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20화 (120/170)

관문 돌파 (3)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됐을 때, 관중들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무대 위의 선수를 살폈다.

-누구야?

-유니크 나오는 거 아니었어?

-음양사라고?

경기장은 물음표를 떠올리는 관중으로 가득했다.

전혀 본 적 없는 선수가 1라운드에 나선 것이다.

스타서퍼에서 인지도가 있는 선수라고 하면 나와 제레미 정도, 유성철은 개인전에서도 거의 활약하지 않았기에 2부리그를 좀 봤다 싶은 관중에게도 낯선 이름이었다.

-스타서퍼가 버리는 패를 냈어?

-와. 머리 잘 굴렸네.

-선수들 상태 안 좋아 보이는데 꼼수 제대로 먹혔네 ㅋㅋ

-스파클 딥빡;;

관중은 우리가 1라운드를 버리는 전략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남영민의 표정을 보니 상대방도 그리 생각하는 눈치였다.

스타서퍼가 버림수를 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이다.

뭐 맘대로 생각하라지.

어차피 조금 뒤면 모두가 알게 될 일이었다.

스타서퍼는 1라운드를 버린 적이 없단 사실을 말이다.

-움직임이 좋은데?

-식신 완전 똑똑하네;

-니들 암것도 모름? 저거 전부 유저가 조종하는거임;

경기 시작과 동시에 유성철은 식신 둘을 불러내 전진을 명했다.

식신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이 제공되지만 단독 판단을 맡기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필드플레이를 할 때나 적당한 유저 상대로는 부족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지만 프로 선수 상대로는 멍청한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시합을 뛰는 많은 음양사가 식신을 직접 다뤘다.

음양사의 실력이 뛰어날수록 식신의 전투력이 좋아진단 이야기, 거대한 식신이 휘두르는 도끼를 받아낸 남영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양쪽에서 협공해 들어오는 식신의 공격이 아주 날카로웠다.

스파클의 낙승이라며 떠들어대던 관중들도 이내 숨죽이고 경기에 집중했다.

“기회가 왔어.”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있던 김민준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식신이 페이크를 넣는 사이 유성철이 움직이고 있었다.

음양사의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식신과 넣는 협공에 있다.

식신이 남영민의 발을 묶어둔 사이 유성철의 손에서 결계가 펼쳐졌다.

상대의 몸을 무겁게 하는 결계에 남영민이 당황하는 사이, 식신의 도끼가 위에서 아래로 벼락같이 떨어졌다.

“카이트 선수! 많이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게임이 스파클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스타서퍼의 나이트버드 선수, 오늘 처음 보는 선수지만 강합니다! 강해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다시 한 번 들어갑니다! 식신폭발!”

식신폭발, 식신을 제물로 삼아 큰 데미지를 가하는 음양사의 전설 스킬.

폭발의 여파에 남영민의 몸이 줄 끊긴 연처럼 튕겼고 관중석 여기저기서 신음이 울렸다.

오늘 시합을 직관하러 온 관중 대다수는 가이아를 깊이 즐기는 유저들이었다.

때문에 이런 큰 마법에 당했을 때 어떤 고통이 뒤따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스파클 팬들이 일어나라며 악을 썼지만 승기를 놓친 남영민은 흐름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체력 바가 터져나갔다.

-안돼에에에!!!

-이겼다!

-이대로 삼대떡 간다아!!!

희비가 교차하는 관중석, 유성철이 1라운드를 결정짓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히려 내 경기를 할 때보다 훨씬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게 만약 1라운드를 졌다면 올해 우리의 시합은 여기서 끝이었다.

내 옆으로 병 걸린 닭처럼 앉아있는 3인방은 도저히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잘했다. 성철아!”

“하나도 안 떨고 연습한 대로 잘하던데?”

“많이 떨었어요.”

감독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성철이의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엄지를 들어 보이며 칭찬했다.

유성철이 제 역할을 해냈으니 남은 건 내 몫이었다.

*

정령의 화산에서 펼쳐진 2라운드 역시 우리의 완승이었다.

내가 나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젠장.

-대진운 더럽게 없네.

-2부팀 상대한다고 해서 진출 기대했던 내가 ㅂㅅ이다!

이대로 끝나는 줄 알고 투덜거리는 스파클 팬들이 속출할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스타서퍼가 라운드를 패스했습니다!”

-패스라고?

-무슨 말이야 그게?

사상 초유의 사태.

스타서퍼가 승부에 나서지 않고 자진해서 라운드를 포기하자 관중들의 웅성거림이 크게 일었다.

어떤 정신나간 팀이 싸우기도 전에 포기한단 말인가.

그러나 팀 사정을 알면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김민준을 비롯한 환자 셋이 벤치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이들에게 시합을 뛰라는 건 너무나 가혹했다.

솔직히 경기를 치르다 한대 얻어맞으면 실려 나갈지도 몰랐다.

