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18화 (118/170)

관문 돌파 (1)

오늘 참 느낌 좋았는데.

느낌과 별개로 2일차 스크림 성적은 여전히 우리의 열세였다.

오브젝트 유닛의 어그로를 끌어 상대를 격파하는 계략은 좋았으나 S.솔리드 쪽도 몇 번 당하기 시작하자 즉시 대처법을 들고 나왔다.

북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박수가 짙은 오브젝트 컨트롤 싸움을 꺼리는 편이었다.

때문에 오늘 하루 정도는 쭉 흐름을 타지 않을까 했는데 오산이었다.

S.솔리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돈을 들여 전력분석팀을 운영하는 팀이다.

북미 리그의 선호도와는 별개로 타지역 리그에서 주로 쓰이는 전략 대처법을 미리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

결과는 3승 7패, 어제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만족할 수 없는 승률이었다.

특히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책을 찾아내는 S.솔리드의 저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괜히 보여줬네. 월드챔피언십때 만나서 썼으면 제대로 통했을 거 아냐.”

제레미는 오늘 있던 연습을 복기하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따지면 솔리드는 첫날 연습을 도와준 걸 더 후회할걸.”

이번 교류전이 없었다면 우린 문제가 뭔지도 모른 채 월챔 예선전을 맞이할 운명이었다.

굳이 손익을 따지면 이쪽이 훨씬 많은 걸 얻어가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3일 차 마지막 날까지 전력을 다한 시합이 이어졌다.

나는 흔쾌히 연습 요청을 받아준 존에게 감사인사를 표했고, 제레미와 함께 1군 숙소에 들러 오래간만에 옛 동료들을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너희 일 년 만에 많이 늙은 거 같다?”

“누가 할 소릴.”

조금 전까지 공격을 주고받아서일까?

일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덕담을 나누며 최근 메타 분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니 그렇게 시간이 잘 갈 수가 없었다.

“그럼 다음엔 월드챔피언십에서 보는 건가?”

“그땐 오늘하곤 다를 테니까 긴장해.”

“연습 적당히 해! 올해까진 우리가 우승할 거야!”

전지훈련 같았던 스타서퍼의 원정 스크림 일정이 마무리됐다.

총 전적 32전 9승 23패.

나와 제레미의 명성을 생각하면 실망하는 팬들이 있을지 모르나 세계 최강의 팀으로 손꼽히는 S.솔리드를 상대로 3할이면 첫 시합으론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게다가 꼭 되찾길 바랐던 팀원들의 열의가 돌아왔으니 정말 많은 걸 얻어가는 원정이었다.

***

북미에서 돌아온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건 1부 승격전이었다.

가이아 프로리그를 시청하는 팬들의 관심은 곧 열릴 포스트 시즌에 쏠려있었지만 마침 승격전의 시기가 절묘해 게시판마다 승격전의 향방을 예측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스타서퍼는 올라오겠지?

-걔내 2부에서 경기하는거 한 번이라도 봤으면 의심안함.

-탈 2부급이야 ㄹㅇ루다가;;

과연 팬들의 예상대로였다.

S.솔리드와의 스크림을 통해 한층 파워업한 우린 단숨에 전투를 해치우고 가볍게 1부리그 입성 티켓을 거머쥐었다.

덕분에 기존에 1부리그 소속이었던 e스타일 팀은 2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고 시즌 9위로 리그를 마감한 블루유니온 팀은 간신히 1부 자격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내년부턴 1부도 박터지겠는데?

-빅3이 아니라 빅4가 되나?

-스타서퍼정도면 충분히 상위권 도약한다.

인상적인 경기를 선보인 우리 팀의 내년이 순조로울거라 예상하는 팬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내년을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아직 올해 시즌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1부리그 상위권 팀들이 포스트 시즌 준비에 한창일 때, 우린 1부에 속한 모든 팀의 경기를 분석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한국은 메이저 지역으로 분류되기에 총 세 개 팀이 월드챔피언십에 나설 수 있었다.

그중 정규시즌 우승팀과 준우승팀은 예선을 패스할 수 있는 시드권을 받게 되며 나머지 8개 팀은 토너먼트를 통해 월챔 진출이 가능했다.

한국 가이아 리그 우승을 놓고 다투게 될 2개 팀을 제외하면 전부 적이 될 수 있는 상황.

