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 돌파 (2)
유성철의 집안은 무당 가계였다.
샤머니즘에 입각한 무당의 존재는 21세기엔 도통 어울리지 않지만 유성철에겐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되던 해, 유성철은 신병(神病)을 크게 앓았다.
그 정도가 아주 심했기에 당시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먹은 걸 죄다 토하기 일쑤였다.
이왕 이리된 거 집에선 신내림을 받아 애를 살리고 보자 했지만 유성철 본인이 격렬한 반대 의지를 밝혔다.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유성철의 뜻은 확고했다.
그는 절대 무당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당의 길을 받아들인 집안 어른들을 보면 유성철은 몸서리가 절로 일었다.
무당은 그에게 있어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보고 무당이 되라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그래도 자신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신병을 앓다가 밤마다 뛰쳐나가 짐승 소릴 내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던 삼촌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낫지 않은가.
겨울이 끝나가던 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소년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릴 털고 일어났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병이 떠나갔음을 깨달았다.
다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그는 신병 이후 비밀을 한가지 갖게 됐는데 그건 바로 남의 불행을 미리 내다보는 능력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거 개꿀이고만 할지 모르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 유성철은 친한 친구에게 집에 일찍 들어갈 것을 권했다.
친구의 교통사고 장면이 어른거리는 탓이었다.
“석우야. 너 학원 늦게 끝나지?”
“응. 아홉 시쯤?”
“오늘은 그냥 집에 일찍 들어가.”
“학원 째라고?”
“아프다고 하면 되잖아.”
“왜?”
“안 그러면 너 다쳐.”
“···?”
“나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지?”
정말 영문모를 이야기지만 순진한 친구였는지 그는 충고를 받아들여 무사히 그날 밤을 넘겼다.
유성철은 친구가 무사한 게 기뻤지만 그 반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미래 예지 속에서 보았던 친구는 경상에 가까웠는데 다음 날 자신을 덮친 차에 치인 유성철은 중상을 입어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그때 유성철은 깨달았다.
‘아! 무얼 보든 함부로 입 밖에 내면 큰일이 나겠구나.’
그러나 사람 일이란 게 어디 맘먹은 대로만 되던가.
친한 친구들이 겪는 불행, 특히 가족이 겪을 불행은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그 뒤로도 그는 몇 번이나 큰 사고를 겪었고 자신이 지닌 비밀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는 불운이 닥칠 당사자에게 간섭하려 하면 그 피해는 자신이 입게 된단 사실이었다.
그것도 훨씬 심하게!
그렇게 유성철은 타인과의 대화를 줄여나갔다.
친한 사람의 불행을 그냥 못 본 척 지나치기 힘든 탓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전세계를 강타한 VR게임, 가이아였다.
가이아엔 다양한 클래스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음양사였다.
솔직히 음양사라는 직업은 무당과 비슷한 계열의 느낌인지라 하고 싶지 않았다.
손에서 얼음과 불을 뿜는 마법사가 훨씬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다른 직업을 택하면 자신의 인생이 크게 꼬일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여기서 고집을 부리면 결국 피를 보는 건 자신인 것을 잘 아는 그는 결국 음양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
“예쓰!”
게임시작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유성철은 랭크매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랭크는 쑥쑥 올라 성인도 들기 힘들다는 마스터 랭크에 입성할 정도였다.
등수가 쭉쭉 오르자 유성철은 내심 프로를 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길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마스터에 든 이후부턴 성장세가 크게 느려졌다.
프로를 노리려면 적어도 그랜드마스터는 뚫어야 했는데 이제 고작 마스터 하위 등수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체 상태에 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게 스타서퍼의 프로 면접 일정이었다.
‘이거다.’
마스터의 실력으로 1부리그 입단은 힘들겠지만 2부 팀이라면 자신의 가능성을 봐주지 않을까 싶었다.
서류 면접은 가뿐히 통과, 그린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방문한 유성철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크게 놀랐다.
전방에서 푸른 빛을 환하게 뿜어내고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처음엔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불운한 일이 닥치게 되는 사람은 붉은빛, 하지만 남자의 전신은 온통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말 그대로 행운을 옷처럼 걸친 인간이었다.
‘세상에.’
그 순간 유성철은 알 수 있었다.
스타서퍼가 지금은 비록 2군이지만 저 사람을 잡아두고 있는 한은 승승장구 하겠단 사실을 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팀에 붙고 싶었다.
하지만 면접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부류의 기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한 것일까?
유성철은 실수를 연발하며 평소 실력의 절반도 내지 못했다.
본인이 터트린 실수는 팀원의 발목을 붙잡아 생면부지인 사람이 쌍욕을 박을 정도였다.
