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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01화 (101/170)

전력 구축 (2)

PC방에서 유호영의 플레이를 지켜본 뒤, 계약 이야기를 위해 주변 카페를 찾았다.

이번엔 옆에 달고 다니는 병아리들은 떼고 온 상태였다.

“저 합격한 건가요?”

대답을 기다리는 녀석의 눈빛이 아주 똘망똘망 하다.

넌 내가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됐을 때부터 합격이었단다···.

“플레이가 썩 괜찮더라.”

내 말에 녀석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한다.

평소 좋아했던 스타가 해주는 칭찬인데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유호영의 나이 올해 열다섯, 올해는 고작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이제 내년이면 열여섯이 된다.

제레미, 민준이보다도 어린 나이다. 그 점을 생각했을 때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스타서퍼는 그린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든 2부리그 팀이야. 내년 5월부터 1부와 마찬가지로 정규 리그를 시작할 거고 상위 2개 팀은 1부 팀하고 승격전을 치를 기회를 받게 될 거야.”

“꼭 하고 싶습니다!”

유호영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같이 하고 싶단 의사를 강력하게 전해왔다.

“나도 널 추천하고 싶기는 한데.”

추천하고 싶은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데려갈 거지만.

“이게 학업 문제가 생기잖아. 나는 고등학교도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건너간 거라 중졸이고. 부모님은? 너 게임하는 건 알고 계셔?”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미처 생각지 못했단 얼굴이다.

“아, 아니요. 그래도 형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요.”

“많이 벌 자신은 있고?”

“어떻게 안 될까요···?”

“열심히 할 각오가 됐다면 성공할 수 있지. 그것까진 내가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게임이라고 우습게 봐선 안 된다는 거야. 프로리그 정상에 서는 팀, 그리고 그 선수들은 보이지 않게 많은 노력을 하거든. 정말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게임에 재능이 있어서, 재미있어서, 공부하는 것보단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발을 들인 많은 이들이 현실은 이상과 다르단 걸 깨닫는다.

가이아는 현재진행형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 매년 엄청난 숫자의 유망주들이 프로 문턱을 두드리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이들은 극히 적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으니까!

게다가 이 압도적 숫자의 지원자에 비해 1군 자리는 너무나도 한정적이었다.

각 메이저 지역에 배치된 1군 팀 숫자는 열 개, 1개 팀당 최대 인원은 열둘이다.

4대 메이저 지역의 1군 선수 숫자를 전부 합쳐도 480명밖에 되지 않는다.

까마득한 유저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좁은 문턱이었다.

내가 그래도 마스터에서 이름 좀 날렸는데, 그래도 난 그랜드 마스터였는데, 나 정도면 금방 프로 무대를 제패할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팀에 입단하면 가장 밑바닥인 연습생 신분이 그들을 맞이한다.

일단 그 단계에서 8할 가까운 선수들이 떨어져 나간다.

와, 이게 프로 레벨인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경쟁자들.

하지만 그들도 연습생일 뿐이다.

이 친구는 이런 실력으로 왜 여기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 벽을 깨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

인내의 시간.

치열하게 연습생들 사이에서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2군 선수로 부름을 받게 된다.

“자넨 오늘부터 2군이야.”

처음 그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쁘지만 이내 2군 선수라는 게 2부리그 주전보다 좋을 것도 없단 사실을 깨닫는다.

버는 돈은 아마 비슷한 수준, 하지만 2부 경기는 TV에 나오기에 팬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다.

반면 2군 선수들은 여전히 암흑 속이다.

심지어 연습생 때보다 더 격한 경쟁 환경 속에서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2군 생활을 오래 하면 성인군자도 지랄 맞아 진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 견제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부도 명예도 없는 공허한 자리.

소수의 선수만 누리는 달콤함을 쫓아 프로씬에 발을 들인 자들에겐 이때가 가장 혹독한 시기다.

그렇게 1군에 올라가기만을 기다리며 다시 버티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기회가 주어진다.

“로테이션 돌릴 예정이니까 준비들 해라.”

1군과 2군 선수 자리를 바꾸는 로테이션.

성적이 안 좋은 팀일수록 이 로테이션 기회가 잦은 편인데 원인은 팬들의 민심이었다.

-저 자식이 범인이야!

-저놈만 아니었음 오늘 경기 잡았는데!

-아오! 감독은 눈이 없나?

-감독 양아들이자너;;

내려가는 쪽도, 올라오는 쪽도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2군으로 내려가는 선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 올라오는 쪽은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선수는 갈림길에 선다.

