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서퍼 (1)
바깥은 봄이 완연해 더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연중 날씨가 이때만 같으면 좋겠다 싶은 5월, 리그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오전 아홉 시, 장승표 코치가 숙소로 들어섰다.
성남에 위치한 스타서퍼 게이밍 하우스는 숙소와 연습실을 한데 묶어 쓸 수 있도록 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기존의 그린엔터테인먼트 사옥 연습실은 아무래도 선수 모두가 숙소로 쓰기엔 불편한 점이 많아 이곳에 하우스가 차려진 것이다.
정대환과 유호영의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였기에 위치는 그야말로 최적이었다.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쾌활하게 웃는 코치와 달리 팀원들은 왠지 기운이 없었다.
“너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스크림은 제대로 할 수 있겠어?”
프로라면 1부와 2부를 막론하고 리그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크림을 진행한다.
미리 계획해둔 전략이 통할지를 알아보는 시간이고 미처 몰랐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각 팀은 연습 상대를 물색하기 바빴다.
분위기를 생각하면 스타서퍼는 되려 스크림 참여가 늦은 감이 있었다.
일찍 준비한 팀들은 이미 스크림을 두 바퀴 이상 돌렸다고 했다.
우리 팀이 참여가 늦은 이유는 단순히 공략이 바빴던 게 원인이었다.
“그래도 리더는 좀 낫네.”
“저야 뭐.”
선수들이 파김치가 된 건 개막을 앞두고 최대한 장비를 선점하기 위한 몸부림 탓이었다.
스타서퍼가 보유한 선수 잠재력을 생각하면 2부 리그에서 어려움을 겪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종일 공략에 매달릴 순 없었다.
어쨌든 리그를 치러야 하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너희는 왜 여기 있어?”
흐느적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고 주스를 찾는 정대환과 유호영을 본 코치가 깜짝 놀랐다.
“코치님. 오늘 토요일인데요.”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나란히 앉아 주스를 마시는 둘을 보며 코치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처음 정대환이 팀에 합류했을 때, 둘의 사이는 조금 어색한 편이었다.
한쪽은 정한솔 팬, 다른 한쪽은 이세준 팬이었으니 세계 최고 선수의 자리를 두고 의견충돌이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기류는 팀 합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히 해결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는 누구~?”
유호영이 컵을 마이크 삼아 갖다 대자 정대환의 영혼 없는 코멘트가 이어졌다.
“유.니.크.짱짱.”
“고럼 고럼.”
유호영은 명답이라는 듯 고갤 끄덕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영혼 없는 답변이 아니라 어찌 됐건 정대환이 세계 최고를 정한솔이라 인정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가 생각을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솔직히 스타서퍼에 들어와 한솔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정한솔은 가이아에서 가장 공략이 어렵다고 알려진 신규 A급 던전을 수 시간씩 플레이하면서도 잔 실수조차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뿐인가?
체력 단련을 할 땐 약이라도 먹었는지 남들이 헉헉거릴 때도 땀 한 번 훔치는 정도였고 그 뒤에 이어진 PVP 연습에선 일대일로도 모자라 일대다 전투를 즐기는 ‘미친’ 인간이었다.
이런 스케쥴을 매일 같이 눈 하나 꿈쩍 않고 해내니 정대환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바뀌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근데 코치님. 상대 팀은 뭐 하는 곳이래요?”
“팀 이름은 펀치고,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더라.”
한국 2부 리그 팀의 개수는 1부와 같은 열 개.
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다.
2부는 팀을 운영하겠다는 기업이 별로 없었는지 그린엔터 같은 기업체 팀이 고작 세 곳에 불과했다.
나머진 PC방이나 체육관, 심지어 개인이 설립한 팀도 두 팀이나 있었다.
곧 몇 년 내에 가이아 팀들이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었다.
“두 시간 뒤부터 스크림 시작이고 오늘 종일 잡혀 있어.”
“왜 그렇게 일정을 빡빡하게 잡으셨어요.”
“언젠 이렇게 해달라며. 너희가 원하는 건 시즌 전까지 필드 공략 하는 거잖아. 오늘 다 해치우는 게 낫지 않아? 아님 꾸준히 스크림 잡아줄까?”
코치가 고갤 갸웃거리자 한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늘 하루로도 충분합니다.”
*
스크림을 앞둔 스타서퍼 벤치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했다.
제레미는 심드렁한 얼굴로 손부채를 부치는 중이었고 민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섀도우 복싱을 하며 몸을 풀었다.
“얘들 괜찮을까?”
코치는 팀원들을 슬쩍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선수는 나를 포함해 제레미, 김민준까지 세 명뿐이었다.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별문제 없을 겁니다.”
스타서퍼 팀원들은 처음 겪는 실전 긴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큰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본 게임이 시작되면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었단 걸 깨달을 테니 말이다.
