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구축 (4)
스타서퍼 면접 1일 차.
오늘 하루에만 200명의 대기자를 전부 봐야 하는 관계로 한 명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구조였다.
진행 단계는 총 2개 스텝이었는데 첫째로 구술면접, 두 번째는 실제 플레이를 통한 압박면접이었다.
구술면접 진행은 그린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이 도와줬지만 플레이 현황은 팀원들이 직접 판가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여러분의 면접 진행을 맡게 된 유니크라고 합니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연습실에 200명이나 되는 인원을 전부 몰아넣을 수 없기에 지원자를 시간대마다 따로 분리했고 제일 먼저 면접을 시작하는 오전 A조의 인원은 쉰 명이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 일부는 같이 오셨겠지만 대부분은 초면이시겠죠. 일단 주변에 계신 분 중 아무나 붙잡고 팀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번 테스트는 듀오로 진행됩니다. 시간은 3분 드리겠습니다.”
팀을 짜라는 말에 지원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계속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지원자들은 서로의 클래스와 티어를 물어보며 다급히 자신이 원하는 팀원을 찾아 나섰다.
난데없는 랜덤듀오 결성에 힐러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올라갔다.
팀을 결성한 뒤 어떤 식으로 테스트를 치를지는 알 수 없으나 힐러라면 손발을 맞춰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본전은 해줄 거란 생각에서였다.
쉰 명이나 되는 인원이 팀을 급조하다 보니 크고 작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법사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그들은 원거리 공격이 장기이기에 손발이 꼬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근접 클래스는 동선을 밟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에 팀플레이의 난도가 훨씬 높았다.
어쩔 수 없이 탱커끼리 팀을 짠 사람들은 벌써 낯빛이 우울했다.
“자, 그럼 종이를 하나씩 뽑아주시겠습니까?”
내 손짓에 호영이가 지원자를 사이를 누비며 종이 박스를 돌렸다.
종이박스에 담긴 알파벳은 총 3개. A, B, C였다.
“C를 뽑은 분들은 여기 있는 김민준 선수가 테스트를 봐줄 겁니다.”
“김민준?”
“누구지?”
“레이저다.”
“레이저는 이미 테스트를 통과했나?”
김민준을 잘 모르는 마스터급 지원자들은 수군거리기 바빴고 그랜드 마스터에서 이미 그를 본 적 있는 지원자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C조에 당첨된 지원자들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해볼 만 한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이었다.
민준이가 실력에 비해 명성이 거의 없는 탓이었다.
“B를 뽑은 분들은 제레미 선수가 테스트를 합니다.”
“헤븐메이커?”
C조에 비하면 B는 반응이 한결 나빴다.
헤븐메이커는 이미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수한 경기력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특히 결승에선 한국 최고의 마법사로 불리던 더원을 잡아내며 당당히 S.솔리드의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테스트에서 인상을 남기려면 아무래도 이기는 게 유리한데 C조에 비해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런 반응도 A조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었다.
“A조 테스트는 제가 합니다.”
“윽.”
“아···.”
이미 B조 테스트 담당자가 밝혀졌을 때 A조 지원자들 일부는 맘을 비운 상태였다.
유니크. 세계 최고의 어태커.
프로 선수들도 봉쇄하지 못하는 괴물을 대체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지원자들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테스트가 시작됐다.
*
“어때?”
“음.”
테스트는 셋이 했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감독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봤다.
다들 침묵하는 가운데 제레미가 입을 열었다.
“한국에 인재 많다며!”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오전 지원자 중 승리를 거둔 팀은 단 한 팀도 없었다.
물론 이겨야만 뽑겠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인상적인 선수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호영이 너는 어땠어.”
“어···저는 그래도 이분들은 조금 괜찮은 것 같던데요.”
“그래. 그중에선 젤 나았지.”
제레미가 투덜거렸다.
호영이 찍은 사람들은 오전 테스트를 거친 인원 중 제일 나았던 두 사람이다.
그랜드마스터와 마스터레벨이라고 했던가.
둘의 손발이 잘 맞아 꽤 좋은 케미를 보였던 팀이다.
하지만 내가 구상하는 드림팀에 승선할만한 재목은 아니었다.
내가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나?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스타서퍼는 내가 가진 기억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팀이었다.
정대환까지 무사히 합류한다면 내가 없어도 세계 제일이 되리라.
“기준을 좀 낮추는 게 어때요?”
민준이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갤 저었다.
“어차피 지금 있는 인원으로도 2부 승격전까진 아무 문제 없어.”