운이 좋아 제대로 된 정답을 찾는다면 그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잡아 실력을 검증해 보일 것이다.

만약 실력 검증을 제대로 마치면 무사히 1군에 안착할 수 있다.

이게 끝이냐고? 천만의 말씀.

애석하게도 1군 선수 열두 명 중에 시합에 나서는 인원은 한정적이다.

선수층이 얇은 팀은 1군에 들고도 무대 한 번 오르기 힘든 경우가 왕왕 생긴다.

연습생을 뚫고, 2군을 뚫고, 1군에서도 경쟁을 벌여 승리한 다음에야 무대 위에 앞에 설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싶다.

‘이쯤 하면 됐겠지.’

프로게이머 지망생의 현실과 마주한 유호영은 얼굴은 어두웠다.

물론 내 목적은 녀석을 좌절시키려는 게 아니라 적당한 현실감각을 일깨워주려는 것이었다.

동경하던 스타와 한팀이 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얼마나 꽃밭이겠는가.

앞으로 격한 훈련도 해야 하는데 미리 각오를 다져두지 않으면 잡음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너한테는 재능이 보여. 노력 여하에 따라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고 봐.”

“정말요? 진짜 제가 재능이 있어요?”

“믿어도 돼. 나는 한 입으로 두말 안 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한 번 같이 해보자.”

“예. 형!”

가끔 두말 할 때도 있긴 하지만 녀석의 얼굴을 보아하니 굳이 사족을 붙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

조만간 계약서에 도장 찍자는 말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유호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요?”

“왜 있잖아. 정대환이라는 친구. 같은 학교라고 알고 있는데? 잘 모르나?”

정대환, 향후 한국의 철벽이 될 재목이었다.

세계 최고 레벨의 실드나이트로 명성을 떨치며 수많은 팀들을 좌절시킨 철의 방패.

스타서퍼를 드림팀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친구였다.

“혹시 걔도 영입 대상 인가요?”

“맞아. 혹시 껄끄러운 이유라도 있어?”

“있죠. 아마 직접 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걸요.”

“음?”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정확히 도로 반대편에 있는 PC방이었다.

그곳에선 간판과 사람만 다를 뿐, 조금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재능있는 플레이어가 펼치는 놀라운 플레이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외부모니터를 통해 랭크매치중인 정대환의 플레이를 볼 수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대환이 왜 무도가야?

한국 최고의 실드나이트가 될 녀석이 무도가라니!

혹시 또 나 때문인가?

과거엔 별 볼 일 없던 나지만 지금은 유호영의 우상이 되지 않았던가.

어쩌면 정대환도 나의 플레이에 감동한 건 아닐까?

하지만 김칫국을 마시는 것도 잠시, 상대의 닉네임을 확인한 나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세준짱짱.

유호영이 녀석을 싫어하는 이유가 약간 이해가 됐다.

녀석은 이세준의 팬이었다.

*

연락처도 교환했으니 일단 호영이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옆에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예상치 못한 불이 번질 것 같아서였다.

“2부리그요? 관심 없는 데요?”

정대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중학 유도부를 겸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지 몸이 다부진 친구였다.

누가 봐도 방패 들려주면 잘할 것 같은 친구인데 무도가를 잡고 있으니 내가 다 아쉬울 정도였다.

처음 나를 알아본 녀석은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선 이야기에 집중했다.

유호영의 반응과는 정반대였다.

“저는 VT스타즈에 들어갈 거라서요.”

그렇겠지. 이세준 팬이니까.

동경하는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팬이 아니겠는가.

“닉네임이 세준짱짱···이던데 특별히 이세준 팬인 이유가 있을까?”

“하!”

그것도 모르느냐는 얼굴, 질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정대환은 손짓을 섞어가며 온몸으로 이세준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설명했다.

“플레이를 보세요. 플레이를.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어태커예요! 실력 차이가 뚜렷한 가이아에서 그는 엄청난 전적을 쌓아올리고 있죠. 레.전.드라고요. VT스타즈의 경기를 오래 보다 보면 느껴지는 혼이 있거든요?”

이세준이 정말 잘하긴 하지만 그건 좀···.

“특히 이세준의 플레이가 그렇죠. 매 게임 한판한판이 장인정신이 담긴 역작 같다고 할까요? 섬세한 컨트롤이며 전략, 힘의 배분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요. 예. 그냥 이세준이란 선수 자체가 예술이고 스토리입니다. 모든 가이아 팬이라면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중증환자가 여기 있었군.

