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2)
마차 안에 들어서자 열기가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탁월한 보온 마법이 마차를 두르고 있는듯했다.
게다가 공간 마법까지 가미됐는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확연히 넓은 게 느껴졌다.
이 마차, 탐나는데? 한 대 달라고 하면 주려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연락책은 내게 스킬 박스 하나를 전달했다.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
그가 건넨 스킬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꽤 공들여 찾은 물건인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마음에 듭니다. 들고 말고요.”
[전설급 스킬 - 파워 리플렉터 / 백색 공용]
-방어성공시 위력을 반사한다. 근접공격 한정.
계열 전체가 배울 수 있는 스킬은 특정 클래스만 배울 수 있는 스킬에 비해 훨씬 구하기 어렵다.
파워 리플렉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색 클래스가 모두 배울 수 있는 스킬이기에 같은 전설급이라도 그 희소성은 몇 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스킬을 보고 감격한 건 단지 귀하기만 해서가 아니었다.
파워 리플렉터, 이 스킬은 항상 엔트리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나를 붙잡아준 보물이었다.
“좋은 물건을 구해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그럼 조금 편하게 저희가 준비한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파워 리플렉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오늘 이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온 목적은 따로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않던 귀한 보물을 얻었으니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서퍼에 대한 스폰서십 계약 체결입니다.”
스폰서십이란 기업이 재화 혹은 현물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 권리를 제공받는 활동을 뜻한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수익이 발생하는 프로스포츠라면 광고가 붙기 마련이다.
선수단이 입는 유니폼에 기업 로고를 넣는다거나, 경기장의 보드 사용권 등을 소유하는 것 모두 스폰서십의 일종인 셈이다.
기업은 홍보를 할 수 있고 팀은 운영에 필요한 재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다.
“누가 우리 팀에 투자하게 될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헤르메스가 제일 먼저 문을 두드렸네요.”
“투자가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엔 계약이 붙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죠.”
이미 S.솔리드는 세계 대회를 석권하며 상당한 규모의 광고를 체결했다고 들었다.
미래 예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들은 이미 가이아 프로리그를 좋은 투자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이아 리그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당연했다.
지금 스폰서십을 체결하면 적은 비용으로 커다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저희가 원하는 건 스타서퍼 팀이 출전할 때마다 저희의 이름을 알리는 겁니다. 아마 장비 겉면에 로고가 들어가겠죠. 각인작업에 드는 비용은 전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음.”
잠시 떠올려봤다.
내 검은 무복 가슴, 혹은 등판에 헤르메스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모습을 말이다.
솔직히 멋은 없다.
하지만 이런 광경이 1~2년만 지나면 흔한 광경이 된다.
어차피 시대의 흐름이라면 깐깐하게 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저희 회사에 먼저 이야기하시지 않구요?”
“먼저 유니크 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팀의 주장이시지 않습니까.”
내가 반대하면 일이 꼬이니 날 먼저 설득하러 온 셈이다.
좋은 판단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파워 리플렉터에 흐물흐물해졌으니까.
하지만 스폰서십 체결은 팀의 전체 이익을 위한 일, 내 개인 영달을 위해 아무렇게나 덥석 물 순 없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궁금합니다.”
“5년 계약, 매년 100억원을 제공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는 남자의 얼굴엔 자신감이 엿보였다.
무려 500억원 짜리 계약이다.
가이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500억 원은 시장 상식을 넘어서는 규모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되려 상대방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제안이 맘에 들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성에 차지 않았다.
일단 5년이나 되는 긴 기간, 내가 기억하는 5년 후의 가이아는 e스포츠 최고를 넘어서서 기존 스포츠 시장의 파이를 재분배할 정도의 힘을 갖추게 된다.
나는 스타서퍼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 팀으로 만들 참이었고 상당한 자신이 있었다.
이미 유호영과 김민준뿐만 아니라 걸출한 인재들이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헤르메스가 내 생각을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 5년에 500억은 너무 헐값이었다.
아마 내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이 제안을 덥석 물었을 거다.
