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93화 (93/170)

증명하는 자 (6)

올해를 기점으로 가이아의 인기는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작년엔 북미에서만 리그가 진행됐지만 세계 4대 메이저 지역과 각지에 리그가 설립된 덕이다.

경기 수를 다 합치면 수백 게임 이상, 게임 수가 많으니 경기장 관중 합산 규모도 상상 이상이다.

전 세계의 서로 다른 팬들이 둘러앉아 경기를 시청하는 셈인데 놀랍게도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뛰어난 프로 선수에 대한 포커싱이다.

티켓을 사서 경기를 지켜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구기 종목을 관람하듯 그냥 좌석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유저들.

주로 40대 이상의 관객들이 이런 시청방법을 즐겼다.

30대 이하로 내려가면 보통 줌을 당긴다.

선수 1인칭 시점으로 즐기거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시야를 제공하는게 VR경기장의 묘미다.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청하던 관중들도 5라운드 이상의 팀전으로 돌입하면 공통점이 발현된다.

1인칭이든 3인칭이든, 선수 한 명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는 쪽으로 크게 쏠리는 것이다.

그 대상은 대개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 눈 깜짝할 사이에 치명적인 일격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자랑하는 초인들이다.

S.솔리드와 로열드래곤클럽의 경기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당연히 유니크였다.

전세계 최고의 어태커라는 칭호를 두른 북미 최강의 무도가.

날렵하게 건물을 발판 삼아 공중을 뛰어넘는 동작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했다.

유령처럼 건물에 숨어든 유니크를 노리기 위해 로열의 다크레인저가 매복했을 땐 팬들이 다시 한 번 놀랐다.

-이거 위기 아니야?

-유니크라고 해도 저 위치에서 날아드는 공격은 못 피해.

-와 유저모드 풀어봐. 저 구석 ㄹㅇ 감쪽같다.

북미 팬들은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관중들이야 누가 어디에 있고 미리 자릴 잡고 있는지 다 보이지만 유니크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정말 감쪽같은 은폐 스킬.

그림자발자국을 쓴 유니크가 1층에 있는 상대에게 접근했을 땐 곧 게임이 결착지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유니크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왜 공격 안 해?

-한 명이 없잖아. 뭔가 냄새가 난다 이거지.

-저 상황에서 자길 노린다고 생각하나?

-매복 가능성까진 생각할 수 있어도 위치는 못 찾을걸?

천하의 유니크도 숨어있는 로열의 다크레인저를 찾아내진 못한다.

보이질 않으니까!

심지어 S.솔리드 선수들조차 벤치에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유니크의 손에서 방출된 열양지가 다크레인저의 몸을 뚫자 관중들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미쳤네!

-???????????

-뭐냐 저게;;

-사람이야?

솔리드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포효하는 함성을, 로열의 팬들에겐 절로 욕이 나오게 하는 환상적인 플레이였다.

“맙소사! 유니크 선수가 다시 한 번 신들린 플레이를 해냅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 다크레인저는 갑작스런 기습에 연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의 기척을 조금이라도 눈치챘더라면 이렇게 크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크의 공격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뿜어졌고, 그만큼 강렬했다.

갑자기 팀원의 체력이 깎이자 이변을 감지한 로열 선수들은 화력전을 멈추고 급히 위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조차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잡아!”

분노한 음양사가 식신을 쏘아 보냈지만 다크레인저 암살에 성공한 유니크는 다시 유유히 사라져 공기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괴물같은 놈!’

이제 로열 선수들은 어디에서 날아들지도 모를 공격을 경계하며 바깥에서 달려오는 S.솔리드 선수들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당장은 거점으로 벌어놓은 점수 덕에 유리했지만 전멸 당하면 아무 의미 없는 점수였다.

‘그래. 전멸만 피하자.’

코너에 몰린 그들은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판정승을 노리겠단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북미, 중국의 모든 해설진이 안타까운 목소릴 냈다.

“아아, 로열드래곤클럽. 최악의 선택을 했어요!”

“저런 때일수록 맞서 싸워야죠!”

“유니크를 상대로 도망이라뇨. 다 죽습니다!”

빠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유저를 상대로 등을 보이고 도망을 친다?

세 갈래로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바라보는 유니크는 희게 웃었다.

승부에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었다.

*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선수 저 함성이 들리시나요?”

“귀가 떨어질 것 같은데요. 조금만 살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이 맘에 들었는지 관중들이 킬킬거렸다.

함성이 어찌나 큰지 도저히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여서 대화를 이어가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로열드래곤클럽을 꺾고 드디어 결승전 자리를 먼저 차지하셨어요. 지금 소감은요?”

“일단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결승전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문에 의하면 정말 연습벌레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글쎄요. 저희는 필요한 만큼만 연습하기 때문에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봅니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제리가 눈썹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제리 뿐만이 아니었다.

