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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10화 (110/170)

제안 (3)

2030년의 1월은 유독 날이 추웠다.

프로선수들 사이에서 1월은 사계절이 교차하는 날씨다.

대부분 계약이 이때를 기점으로 모두 종료되기 때문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대형 계약을 체결해 따스한 겨울을 보내지만 2군 선수, 연습생,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다수에겐 그저 춥기만 한 시기이다.

실력이 고만고만하면 어떠냐고?

그럼 그냥 뜨뜻미지근한 온탕이다. 그래서 사계절이다.

e스포츠 산업이 제대로 자릴 잡은 게 어느덧 30년도 넘었다.

한때는 프로게이머가 직업이냐는 소릴 듣기도 했지만 이젠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탑클래스 선수들이 수십억씩 받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고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 또한 크게 늘어났다.

물론 모두가 이런 달콤함만 누리는 건 아니었다.

연습생에만 머물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수들은 셀 수 없을 정도고 제법 괜찮은 성적을 내다가도 전성기가 빠르게 꺾여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능력이 있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시장이 형성된 메이저 스포츠에 비해 선수생명이 유독 짧은 직업.

이것이 사람들이 바라보는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리고 오늘 난 이 인식을 베이스로 깐 상태에서 계약을 위한 설득을 진행해야 했다.

현재 스타서퍼에 모인 팀원 중 계약 완료가 안 된 친구들은 총 셋, 김민준, 유성철, 유호영.

김정환은 이미 팀 차원에서 찾아가 계약을 마쳤다고 했고 이 세 명은 학업 문제가 겹쳐 살짝 트러블이 있는 상태였다.

최고의 팀을 만들기 위해선 이 세 명이 반드시 필요했고 나는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은 김민준부터.

“진짜 가시려고요?”

“너 확실하게 결정했다며.”

“네.”

“그럼 가야지.”

민준이는 이미 가이아에 올인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한국 최고의 마도사가 될 인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물론 공부하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엔 민준이의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님이 운동을 하더라도 무조건 공부를 병행하길 원하신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학업을 병행하며 제대로 리그 일정을 치러낼 방법이 없는 상황,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 했다.

민준이의 아버지는 체육관 관장이셨다.

원래도 선수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민준이의 재능이 뛰어나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킨 케이스다.

“안녕하십니까. 민준이랑 같이 활동하는 정한솔이라고 합니다.”

“정한솔···.”

나를 바라보는 관장님 눈빛이 반짝인다.

부정적인 시선은 일단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체육관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샌드백 몇 개 있는 체육관이라고 해서 헝그리 정신이 감도는 복싱체육관을 상상했는데 실물은 전혀 달랐다.

애초에 체육관도 복싱 전문이 아닌 종합체육관이었다.

“민준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게임을 참 ‘잘’하는 친구라고?”

웁스.

관장님의 하얗게 웃는 얼굴이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혹시 혼나는 건 아닌가하고 쫄아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체육관엔 MMA를 훈련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흘깃 보더니 이내 관심없다는 듯 다시 운동에 열중했다.

“계약 때문에 찾아온 거지?”

“예.”

“들어가서 얘기하지. 커피 좋아하나?”

사무실엔 벽 한쪽은 크고 작은 트로피가 가득했다.

“많지? 전부 우리 체육관 선수들이 따온 거야. 내 것도 있고, 민준이 것도 있고.”

그렇게 포문을 연 관장님은 한참이나 말을 이어가셨다.

요즘 시대에 무식한 선수는 성공할 수 없다.

운동이야 병행할 수 있으니 최소한 고등학교는 나오는 게 좋지 않겠냐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내가 한 이야기가 틀렸나?”

“아닙니다.”

“그럼 더 할 말 없지? 민준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도 말릴 생각 없어. 고등학교 졸업하면 저 하고 싶은 거 하도록 내버려둘 거야.”

과거엔 민준이가 데뷔하는 시기가 이보다 2년이 늦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 민준이는 고3 아닌가.

졸업 후 프로 세계에 입문한 게 아니라 학업을 중단하고 뛰어든 것이다.

대체 누가 어떻게 설득한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것과 고3 간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그만 나가봐도 좋다고 손짓하는 관장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얼굴의 민준이,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하고 싶었던 이야길 꺼냈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지만 민준이 재능이 너무 아깝습니다!”

“음?”

“프로게이머의 재능은 다른 스포츠 선수들보다 훨씬 일찍 피고 전성기도 짧은 편입니다. 민준이는 아직 열일곱밖에 안 됐지만 이미 기술적으로 프로 1군 상위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왔습니다.”

“전에 찾아왔던 감독이란 분은 그런 이야기 안 하던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우리 팀은 감독도 코치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보니까.

