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구축 (1)
그린엔터테인먼트가 계약을 마무리 지었을 때, 한국 프로팀 사이에선 어떤 소문 하나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유니크가 국내로 리턴을 해?”
처음엔 근거 없는 찌라시라 생각했다.
유니크가 몸담은 S.솔리드는 세계 대회 우승을 통해 전 세계 최고의 프로팀으로 인정을 받지 않았던가.
게다가 S.솔리드가 선수들에게 보장한 계약조건은 감히 다른 팀들이 따라 하기 힘든 레벨임을 업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2년간 해외 생활을 했으니 고국에 대한 향수가 사무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조용히 국내 리턴을 했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법, 소식을 전해 들은 일부 프로팀은 지시를 내려 더 근거 있는 정보를 모아올 것을 주문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반드시 우리 팀으로 데려와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다른 선수도 아니고 유니크야. 원래 한국인이고. S.솔리드는 유니크 덕분에 우승한 거 몰라? 사실관계부터 확인해!”
이미 버스가 떠난 줄도 모르고 국내 프로팀 관계자들은 서둘러 옷가지를 걸치고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여러분과 한솥밥을 먹게 된 박민석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모두 박수!”
박민석.
선수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가 우리 GE 스타서퍼의 첫 감독이었다.
본래 그린엔터 밑바닥부터 시작한 인물로 수완이 좋은 남자라고 했다.
잘할 수 있으려나?
아이돌과 배우를 관리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실장이라곤 해도 지금은 e스포츠 팀의 감독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금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연예 기획사의 실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듣고 나서는 의외로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사가 짧은 신규 e스포츠 종목의 경우 코치나 감독이 지녀야 할 덕목은 선수케어, 그리고 장악력이다.
축구 같은 역사가 긴 스포츠는 해당 종목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전문가가 감독직을 수행하곤 하지만 가이아 같은 신생 종목은 모든 요소를 꿰뚫는 전문 인력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이건 S.솔리드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이언 코치도 선수보다 가이아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다년간의 프로생활로 무엇이 선수들에게 도움되는 일인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가령 스크림.
시즌을 개막 전, 그리고 도중에 빠지지 않고 진행되는 것이 타 팀과의 연습 경기다.
이 스크림 일정을 잡는 건 전적으로 감독, 코치의 몫이다.
선수는 오로지 게임 내적인 요소에 집중하게 하고 외부의 일은 모두 다른 이들이 도맡아서 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감독 인사는 꽤 적절한 조치로 보였다.
선수를 케어해줘야 할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할 건 비단 스크림 뿐만이 아니었다.
스크림 외에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중 하나엔 사건·사고도 존재했다.
게임만 다루는 프로게이머와 사건·사고를 연관 짓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들도 사람이기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인성 논란이 터져 핫이슈가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물론 그런 일이 없어야 되겠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터져 시끄러워지면 박민석 감독은 가진 인맥과 경험을 동원해 순식간에 진화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소속 배우의 사건이 터지면 해결하고 각종 계약의 주요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본래 기획사 실장의 업무였다.
방송국 작가, PD, 신문기자들과의 인맥이 곧 실장의 능력이라고 하니 당분간 스타서퍼의 좋은 이미지 구축은 순조로울 듯했다.
“현재 코치 자리가 공석입니다. 코치는 최소한 업계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적임자를 데려올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한 식구가 됐으니 편하게 말해도 괜찮겠죠?”
“예~.”
“그런데 시즌 시작은 5월인데 우리 팀은 선수가 너무 적은 거 아닌지?”
감독의 말에 다들 주위를 둘러본다.
말끔한 연습실에 앉아있는 선수라곤 나와 제레미, 정수형, 밀러, 민준이까지 다섯 명 뿐이었다.
“내가 급하게 공부를 해오긴 했는데 다섯 명으로도 게임이 가능한 거야?”
“올해부턴 인원 제한 없어져서 가능은 합니다.”
“자네가 이 팀의 에이스라고 들었는데. 세계 대회 우승팀 출신이라고?”
“예.”
“저도 월챔 우승팀 출신입니다!”
