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92화 (92/170)

증명하는 자 (5)

<초대 우승에 제일 가까운 팀은 누구?>

<전 세계 프로팀이 주목하는 S.솔리드 특집 1부>

<가이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며 연신 기사를 훑는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팀원들 전부가 그랬다.

성적이 개판인 팀은 멘탈을 위해서라도 인터넷을 자제하라고 하지만 우리 팀하곤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S.솔리드 이야기는 어딜 보든 전부 칭찬 일색이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한솔이가 100만 달러 받는다고 쓰여 있네?”

“내가 100만인데 그럴 리가 있나.”

“어디서 작년 자료를 가지고 왔어. 댓글 달아야지.”

“야야, 달지 마!”

유럽챔피언 블랙포스를 4:1로 관광버스 태워보낸 날, 북미의 가이아 팬들은 한마음이 되어 감사를 표했다.

-S.솔리드 보유국!

-솔리드가 북미 팀이라서 다행이다

-팀원들 이대로 종신계약 해야 됨

-날 가져요 유니크!

-폐기물을 왜 받아 ㅋㅋㅋㅋ

-벌써 우승한 것 같다 얘들아 크크

흐뭇한 얼굴로 기사와 댓글을 살피는 데 전화가 걸려왔다.

‘가능성 2’였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경기 잘 봤어요.”

가능성 2로 등록해둔 상대는 원라이프팀의 코치 백은하였다.

경기 승리를 축하하며 말문을 연 그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만나서 얘기했던 내용들, 최대한 맞춰볼게요.”

“그 조건을 맞춰주겠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뭐예요. 반응이 왜 그래요? 설마 어차피 못 맞출 계약으로 냅다 던져봤다든지 그런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골탕먹일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 건 아니다.

어차피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원라이프라는 팀의 특성, 대기업의 경직된 구조를 생각하면 일성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인 건 분명했다.

과거였다면 일성이 선수에게 이런 보장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원라이프랑은 같이 일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원라이프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케 답장을 주셨네요.”

“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갑자기 변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경기, 잘 봤어요.”

짧은 한마디지만 충분한 대답이었다.

블랙포스와의 경기를 퍽 감명 깊게 본 모양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그룹스테이지부터 내가 치른 모든 시합은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 있는 자라면 군침을 흘릴만한 퍼포먼스였다.

“그게 전부인가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한 때 최고의 코치로 평가받던 이가 해주는 칭찬은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법이니까.

“그거면 됐잖아요. 제가 원래 선수 칭찬은 잘 안 하거든요.”

왜 모르겠나.

그녀는 선수가 실수할 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독사였다.

당근은 보기 힘든데 채찍은 곧잘 드는 타입이다.

“이세준하고 신경전 하던데 자신은 있어요?”

“게임하면서 그런 거로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당연히 이길 자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죠.”

“참 좋은 이야기네요. 그래서 말인데 다이나믹 G.C, 약점 같은 거 있으면 좀 알려주실래요.”

“이세준 얘기하다 말고 왜 그쪽으로 샙니까.”

“야박하게 그러지 말고 서로 상부상조해요. 전설급 스킬이면 돼요?”

“참나, 절 뭐로 보고.”

아는 대로 얘기해줬다.

물론 도의상 같이 훈련하며 보고 들은 건 묵혀두고 리그 결승전 때까지의 데이터를 조금 흘리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어차피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원라이프가 이길 확률이 더 높았는데 말이다.

“뭐예요. 정보가 이게 전부예요?”

“이번에 다이나믹이랑 같이 숙소 쓰는 건 알고 계시죠. 정보를 더 흘리면 저는 양심을 팔아야 됩니다. 스킬 하나에 영혼을 팔순 없지 않습니까.”

“무슨 영혼씩이나. 완전 바가지 썼네.”

그녀는 약속은 약속이라며 사람을 통해 스킬을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헤르메스 때도 그랬지만 이런 식의 조건에선 내가 아무래도 이득을 많이 보는 모양새였다.

“아무튼 약속 지켜요. 조건 맞춰주는 거니까 무조건 우리랑 계약하는 거예요.”

“예.”

상대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건 아니라지만 아마 백은하는 웃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에게 나는 최고의 카드일 테니까.

그리고 이 계약은 나에게도 나쁠 게 없는, 아주 좋은 거래였다.

자금력 빵빵한 팀이 선수를 위한 계약을 해주겠다는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딨겠는가.