그린 엔터가 국내 연예기획사 중에선 손에 꼽는다고 하지만 일성이나 VT같은 대기업들과 비교하기엔 파워가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 안정적으로 매년 100억을 제공해주겠다는데 그깟 이름 박는 것쯤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한테 걸린 이상 이 안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물은 무척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이 일은 팀 전체의 이익이 달린 문제여서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죠. 그런데 헤르메스와 제가 보는 팀의 성장가치가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
이건 너무 헐값이지.
우리 팀에 로고 넣고 싶으면 돈 더 가져와! 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설마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남자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계약 관련한 내용은 다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정한다고 될까?
헤르메스에서 내가 원하는 계약 조건을 맞춰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그들의 주 수입원은 정보를 파는 것, 그 외에 좋은 장비나 스킬을 중계해 수수료를 챙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거액의 스폰서십을 체결할 정도의 수익이 난단 말인가?
떠날 채비를 하는 남자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스킬 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스킬은 저희가 선물로 제공해드린 거니 마음껏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남자가 떠난 자리, 나는 재접속을 통해 유니크에서 엠퍼러로 클래스를 변경했다.
“엠퍼러로 공략하게?”
“슬슬 이 계정도 스탯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익숙해져야 할 스킬도 있고.”
“스킬?”
“잠시만.”
스킬을 배울 때 생기는 이펙트가 몸을 휘감자 금빛 광채가 번쩍였다.
반짝이는 연기는 내 몸을 두 바퀴 휘감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그것이 전설스킬을 배울 때 생기는 이펙트인 걸 알아챈 팀원들이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재밌는 냄새가 나는데.”
스킬 체험 파트너는 제레미를 낙점했다.
파워 리플렉터는 근접공격 한정 카운터 스킬이기에 민준이나 호영이를 데리고 연습할 수는 없었다.
연습하다 데스 패널티를 받으면 곤란하니 대련용 필드 지정도 완료했다.
“그러니까 맘껏 쳐보라고?”
“치라니까.”
“이 형이 객기 부리네.”
제레미가 흐흐거리며 즐겁다는 듯 웃었다.
“엠퍼러 육성도 다 안 끝났잖아.”
“누가 누굴 걱정해. 그리고 너 거울을 한 번 봐라. 그게 걱정하는 사람 얼굴인가.”
“들켰네?”
제레미는 분명 특급 선수지만 일대일 훈련을 하면 입에서 살려달란 소리가 나오는 건 변함없었다.
내 무한 체력에 걸리면 진이 빠질 때까지 굴려지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한방 먹일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신이 날만도 했다.
“자, 그럼 들어간다! 긴장해!”
“제대로 해.”
뜬금없이 성사된 제레미와 나의 일대일 대결을 보기 위해 스타서퍼 길드원들은 둥글게 둘러앉았다.
“킹니크 파이팅-!”
유호영의 외침을 시작으로 제레미가 눈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웬만한 타격엔 꿈쩍도 않을 것 같은 묵직함이 담긴 보법이었다.
유니크였으면 열양지를 펼쳐 달라붙기 전에 두들겼을 텐데 엠퍼러는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전혀 없었다.
바윗덩이처럼 힘차게 밀고 들어온 제레미는 교룡뇌조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천둥 소리가 방패 위를 훑고 지나가자 팔에 저릿한 느낌이 감돌았다.
“아프지?”
동시에 하체를 돌린 녀석이 회오리치며 발차길 하는데 체력이 쭉쭉 녹아내렸다.
유니크로 상대할 땐 몰랐는데 아직 육성이 덜 된 엠퍼러로 상대하려니 차이가 확연했다.
가장 곤란한 건 스피드가 부족해 계속 데미지를 입는 데 있었다.
제레미는 S.솔리드부터 한솥밥을 먹은 사이.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느 쪽으로 들어올지 읽을 수 있었는데 알면서도 막지 못할 만큼 속도가 밀렸다.
“항복해!”
“어림없는 소리!”
방어만 계속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때, 마침내 원하던 기회가 다가왔다.
교룡뇌조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제레미를 보며 파워 리플렉터를 가동했다.
마력이 쑥 빨려 나가는 기분과 함께 기이한 감각이 내 몸을 감쌌다.
방패에서 뿜어진 미약한 빛이 교룡뇌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르릉-
벼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제레미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으악!”