자랑하고 싶었는지 제레미가 본인도 우승자 출신이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인원은 적지만 포텐이 굉장히 뛰어난 팀인 거네. 그럼 의견을 한 번 모아볼까? 어떻게 선수를 충원하는 게 좋을지 말이야.”
“제가 먼저 의견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한국에 오기 전, 민준이에게 유망주에 대한 정보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 꼭 잡고자 하는 둘은 아마추어 당시 닉네임까지 기억해내 정보를 넘겼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민준이는 그들을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닉네임만 가지고 사람을 찾으라니, 심부름센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영입하려고 봐둔 친구들이 있습니다. 만약 감독님이 특별히 추천하는 선수가 없다면 시간을 조금 주셨으면 합니다.”
“시즌 일정만 맞출 수 있으면 얼마든지 괜찮아. 선수 수급 문제는 최대한 네 의견을 배려하라고 대표님이 말씀하셨거든.”
현재 인원은 힐러 한명을 포함한 다섯.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시즌 전까지 단 한 명의 유망주도 찾지 못한다 한들 우리 다섯이면 1부에서도 충분히 통할 레벨이었다.
“따로 생각해둔 인원이 있다면 면접은 중단할까?”
“면접이요?”
“연예기획사에서 연생을 모으려면 면접이나 길거리 캐스팅이 제일 보편적이야. 우리가 프로게이머 연습생을 모집한다고 하면 좀 신기하게 생각하겠지만 네 이름을 내세우면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
큼지막한 면접 문구를 잠시 떠올려봤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 정한솔과 함께할 기회! 지금 당장 연습생에 도전하세요!
좀 오그라드는데?
“감독님. 면접도 진행하시죠.”
현재 모인 팀원은 다섯 명.
모아야 할 인원이 많기 때문에 면접도 진행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어쩌면 면접을 통해 생각 못 한 대어를 낚을 수도 있었고 내가 정보를 확보한 예비 선수는 고작 두 명에 불과했기에 더 많은 후보가 필요했다.
“그럼 동시에 진행하는 거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자 난 팀원들을 불러 모아 추가 미션을 부여했다.
“같이 게임을 하면서 합을 맞추면 좋겠지만 지금 더 급한 게 선수 수급이잖아. 게임하면서 실력 좋은 사람 찾으면 알려줘.”
“기준은?”
“음. 기준은···.”
“형 같은 후보 찾아오라고 하는 건 아니죠?”
“데려오라고 하면 데려올 수는 있고?”
한국 최고의 무도가로 명성을 날린 이세준 정돈 돼야 나의 자릴 노릴 자격이 있었다.
어딜 가서 그런 선수를 데려온단 말인가.
“사람 눈에 스카우터가 달린 것도 아니고 일단은 잘할 거 같은 선수로 찾아보자고.”
“오케이.”
*
스타서퍼에서의 첫 미팅을 마친 내 다음 행선지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어느 중학교였다.
민준이에게서 한참이 지나도 사람을 찾았단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지라 국내에 돌아오기 전, 돈을 풀었었다.
당시 내가 알고 정보는 세 개였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찾고자 하는 사람 둘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을 거란 단서.
사진 한 장 없지만 사람을 찾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로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운이 좋은 셈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정보가 아니었다면 찾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테니 말이다.
원했던 정보는 해당 인원의 위치뿐이었지만 그 외 자질구레한 정보도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바람을 피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하나둘씩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톡 쏘는 탄산을 마시며 매의 눈으로 학생을 스캔하고 있을 때 나의 목표물 1호가 빛을 뿜으며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찾았다.
실제로 빛을 뿜는 건 아니었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우리 팀을 드림팀으로 만들어줄 열쇠.
재빨리 음료수 캔 두 개를 더 사서 목표에게 다가갔다.
“학생.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같이 하교 중이던 녀석이 나를 올려다본다.
“누구세요?”
“누구?”
“몰라.”
“네 이름이 유호영 맞지?”
“어? 절 아세요?”
유호영.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던 두 번째 마도사.
민준이가 아크위자드를 통해 대인전 최강의 어태커로 이름을 날렸다면 이 녀석은 엘레멘탈마스터로 공격과 수비, 지원 밸런스의 완벽을 이뤄낸 최고의 올라운더였다.
