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11화 (111/170)

제안 (4)

겨울이 끝나가며 날이 풀리고 있었다.

시즌 개막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팬들은 언제나처럼 리그 보고 싶다며 글을 쏟아냈고 일부는 왜 우리 팀은 갠방 안하냐며 성을 냈다.

갠방은 개인방송의 줄임말이다.

돌이켜보면 S.솔리드는 게임은 참 잘했지만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팀이었다.

글로리아 왕국 퀘스트 진행을 위해 방송을 진행했던 적은 있지만 그게 거의 유일한 방송이었다.

선수마다 성향이 다르기 마련인데 팀에 방송을 좋아하는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팀에서 딱히 방송을 권유한 적도 없었고.

방송을 하면 장단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는 편이었다.

팀이 유지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선수와 투자, 그리고 팬이다.

방송은 이 팬을 계속 붙잡아둘 수 있는 일종의 선물 역할을 한다.

좋아하는 선수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싫어할 팬들이 어딨겠나.

“방송이요?”

그런 의미에서 스타서퍼는 S.솔리드와는 전혀 다른 기조의 팀이었다.

감독이 내 의견을 조심스레 물었다.

리셋 날에도 방송 계획을 잡을 뻔 했지만 나의 반대로 무산됐던 기억이 났다.

“지금 1부 리그 팀 중에 방송을 꾸준히 하는 팀이 3개밖에 없더라고.”

“바쁠 시기니까요.”

사실 프로 선수는 연중 프리한 시간이 별로 없다.

시즌 리셋이 되면 지겨울 정도로 개척 공헌도와 던전파밍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리그가 시작할 때까지.

일단 리그가 시작되면 쉬는 날이 매주 이틀밖에 없다.

평일 경기가 끝나고 오후에 파밍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 같은 무한 체력이 아니고서야 휴식은 필수였다.

게다가 어려운 던전의 경우 아슬아슬하게 8시간을 거의 다 채워 클리어 되도록 설계된 게 대부분이다.

경기가 늦게 끝나는 날은 시간이 애매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전엔 상대 팀 선수 분석, 경기 끝나고 나면 어떤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바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진다.

선수들이 시즌 중반 이후 장비를 돈 주고 사들이기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시즌 말미에 시간이 없어서 장비를 구매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시즌 초기엔 파밍을 바짝 당겨 장비를 맞춰야 하니 지겹더라도 던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볍게 던전 공략 방송을 해보면 어떨까.”

건네받은 A4 용지엔 방송 일정과 내용이 제법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가벼운 방송은 아닌 것 같은데···?

이미 완성된 계획에 나만 OK를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첫 방송이 모레부터네요? 음, 그럼 한 번 해볼까요.”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감독 얼굴이 활짝 폈다.

*

스타서퍼가 방송을 한다는 소식이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스타서퍼가 방송을?

-이건 꼭 봐야지;;

-유니크 거의 방송 안하지 않음?

-ㅇㅇ 북미에서도 딱 한 번인가 밖에 안했음

-왤케 도도함?

헤르메스와 큰 계약을 따낸 것만 해도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관심의 대부분은 유니크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N캐스트에 방송이 켜졌다.

[스타서퍼 Live ON.]

팀 이름을 단 채널이 열리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50명, 400명, 2700명. 7천 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뭔데 ㅋㅋㅋ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화면을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엔 코를 훌쩍이는 유니크가 있었다.

눈밭의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뒤로는 환영합니다란 팻말이 꽂혀 있었다.

“어우. 좀 춥네요.”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이게 뭐야.

-불쌍해서 후원해드림;

-보기만 해도 추워 보이네.

북부의 날씨는 오지라게 춥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더 추워지기에 웬만한 프로팀도 북쪽으론 개척을 나서지 않는 게 국룰이었다.

-오늘은 썰방송임?

-스파클 털어버린 썰만 풀어도 오늘 시간 다갈 듯 ㅋㅋ

“아, 오늘은 썰방송이 아니구요. 공략 방송입니다.”

유니크는 손에 입김을 불며 카메라를 들었다.

화면이 회전하더니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스타서퍼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 다른 팀 보다가 여기보니까 완전 애기들이네.

-무슨 유망주만 긁어온 팀임?

-유니크 소년가장행 ㅋㅋㅋㅋ

모닥불에 손을 내밀고 열기를 쪼이는 팀원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린 친구들이 대세였다.

눈발이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유니크는 몸을 떨다 말고 화력을 높여줄 것을 주문했다.

“호영아. 화력이 약하다.”

“옙.”

“여러분. 북방 개척에 오를 땐 꼭 마법사와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유호영이 모닥불에 손을 대자 불이 강한 기세로 치솟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말한 유니크는 팀원들을 차례차례 소개했다.

“저희 팀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되도록 일관된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그럼 노인들이 슬픕니다.”

“누가 노인이야!”

“이쪽은 팀 맏형인 김정수 선수.”

