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5)
스타서퍼가 공략에 한창이던 그때, 채팅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팀인 VT스타즈 또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2부 팀이라곤 하나 월드챔피언십 우승 출신 선수를 둘이나 보유한 팀 아닌가.
내부평가 결과, 스타서퍼의 잠재력을 고려할 때 곧 DT게이밍 못지않은 강팀이 될 거란 예측도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아무도 공략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던전을 공략하겠다고 방송을 시작했으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떤 거 같아?”
코치의 질문에 이세준은 툭 던지듯 답했다.
“그럭저럭 괜찮네요.”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저쪽이 유망주를 잘 뽑긴 했나보다.”
이세준은 본래 칭찬에 인색한 선수였다.
그런 그가 같은 팀도 아니고 다른 팀 공략방송을 보며 썩 괜찮다고 평했으니 이건 거의 극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계속 볼 거야?”
“어차피 오늘은 게임 더 못하잖아요.”
오전 필드 공략중에 힐러와 탱커가 리타이어하는 사고가 터졌다.
아무리 조심해서 공략해도 처음 보는 던전을 돌다 보면 이런 사고가 터지곤 한다.
더 나쁜 건 오늘 죽은 팀원들의 패널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에 있었다.
데스패널티는 처음 1회를 시작으로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하루씩 연장되는 특징이 있다.
이번 죽음으로 스타즈 공략대는 강제로 이틀을 쉬게 됐다.
그 자릴 다른 인원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 길드원과 1년 이상 합을 맞춰온 선수들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고 난도의 던전에선 이 미세한 실력 차가 생사를 가르게 되는데 자칫 연쇄 패널티를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주력이 상했을 땐 쉬어가는 게 상책이었다.
“그래도 한 번 내려와서 얼굴 봐두는 게 좋지 않겠어?”
오늘은 스타즈의 추가 연습생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이미 몇 명은 새로운 유망주를 보기 위해 자릴 비운 상태, 하지만 이세준은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알아서 잘 뽑겠죠.”
“혹시 알아? 원석을 발견할지. 유니크도 유망주 보는 눈이 기가 막힌다더라. 헤븐메이커도 직접 뽑았다지?”
코치의 말에 이세준이 코웃음을 쳤다.
“운이 좋았던 거겠죠.”
S.솔리드는 이미 헤븐메이커를 들이기 전부터 전년도 우승을 거두며 북미 우승 커리어를 지니고 있었다.
좋은 팀에 좋은 선수가 모여든다.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다.
원라이프 역시 우승을 따낸 이후 한국 서버의 실력 있는 유망주를 가장 먼저 쓸어담았다.
하물며 유저 풀이 더 넓은 북미라면 헤븐메이커 같은 선수 한두 명쯤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도 선수 보는 눈은 네가 제일 낫잖냐. 그러다가 진짜 유망주 놓치기라도 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걸?”
“얘들은 아니에요. 저도 봤어요. 서류도 봤고.”
그리 말한 이세준은 컵 아래 깔려있던 복사지를 흔들어 보였다.
이번에 면접을 보기로 한 유저들의 프로필이었다.
“그랜드 마스터도 못 드는 애들을 데려다가 가능성 운운하는 건 좀 시간 낭비잖아요. 게다가 시즌 도중에 싹수 보이는 애는 이미 한 번 훑으셨으면서. 그럼 지금 면접 보러 온 애들은 막말로 한 번 걸러진 친구들 아니에요?”
“야야.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 걸러졌다는 이야기 들으면 애들 상처받는다.”
“게다가···.”
이세준은 마침 손에 잡혀있던 서류의 첫 장을 응시했다.
“마스터 바닥권에 있는 애는 뭐하러 뽑아 올렸습니까?”
“아, 그 친구 나이가 어려.”
“나이가 벼슬이 아니잖아요.”
“헤븐메이커가 데뷔한 때가 열일곱이랬나? 어쩌면 이 친구도···.”
“그 얘긴 이제 됐어요. 한국에 그런 유망주는 이미 원라이프에서 쓸어갔으니까 코치님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재미없긴, 그럼 난 애들 좀 보러 가야겠다.”
“예.”
이세준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는 전방에서 활약 중인 유니크를 끊임없이 쫓고 있었다.
투쟁심이 가득 담긴 그런 눈동자였다.
*
사자의 신전 공략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수많은 시청자가 채팅을 통해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부는 쉬운 던전을 골랐다며 운도 좋다고 공략을 폄하하기 바빴지만 그런 시청자는 정말 일부에 불과했다.
이번 신던전 공략은 오히려 타팀 팬들이 인정할 만큼 대단한 업적이었다.
-스타서퍼 선수들 공략실력이 찐이네;
-나도 저런 길드에서 하루라도 뛰어보고 싶다.
-신던전 공략 축하합니다!
[스타서퍼팬티장수 님이 100달러를 후원!]