북미에 다녀오기 전이었다면 1부 팀도 우리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방심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예외 없이 경기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원 eSTAR 말이야. 잠재력은 나쁘지 않은데 왜 이렇게 경기하는 거지?”

“그러게. 이 팀은 선수 구성도 그렇고 조합에 확실히 강점이 있어서 오브젝트 컨트롤 위주로 운영하면 꽤 성가실 거 같은데.”

“뭐, 한국은 리스크 큰 판단은 도통 안 하려고 들잖아요.”

“스카이웨이도 주의해야 해. 개인전 전력이 생각보다 강해.”

얼마나 영상을 뜯고 분석했는지 이젠 경기 도중 사용한 전략과 패턴을 횟수 단위로 외울 정도였다.

그렇게 착실히 예선전 준비를 진행하고 있을 때 국내리그 최종 우승팀이 확정됐다.

“기어이 우승을 하는군!”

“너 설마···.”

“아, 아냐.”

“확실해?”

“확실해!”

유호영의 눈초리를 받으며 당황하는 정대환.

TV속에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세준이 흩날리는 색종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올 시즌의 최종 우승을 차지한 팀은 VT스타즈, 그리고 준우승은 원라이프의 차지였다.

“적어도 저 두 팀은 예선에서 만날 일 없겠네.”

“잘 된 건가?”

“잘 된 거지.”

7판 4선승제로 치러지는 포스트시즌과 달리 월드챔피언십 각지역 예선전은 5판 3선승제의 토너먼트 룰이었다.

풀리그도 아닌 토너먼트 룰에서의 짧은 승부는 변수가 대단히 많은 편이었다.

그날 선수들의 컨디션, 전장의 운, 엔트리의 상성으로 인해 강팀이 약팀에게 잡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게 토너먼트 예선전이었다.

그렇기에 VT스타즈나 원라이프 같은 강팀을 예선에서 만날 일이 없다는 건 우리로선 매우 잘 된 일이었다.

“이제 연습도 질린다 질려!”

제레미는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소리쳤다.

“다 때려 부수고 싶다아-!”

*

[제2회 월드챔피언십 한국 예선전 스타트!]

[2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스타서퍼, 돌풍은 계속될 것인가?]

[월드챔피언십 한국 예선전의 첫 스타트를 끊을 팀은 스타서퍼와 스파클.]

[예선전 첫경기에 나선 스파클 팀의 인터뷰, ‘우리 팀이 약하다는 편견을 뒤집어 보이겠다.’]

[남영민, 필드와 정규시합은 전혀 다른 세계이다. 2부 출신들에게 1부의 매운맛을 톡톡히 보여주겟다.]

-영민아! 정신차려!

-스파클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그때 방송이 아직도 생생하다. 니들이 스타서퍼를 이기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

-장 지질 준비 해라.

-위엣놈 영민이니? 이런 똥 팀도 팬이 있네.

-뭐 똥? 똥한테 사과해!

월드챔피언십으로 가는 그 마지막 티켓, 그 한 장의 티켓을 차지하기 위한 대진표가 확정됐다.

한국 예선전의 첫경기는 바로 스타서퍼와 스파클 이스포츠였다.

인터넷의 반응은 뜨거웠다.

스파클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된 스파클 길드를 내가 홀로 쳐부순 일은 여전히 팬들의 기억에 생생했다.

스타서퍼는 2부 리그 팀 중에선 팬이 제일 많았다.

이건 자화자찬이 아니라 거의 내 덕분이었다.

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는 슈퍼 플레이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존재니 말이다.

물론 그 규모라는 게 1부 팀에 비하면 작은 편이긴 했다.

스타서퍼가 올 한해 2부를 폭격했지만 2부 수준은 1부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에 팬이 많이 붙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팀이 1부 승격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팀을 응원하는 팬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1부 승격이라는 타이틀이 유입에 순풍을 몰고 왔다.

모니터링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스타서퍼의 팬 규모가 한달 전과 비교해 4배나 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응~. 우리 한솔이가 뚝배기 다 깨버릴거야. 스파클 깝 ㄴㄴ

인터넷에 존재하는 가이아 팬이 전부 우릴 응원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예선은 대체로 스타서퍼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뚝배기를 깬다는 표현이 맘에 들어 댓글을 읽던 나는 흠칫 놀랐다.

울엄마잖아!

아이디 일부가 별표로 가려져 있긴 하지만 틀림없었다.

PC방 관리를 시작하신 이후로 부모님은 스타서퍼 경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보실 정도로 팬이 됐다.