“안녕하세요. 김정수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장미칼이고요. 팀에서 아크나이트를 맡고 있습니다.”

-정수 ㅎㅇ

-그렇게 노안은 아닌데?

-난 아까 어린 친구가 더 궁금해!

-위에 놈 위험한데;;

“그리고 이쪽은 밀러 호프만 선수.”

-미국 사람이신가?

“미쿡인 맞아요. 나, 김치 좋아해. 한국 조아.”

조금은 어색한 한국어에 시청자들이 빵 터졌다.

돌아가며 선수 소개를 마친 유니크는 조금 더 카메라 쪽에 다가서며 장비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문구를 선보였다.

“보이십니까?”

-헤르메스?

-경기중에만 달면 되는 거 아님?

경기중에만 달면 되는 계약이 맞다.

근데 이렇게 해주면 스폰서가 좋아할 거 같아서 내가 미리 시작하자고 의견을 냈다.

“아마 이 방송을 보고 계실 것 같은데 스타서퍼에 후원해주신 헤르메스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예의바른거보소.

“저희 장비중엔 헤르메스에서 공수받은 장비도 제법 있습니다. 전부 질이 좋아요. 가이아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해 어려우실 때 많죠? 그럴 땐 어디라고요? 헤르메스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아니 홍보 진짜 잘해주는데 왤케 웃기냐 ㅋㅋㅋ

-이거 꼭 돈 더 달라고 협박하는 거 같지 않냐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헤르메스 사장이면 돈 더 줬다.

열심히 홍보를 한 다음 시선을 돌린 곳은 오늘의 무대가 될 장소, 던전의 입구였다.

“저기 입구 보이시죠. 오늘은 저길 공략할 겁니다.”

-와우.

-보기만 해도 세 보이는데?

금색 사자 벽화가 양쪽으로 양각되어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던전문, 붉은 색 염료에 금색 테두리가 둘러진 문은 누가 봐도 여기 엄청 어렵습니다 라고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정도 입구 클래스면 최소 S다;;

-ㄴㄴ 아직 S 나온 적 없음. A 상급일 듯

-근데 인원이 좀 적어 보이는데 A급 도전하기엔 너무 적지 않나?

선수 여덟 명을 포함해 자리에 모인 인원은 고작 스무명 뿐, A급 중에서도 어려운 던전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인원은 적어도 40명은 필요하다는게 정설이었다.

스타서퍼는 그동안 착실하게 레벨을 올려 이미 길드 정원 40명을 넘긴 지 오래였다.

하지만 선수들과 달리 길드원 중엔 시간을 온전히 게임에 쏟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시각이 오후 여섯 시, 학생이나 직장인은 아무래도 접속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더 시간을 늦추자니 새벽까지 공략이 이어질 게 뻔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위 던전 중에서도 인원이 적게 드는 곳을 고르는 것이었다.

팀에선 이미 공략한 던전 중에 한 곳을 골라 촬영할 것을 제안했다.

위험 부담도 적고, 공략에 어느 정도 인원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반대합니다.”

“···이유는?”

“기왕이면 아무도 밟지 못한 새로운 던전이 보는 입장에서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위험하지 않을까? 실패하면?”

처음엔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미개척 던전의 난이도와 공략 적정인원수는 오직 개발자만이 알고 있다.

만약 방송 중에 전원 사망, 공략에 실패하면 참사도 이런 참사가 없었다.

미개척 던전을 무대로 방송을 했던 팀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팀조차 전 시즌에 이미 공략이 완료된 던전을 타겟으로 했다.

이번 시즌에선 새것이지만 결국 진정한 새 던전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력하게 밀어붙이자 결국 새 던전 공략 방송이 성사됐다.

“이런 던전 입구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으실 겁니다. 저도 처음 보거든요. 예. 오늘 방송은 이번 시즌 처음 등장한 신던전 공략입니다.”

-ㄷㄷㄷㄷㄷㄷ;;

-공략 방송 한다고 했을 때 눈치챘는데 진짜 미공개 던전이었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식이 퍼지자 실시간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시청자수가 1만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1부냐 2부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스타서퍼는 비록 2부 팀이지만 개척 속도로는 현재 서버 1등이었으니까.

[스타서퍼팬티장수 님이 500달러를 후원!]

-이날을 기다렸다!!

-와 후원 액수 보소;

-닉네임 뭔데 ㅋㅋ

“팬티장수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전에 솔리드에서 방송할 때도 와주셨죠? 오늘 들어온 후원은 정확히 팀원 전원에게 지급될 예정입니다. 길드원분들도 함께요.”

[스타서퍼팬티장수 님이 500달러를 후원!]

-이걸로 애들하고 과자나 사 먹으라고!

-식폭행 ㅁㅊ ㅋㅋ

-과자 값에 천 달러를 쏘는 사람이 어딨냐 ㅋㅋ

과자를 사기엔 너무 많은 액수였다···.

무리해서 쏘지 마시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이며 팀원들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던전을 공략할 시간이었다.

