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02화 (102/170)

전력 구축 (3)

정대환과의 듀오는 빡빡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속했고 던전에서 장비 파밍을 했다.

손발을 맞추기 위해 선택한 캐릭터는 유니크가 아닌 엠퍼러였다.

“아크나이트도 해요?”

“아크나이트가 마음에 들어서.”

“하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죠. 클래스 체인지는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아요.”

이 녀석은 진심으로 내가 이세준과 싸우면 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꾸해줄 가치가 없기에 나는 조용히 게임에 몰입했다.

듀오의 목적은 하나, 정대환의 센스를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유호영과 달리 정대환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상태라 면밀한 분석이 필요했다.

혹시나 녀석이 내가 알던 철벽이 아니면 굳이 영입할 이유가 없잖은가.

다행스럽게도 녀석의 재능이 어디 도망간 건 아니었다.

이세준을 동경해 무도가를 선택한 정대환은 수비 밸런스가 상당했다.

무도가를 탱커 다루듯하니 결과가 신통치 않을 뿐이었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하지그래? 효율이 안 좋은데.”

“뭘 모르시네. 원래 무도가는 공수일체가 중요하거든요?”

“참나, 내가 그래도 월드챔피언 출신이거든?”

내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정대환은 조용히 공격 쪽에 비중을 높이며 통로에 남은 몬스터들을 쓸어냈다.

“조금 전 공격 받을 때 말이야. 손동작. 그럴 땐 이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공격을 받고 바로 이렇게, 팔꿈치로 연계를 이어가는 게 효율적이지.”

“저도 알아요.”

툴툴거리면서도 주는 팁은 넙죽넙죽 잘 받는다.

선수 중엔 유독 자기주관이 강해 코치하기 어려운 부류가 있다.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 스타일.

정대환의 입장에선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텐데 조언은 받아들이는 걸 보면 확실히 영리한 선수였다.

개인적인 감정을 밀어두고 챙길 건 챙길 줄 아는 선수들이 성장력이 높은 법이다.

사냥하며 조언하길 반복했을 때 정대환이 내게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뭐가.”

“방금 조언해준 것들요. 전부 도움이 되는 건 알겠는데요. 제가 VT스타즈에 붙으면 손해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근데 말이야. 너는 결국 벽에 막히는 날이 올 거야.”

“···벽이요?”

“너는 이세준을 동경해서 무도가를 선택했지?”

정대환은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하지만 네가 게임하는 스타일을 지켜보니 넌 무도가를 할 재목이 아니야.”

“그럼 뭐가 더 어울리는데요?”

“탱커. 그중에서도 실드나이트 같은 하드 탱커.”

하드탱커가 천직이란 말에 녀석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온다.

5라운드 이상의 팀 게임에서 실드나이트는 꼭 필요한 포지션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대부분 경기 MVP는 암살자나 마법사 위주의 딜러.

탱커는 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저 나이대의 어린 친구들은 주목받길 좋아할 테니 탱커를 싫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탱커는 별 볼 일 없잖아요. 재미도 없고.”

“그건 탱커를 다루는 선수들에게 실례지. 탱커가 얼마나 중요한데.”

“전 꼭 무도가로 성공할 거예요.”

“두 개의 태양은 없다더니?”

“2등이면 충분해요. 세준 형 바로 밑까지만.”

이세준, 당신의 열렬한 신도가 여기 있소.

비록 월드챔피언십에서 거하게 도발하긴 했지만 분명 이세준은 가이아 역사에 획을 그을 가치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그를 동경하는 정대환 역시 마찬가지고.

이런 팬이 있다는 사실은 같은 프로 선수로서 무척 부러운 일이지만 내게는 유호영이 있지 않은가.

비록 클래스는 다르지만 그 역시 세계 제일의 엘레멘탈마스터가 될 선수였다.

나는 평가를 마치고 떠나기 전, 그에게 마지막 주문을 걸었다.

“네가 VT스타즈 면접에 붙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너의 탱커로서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나라는 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아 글쎄, 탱커 안 한다니까요.”

“그럼 나중에 탱커 하고 싶으면 우리 팀으로 오는 거다.”

“까짓거 그렇게 하죠.”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

“그럼 유니크가 리턴했다는 게 사실이란 말야?”

“벌써 바닥에 소문 쫙 깔렸습니다. S.솔리드 공홈에도 이미 기사 떴어요.”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2년 동안 가이아 북미리그의 왕으로 군림했던 유니크, 그가 북미를 떠났단 소식이 전해지자 한미 양국팬들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

-뭐야 이거 진짜야?