과거 암울했던 시절, 몇 번이고 그만두고 집에 돌아오라고 하셨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하지만 댓글은 적당히 쓰셔야···.

그런데 요즘 부쩍 인터넷을 하시는 빈도가 늘더니 내 기사에 자주 출몰하시는 게 눈에 띄었다.

난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내 댓글 자제를 요청했다.

-댓글 응원은 조심하셔야 한다니까요. 아는 사람이 보면 다 알아요.

-응? 댓글? 무슨 댓글?

끝내 모른 척 하시기에 난 작은 한숨으로 메시지 한 줄을 덧붙였다.

-아버지도 같이 적으셨죠. 진짜 이상한 말 적으시면 안 돼요.

-알았어. 엄마가 댓글 못쓰게 잘 감시할게. 걱정하지 말고 시합 준비 잘해! 우리아들 화이팅!

엄마는 신경 쓰지 말라며 시합에만 집중하라고 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파클 대가리 딱 대! 킹갓니크 나가신다!

*

스파클과의 예선 토너먼트를 치르기 전날 밤.

저녁 훈련을 마친 팀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 뒤 침대 위에 하나둘씩 쓰러졌다.

흔히 긴장하면 잠이 안 온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 밤이라든지, 입대 전에 도저히 잠이 안 온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루종일 훈련을 하고 나면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전신에 피로가 한가득이다.

우리 숙소 화장실은 총 셋, 샤워를 할 수 있는 인원도 최대 셋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씻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내가 제일 체력적으로 멀쩡하기 때문이다.

숙소 막내인 호영이나 대환이는 다른 친구들보다도 일찍 잘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었다.

팀원들이 씻고 잘 준비를 하는 동안 오늘의 뉴스를 훑고 있는데 방금 막 세면을 마친 녀석이 내 옆에 앉았다.

유성철이었다.

“무슨 일이야?”

“형. 저 연습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응? 지금?”

“네.”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간, 나야 무한 체력이니 상관없다지만 다른 팀원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실력을 늘리고 싶어도 과도한 훈련은 선수의 심신을 지치게 한다.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내일 예선전도 해야 하는데.”

“예선전은 오후에 시작하잖아요. 두 시간만 아니, 한 시간만이라고요.”

“거 참···.”

유성철은 사정하다시피 연습을 요청했다.

그것도 개인전 연습을 말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북미 원정으로 유성철은 확실한 쓰임새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팀전에서의 버프 컨트롤, 식신 운용을 통한 오브젝트 공략속도를 올려주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개인전 연습이라니?

물론 음양사가 개인전이 불가능한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엘레멘탈 마스터나 아크위자드에 비하면 출전 빈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스타서퍼엔 나, 제레미, 김정환, 김민준, 유호영까지.

개인전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유성철에게 개인전 능력을 요구하는 상황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내일이 예선이지 않은가.

스파클이 우리를 상대로 5라운드 접전까지 끌고 갈 확률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0이 아닌 만큼 컨디션 조절은 필수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통사정을 하는데야 마냥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그럼 딱 한 시간만이다?”

“네.”

일분 일초를 아껴 빨리 재울 요량으로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코치가 보면 한소리 했을 테지만 밤늦은 숙소엔 우리뿐이었다.

*

다음날 아침.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승표 코치가 숙소에 출근하는 것으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됐다.

“어라? 오늘 이모님 안 오셨어?”

“그러게요?”

숙소에서 생활하는 인원은 총 아홉, 평소 같았으면 코치님보다 일찍 이모님이 숙소에 나와 아침을 차려주셨을 텐데 오늘은 식탁 위가 텅 비어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댁에 급한 일이 생겨 연락할 겨를도 없었단 사정을 알게 되었다.

“남편분께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시네.”

“헐. 많이 다치셨데요?”

“그것까진 아직 모르겠어. 오늘 예선 1차전 끝나면 내가 한 번 다녀와 볼게. 그건 그렇고. 니들 도시락 괜찮지?”

“코치님. 세 개 가능?”

“넌 살 좀 빼야···.”

밀러의 요구에 코치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도 남들 두 배씩 먹는 밀러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먹는 거로 전투력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세 개 먹으면 게임 더 잘할 수 있어?”

“당근 빠따죠.”

“그래. 먹어라 먹어. 다들 뭐 먹고 싶은지 여기 적어.”

아침 겸 점심을 위해 도시락 전문점에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도시락 배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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