연이은 패스 선언으로 게임은 곧장 5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모든 힘을 쏟아야만 했다.

“걸을 수 있겠어?”

“앉아있는 정도라면야.”

김정수가 힘겹게 말했다.

5라운드를 시작하려면 일단 무대 위에는 올라야 했다.

“버티기만 해. 내가 금방 끝낼 테니까.”

내 말에 환자들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2:4로 팀전을 이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어려운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오르자 중계진들이 열심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멘트를 쏟아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알아서 환호성이 터졌을 텐데 오늘은 패스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아파 보이는 선수들이 분위기를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진짜 많이 아픈가 본데?

-와···너무 아쉬워서 기권을 못 하는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월챔 예선이잖아

-아, 이렇게 떨어질 팀이 아닌데.

-스파클 자식들 신난 거 봐라

-기운차렸네 저새끼들.

2라운드 때까지만 해도 다죽어가던 스파클 응원석은 전부 기립해 파도를 타기 바빴다.

악악거리며 스파클을 외쳐대는 소리가 시장바닥 저리가라였다.

-밟아버려!

-2부 리그 팀따위 얼씬도 못하게 해!

-누가 이기는진 해봐야 알지!

-응~ 유니크 원맨팀 꺼져~.

-그 원맨한테 발린 자식들이 입만 살았어! 아주!

양팀 팬들이 치열한 설전을 주고받는 가운데 5세트가 시작됐다.

스타서퍼의 공식적인 5라운드 첫시합이었다.

“여기서들 쉬고 있어.”

“진짜 여깄으면 되겠어···?”

“어차피 못 움직이잖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도무지 뭘 부탁하고 싶어도 전략적인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되려 무대 위에 올라와 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었다.

환자들을 건물 구석에 쉬게 한 뒤 곧장 중앙을 향해 달렸다.

“형.”

“음?”

중앙의 점수 발판을 차지하러 가는데 뒤따라오던 유성철이 말했다.

“오늘따라 반짝반짝 하시네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컨디션 좋아보이신다고요.”

컨디션이 좋다라···.

딱히 그런 건 못 느꼈지만 만약 그렇다면 좋은 일이었다.

불리한 싸움을 뒤집기 위해 운마저도 간절한 때였다.

“먼저 치고 나갈 테니까 백업 부탁해.”

“옙.”

운룡비형을 강하게 밟자 몸이 빠르게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바람을 맞으며 중앙에 가까이하자 맞은 편에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다크레인저!

상대를 인식함과 동시에 화살이 바람 가르는 소릴 내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빠른 반격이었다.

스파클에 저 정도 레인저가 있었나?

서로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 이런 정확도로 화살을 날린다는 건 보통은 넘는단 뜻이다.

물론 운이 따라 첫발이 예리하게 들어왔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실력을 가늠하며 섣부른 공세에 나서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불리한 경기를 뒤집어야 하는 입장, 나는 곧바로 그림자 발자국을 사용하며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환영도시의 바닥은 콘크리트, 소리는 남을지언정 먼지로 내 위치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화살 다발이 흩뿌려지는 소음, 그리고 아스팔트 바닥을 밟는 소리가 공중에서 엇갈렸다.

-홀리 쉣!

-화살 맞았···안맞았나?

다크레인저는 갑자기 사라진 내 발을 묶기 위해 전방에 멀티샷을 화려하게 쏟아냈다.

마력소모를 감수하고서라도 내 접근을 막아보겠단 계산이었다.

-와오;

-저게 인간의 움직임인가?

-체력 바를 봐. 맞긴 했어!

화살을 전부 피해내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이형환위를 써서 화살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자리에 서서 급소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용의 충격으로 차내면 깔끔한 방어가 가능했지만 그건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마력을 쏟아내며 대량의 화살을 뿌린 건 내 발을 묶어두기 위함이었으니까.

제자리에 멈추면 상대가 공격을 맞추기 더욱 쉬워진다.

게다가 지금 상대 팀은 실시간으로 중앙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터, 상대가 도착하기 전에 한 명을 끝내두고 싶었다.

벼락 소릴 울리며 상대의 몸통을 후려치자 다크레인저가 억! 소릴 내며 도로에 서 있던 차를 향해 날았다.

쾅 소릴 내며 차가 우그러짐과 동시에 녀석의 몸 위로 붉은 열양지가 두 발 떨어졌다.

-와아아아!

-그대로 밟아버려!

체력이 쭉 바닥을 향해 꺼지는 걸 보며 피니시를 넣으려 할 때 매서운 불덩이가 우수수 쏟아져 들어왔다.

빨리도 달려왔네.

팀원 체력이 깎이기 시작하자 부리나케 달려온 상대 마법사의 지원사격이었다.

정확히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마법에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피해를 감수하고 이대로 일격을 먹여 다크레인저를 완전히 끝장낼 것인지, 아니면 잠시 물러나 마법을 피하며 기회를 엿볼지를 말이다.