“그래도 연말이면 승격전 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승격하면 월드챔피언십도 준비해야 할 텐데.”
외부 관계자가 지금 우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걸음마도 안 뗀 2부리그 팀이 벌써 승격 후 월드챔피언십을 논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이었다.
오늘 테스트에서 나와 제레미의 선전은 이미 예견된 바였다.
이미 2년간의 프로리그를 거치며 실력을 쌓아올린 검증된 카드였으니까.
하지만 민준이는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팀이 영입을 위해 접근했던 건 사실이지만 민준이는 엄연한 원석이었다.
계약을 마치긴 했지만 무대 경험이 없기에 오늘 테스트를 보러 온 지원자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민준이와 테스트를 치른 열여섯 팀 중, 승리를 따낸 팀이 단 한 팀도 없었던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 둘이 손을 잡은 팀도 있었지만 결과를 바꾸긴 역부족이었다.
‘벌써부터 기대되네.’
민준이의 포텐이 완전히 터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 정도면 이미 터진 셈이었다.
리그 최상급 선수가 이미 스타서퍼에 셋이나 있었다.
그리고 남은 선수들은 터지기를 기다리는 복권, 제 몫을 해줄 선수들까지.
이만하면 월챔 우승도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물론 작전의 유동성을 위해 즉시전력감의 보충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월챔에 데려갈 선수를 아무나 뽑을 순 없잖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자고.”
*
면접 2일 차.
첫째 날을 별다른 소득 없이 보냈던 팀원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건 정수형이나 밀러도 마찬가지였다.
제레미는 종일 ‘형의 한국행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를 중얼거리기 바빴다.
녀석의 걱정은 이해가 됐다.
민준이의 실력이 이미 궤도에 오른 건 사실이지만 월드챔피언십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더 많은 선수가 필요했다.
특히 시즌3은 그야말로 격변하는 시기이기에 즉시전력으로 쓸 수 있는 인재풀의 확보가 절실한 상황.
하지만 오늘은 기대해도 될만한 날이었다.
인재가 굴러들어오거든.
내 시선 끝에 고개를 돌리며 연습실 내부를 구경하는 지원자가 눈에 띄었다.
서류를 받을 때부터 이미 찍어둔 녀석이었다.
이름 유성철, 올해 나이 열여섯.
민준이와 같은 나이의 어린 지원자였다.
그는 마스터 순위 9300대로 사실상 거의 꼴찌였다.
이런 친구들은 어느 팀에 가더라도 찬밥 취급이다.
사실 그게 객관적인 시선이다.
이번 모집에 참여한 지원자만 해도 그랜드 마스터가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런데 그런 인재를 제쳐놓고 마스터 티어에 눈독을 들인다?
정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무기가 있었다.
바로 경험을 토대로 한 미래 정보다.
물론 내 정보가 전부 들어맞는 건 아니다.
사이클론의 탈주, 타우러스나 피케 같은 이레귤러의 출현은 나도 예상치 못한 바였다.
하지만 완전히 엇나간 적은 없어 여전히 쓸만한 정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성철은 충분히 눈독 들일만 한 인재였다.
그의 클래스가 음양사인 탓이다. 공수에 도움이 되는 만능 클래스.
하지만 왜색이 짙은 클래스이기에 한국에선 제대로 다루는 선수를 찾기 힘들었다.
한국에선 비주류 취급이지만 방어와 공격을 겸하는 식신을 다루고, 팀전에선 결계를 이용해 전황을 뒤집는 것도 가능한 존재.
설명만 들으면 정말 좋은 클래스지만 분명한 단점도 있었다. 마력 소모비였다.
안 그래도 마력 소모가 큰 마법사 중에 가장 많은 마력을 소모하는 직업.
그 말인즉, 한번 판단을 잘못하면 어처구니없이 게임이 터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적재적소에 마력을 투입하는 능력이야말로 음양사의 등급을 가르는 첫 번째 요소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성철은 검증된 카드였다.
그것도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희귀 클래스를 S급으로 다룰 능력자.
문제는 그가 오늘 테스트에서 죽을 쑤고 있다는 점이었다.
긴장했나?
처음엔 동명이인인가 싶었다. 그만큼 게임이 엉망이었다.
민준이를 상대로 탈탈 털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쟤는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혼자만 못하면 다행인데 똥을 큼지막하게 싸놔서 동료의 발목까지 잡았다.
덕분에 테스트가 끝난 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아크나이트는 씩씩거리며 접속을 풀었다.