확신이 없을 수밖에.

“그날 많이 당황하신 게 아닐까요. 아무튼 지금 당장 프로를 시작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커리어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겁니다.”

“예를 들면?”

“가이아 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선수가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겠죠. 2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벌써 완성된 선수의 전성기를 그냥 썩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이건 살짝 거짓말이 섞였다.

원래 역사대로 흐른다 한들 데뷔가 조금 늦을 뿐, 김민준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된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선수 생활을 일찍 시작하면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으니까.

해가 바뀔 때마다 펄쩍펄쩍 뛸 연봉, 최대 두 번의 월드챔피언십 커리어를 손에 쥘 수 있는 시간이다.

생각해보라.

2회 우승을 거머쥔 선수와 4회 우승을 거머쥔 선수는 존재감부터 다르다.

횟수가 늘어 5회, 7회가 되도 마찬가지다.

지금 선수생활을 시작하면 민준이는 나와 함께 누구도 넘보기 힘든 대기록을 세우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아까 말했지. 프로게이머는 선수 수명이 짧다고. 보통 몇 년이나 뛸 수 있지? 솔직하게 얘기해 봐.”

“보통 5년이면 장수한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엔 프로를 지망하는 친구들도 있고 이미 시합을 뛰는 선수도 있어. 종합격투기가 격렬한 운동이긴 하지만 그래도 5년보단 길어.”

관장님은 냉수를 들이켜며 한숨을 쉬었다.

“심지어 길어야 5년이라며? 지금 데뷔하며 5년 뒤엔 애가 몇 살이지? 스물둘? 그때가 되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학업을 관두고 프로게이머의 길로 일찍 들어선 선수들 중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최고의 커리어로 보답 받는 것.

문제는 그 길에 뛰어들기 전엔 아무도 장담을 해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이 길로 성공할지, 그저 그런 선수로 잊힐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나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김민준이 어떤 선수가 될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본인도 모르는 가능성을 나는 알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는 질문, 간단히 답하기 힘든 물음이지만 난 단호했다.

“예.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민준이는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될 거니까요. 오히려 학교에 다녀서 후회하지 않을까요? 이미 실력은 갖춰진 친구입니다. 그 2년 동안 쌓을 수 있는 커리어를 생각하면 아쉽지 않을 리 없어요.”

나같은 1군 말석조차 더 일찍 선수를 시작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하물며 김민준 같은 선수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자 관장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

“제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이 게임을 제가 제일 잘합니다. 그리고 민준이의 재능은 진짜고요. 이 녀석이 다른 걸 얼마나 잘하는진 몰라도 게임보다 잘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음···.”

눈을 감고 고민에 들어간 관장님, 나는 민준이를 향해 살짝 윙크를 날렸다.

‘잘 될 것 같지?’

‘아마도요···?’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연 관장님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개어있었다.

“전에 감독이란 분이 찾아왔을 때도 사실 이런 이야길 해주길 원했거든. 비록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지만 말이야. 아마 부모 마음이라면 다 비슷할 거야.”

“이렇게 말씀 안 하시던가요?”

“이야긴 비슷했지. 그런데 느낌이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자네 얘긴 신기하게도 진짜 그렇게 들리더라고.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그렇게 됩니다. 믿고 맡겨 주시죠.

“사실 모르는 척했지만 난 자넬 알고 있었어.”

“저를요?”

아버님은 가이아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 오랜만에 ‘그’ 이름이 등장했다.

“나도 사실 게임은 잘 모르거든. 그런데 오래전에 제프 페티스 경기가 한 번 취소된 적이 있었지. 아마 AFC 622였을 거야. 경기가 잡혀있던 챔피언이 일반 고등학생이랑 스파링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는 거야.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

여기서 제프 페티스가 나올 줄이야.

타우러스는 내가 제프를 때려눕힌 걸로 억하심정을 품었지만 적어도 관장님은 아닌 모양이었다.

관장님은 제프와 찍은 S.솔리드 숙소 영상까지 봤다며 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천만다행이었다.

네가 격투기계에 똥물을 튀겨! 라고 하셨으면 큰일 날 뻔 했으니까.

“프로게이머는 왠지 비실비실한 이미지가 있는데 자넨 좀 튼튼해 보이네?”

“저희 팀은 체력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어서요.”

“운동은 누구에게나 좋은 법이지. 혹시 은퇴하면 격투기 해볼 생각 없나? 종합격투기는 나이 좀 들어도 괜찮거든. AFC 챔피언에게 일격을 먹인 재능이면 대한민국 최고 유망주니까.”