-앞으로 방송 자주해주세요! :)
-크- 2부 실력이 이정도라니. 대한민국 리그의 미래가 밝다 밝아.
-잘할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더 잘하네;;
이미 공략 방송을 여러차례 지켜본 시청자들은 오늘 공략한 던전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스킬 쿨타임을 돌리는 유기적 움직임은 조금도 2부 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당장 스타서퍼 1부에 던져 두면 몇 등이나 할 거 같냐?
-5등은 가능할 거 같지 않냐?
-저 플레이가 5등짜리 플레이라고? 눈을 폼으로 달고 다님?
-누가 봐도 3강급임.
3강이라 함은 작년 시즌 상위권을 차지한 원라이프, VT스타즈, DT게이밍을 뜻한다.
이 세 팀은 4위 팀과도 제법 승률이 차이가 났기에 중계진도 이들을 묶어 3강으로 부르곤 했다.
3강이란 채팅이 쏟아지자 반발하는 의견도 우수수 튀어나왔다.
-겨우 공략 한 번으로 3강하고 비비려고 하네.
-이러니까 한국이 냄비 소릴 듣지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틀린말 아닌데?
-꼬우면 니들도 여기 와서 공략해보라 해.
-이번에 공략 얼마나 걸렸냐? 4시간 반?
-솔까 DT게이밍은 여기 깨려면 같은 인원수로 8시간 꽉채울 듯. ㅇㅈ? 반박시 겜알못 ㅅㄱ
“자자, 진정들 하세요.”
유니크는 불타기 시작한 채팅창 진화에 나섰다.
“대한민국 가이아 리그 수준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작년엔 월드챔피언십 우승에 실패했지만 올해는 결과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요.”
-오;;
-스타서퍼는 근데 2부라 참전 못하지 않음?
-그럼 원라이프가 이기겠네 ㅎㅎ
-개솔 ㄴ. 스타즈가 이김.
“아,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희도 올해 세계대회에 나갈 수는 있습니다.”
2부 팀도 예선에 참가할 수 있느냔 질문이 우수수 쏟아졌다.
“자격은 1부 리그 팀들에게만 있지만 그전에 승격전이 있거든요. 올해 저희 팀 목표는 승격전 승리, 1부 리그로 편입해 월드챔피언십 예선에 나가는 겁니다. 목표는···당연히 우승이죠.”
-그래. 누가 이기든지 일단 우승컵은 한국이 따냈으면 좋겠음.
-근데 S.솔리드랑 스타서퍼는 지원 차이 넘사벽일 텐데 가능함?
-선수들이 아직 어려서 올해는 좀 힘들어 보임.
-그래도 자신 있는 태도는 보기 좋네.
-오늘부터 스타서퍼 팬 합니다.
-나도 두 번째 응원팀으로 함 ㅇㅇ
-승격전까지 파이팅! 가끔 현장 관람도 할게요.
자신감이 보기 좋다며 축하해주는 멘트들이 이어졌다.
이게 다 어려운 던전을 깔끔하게 공략해낸 덕이었다.
“음. 그리고 다음 방송 스케쥴 말인데요. 저희 게임단은 방송을 주기적으로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거든요. 다음 방송 시간이 정해지면 저희 공식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송을 자주 하겠다는 말에 팬들의 반응은 아주 호의적이었다.
이런 실력 있는 공략방송이 늘어나는 건 팀을 막론하고 환영할 일이었다.
“아, 강의 방송이요? 원하시면 다음엔 그쪽으로 한 번 준비해볼까요? 랭크매치는 힘들 것 같은데요. 매칭이 될 리도 없고···.”
게임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가이아는 프로 선수를 게임 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편에 속했다.
다른 게임의 경우 본인의 실력이 게임 내 최상위일 경우, 랭크 매치를 통해 프로와 대전을 하곤 하지만 가이아는 예외였다.
가이아 프로팀에 줄이 닿아있는 선수, 연습생은 웬만해선 랭크게임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일단 시즌 초엔 공략을 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고, 그랜드마스터와 게임하는 게 실력증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이유였다.
‘나 정도면 프로랑 붙어도 안 밀리지.’
그랜드 마스터 등급에서 최상위권을 밥 먹듯 드나드는 유저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정도 실력이 되면 언제든 프로팀에 들어와 연습생 신분으로 합숙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합숙을 하루만 같이 해도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를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는 넓고 인재는 많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랭크매치에서 한손가락 안에 들던 유저가 3강팀 연습생에게 시비를 걸다 영혼까지 털렸다는 일화는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프로는 프로의 세계가 있고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제가 강의 한답시고 랭크 돌리면 큐가 잡히기나 할까요? 아, 저격하신다고요? 혹시 실례지만 티어가···? 농담입니다. 그럼 그날은 랭크매치도 도전해 보겠습니다. 오늘 방송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타서퍼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선수들이 옹기종기 카메라 앞에 모여 손을 흔드는 것으로 스타서퍼의 첫방송이 막을 내렸다.