“그럼 스타서퍼의 첫 번째 던전 공략, 시작하겠습니다.”

*

-업계 관계자들도 몇 명 들어왔어. VT 선수들 아이디도 보이네.

정 바쁜 게 아니라면 구경하고 싶게 만드는 방송이었다.

바깥에서 방송을 모니터링중인 코치는 타 팀 관계자들이 아이디를 로그인한 채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망하길 바라고 있겠지.

시즌3에 들어 처음 만들어진 던전 공략, 무모하다고 볼 수 있는 컨텐츠였다.

어쩌면 스무 명 인원으로 공략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

누구도 이 던전이 얼만큼 어려운지 알지 못했다.

‘나만 빼고.’

던전을 뚫어내는 스타서퍼의 공략 속도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선두에 선 여덟 명의 화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고···.

-영화 촬영 중임?

-2부 따리 팀이라길래 기대 안했는데 ㄷㄷ하네;

-자꾸 스파클 까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정규 시합으로 붙었어도 발릴 거 가틈;

시청자들은 그저 놀라기 바빴다.

단순히 영상으로 지켜보는 정도라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공략을 진행 중인 선수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이다.

이건 절대 2부 리그에 있을 실력이 아니었다.

물론 2부 팀들은 방송을 하는 경우도 없었고 설령 있어도 인지도가 낮아 사람들이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신하는 이유는 현재 공략 수준이 방송을 켜는 다른 팀을 압도하는 덕이었다.

-이 정도면 스타즈보다 더 빠른 것 같은데?

-뭔 개소리야. 스타즈는 국내 최상윈데.

-아니야. 내가 마스터라서 겜 좀 볼 줄 아는데 이 던전, 엊그제 스타즈가 공략한 곳보다 어려운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저 녀석 마스터 아님 ㅅㄱ.

-이세준이 20대 1로 프로팀 이길 수 있음?

-이세준도 물약만 받쳐주면 가능하지 ㅋㅋㅋㅋ

-정규시합하고 필드 개싸움하고 다른 거 모름?

방송시간이 길어지자 다양한 팀의 팬층이 한데 섞여 채팅창에 콜로세움이 벌어졌다.

스타서퍼에선 이미 방송을 컨트롤할 역량을 갖춘 상태였지만 심한 욕설이 오가는 게 아니면 이 상황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서로 다른 팀을 지지하는 팬들은 방송도 봐야 하고 동시에 채팅도 쳐야 했다.

채팅창에선 유독 VT스타즈 얘기가 많이 나왔다.

방송을 정기적으로 하는 팀 중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이기 때문이다.

비록 월드챔피언십에서 원라이프에 지긴 했지만 팀의 주력으로 평가받는 선수 전원과 재계약을 마쳤으며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특급 유망주를 추가로 영입했단 기사도 떴었다.

이런 행보를 보여주는 팀이라면 팬들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스타즈 팬들 입장에선 스타즈가 2부 리그 팀인 스타서퍼와 비교당하는 것부터가 열이 받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타 팀 팬들은 그걸 알면서 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치 스타서퍼 팬인 척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공략은 첫 번째 난관으로 접어들었다.

요즘 대규모 던전은 중간보스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보스 돌파 시스템이 자릴 잡은 상태였다.

보스 방에 도착하기 전에 배치된 중간보스는 적게는 하나, 많게는 다섯까지 배치된 던전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중간보스조차 공략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오죽하면 보스보다 유명해서 통곡의 벽이란 별명이 붙은 개체도 존재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입에서 천둥 소릴 내는 사자였다.

전신에서 작은 스파크를 튀겨대는 모양이 보통 위압감이 아니었다.

-저거 잡다 죽을 거 같은데.

-중보 패기봐;;

-나같은 여기서 바로 빤스런했다.

-도망쳐···.

조금 전까지 싸우던 시청자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이것보다 더 무섭게 생긴 네임드는 지금껏 많았지만 이렇게 커다란 중간보스는 흔치 않았다.

몸길이가 족히 이십 미터는 될 것 같은 천둥사자가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호들갑을 떠는 시청자들과 달리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아무렴 이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자고 방송을 했을까.

3개월 동안 지켜본 결과, 우리 팀은 어느 정도 실력이 붙은 상태였다.

온종일 필드 공략, 저녁엔 짬을 내서 PVP훈련과 체력 단련을 병행했다.

재능이 없는 게 아니고서야 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낙승이야.’

스타서퍼 수준에 이번 던전은 충분히 공략 가능한 대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이곳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기에 자신할 수 있었다.

자, 그동안 준비한 실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전부 다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조금으로도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할 테니까.

사자가 뿜어낸 벼락을 쏜살같이 튀어나간 김정환과 김정수가 받아치는 사이, 나는 그의 어깨를 밟고 도약했다.

동시에 내게 들어오는 유호영과 밀러, 유성철의 버프까지.

그야말로 기계처럼 정확한 연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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