“씨···. 어디서 이런 머저리가 들어왔어!”
“아, 개빡치네. 별 거지 같은놈 때문에 면접 망했잖아!”
팀원의 험한 소릴 들으며 유성철은 풀이 확 죽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운 플레이였다.
장님이 아니고서야 이런 자신을 뽑을 일은 없었다.
끝났구나 싶어 집으로 돌아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연락이 왔다.
선수는 아니지만 연습생으로 팀 생활을 해보겠느냐는 제안.
유성철은 휴대전화를 붙잡고 펄쩍 뛰며 소리쳤다.
“합니다! 해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
스타서퍼 입단 이후 유성철은 너무나 행복했다.
자신이 봤던 대로 정한솔은 행운을 몰고 다니는 남자였다.
물론 본인의 실력도 대단했지만 거액의 광고 계약 체결, 남들은 엄두도 못내던 던전 공략, 전설급 퀘스트 해결까지.
쓸어담을 수 있는 보물이란 보물은 죄다 그의 차지였다.
이런 선수가 팀의 중심에 서 있는 스타서퍼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도저히 2부 팀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파죽지세로 세계 대회의 문을 두드렸다.
유성철은 아무 걱정이 없었다.
북미 원정으로 세계의 문턱이 높은 건 확인했지만 이 팀엔 행운의 상징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처음으로 팀의 비상에 제동이 걸렸다.
팀원들 사이로 흐르는 붉은 빛, 성철은 그것이 내일 있을 불행의 전조임을 깨달았다.
숙소 화장실이 모두 만석이 되는 모습을 본 유성철은 앞이 캄캄했다.
내일 대결 상대인 스파클은 스타서퍼가 백 번 붙으면 백 번 다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팀원들을 자세히 훑으니 내일 멀쩡한 선수는 리더와 자신뿐이었다.
정한솔을 제외한 팀원들의 전패, 3:1로 예선 광탈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피할 방법은 없어.’
내일 음식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하지만 그리하면 후폭풍은 전부 자신이 받아야 했다.
중학교때 처음 친구를 도운 이후 미래 누설에 대한 반동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만약 주의를 줘서 미래를 바꾸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끙끙거리던 유성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
내일 멀쩡한 카드는 단둘 뿐, 둘이서 힙을 합쳐 2:2로 개인라운드를 끌고 가면 어떻게든 팀전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다.
“형. 저 연습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
오후 5시 30분, 월드챔피언십 한국 예선 첫 번째 경기를 앞둔 시각.
우리 숙소는 변기를 찾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빨리 나와! 터, 터져!”
“열으라고오!”
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대립을 펼치는 모습은 정말 최악의 구도였다.
인터뷰를 따러 온 방송 관계자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할말을 잃은 채였다.
“이거 괜찮겠어요?”
“게임은커녕 캡슐에 두면 거하게 지리겠는데?”
코치는 화장실을 차지하지 않겠다며 이미 숙소 바깥으로 탈출한 지 오래, 나는 이 절망적인 사태에 침묵을 지켰다.
그나마 유성철이 멀쩡한 건 다행이지만 나머진 도저히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복부에 경미한 데미지라도 가는 날엔 캡슐 대참사가 벌어질 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경기를 치르려면 최소한 벤치에서 버텨줄 선수가 필요했다.
나는 매의 눈으로 팀원들을 훑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선수는 과감히 뺄 참이었다.
경기를 시작할 수 있는 최저인원은 5명,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김민준, 김정수, 정대환을 뽑아 올렸다.
다른 건 바라지 않았다.
화장실 가고 싶다고 경기 도중 탈출하면 기권패가 되기에 어떻게든 벤치는 지켜야 했다.
“정말 이대로 되겠어?”
“다른 애들은 안돼요. 감독님. 진짜로 캡슐 새로 사는 건 둘째치고 경기장에서 애들 쓰러질 수도 있어요.”
“죄송합니다···감독님.”
“아니야. 이게 어디 너희 탓이냐.”
민준이는 빌빌거리는 목소리로 고갤 꾸벅 숙였다.
지금도 아픈 걸 참고 있는 티가 났다.
“다른 거 안 바라마. 제발 벤치에만 앉아있어다오.”
오후 여섯 시, 예선전을 위한 스타디움에 입성하자 6만 관중의 우렁찬 함성이 우릴 반겼다.
-스파클!
-스파클!
-유니크!
-유니크!
관중이 둘로 갈려 한쪽은 팀 이름을, 한쪽은 선수 이름을 외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 이름을 외치던 스타서퍼 팬들은 이내 우리 벤치가 텅 비어있단 사실을 깨닫고선 잇달아 물음표를 올리기 시작했다.