통화를 끊고 난 뒤 다시 기사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행을 위한 일이 하나둘 진행되고 있지만 당장 중요한 건 월드챔피언십이다.

내일 있을 경기는 로열드래곤클럽과 타이탄실드의 8강전.

이 두 팀중 승리하는 쪽이 우리의 4강전 상대가 된다.

아마도 로열드래곤이겠지.

끈끈한 팀플을 자랑하는 중국 1시드 팀.

8강 진출팀 중 최약체로 평가받는 타이탄실드는 로열드래곤의 맹공을 받아내기 힘들어 보였다.

대진을 확인하던 중 시선이 슬그머니 아래쪽으로 향한다.

[원라이프 vs 다이나믹G.C]

[VT스타즈 vs 네버다이 워리어]

이쪽은 한국 팀의 4강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피케가 잘하는 선수인 건 맞지만 다이나믹 G.C는 팀 평균 능력치에서 원라이프에 많이 밀리는 편이었다.

그리고 VT스타즈엔 이세준을 필두로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인터뷰때 딜을 넣긴 했지만 나를 제외하면 선수들 중 이세준이 돋보이는 레벨인 건 사실이었다.

우승까지 단 두 게임.

7판 4선승제 두 번만 이기면 커리어에 빛나는 한 줄을 새길 수 있었다.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팀원들을 불러모았다.

“얘들아. 시합도 이겼는데 훈련이나 할까?”

“왓 더···.”

내 말을 들은 팀원들은 도저히 못 볼 걸 봤다는 얼굴이었다.

***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1회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내줄 수 없었다.

대회에 아예 출전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고등학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월챔은 최고의 선수가 되기로 한 이상 반드시 따내야 하는 커리어였다.

‘미끄러지는 일 없이 한번에 넘어간다.’

날다람쥐를 생각게 하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건물 지붕 위를 날았다.

환영도시에서 벌어지는 6라운드 경기.

상대는 중국 최강이라 불리는 로열드래곤이었다.

개인전 스코어는 2:2.

5라운드 팀전에선 우리가 다시 1승을 따냈고 이제 게임은 매치포인트였다.

단 1승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팀원들은 화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S.솔리드는 이번 게임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 화력조합을 선택했다.

제리와 마이클, S.솔리드가 자랑하는 더블 마도사에 버프가 가능한 하이프리스트 로이, 마지막 퍼즐은 나였다.

로열드래곤이 기동력을 살린 원거리 전투를 좋아하는 탓에 실무아비는 아무래도 효율이 좋지 않았다.

원거리를 생각하면 날 빼고 애덤을 투입해야 하지만 당사자는 물론이고 코치도 나 말고 다른 카드는 전혀 생각지 않는 눈치였다.

어떤 맵, 어떤 선수를 상대로 해도 유니크는 제 몫을 하는 필승카드다.

이것이 가이아 관계자들의 나에 대한 평가였다.

환영도시는 중앙에 있는 점수 발판을 먼저 차지하는 쪽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문제는 발판을 먼저 빼앗긴 쪽이 우리라는 점이었다.

상대의 조합은 다크레인저, 음양사, 엘레멘탈마스터, 아크위자드로 이루어진 완전한 화력조합.

먼저 중앙 발판을 점령한 로열드래곤은 가까운 건물로 빠진 후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시 발판을 차지해 뺏어오긴커녕 들어갔다가 살아나오기도 쉽지 않은 형세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니스를 데리고 왔어야 하는 건데.”

두꺼운 방패가 있었더라면 그 뒤에 몸을 숨겨 어떻게든 전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팀은 넷 모두 몸이 약한 클래스, 대놓고 전진은 불가능했다.

화력으로 맞불을 놓으려 해도 저쪽이 건물을 끼고 방어하는 통에 쉽지 않았다.

“은신으로 숨어서 거점만 다시 가져오면 안 될까?”

“불가능해.”

중앙 거점은 점령할 때 불빛이 하나씩 점등하는 구조다.

거점 탈환 시도가 보이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중앙에 화력을 집중할 테고 그럼 난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그건 그냥 개죽음이지.

결국 이번 경기에서 내가 역할은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건물에 들어가 휘젓는 일이었다.

그림자발자국을 유지한 상태로 건물과 건물을 넘었다.