물론 상대 선수에 대해 어떤 정보를 수집, 분석한 건 아니었다.
상대가 1부 팀도 아니고 신생 2부 팀 데이터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스타서퍼는 아직 제대로 된 전력분석팀이 없었다.
S.솔리드에선 가만히 있어도 분석팀이 정보를 떠먹여 줬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S.솔리드급 분석 전문 팀을 꾸리려면 현재 선수 연봉을 다 합친 것 이상의 되는 돈이 나갈 거라고 했다.
확실히 2부 리그 상태에서 도입하기엔 사치스러운 시스템이긴 했다.
“운동깨나 하셨나 본데?”
“그러게.”
조용히 기다리고 있자 빛이 번쩍거리며 다부진 체격의 선수들이 반대쪽에 나타났다.
그들 가슴팍엔 큼지막하게 ‘삼문’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헤르메스 로고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저들도 체육관을 홍보 중이었다.
“이름이 삼문체육관인가 보네.”
“근데 2부 리그로도 체육관 홍보가 되나?”
“가이아는 VR 격투게임이니까 되지 않을까.”
조용히 떠들고 있을 때 상대 쪽에서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아마 감독이 아닐지 싶었다.
양 팀 감독이 무대 중앙에서 짧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으로 스크림 준비가 끝이 났다.
그리고 잠시 뒤, 초록불이 들어오며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보통 이럴 땐 제일 강한 선수를 첫 번째로 내지?”
“예.”
겨우내 엔트리 공부를 한 코치는 메모장을 보더니 이내 덮어버렸다.
S.솔리드는 웬만하면 나를 1번 카드로 사용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일찌감치 출전하지 않겠다고 미리 얘길 해둔 탓이었다.
“감독님. 내일 스크림이요. 저는 빠지는 게 어떨까요.”
사실 스크림은 혹시 모를 문제점을 찾는 동시에 팀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리다.
나는 되도록 나보단 다른 팀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국 복귀 후엔 용이며 짐승, 거대 괴물만 썰어댔지만 아직 내 대인 공격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팀원들에게 기횔 주는 게 나았다.
“제레미. 산뜻한 출발 한 번 해보자.”
장코치가 제레미의 이름을 불렀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순수 전투력으로 내 다음 자리는 제레미의 차지였으니까.
김민준의 실력이 충분히 궤도에 올랐지만 2년간 갈고 닦은 제레미의 실전 경험치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제레미 파이팅!”
“잘하고 와.”
“걱정들 꽉 붙들어 매세요.”
제레미는 찡긋 윙크하더니 가벼운 몸놀림으로 무대 위로 올라섰다.
1라운드 맵은 유구의 천칭이었다.
마법사에게 가장 유리한 마력조성 3레벨의 전장이지만 상대 선수 역시 암살계였다.
노말소드를 지고 나온 웨폰마스터를 상대로 제레미는 손을 비비더니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빠각-!
집요하게 무기를 후려쳐 순식간에 무기를 파괴한 제레미가 사정없이 상대 선수를 몰아붙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대 체력 바가 터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6초였다.
“16초라고?”
너무 빨리 끝나자 도리어 팀원들이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들 놀라?”
“아니, 저도 제레미 형한테 16초보단 더 버티는 데요? 이건 너무 싱거운 거 같은데···.”
“연습하고 실전은 다르잖아. 그리고 굳이 그게 아니어도 저쪽보다 너희가 훨씬 잘해.”
내 말에 힘을 얻었는지 유호영의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코치님. 다음엔 저 내보내 주시면 안돼요?”
“일단 맵을 봐야지.”
그사이 무대를 내려온 제레미가 해맑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른 팀원들은 대단하다고 칭찬하기 바빴지만 나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있던 예상을 그대로 꺼내놓은듯한 진행이었다.
세 번째 시즌의 신규 던전을 공략하며 챙긴 신규 장비, 그로 인한 스펙업까지.
이제 막 2부 리그에 이름을 올린 뉴비와 제레미 사이엔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거든.
모두가 16초 만에 이기긴 힘들겠지만 팀 승리엔 변함이 없을듯했다.
저쪽에서 첫 번째로 나온 선수가 상대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라면 더 볼 필요도 없었다.
2라운드의 맵을 확인한 코치는 유호영을 두 번째 카드로 선택했다.
잊혀진 사원을 무대로 유호영의 지팡이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스코어 3:0, 재시합 두 번을 포함한 총 스코어는 9:0.
그야말로 압살이었다.
***
한국 가이아 2부리그 개막전은 조용하게 진행됐다.
북미에서 개막 시즌마다 인터뷰를 하며 부산했던 분위기와는 완전 대조적이었다.