-드립이 아니라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유니크가 왜 나가!!!

S.솔리드 팬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프런트에 문의를 쏟아냈고 어떤 이들은 최고의 에이스를 놓친 프로팀 상층부를 무능하다 말했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선수를 탓하는 의견이 나올 법도 한데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서인지 배신을 입에 담는 팬은 많지 않았다.

-내년 시즌권도 결제했는데 현타 온다. 환불됨?

-솔런트 자식들 일 드럽게 못하네.

-이제 북미 어떻게 됨?

-월챔 우승도 힘들걸. 이번에 솔리드 말고 4강 간 팀이 있기나 함?

-걱정마시게. 뒤는 이 타우러스님이 맡을 테니.

-꺼져 분탕충 새끼야!

그리고 잠시 뒤, 제레미까지 계약 해지 공지가 올라오자 솔리드 팬들은 뒷목을 잡고 드러누웠다.

그 시각, 기사를 접한 한국의 모든 프로팀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를 수집하기 바빴다.

유니크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엊그제 소문으로 돌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 최고기량을 지닌 선수였기에 모든 팀이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는 인재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기도 전에 모든 관계자가 유니크의 2부팀 입단 소식을 알게 됐다.

그린엔터테인먼트에서 유니크를 전면에 내세워 입단테스트를 진행하겠다며 광고를 건 것이다.

GE 스타서퍼.

새로운 팀의 출현에 프로팀 입단을 꿈꾸던 이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어떤거 같아?

-2부팀이잖아. 원라이프가 훨씬 낫지 않냐?

-가이아 개인전 비중이 높긴 한데 그래도 원맨 캐리는 힘들지. 이세준 봐봐. 고생만 찍싸게 하고 4강 따리함.

-원라이프 들어갈 실력은 되고?

-형은 그마라서 어디든 팀 골라서 갈 수 있음 ^^;;

-그마가 최저 조건인데 무슨 개소리하냐. 가알못 ㅉㅉ

-면접이나 한 번 볼까.

-브실골들 신났네.

2부 팀이라 가기 꺼려진다는 넷상 의견과는 대조적으로 스타서퍼엔 첫날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문의가 들어왔다.

즉시전력보단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명목하에 마스터 이상의 선수는 모두 면접 지원이 가능했다.

마스터 레벨 이상의 유저는 대략 1만여 명.

유니크가 축하와 함께 월드챔피언십의 커다란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은 이들에게 얼마 되지 않은 기억이었다.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기회.

포스트 유니크를 노리는 유망주들이 스타서퍼의 문을 두드렸다.

*

면접은 총 3일에 걸쳐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솔직히 3일도 빠듯했다.

다른 팀들은 서류에서 상당수의 지원자를 걸러내지만 스타서퍼는 일단 지원 자격을 갖춘 모든 면접자를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누나들이 내일 진치고 있음 볼만하겠는데?”

제레미가 면접자 서류를 살피며 말했다.

녀석이 말하는 누나들이란 데뷔를 준비중인 채린이네 그룹이었다.

내가 서준혁 대표와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있을 때 안무 연습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 그 친구들을 본 적이 없지만 제레미의 반응을 보면 멋진 친구들이란 건 짐작 가능했다.

“그 친구들이랑 면접이랑 무슨 상관이야.”

“···미인계?”

“쓸데없는 소리.”

-형. 저 도착했는데요.

면접 일정은 며칠 뒤부터였지만 미리 팀에 소개할 선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가 데려온 친구는 면접 프리패스 대상자인 유호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유호영이라고 합니다! 열다섯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이 친구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유호영을 팀원들이 박수로 환영했다.

박민석 감독은 아직 이쪽에 조예가 깊지 않아 이렇게 쉽게 선수를 받아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팀원들은 유호영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한솔이 형 안목이면 보증 수표지. 그렇고말고.”

“열여섯에 마스터 상위야?”

“와, 옛날 생각난다. 나도 마스터 때 입단했는데.”

“참, 이 친구 말고 한 명 더 있다면서?”

“걔는 시간 좀 더 걸려요. 일단 우리끼리 손발을 좀 맞춰볼까?”

현재 사옥 지하에 자리 잡은 연습실엔 고가의 접속기 스무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본래 열두 대였는데 면접도 있고 여덟 대를 더 늘린 상태였다.

“뭐야 이 친구 닉네임이···크흡.”

“풉크크. 뭔데!”

가장 먼저 터진 정수형을 시작으로 산발적인 웃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킹갓니크, 누가 봐도 정말 인상적인 닉네임이었다.