어차피 은신을 쓰면 눈에 안 보일 테니 편하게 지상으로 이동해도 되지 않냐고 할 테지만 상대 다크레인저의 감이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일정 경지 이상의 톱클래스 사수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움직이는 것까지 눈에 담아 반사적으로 화살을 날린다.

특히 다크레인저의 경우 은폐를 꿰뚫는 스킬이 몇 개 있어 방심은 금물이었다.

건물을 타고 다시 다른 건물로 넘어가길 반복하며 안전하게 거리를 좁혔다.

그사이 팀원들은 나의 잠입을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더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저렇게 건물에 대고 마법을 쏟아내면 금방 마력이 고갈된다.

정말 마력이 필요할 때 눈만 깜빡거리고 있어야 한단 뜻이다.

아마 사정을 모른다면 중국 선수들은 멍청한 짓을 한다며 킬킬거리고 있지 않을까.

이윽고 목표 지점에 도착한 나는 아래쪽을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로열드래곤의 선수들.

냅다 공격할 뻔했지만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하면 정말 질 수도 있었다.

만약 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딱히 극적인 변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기 전엔 패배를 밥 먹듯 했던지라 딱히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은 있었다.

개인전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내가 참여한 라운드에선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는 나의 보이지 않는 갑옷이 됨과 동시에 상대를 압박하는 무기로 변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제일이란 이야기가 있다.

내가 달리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나를 상대하는 선수들은 압박감에 동작이 둔해지곤 했다.

많은 선수들이 나를 두고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1년 차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저 녀석도 언젠간 진다.

운이 지독히도 좋은 루키일 뿐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미끄러지는 날이 온다.

그렇게 무수한 말 속에서 2년 차를 맞이했고, 월드챔피언십까지 왔다.

언젠간 지겠지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생각을 고친지 오래였다.

유니크는 지지 않는다. 불사신이다.

도무지 쓰러트릴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관계자가 우는소릴 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지는 날엔 그 기운이 많이 사라지게 될 터, 나는 그것이 가장 아쉬웠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그 날까지 무패를 이어갈 순 없겠지만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한 명이 없다.

1층 창가마다 자릴 잡고 있는 건 음양사와 두 명의 마법사.

가장 감이 좋은 다크레인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혹시라도 매복하고 내부에 있을 나를 저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건물로 숨어들 것을 예견해 아군을 미끼로 삼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자 피가 차게 식었다.

진짜 거기까지 생각했으면 무서운 놈인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왠지 숨어있는 상대가 진짜 그럴 것 같은 촉이 왔다.

‘촉이라면 나도 썩 나쁘지 않거든.’

수천 번 시합을 하다 보면 찰나의 순간에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몇 번이고 일어난다.

나는 그때마다 괜찮은 결정을 내리는 쪽이었다.

이번에도 내 감을 믿기로 하고 다크레인저가 있을 만한 포인트를 탐색했다.

만약 놈이 숨어있는 게 아니라면, 바깥에서 신나게 아군을 쏘아대고 있다면 이건 아무 쓸모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이 차지한 거점이 신나게 점수를 올려주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변을 탐색, 2층에서도 저격이 가능한 포인트가 없는지 둘러보고 있을 때 눈길을 사로잡는 묘한 곳이 있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모서리지만 그곳이 왠지 시선을 자꾸 끌어당겼다.

‘저기보다 숨기 좋은 포인트가 최소 세 개는 더 있어.’

그런데도 왜 저길까.

잠시 이동을 멈추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을 거듭했다.

두 눈을 감고 집중하자 상대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 장소가 하얗게 빛남과 동시에 주변의 맵 구조물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근처에 창가를 하나 두고 있는 저자리는 1층의 아군을 미끼로 쓸 수 있는 것과 별개로 또 하나의 장점이 있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루트 하나를 확실하게 마크할 수 있다는 점.

1층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루트를 제외하고서도 건물로 진입할 수 있는 루트는 대략 세 개.

저 창가는 그중 가장 어려운 루트를 저격하는 위치다.

스파이더맨쯤 돼야 시도할 수 있는 경로.

놈이 날 고평가 했다면?

나라면 충분히 가장 어려운 루트를 통해 몸을 숨겨 들어오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일 초가 흐를 때마다 적 팀의 점수는 계속 올라간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기에 나는 조용히 마력을 모아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목표는 아무것도 없는 모서리.

벼락처럼 뻗어 나간 붉은 광선에 푹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벽을 때렸으면 절대 날 리 없는 소리였다.

“켁!”

당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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