누구라도 화가 날법한 상황이었다.
유성철이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테니 말이다.
면접이 모두 끝나고 지원자들이 돌아간 자리.
난 팀원들을 불러놓고 의견을 수렴했다.
“어떤 것 같아?”
“오늘도 허탕이지. 더 말할 게 있나?”
“내가 눈이 높아졌나 봐. 그랜드 마스터 애들도 구멍이 보이더라.”
정수형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인재가 없었단 뜻이다.
어떻게든 유성철을 설득해야 하는 나는 난감했다.
“이 선수는 어때?”
그래도 당첨 복권을 알고 있는데 놓칠 순 없었다.
슬그머니 유성철의 서류를 내밀자 다들 표정이 변한다.
떨떠름하거나, 잘못 들었다는 얼굴로.
어색한 침묵 가운데 제레미가 입을 열었다.
“형. 어디 아파?”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친구를 거론할 수 있느냔 뜻이 명백했다.
“난 멀쩡해.”
“한솔아. 걔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이건 조금···.”
팀원 모두가 유성철의 영입을 반대했다.
“우리 형이 드디어 미쳐버렸어. 얘는 오늘뿐만 아니라 어제까지 포함해도 최하위야!”
지금껏 내가 들이밀었던 카드 중에 이렇게나 가능성이 안 보인 적은 처음이니 반응도 뜨거웠다.
사실 말하는 나도 알고 있다.
오늘 녀석이 보여준 플레이는 그냥 똥이었단 걸.
“자자, 나를 한 번만 믿어줘. 나는 이 친구에게서 가능성을 봤어.”
“무슨 가능성? 1패의 가능성? 내가 볼 때 형은 지금 팀을 완성해야겠다는 압박감에 판단력이 살짝 이상해졌어.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 거 아니래도.”
얘들아. 유성철은 S급이야.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S급 선수라고.
심지어 유성철을 능가하는 음양사는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향후 7년간은 말이다.
전도유망한 외국인 유망주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줄도 모를뿐더러 외국까지 가서 유망주를 찾는 건 이곳에서 선수를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정말 한 명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어?”
침묵뿐이다.
이 녀석은 안 된다고 모든 팀원들이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싹수의 ‘싹’ 자도 안 보이는 녀석이니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모두가 반대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이 친구는 내가 따로 키워볼게.”
“따로 키운다고?”
“확실한 실력이 보장되면 반대 안 할 거 아냐.”
“맙소사···.”
도저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제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연습생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다들 침묵하는 가운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감독이었다.
“어차피 연습생으로 받아서 같이 연습시키면 자리도 차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직 리그가 시작하는 단계여서 그렇지 조금만 지나도 연습생 신분으로 굵직한 팀 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선수들이 많아지게 된다.
팀원들도 굳이 연습생으로 받는 것까지 반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연습생이면 딱히 반대할 이유 없죠. 근데 우리 너무 유망주만 캐는 거 아냐?”
제레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유호영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실전 레벨로 두기엔 확실히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근데 지원자들이 다들 애매하기도 했죠.”
수백 명의 지원자 중에 쓸만한 카드가 한둘은 있겠지 싶었던 팀원들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린엔터테인먼트는 나를 모델로 내세워 열심히 홍보했지만 역시 2부리그에다 소년가장 팀의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실력 있는 유망주들은 1부를 먼저 찾기 바빴다.
나는 팀원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면접은 내일까지잖아. 내일 쓸만한 선수가 한 명 들어올 거야. 즉시 전력감으로.”
“누구? 알아봐 둔 사람 있어?”
“확실해? 또 이런 친구 추천하는 거 아니지···?”
“이번엔 확실해. 검증된 카드야.”
*
3일 차, 마지막 면접날.
다른 때는 면접을 본 지원자들을 즉시 돌려보냈지만 오늘은 달랐다.
면접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난 후, 한 명의 지원자가 연습실에 남아있었다.
그는 당당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환입니다. 아크나이트 클래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 실례지만 나이가?”
“열일곱입니다.”
“나랑 동갑이라고?”
“나는 형님인 줄 알고 인사했는데···.”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건장한 체격, 도저히 고등학생으로 보기 힘든 외모에 제레미는 물론이고 다들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선 환영의 악수를 내밀었다.
어차피 게임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한 번 잘해봅시다.”
“환영합니다!”
이번엔 다들 나와 의견이 같았다.
템페스트 김정환, 본래 트레이더스-365팀의 기둥을 맡게 될 특급 유망주가 스타서퍼의 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