만약 적에게 힐러가 있다면 그 녀석도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을 터, 장기전이 되면 팀에 좋을 게 없었다.

찰나의 순간, 결단을 내린 난 주먹에 힘을 주며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와 동시에 내게 부딪친 마법이 폭발을 일으켰다.

적중당한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건 뜨거운 열기였다.

고통의 종류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화상은 제일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최상급 장비의 저항력이 마법 데미지를 줄여줬음에도 상당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간만에 당했더니 좀 아프네.

이번 생엔 민첩함을 내세우는 무도가를 다뤘기에 이런 고통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다

마력을 뿜어내며 옷을 털자 몸에 붙어있던 불씨들이 떨어져 나갔다.

“저 개새끼 죽여버려!”

양 팀 선수간 나누는 대화는 소리가 차단되어 알아들을 수 없게 패치가 됐지만 입모양만으로도 무슨 이야긴지 파악 가능했다.

아군이 게임 시작 1분을 넘기지 못하고 떠버리자 분노한 남영민이 돌진해왔다.

이 녀석들 봐라?

남영민을 필두로 눈에 불을 켠 스파클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언뜻 보기에 무질서한 돌진처럼 보이나 프로 훈련을 받아본 이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스파클은 침착하게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두의 남영민을 중심으로 방패 뒤쪽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각도, 내가 열양지를 쏘아내도 남영민의 수비에 가로막히는 위치였다.

축복 효과가 터지며 남영민의 방어력이 올라간 순간, 나는 뒤로 빠지는 선택 대신 오히려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무슨 미친 짓이야!

-경기 빨리 끝내려고 무리수 던졌다;;

-아, 안 돼!

다크레인저를 잡아내며 무리한 탓에 내 체력은 이미 절반 아래로 떨어진 상태였다.

스파클의 클래스 구성은 아크나이트 하나, 엘레멘탈 마스터, 아크위자드 하나.

“이 새끼가 미쳤나?”

달려드는 날 보며 남영민은 오냐 어디 한 번 죽어보라는 기세로 스킬을 뿌려댔다.

근접 거리에서 터지는 소드 스킬에 옷깃 스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확실한 유효타였다.

이게 게임이 아니었다면 주변이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나는 치명타를 막는 선에서 외줄타기를 시도했다.

남영민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두 마법사가 펼치는 공격도 방어해야 했다.

초근접 거리에서 펼치는 일 대 삼의 전투.

스타서퍼 팬들이 새된 비명을 내지를 때, 내 체력은 20퍼센트 아래로 훅 깎여 내려갔다.

북미에서 활동했던 시즌을 포함해 가장 낮은 수준의 HP 라인이었다.

-와아아아!

-잡아! 잡아! 한 대만 더!

-제발 여기서 끝내!!

공식전에서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던 괴물의 위기.

그것이 스파클 팬들을 벌떡 일어나게 했고 상대 선수들로 하여금 기묘한 열기를 불어넣었다.

인피니트 슬래셔, 프로미넌스 씰, 드래곤 브레스까지.

각 클래스가 자랑하는 최상급 공격스킬이 무더기로 발현되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드디어 저 새끼도 가는구나!

-저 녀석도 사람이었어!

누가 봐도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그림.

그순간 자색팔찌가 빛을 발하며 운룡비형에 가 있던 강화의 힘이 다른 스킬로 전환됐다.

새롭게 강화의 힘을 부여받은 스킬은 이형환위, 잔상을 남기며 내 몸이 코앞에서 날아드는 스킬을 피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말이 안되는 게 맞다.

이형환위가 아무리 자색팔찌의 효과로 강화가 됐다 한들 마법사의 스킬은 범위 데미지다.

고작 2할도 남아있지 않던 내가 프로 3인의 스킬을 받아내며 살아나가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하나는 내가 그저 피지컬이 뛰어난 무도가가 아니란 점.

내 몸을 덮은 검은 기운이 스륵 사라지더니 내 체력 바가 다시 거꾸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저게 뭐야.

-아?

-아아!! 저거 힐이다!

-아니 이게 말이 돼?

-ㅋㅋㅋㅋㅋㅋ?

아주 오랫동안 쓸 일이 없어서 대다수 사람들이 잊고 있었지만 난 엄연히 딜과 힐이 동시에 가능한 존재였다.

그리고 녀석들이 간과한 두 번째.

이건 나 혼자 펼치는 경기가 아니란 점이었다.

워낙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 간과했을지 모르지만 5라운드엔 나 말고도 유성철이란 잠재력 뛰어난 아군이 있었다.

-야야! 뒤!

-뒤봐! 뒤보라고! 이새끼들아!

-미친놈들앗!

무리한 공격으로 진형이 완전히 무너진 스파클, 귀신걸음으로 은밀히 다가온 유성철이 일으킨 식신폭발은 그대로 상대 뒤를 강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