제리를 시작으로 모든 팀원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정 못한다자너.

-안봐도 뻔함. 하드코어 훈련으로 땀냄새 지릴듯;

-우승까지 얼마 안남았다! 힘내!

“더 힘낼 것도 없다!”

-ㅋㅋㅋㅋㅋㅋㅋ

-제리 대노 ㅋㅋㅋㅋㅋㅋ

-연습 더 하라고 해서 빡쳤자너 ㅋㅋ

관중석을 지켜보던 제리가 버럭 소리치자 관중들이 한참을 웃기 바빴다.

“이 질문을 꼭 드려야 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거든요. 6라운드에서 은신하고 있던 웨이우 선수를 한 번에 잡아내셨는데요.”

-맞아 저거!

-대체 어떻게 알았지?

-혹시 은폐 감지 스킬 같은 거 아니냐?

-와. 그런 것까지 있음 개 십사긴데;

-세상 억울;;

그렇게 편리한 패시브 스킬이 있을 리가.

물론 나중 가면 그런 비슷한 스킬이 나오긴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이 가능한 선수는 내가 알기로 없었다.

“너무 날카롭게 파고들어서 많은 팬분들이 유니크 선수 눈엔 은신 스킬이 보이는 게 아닌가 물어보셨거든요.”

“일단 숨으면 저도 안 보입니다. 같은 조건이죠.”

-그럼 대체 어떻게 찾았냐고!

-저새끼 다 보이면서 거짓말 하는 거야!

-어허. 새끼라니. 유니크님이 니 친구야?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이걸 전부 설명하긴 조금 곤란한데요.”

“아, 그러지 말고 알려주세요. 조금만요.”

“그 당시 상황을 보면 건물 안에 매복을 할 가능성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죠.”

“하지만 웨이우 선수가 바깥으로 나가 저격 포인트를 따로 잡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는데요?”

“그건 감입니다.”

-감이래.

-ㅋㅋㅋ 일단 여기서 절반 걸러짐.

-운이 좋군.

“음. 팬분들이 살짝 동의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요. 일단 그 다음엔요? 매복을 예측했어도 보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위치를 찾긴 힘들잖아요.”

“매복을 한 이유가 확실하니까요. 아군을 미끼로 달려드는 날 잡아보겠다. 건물 안엔 많은 포인트가 있었지만 웨이우 선수가 숨을만한 곳은 그 자리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중요한 비밀이라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왓 더···.

-젤 중요한 걸 안알려주고 가면 어떡해 형;;

-아 ㅋㅋㅋㅋㅋㅋ

-결승전 끝나고 알려줄 거야. 진정해 친구들;;

“예. 결승이 끝나고 나면 조금이나마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휴. ^^;;

-잠 못 잘 뻔 했는데 다행;

-대근본! 킹니크.

잠시 뿔이 났던 관중들은 다시 순한 양으로 돌아가 인터뷰를 마저 즐겼다.

“저도 한 명의 가이아 유저로서 그 노하우가 무척 기대되네요. 그럼 이제 결승전 상대인데요. 바로 내일 VT스타즈와 원라이프의 4강전이 예정돼 있거든요. 일부 팬들은 4강에 두 팀이나 올라온 한국이 세계 최고 리그가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 유니크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건 시기상조 아닐까요. 물론 한국팀 중 한 팀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충분히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생기겠지만···.”

“생기겠지만···?”

뜸을 들이자 인터뷰어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어림없죠. 이번 우승은 S.솔리드가 가져가겠습니다.”

-키아아아아아!

-이맛에 솔리드 팬한다!

-주모~~~!!!

-여기보세요 사람들! 이런 선수가 겨우 열아홉입니다!

-북미의 미래가 밝다!

“결승상대로 누가 올라오든 상관없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아.”

결승 상대로 누가 좋겠냐는 질문을 하려던 인터뷰어는 할 말을 잃고 살짝 허둥거렸다.

“전부 박.살. 내겠습니다.”

*

-아들아! 정말 수고했다!

-경기 첨부터 끝까지 다 봤어. ^^ 근데 왜 그렇게 인터뷰를 무섭게 하니.

-한국 돌아오면 큰일난다 너.

-별 말 안 했잖아요;;

북미에선 원래 이 정도는 패시브로 깔고 들어간단 말입니다!

-형이랑 애들도 잘 있죠?

-말도 마. 아들 미국 보내놨더니 아들이 셋이 더 생겼어!

-애들이 워낙 순해서 잘 있어. 걱정마라.

-그나저나 다음 주가 걱정이네. 우리 아들이 결승전 이기면 손님들 뿔날 텐데.

니콜라이를 통해 전신 접속기 100대를 대량으로 들여왔을 때, 부모님을 통해 캡슐룸을 하나 관리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프로게이머가 PC관련된 사업을 하는 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차피 팀 훈련을 위해 연습실을 마련해야 했고 겸사겸사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일이 힘들면 직원 더 쓰세요.