그러나 웃고 떠드는 것도 잠시, 본격적으로 상위 던전 공략이 시작되자 다들 웃음기를 싹 지우고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직 코치도 없고 전력분석팀도 없는, 그저 팀원들끼리의 조촐한 손발 맞추기였지만 분위기만큼은 아주 진지했다.

공략속도도 아주 빠른 편이었는데 선두에서 길을 뚫는 삼각 편대의 손발이 척척맞았다.

김정수, 김민준, 밀러 호프만.

이 셋이 만들어내는 균형의 힘은 시원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다소 평범했던 정수 형이 체력을 기르고 이만큼 성장한 건 역시 민준이의 힘이 컸다.

아크위자드를 전세계에서 가장 잘 다루게 될 녀석.

녀석의 플레이가 다른 팀원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정수형과 밀러의 움직임 또한 무척 날렵했다.

덕분에 나는 뒤쪽에서 따라붙는 유호영을 쉽게 챙길 수 있었다.

“캐스팅은 주문으로 외우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그게 프로의 기본이야.”

“예.”

요즘 실력 있는 마법사는 전부 주문을 외는 일 없이 머릿속으로 캐스팅을 마치고 마력을 불어넣는다.

프로 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많은 이들이 빠른 마법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유호영의 마법 문제가 심각한 건 아니었다.

이미 그는 자주 쓰는 마법은 영창 없이 쓸 수 있는 레벨이었고 충분한 자질이 있었다.

그렇게 던전 심층부에 돌입하자 육비(六臂)의 거인이 우릴 맞이했다.

헤르메스에서 밝힌 정보에 따르면 이 던전의 적정 공략 인원은 10명 전후,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스에게 달려들며 전투를 시작했다.

페이스가 급격히 올라가자 유호영은 숨이 찬 듯 호흡이 흐트러졌다.

심록의 신전이라 불리는 이곳은 결코 쉽지 않은 공략 장소였다.

이런 고위 던전은 미리 정보를 돌려 브리핑을 하고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공략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기존에 한국에 남아있던 3인방은 이미 여러 번 신전을 공략한 경험이 있었고 제레미나 나는 자색궁전을 비롯해 훨씬 어려운 탑티어 던전을 공략한 경험이 있으니 이 정돈 식은 죽 먹기였다.

공략에 애를 먹는 건 유호영이 유일했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S급 프로선수 둘, 그리고 그런 프로가 지시하는 거친 훈련과정을 몇 개월 이상 해온 팀원들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붙었다면 그거야말로 놀랄 일이었다.

“캐스팅에 집중해!”

“예!”

아무리 연습을 해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캐스팅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1군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선수간의 시합에선 이런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르기에 간과할 수 없는 요소였다.

이번 던전 공략을 시작하며 내가 유호영에게 주문한 건 단 하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캐스팅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필드와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마법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바로 캐스팅이다.

굵직한 마법은 마력의 배열이 난해한 편이라 더 많은 준비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하필 마법을 준비할 때 적의 강공이 날아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법사는 전 직업 중 몸이 가장 약한 클래스다.

심지어 힐러보다도 더 잘 쓰러진다.

덕분에 가이아에서 제일 많이 죽어 나가는 직업도 마법사였다.

그런데 캐스팅을 멈추지 말라니, 판단 한 번 잘못하면 데스패널티를 받아 꼼짝없이 최소 하루를 쉬어야 한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캐스팅을 중단하고 회피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마법을 완성하란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육비거인은 아주 영리한 놈이었다.

대개 이런 상위 던전의 보스들은 파티의 약점을 파고드는데 능했는데 녀석의 눈엔 유호영이 가장 만만했던 모양이다.

여섯 개의 팔이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손에 들린 칼날이 번뜩이며 유호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보기만 해도 살벌한 공격, 유호영은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제자리에서 계속 마법을 준비하는 건 미친 짓이란 속내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리더가 캐스팅에만 집중할 것을 지시하지 않았던가.

유호영은 금세 정신을 다잡고 마법을 전개했다.

거인이 쏟아내는 연격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 했다.

어찌나 대단한지 주변 바닥에 균열이 일며 파편이 사방을 휩쓸었다.

“맙소사···.”

바깥에서 공략을 지켜보던 감독조차 신음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거대한 칼에 휩쓸려 흔적도 남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을 때 먼지 구름을 뚫고 빛줄기가 거인을 연달아 타격했다.

‘어떻게?’

감독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화면을 주시했다.

“팀전에서 마법사는 동료를 믿어야 해. 이대로 간다!”

든든한 목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이 걷혔다.

그곳엔 우직하게 방패를 들고 선 엠퍼러가 유호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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