서 군림할 팀이었으니 말이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쿵소리와 함께 정환의 몸이 뒤로 튕기더니 땅바닥을 굴렀다.
흙을 묻히고 구르는 정환을 향해 날카로운 스킬 연계가 쏟아졌다.
체력 바가 터져나갈 것 같은 위기의 순간, 관중들이 꽥하고 비명을 지를 때 탄력으로 몸을 튕긴 김정환의 검이 섬광처럼 뻗어 나왔다.
“저거!”
그 광경을 지켜본 김정수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놀라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기대하지 않았던 경기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김정환은 가장 날카로운 반격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의 궤적, 그건 분명히 내가 시즌 내내 붙잡고 가르쳤던 우측 카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