무언가에 치이듯 튕겨져나간 제레미의 균형이 순간 무너졌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제레미가 용케 반격을 했지만 아직 리플렉터의 시전 시간 내였다.
눈밭을 구르는 제레미를 따라붙어 검 끝을 목에 겨눴다.
“시합 중엔 무슨 일이 있어도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했지. 이렇게 쉽게 자세가 무너지면 어떡해.”
“아니···이게 대체 무슨 스킬이야?”
“카운터 스킬이야.”
“이런 사기가 어딨어. 이건 진짜 맞아봐야 알아.”
파워 리플렉터는 공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위력이 증가하는 스킬, 리그 탑급의 공격력을 지닌 제레미라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팔이 진짜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
“엄살은. 기껏해야 교룡뇌조에 클린히트 당한 느낌일 텐데?”
“아니야. 형이랑 대련할 때 공격을 당하는 건 아파도 참을 수 있어. 그런데 이건 뼛속에서 공격이 터지는 그런 느낌이야. 차원이 달라.”
제레미는 절레절레 고갤 흔들며 항복의사를 밝혔다.
물론 파워 리플렉터가 뛰어난 스킬인 건 사실이지만 결점이 없는 무적의 스킬은 아니었다.
일단 근접 스킬을 대상으로만 반격이 가능했고 그마저도 타이밍에 맞춰 제대로 카운터를 내야 했다.
또한 마력소모량이 크고 딜레이가 긴 탓에 타이밍을 잘 잡아야 했다.
스킬을 썼는데 상대가 갑자기 거리를 벌리고 물러서면 마력만 버리는 격이다.
“원거리 공격이나 마법은 반사 못 해.”
“음. 근데 그게 약점은 아니잖아? 어차피 아크나이트를 마법사 잡으라고 내는 일은 없을 테고, 근접 클래스 전투에선 완벽하게 먹고 들어가겠는데?”
“그건 그렇지.”
“진심 같은 팀이라 다행이다.”
관심 있게 대련을 지켜보던 팀원들은 내가 바라보자 눈을 반짝였다.
어서 나랑도 연습해달라는 그런 눈빛이었다.
S.솔리드에선 이런 시선을 받은 적이 언제였더라.
“우웩.”
“한솔이랑 연습을 또 하라고요? 코치님, 제가 미우세요?”
데니스는 나랑 연습하라면 언제나 토하는 시늉을 했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다.
연습을 시작하면 누구 하나 끝장을 보기 전엔 멈추지 않는단 사실을 몸에 새기고 난 뒤엔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스타서퍼 친구들관 아직 제대로 된 몸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선수 수급으로 바쁘기도 했고 그 이후엔 체력단련과 필드 공략에 중점을 뒀다.
솔직히 일대일 대련에 비하면 던전 공략은 플레이하는 재미가 탁월한 편이었다.
지금은 공헌도 파밍과 업적 선점이 우선이기에 필드 위주로 팀을 이끌었는데 팀원들의 눈빛을 보니 PVP 훈련을 병행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음. 필드 공략 시간을 조금 줄이고 일대일 훈련을 시작하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찬성!”
“찬성이요.”
“매일 필드 플레이만 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이제 PVP 실력도 다듬을 수 있겠어.”
“일대일 훈련이라, 재밌겠는데요?”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가운데 제레미만은 썩은 얼굴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만둬···. 하루만 지나도 후회하게 될 거야!”
*
헤르메스에서 제안이 왔다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을 순 없기에 저녁식사가 끝난 뒤 이 사실을 감독에게 전했다.
“오, 오백억?”
“예.”
“그리고 그걸 거절했다고?”
“예.”
“아니 그걸 왜···.”
감독님. 우리 팀 가치가 그것보단 더 되거든요?
“분명 다시 제안해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렴 제가 팀의 일원으로 돈줄을 막을 리 있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스타서퍼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헤르메스가 아니어도 스폰서십은 얼마든지 맺을 수 있습니다. 안 되면 제가 찾아올게요.”
박 감독은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이 온 눈치였다.
“네가 생각한 구체적인 액수가 따로 있는 거야?”
“음.”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한 내가 제법 쓸만한 기준을 내놓았다.
“3년 이하로, 매년 200억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신생팀이니까 서비스해준다는 느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