그 흔한 인터뷰도 없었고 그야말로 경기만 보여주겠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관심을 받고 싶으면 어서 1부로 올라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ㅋㅋㅋㅋ 1부 리그 보다가 이거 보니까 컬쳐쇼크네.
-경기장은 왜 이래?
-판자집이야?
-ㅋㅋㅋㅋㅋㅋ 아 웃다가 침흘렸잖아.
세 번째 시즌에 이르러 각 리그 1부 팀엔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올해부터 팀전의 룰과 여러 변경 점이 적용된 것도 있지만 제일 큰 변화는 바로 전용 경기장 건설이었다.
온라인, 넷상에서 경기하는 프로리그에 전용경기장이 웬 말이냐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1부리그 팀들은 경기장 건설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실물로 수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경기장을 짓는거보다야 싸다지만 렉이 없는 튼튼한 회선을 준비해야 했고 모델링을 하는데도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
이렇게 각 팀의 주 경기장이 건설되자 본격적으로 수입이 굴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홈과 원정 경기를 오가며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홈팀 직관 수입은 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 경기장 건설은 어디까지나 1부 팀들에게 한정된 이야기일 뿐, 2부 리그는 예전 북미리그가 그러했듯 공용 무대를 통해 경기를 치러야 했다.
문제는 그 모양새가 어디 수십 년 전 낡은 자재를 모아 만든 것 같단 점에 있었다.
좋게 표현하면 빈티지 느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재건설 예정인 노후 경기장이었다.
-일부러 이런 거야?
-꼬우면 1부 올라가래.
-와 지금 VT스타즈 홈경기도 보고 있는데 현타온다. 시설 수준 차이가 이게 뭐냐?
2부 리그 시즌 티켓을 끊은 관중들은 이거 환불되냐며 떠들기 바빴다.
그나마 운영진도 양심이 있어서인지 1부 리그팀 시즌패스 보단 훨씬 쌌지만 그래도 이 허름한 경기장에 앉아있으면 경기를 보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정도였다.
-야야. 너무 욕하지 마. 이것도 보다 보니 정들 거 같음.
-언제 봤다고 정들어 미친놈아 ㅋㅋㅋ
-내 옆에 귀뚜라미 우는 거 실화냐?
-귀뚜라미래 ㅋㅋㅋㅋㅋㅋㅋ
-줌이라도 되는 게 어디냐.
-기능 자체는 비슷한데 왜 이지랄을 했대? 표 팔기 싫나?
2부리그 공용경기장의 관중석은 1만석에 불과했다.
북미 리그당시 6만여 개나 됐던 유료좌석 수를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경기장 수준을 생각하면 1만도 과했지만 기이하게도 경기장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경기장 발로 만들어서 돈 얼마 안 들었을 거 같음.
-근데 사람 꽉 차겠다야.
-지오 장사 잘하네. 역시 일류기업.
-이렇게 막 나가도 장사 잘되자너;;
개막전이라는 특수,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를 싼값에 직관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작용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계진은 있나?
-설마 없을라고.
-그런 개막장 짓거린 안 했을 거야.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며 관중들이 웅성거릴 때 작은 폭죽이 경기장 주변을 밝히며 2부리그 중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경기장에서 가장 화려한 게 폭죽이란 사실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폭죽에 쓸 돈으로 경기장이나 업글하면 안 됨?
-빡치게 하지 말고 조용히 중계나 해주쇼.
사방에서 팜플렛을 구긴 쓰레기가 날아다녔다.
험악한 분위기를 읽은 중계진은 물 흐르듯 리그 진행을 이끌었다.
“지난 겨울! 피땀을 흘려가며 실력을 갈고 닦은 선수들을 만나는 첫날입니다. 송파구 게이머들이 여기 모였다! 호랑이 캡슐방이 만들어낸 최강의 천재군단!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파 타이거즈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
-약 드셨어요?
-오프닝 멘트가 뭐 이러냐고
-PC방 스폰이야? 어이없게 웃기네ㅋㅋ
-쌈마이 스멜 ㅋㅋ
푸쉭 하는 연기와 함께 벤치에 팔짱 낀 선수들이 등장하자 관중의 웃음이 극에 달했다.
선수들도 부끄러웠는지 조금 얼굴이 붉어진 게 포인트였다.
“그리고! 무적군단 송파 타이거즈를 상대할 팀!”
-아깐 천재군단이라메;;
-이 아저씨 그냥 막 뱉네···.
“미국의 영웅에서 빌런이 돼버렸다! 콩으로 전락한 한국 리그를 구원할 히어로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관중이 끓어오르며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의 9할 이상이 한 팀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덕이었다.
-인질 아니라고?
-당연히 막경기 배치일 줄 알았더니!
-유니크!
-유니크!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맞이해 주십시오. 그린 엔터테인먼트으-! 스타아아아서퍼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