은근슬쩍 운을 떼는 관장님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장시간의 설득, 이러다 프로게이머 관두면 빼도 박도 못하고 격투기를 할 것 같아 적당히 탈출할 각을 잡았다.

“민준이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잘해낼 겁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앞에서 끌어주면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데 스파링 한 번?”

이런, 궁지에 몰렸다.

“아빠, 다음에요. 이제 연습하러 가야 돼요.”

“어허, 저리 비켜. 나도 아쉬워서 그래. 아쉬워서.”

대체 무엇이 아쉬우신 걸까.

보호장구가 턱 하니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헤드기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

유성철과 호영이의 계약도 무사히 마쳤다.

부모님들의 가장 큰 근심 걱정거릴 내가 말끔하게 해결해드린 덕이었다.

“제가 작년에 벌어들인 수입이 이 정돈 됩니다.”

“세상에, 이게 0이 몇 개야?”

“이 친구는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재능있는 친굽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소문은 흘려 들으셔도 됩니다. 몇 년을 활동하든 노후 걱정은 없을테니까요.”

“정말 우리 애도요?”

“제가 이 팀을 세계 정상에 올리겠습니다! 물론! 친구들하고 함께죠!”

“아이고, 우린 선생님만 믿습니다!”

어쩌다보니 선생님 소리까지 듣게 됐다.

스타서퍼 관계자들은 성공에 대한 보장을 할 수 없었지만 난 아니었다.

이 친구들은 머지않아 세계대회 정점에 이르는 레벨이 된다.

이들이 성공 못 하면 가이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는 셈이다.

그러니 무조건 성공한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호영이의 경우엔 일단 학교를 일 년 더 다니기로 했다.

어차피 2부리그를 뛰어야 하는 팀 사정상 1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음, 이 녀석은 뭐하고 있으려나.

입단이 확정된 친구는 나를 포함해 여덟 명, 그리고 내가 여전히 기다리는 중인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랭크 올리는 건 잘 되는 중?

잠시 뒤 말시키지 말란 답장이 돌아왔다.

생각만큼 랭크가 안 오르니 스트레스를 받겠지.

프로팀이 어린 유망주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싹이 보일 때의 이야기다.

왠지 어색한 움직임, 마스터 하위 등수에서 허우적거리는 선수는 연습생 후보로도 못 쓴다.

-봄까지 얼마 안 남았다.

-아이 ㅆ...죽었잖아요!

-죽은게 내 탓?

-아오. 봄까지 한참 남았으니까 그만 해요. 안그럼 차단함.

-ㅈㅅ;

그날 저녁, 연습실에선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계약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좋은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헤르메스에서 급히 계약을 수정해 새로운 안을 제시해왔다.

매년 150억에 달하는 2년짜리 계약이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찌르면 피 한 방울 정돈 나올 것 같은데, 뭐 이 정도면 됐나.

200억을 입에 올리긴 했지만 아직 힘든 조건이긴 했다.

그만한 계약을 따내려면 S.솔리드 정도는 돼야 했다.

2년간 쌓아올린 커리어에 탄탄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어야 한단 뜻이다.

헤르메스랑 거래 끊을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선에서 딜을 받아주는 것도 미래를 위해 괜찮아 보였다.

유니폼 계약이 되면 장비든 스킬이든 더 신경을 써줄 거 아닌가.

“감독님.”

“응?”

“제가 말했던 계약이요. 새로 들어왔는데요.”

핸드폰으로 확인한 계약서 초안을 보여주자 감독은 입을 틀어막더니 액정을 긁느라 바빴다.

그리고선 잠시 빌리겠다며 내 폰을 들고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감독을 본 적 없는 팀원들은 대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헤르메스가 우리랑 계약을 맺기로 했거든. 곧 기사 뜰 거야.”

아니나다를까 날짜가 바뀌기 전에 대대적인 보도자료가 나갔다.

팀에 완전히 합류한 선수들 이야기, 헤르메스와의 계약 체결이 주된 내용이었다.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겨우 2부 리그 팀이 1부도 해내지 못한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 폄하하는 사람, 대체 스타서퍼에 무슨 가능성을 본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 메이저 스포츠에서나 나올 계약이라 놀랐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의견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드문드문 올라오는 악플도 있었는데 내 입장에선 그저 웃길 뿐이었다.

-1부 리그도 못올라올 팀에 300억을 바르는 멍청이가 있다?

-헤르메스 돈 많이 벌었나보다. 어쩐지 열람비가 비싸더라고.

-근데 그돈 그냥 다 버렸자너 ㅋㅋㅋㅋ

어림없는 소리.

헤르메스의 선구안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길게 내다볼 필요도 없이 올해 겨울이면 모두가 알게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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