눈빛도 좀 뭔가 맛이 간 사람처럼 몽롱해 보인다.

그 뒤로도 녀석의 이세준 찬양은 한동안 더 이어졌다.

이런 상태라면 내가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영입을 주장한다 한들 우리 팀으로 와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VT스타즈 뿐만 아니라 모든 1군 팀은 유능한 인재를 모집하기 위해 항상 테스트의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 정도면 진작 테스트를 위해 VT스타즈를 방문했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 넌 대한민국 최고의 어태커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그냥 이세준이 좋은 거야?”

“둘 다요. 이세준이 곧 대한민국 최고의 어태커니까.”

“혹시 내 경기도 본 적 있어?”

“뭐, 월드 챔피언십때 겸사겸사요.”

이세준의 팬이면 내게 좋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을지도 몰랐다.

조 추첨 때 제법 날카로운 신경전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세준? 솔직히 나한텐 못 미치는 선수야.

유호영이었다면 이렇게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정대환은 단숨에 자릴 박차고 나갈 친구였다.

나는 좀 더 부드러운 대화를 골라야만 했다.

“이세준이 특별한 선수인 건 인정해. 그래서 나도 꼭 한번 붙어보고 싶었어. 결국 성사되진 않았지만.”

“그럼 무조건 이세준이 이겼죠.”

“뭐 네 말대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VT스타즈는 국내 리그 제패에 실패했어. 월드챔피언십에서도 원라이프에게 다시 잡혔고.”

“그거야 다른 선수가 받쳐주질 못하니까 그렇죠! 세준 형이 혼자 다 이기면 뭐해요. 다른 놈들이 점수 다 깎아 먹는데. 저는요. 꼭 VT스타즈에 들어가서 세준 형의 우승을 도울 거예요.”

어림없는 소리.

벌써 마스터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간 유호영과 달리 정대환은 아직 마스터 하위권, 몸에 맞지 않는 클래스를 다루고 있는 게 원인으로 짐작됐다.

무도가를 다루는 정대환은 이세준의 우승을 만들어줄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실드나이트를 다룬다면 상황은 좀 나아지겠지만 그 선택지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결국 실드나이트는 팀전에 강한 클래스.

VT스타즈가 우승하려면 실드나이트가 아닌 더원이나 제레미처럼 개인전에서 강한 선수가 필요했다.

“면접에 붙을 자신은 있어? 아직 마스터에서도 그렇게 높지 않던데. VT스타즈가 비록 우승은 못 했어도 마스터 아래쪽에 정체된 무도가를 받아주진 않을 거야.”

“금방 더 올릴 수 있어요. 아마 금방 그마까지 갈 걸요?”

“그럼 약속 하나만 하자.”

“무슨 약속이요?”

“VT스타즈 면접도 보고 게임도 얼마든지 해. 대신 내년 봄까지 그마 입성을 못하면 그땐 우리 팀으로 와.”

“제가 왜요?”

“내가 널 그마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만약 봄까지 그랜드마스터가 되지 못하면 직접 나서서 실력을 키워주겠단 제안.

다른 건 몰라도 이미 이 레벨까지 올라온 게이머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프로라면 개나소나 그랜드마스터지만 일반 유저에게 그랜드마스터는 꿈의 경지다.

“내년 봄까지면 시간도 충분하고, 마스터 밖에 안 되는 유저를 데려다가 실력도 높여주고 좋은 조건에 계약해서 프로 데뷔까지 시켜주겠단 뜻이야. 우리 팀엔 나뿐만 아니라 제레미까지 있어. 다른 팀원들도 훌륭하고. 2부에서 1부로 승격하는 건 순식간이야. 가이아 팬이라면 곧 스타서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걸? 어때? 이만하면 네게 좋은 이야기지 않아?”

정말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정대환의 입장에선 이세준과 같은 팀을 할 수 없을 거란 사실만이 유일한 흠이겠지.

나의 제안에 정대환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긴 하네요. 근데 설마 노예계약 같은 건 아니죠? 장기계약에 묶여서 피해 보는 프로게이머들도 있다던데.”

“많이 알아봤나 보네. 걱정 마. 우리 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줄 팀은 없으니까.”

아직 중학생, 나와 나눈 대화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정대환과 악수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자, 계약 얘긴 이만하면 됐고. 같이 듀오나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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