-그렇게 하마. 그런데 정말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냐? 아쉽지 않겠어?

-엄마는 여기서 그냥 이렇게 보기만 하고 있는데도 관중석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하던데. 한국 오면 새로 시작하는 거잖아.

물론 나라고 S.솔리드를 떠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좋은 팀과 동료를 만나는데도 운이 따라야 한다.

그 점에서 볼 때 S.솔리드는 정말 최고의 팀이었다.

만약 세계 최고 레벨의 리그에서 일등이 되겠단 목표가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쭉 북미의 대표 무도가로 활약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내가 계속 북미에 있는다면 눈독들인 선수를 팀으로 끌어오는데 큰 애로사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민준이 같은 초특급 유망주를 영입하지 못해도 계속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지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다소 회의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제리나 제레미를 포함해 S.솔리드 동료들도 어디 가서 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둔 영입대상들은 분명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작은 차이지만 프로의 세계에선 그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곤 한다.

그 유망주 대부분이 한국 선수였으니 최고의 커리어를 꾸리려는 내 한국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귀국 건은 아직 주변에 말씀하시면 안 돼요.

-그래그래. 이제 결승전 하나 남았으니까 잘하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두고 기다리고 있을게 ^^

-넵.

부모님과 연락을 하고 나니 축하 메시지가 몇 개 더 있었다.

한쪽은 내 팬클럽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같이 있는 방이고.

또 다른 쪽은 가능성2가 보낸 메시지였다.

팬클럽 방은 말이 별로 없는 나까지 세 명밖에 없는 곳인데도 메시지가 수백 개도 넘게 쌓여있었다.

부지런하셔라.

당장 훈련을 시작할 것도 아니라 성의껏 답문을 주고받았다.

***

원라이프와 VT스타즈의 4강전이 시작되던 날.

한국리그 결승전에서 이미 패한 바 있는 VT스타즈는 당시 당했던 약점을 보강해 더욱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작전을 짜는 능력에 있어선 원라이프가 확실히 한 수 위였다.

엔트리 수싸움을 잡고 들어간 원라이프는 개인라운드를 3:1로 마감, 스코어를 앞선 상태로 5라운드에 돌입했다.

-저게 뭐야?

-엔트리 잘못 써낸 거 아냐?

-저 팀은 유독 저런 거 잘 하더라.

팀전이 처음 시작되는 5라운드에서 원라이프는 대표 조합인 스나이퍼 조합 대신 아크나이트 둘, 하이프리스트, 엘레멘탈마스터를 기용하는 변칙 조합을 선보였다.

하이프리스트와 엘레멘탈마스터 모두 팀원에게 버프를 걸어줄 수 있는 클래스다.

두 클래스의 버프를 받아 능력치가 향상된 아크나이트는 철저하게 이세준을 물고 늘어졌다.

아예 대놓고 이세준 봉쇄 전략이었다.

5라운드는 맵이 십만대산이 나온 탓에 VT스타즈가 기어이 승리를 따냈지만 원라이프는 그 다음 라운드에서도 똑같은 조합을 시도했다.

우리의 전략은 반드시 통한다.

될 때까지 간다는 의지가 담긴 엔트리였다.

한 번 패한 전략을 수정 없이 그대로 간다는 건 보통 뚝심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그 무대가 월드챔피언십 준결승이라면 더욱 그랬다.

뚝심이 통한 것일까.

정령의 화산에서 맞붙은 원라이프의 두 탱커는 이세준을 지독하리만큼 붙들고 늘어졌다.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움직여 이세준을 공략했고 이런 수준 높은 합격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세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 인원이 몰리면 다른 쪽은 적은 인원으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

두 탱커가 이세준을 상대하는 동안 원라이프의 간판스타 더원은 하이프리스트를 데리고 2:3으로 분전, 수십만 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가 세계 최고의 마도사라고 말하는 것 같은 플레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VT스타즈가 휘청거리자 팬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다들 주먹을 불끈 쥐고 경기에 빠져들었지만 나는 냉정한 시선으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런 걸 준비했단 말이지?

원라이프가 지금 쓰는 전략.

암살계에 유리한 상성의 아크나이트를 둘이나 기용해 상대방을 꽁꽁 묶어두는 전법은 분명한 효과를 거두었다.

만약 무대 위에 있는 선수가 이세준이 아닌 나였더라도 충분히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즉, 이건 백은하가 내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당신은 막을 수 있겠어? 하고 말이다.

“원라이프가!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합니다!”

패배의 충격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이세준을 무대에 남겨둔 채 원라이프 선수들이 펄쩍 뛰어올라 승리를 자축했다.

월드챔피언십 결승 대진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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