-???
-뭐야?
-선수들 다 어디갔어?
-코치도 안 보이는데?
스타서퍼 벤치를 지키고 있는 인원은 감독과 선수 다섯.
원래대로라면 감독과 코치, 선수 열둘을 포함해 총 열네 명의 인원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설마 쇼맨십인가?
-너희를 이기는데 다섯 명으로도 충분하다 뭐 그런?
-에이 설마.
-아니겠지. 여기가 무슨 북미도 아니고.
-이게 다른 거도 아니고 세계대회 예선인데 그건 너무 갔다 ㅇㅈ?
-ㅇㅈ. 개 오바야.
속사정도 모른채 떠들기 바쁜 관객을 뒤로하고 예선전의 시작을 알리는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오늘을 위해 벼르고 있었다는 스파클 팀원들의 간단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스파클! 파이팅!”
선수 전원이 둥글게 모여 손을 들어 올리며 힘찬 함성을 지르는 스파클, 그에 비해 스타서퍼의 영상 속 등장인물은 단 둘뿐이었다.
-뭔데 대체;;
-팀 분해됐어?
-애들 다 어디가고 정한솔이랑 유성철만 남았냐 ㅋㅋㅋ
-벤치 줌 땡겨봐바. 선수들 왠지 아파보이지 않냐?
-진짜 그러네.
-안색 좀 많이 안좋아보임.
-숙소에 누가 전염병 퍼트렸냐?
팬들이 떠들기 바쁜 사이, 나는 유성철을 붙잡고 어제 했던 연습을 복기했다.
“상대가 이렇게 파고들 땐 어떻게 한다고?”
“귀신걸음으로 회피하고 무리하게 들어오면 식신폭발요.”
“할 수 있지?”
“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었다.
유성철이라도 없었음 그냥 예선을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식중독 때문에 월챔 예선 기권이라니, 사방에서 쏟아질 비난이 따갑다 못해 아플 게 뻔했다.
유성철에게 암살계와 매칭됐을시 주의사항을 알려주던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녀석은 다른 날도 아니고 어제 개인연습을 요청했을까.
분명 어제의 일대일 연습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됐다.
실력 있는 암살자가 나오더라도 허무하게 깨질 염려는 덜 수 있었다.
설마 알고 있던 건 아니겠지?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되지.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상이었다.
“근데 형.”
“응?”
“이렇게 팀전까지 가도 우리가 승산이 있을까요?”
“음, 글쎄.”
“괜찮겠죠? 형은 스파클 상대로 필드에서 20대 1도 이겼잖아요.”
“필드랑 리그는 완전 다르잖아. 그땐 포션빨로 마력이 넘쳐났고 안개가 잔뜩 낀 상태라 나한테 훨씬 유리했지.”
필드와 정규전은 엄연히 다른 세계다.
마력포션만 있으면 얼마든지 스킬을 쏟아낼 수 있는 필드와 달리 시합에선 정말 필요할 때만 마력을 소모하는 판단이 필요했다.
“미안하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판단은 너한테 맡기마.”
“예.”
다른 때 같았으면 코치가 수첩을 들고 서 있었을 텐데 오늘은 감독이 그 자릴 대신하고 있었다.
“형이 나갈 거예요?”
“아니.”
올시즌을 치르며 1라운드를 내가 나선 적은 통계상 9할이 넘었다.
상대 팀도 바보가 아니기에 많은 2부 팀들이 1라운드에 1승 카드를 아끼고 약한 선수를 내는 전략을 썼다.
어차피 유니크를 상대론 누구도 못 이긴다는 인식이 강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차피 질 판에 1승 카드를 낼 팀은 없었다.
“스파클은 내가 1라운드에 나온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아.”
“만약에 아니면 어떡하죠?”
“글쎄, 만약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날 잡을 확률이 높은 선수를 내겠지?”
“네.”
“저쪽에서 제일 쓸만한 카드는 남영민이지.”
아크나이트를 다루는 스파클의 주장 남영민, 나에 대한 원한이 상당하다고 알려진 선수다.
만약 스파클이 버리는 패를 1라운드에 내지 않는다면 그 자린 남영민이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무도가에 대한 상성 우위를 노리고 달려드는 전략이다.
“하지만 남영민을 상대론 네가 상성 우위야.”
“네.”
“쫄지 말고 가서 밟아버려. 연습한 대로만 하면 꿀릴 거 없어.”
나는 유성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불어넣었다.
“하나, 둘, 셋!”
“스타서퍼!”
“화이팅!”
겨우 둘뿐이었지만 열두 명이 외치는 것처럼 큰 목소리의 화이팅과 함께 게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