최대 동시 시청 인원 7만여 명, 이만하면 아주 성공적인 스타트였다.
***
첫 방송을 마치고 일주일이 지나자 기다리던 연락이 들어왔다.
-오늘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정대환이었다.
우리가 첫 방송을 하던 즈음에 VT스타즈의 면접이 있었단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신경이 쓰였었다.
나같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혹시나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른 누군가가 정대환을 뽑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먼저 얘기를 꺼낸 걸 보니 아무래도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우리팀 연습실로 부르려고 했는데 그는 한사코 밖에서 만날 걸 주장했다.
-그럼 그때 그 카페에서 보자.
-예.
아홉 번째 멤버를 받을 수 있겠단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카페엔 왠지 풀죽은 기색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정대환이 있었다.
이럼 안되는데.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못된 사람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뺨을 슥슥 만진 뒤 그의 앞에 가 앉았다.
“드디어 우리 팀에 들어오기로 한 거야?”
“작은 문제가 있는데요···.”
“문제?”
혹시 VT 스타즈 면접에 붙었나?
그건 아닐 터였다. 면접에 붙었으면 붙었다고 신나서 떠들 녀석이었으니까.
“편히 말해봐.”
“그, 제가 얼마 전에 했던 스타서퍼 공략방송요. 그거 봤거든요.”
“괜찮았지? 우리 팀원들 다들 실력 좋은 친구들이야.”
“거기 그···유호영이요.”
설마 유호영이랑은 같이 겜 못하겠단 그런 얘긴 아니겠지?
불안해하고 있을 때 정대환이 내 눈치를 살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가 좀 걔랑 싸우고 그랬거든요.”
“뭘로? 나랑 이세준 중에 누가 더 게임 잘하냐 뭐 그런거?”
“그녀석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자세하겐 아니고 그냥 흘러지나가 듯?”
정대환은 그놈 입이 참 가볍다며 맘에 안 든다고 중얼거렸다.
“아무튼 제가 이대로 팀에 들어가는 건 조금 그렇거든요.”
“왜. 유호영이 너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
정곡을 찔린 녀석은 입술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자존심에 나이는 관계없는 법이다.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내가 말했지. 내가 너 가르치면 금방 그마까지 올려줄 수 있다고.”
“그게 진짜 가능해요?”
“속고만 살았나. 티어 안오르면 우리 팀 안 들어와도 돼.”
“어차피 마스터로 끝나면 들어가고 싶어도 안 되겠죠. 마딱이를 어느 프로팀이 써주겠어요.”
VT스타즈 면접 때 무슨 소릴 들은 것인지 영 기운이 없었다.
“나 유니크야. 세계 최고의 어태커라고.”
“세계 최고는 이세···.”
“이세준이 세계 최고면 널 면접에서 뽑았어야지.”
“···세준이 형은 그날 면접 때 보지도 못했어요.”
“그래? 보통 연습생 뽑을 때 궁금해서라도 들여다볼만 한데, 어쨌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 유호영도 물론 훌륭한 선수지만 너도 재능 있어. 보장할게.”
“저 그래서 말인데요. 저 팀에 들어가기 전에 형이 훈련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진짜 이대로는 쪽팔린단 말이에요.”
공략이 한창 진행중인데 이 녀석을 가르쳐 주려면 시간을 따로 빼야 한다.
음, 저녁 PVP 시간 때만 잠깐씩 봐주면 어떻게든 되려나.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야.”
“연봉, 연봉요. 연습생도 전부 돈 받잖아요. 그거 깎아도 되니까 제발요.”
“우리 팀 들어오고 싶긴 한가 보네?”
“네.”
정대환이 잽싸게 고갤 끄덕였다.
녀석의 마음이 기운 것은 VT스타즈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있지만 유호영의 실력이 스타서퍼 입단 이후 부쩍 늘어난 게 컸다고 했다.
“알았어. 형이 원래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아닌데 특별히 인심 썼다. 저녁에 두 시간씩 연습 봐줄게. 8시부터 10시까지 시간 낼 수 있지?”
“네. 하루도 안 빼먹고 열심히 할게요.”
일단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였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전해져왔으니 말이다.
“좋아! 오늘부터 빡세게 한 번 해보자. 그전에 부모님부터 뵙고.”
“부모님이요?”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계약서도 써야 하는데 비밀로 하려고 했어?”
“아뇨. 그건 문제없을걸요? 저 면접 보러 다니는 것도 알고 계시거든요.”
“그럼 지금 당장 뵈러 가자.”
잘 됐군. 부모님 설득하는 게 사실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는데 아무 문제없을 듯 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형이 살게.”
“그럼 집에 가는 길에 치킨 사도 돼요?”
“얼마든지.”
치킨 그까짓 거 두 마리든 열 마리든 사주겠다 이거야.
한국행을 결정하며 봐둔 마스터피스 유망주를 모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오늘은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