“알다마다. 너 학교 끝나면 저기 PC방 가서 맨날 가이아 한다며.”
내 말에 옆에 있던 친구놈들이 빵 터졌다.
“미친놈. 그러게 공부 좀 하랬지. 크크.”
“시험공부 대신 겜할 때 내가 알아봤다.”
“모르는 형까지 찾아오게 하는 겜돌이 수준~.”
“닥쳐.”
나는 녀석에게 미리 준비한 음료수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엔 그린엔터테인먼트 가이아 팀 스타서퍼, 선수 정한솔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오 명함.”
“개쩔어. 형? 가이아 선수예요?”
“스타서퍼? 어디 팀이지?”
“개 듣보 팀인데.”
“지금은 그렇지만 곧 엄청 유명해질 팀이야.”
꼬맹이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명함을 받아들고 침묵하던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요리조리 살폈다.
“형. 그 선글라스 잠깐만 좀 벗어보시면 안 돼요?”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걸쳤던 선글라스다.
슬쩍 벗어 이마에 걸치자 녀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잠시 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돌아볼 만큼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니크다아아아-!”
*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병아리 세 명을 데리고 PC방에 들어온 나는 녀석들에게 인심을 베풀었다.
“진짜 형이 다 내는 거 맞죠?”
“그렇다니까. 너희는 친구 잘 둬서 좋은 줄 알아.”
“개꿀.”
삐약거리는 두 녀석이 간식을 골라 담고 있을 때 나는 유호영의 플레이를 캡슐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유호영입니다. 유니크 선수 완전 팬입니다!”
교문 앞에서 갑자기 괴성을 지른 녀석이 그렇게 말했다.
민준이가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이해가 됐다.
분명 전생에서 유호영의 아마추어 닉네임은 킹슴도치였다.
그러나 지금 관전으로 보이는 녀석의 닉네임은 킹갓니크였다.
이러니 못 찾을 수밖에.
동네에선 이미 제법 유명할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레벨이었다.
나 말고도 이미 PC방에 있는 학생이며 어른들이 녀석의 플레이를 외부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PC방이라고 해서 남의 플레이를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녀석이 허락을 해줬기에 가능한 외부 관전이었다.
가이아 캡슐룸의 비용은 학생이 내기 비싼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녀석은 손님을 관전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무제한 PC방 이용권을 사장에게서 얻어냈다고 했다.
이제 겨우 열여섯, 마스터 레벨 최상위 등수를 달성한 작은 마법사의 플레이는 손님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했다.
‘아직 다듬을 부분이 많지만 재능만큼은 확실해.’
보기만 해도 배부른 존재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현재 한국 최고의 엘레멘탈 마스터 장인이라 불리는 더원을 뛰어넘을 재목, 나는 천재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셈이었다.
“유니크 선수가 직접 찾아오실 줄이야. 저희 PC방의 영광입니다. 요것도 좀 드시면서 편히 보세요.”
PC방 사장님이 직접 찾아와 의자며 간식, 음료를 제공했다.
꼬맹이들이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이제 이 작은 PC방에 내가 유호영을 지켜보러 온 프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맙소사!”
“왜 그래?”
“유니크다! 유니크가 우리 PC방에 왔어!”
“S.솔리드 유니크?”
젊은 친구들은 상당수가 나를 알아보는 분위기였다.
이게 싫어서 선글라스를 쓴 건데 아무 소용 없게 돼버렸다.
사인 요청도 적잖이 들어왔다. 반면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그저 유명한 사람이 왔겠거니 하며 유호영의 플레이를 관전하는데 열심이었다.
“내가 저 녀석은 잘 될 줄 알았어.”
“떡잎이 다르잖아. 떡잎이.”
PC방 단골 손님들은 동네 출신 프로게이머가 나올 거라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더 이상의 테스트는 불필요했다.
내가 알던 닉네임과 다르기에 혹시나 했지만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유호영의 티어는 아직 마스터지만 내 눈엔 이미 녀석의 잠재력이 꿈틀거리는 게 선명히 보였다.
세계 최고의 보석이라 할 수 있는 인재를 누구보다 먼저 찾아냈다.
심지어 닉네임조차 ‘킹갓니크’ 가 아니던가.
이건 이미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