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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86화 (86/170)

폭탄 (4)

대니얼 감독에 관한 일 처리는 아주 신속하게 진행됐다.

보통 감독이 바뀌거나 해임되는 일이 벌어지면 곧장 기사가 뜨곤 했는데 S.솔리드는 예외였다.

감독이 무릎까지 꿇어가며 발표를 늦춰달라고 통사정을 한 탓이다.

존도 그 정돈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감독을 보냈다.

그렇게 목소릴 키우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잔뜩 몸을 낮춘 사람이 하나 더 생겨났다.

브라이언 코치였다.

이번 일의 중심에 있는 건 감독이었지만 코치도 사실 잘했다고 볼 순 없었다.

폭주하는 감독을 말릴 의무가 그에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그는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안 그랬으면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었을 테니까.

“한솔아. 미안하다!”

감독이 해임당한 그 날 밤, 코치는 곧장 나를 찾아와 무릎 꿇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감독이 계획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단 이야길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코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용서하지 못할 정돈 아니었다.

새벽에 팀원들이 내 방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건 코치가 모른 척 넘어가 준 덕이란 것도 알게 됐다.

잠을 자는 것 같진 않아서 이상하단 생각은 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코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저 줄타기를 했을 뿐이고 능력이 부족한 코치가 아닌 점을 고려하면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남아있는 편이 팀을 위한 길이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선수편 좀 들어주세요. 대표님은 선수 편이거든요.”

“꼭 그렇게 할게. 그렇게 하고말고.”

그렇게 소동이 일단락되며 달력이 11월로 넘어갔다.

달이 바뀌자 각 대륙에선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위한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드권을 받는 각 대륙 4대 메이저리그 여덟 개 팀을 제외하면 전부 예선전 준비에 들어간 상황.

많은 e스포츠들이 상위권 팀만 추려 예선전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가이아는 1부리그에서 뛰는 팀이라면 누구나 예선 참여가 가능했다.

올해 리그에서 꼴찌를 했어도 예선에 참가할 자격 자체는 주어진단 뜻이다.

-요즘 가이아 커뮤니티에선 죄다 월챔 얘기밖에 안 해요. 우리도 나가고 싶은데.

-조금만 참자. 내년부턴 참여할 수 있을 거야.

-저희 2부리그부터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승격하면 1군이잖아.

한창 훈련에 매진 중인 민준이는 세계 대회에 나가고 싶은 열망을 마구 표출했다.

내가 만류하지 않았다면 진즉 어디든 들어가 주전으로 뛸만한 재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수형은 어때?”

“실력은 아직 모르겠는데 체력은 뭐, 문제없어요.”

내년 시즌을 위해 체력 훈련을 시작했던 정수 형의 피지컬은 이제 궤도 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사람 몸이란 게 약을 맞지 않는 이상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곤 하나 사진으로 보는 정수형의 체격은 분명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몰라보리만큼 커져 있었다.

워낙 멸치였기 때문에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다.

격한 운동이 사람 입맛도 바꾼건지 훈련에 동참한 밀러도 이제 어지간한 건 다 잘 먹는다고 했다.

김정수, 김민준, 밀러 호프만, 그리고 나.

아직 S.솔리드에서 할 일이 남아있기에 티는 낼 수 없지만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르는 건 사실이었다.

이 멤버로만 돌려도 2부 리그 박살, 1군 승격전은 껌이었다.

시드권을 제외한 각 대륙 예선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즈음, 시드권 팀들은 운영측이 준비한 캘리포니아 주 경기장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시드권 팀들이 경기를 펼치게 될 그룹 스테이지까진 2주 가까이 남았음에도 미리 비행기에 올라탄 이유는 시차 적응 때문이었다.

적게는 몇 시간, 길면 반나절에 이르는 시차.

갑자기 낮과 밤이 바뀌면 경기력에 영향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리미리 캠프를 차리고 현지 시각에 따라 적응을 시작해야 경기 당일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다른 팀들이 전부 주경기장 근처 숙소로 향하고 있을 때도 S.솔리드의 분위기는 평온하기만 했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는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다.

대회 전날에 슬쩍 이동해도 충분하기에 타 팀에 비해 유리한 부분이었다.

운영측에서 아무리 숙소를 신경 써서 잡아준다 한들 2년 동안 지낸 팀 숙소보다 편할 리 있겠는가.

이제는 숙소가 너무 익숙해서 휴가를 받아 한국에 돌아가도 되려 어색할 정도였다.

여느 비시즌 기간처럼 미개척 지역을 공략하고 있을 때, 연습경기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S.솔리드나 다이나믹 G.C는 시드권을 받아 아직 여유로웠지만 다른 팀은 아니었다.

당장 예선전을 준비해야 하는 관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바쁘신 줄은 알지만 연습 좀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다른 팀하고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선약이 있어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급하다 해서 같이 예선전을 치를 팀에게 스크림을 해달라고 할 순 없는 법, S.솔리드는 최소 본선에 오르기 전까진 만날 일이 없는 데다 실력도 1등이니 많은 요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모든 팀을 다 도와줄 수 없으니 몇 팀을 골라야 했다.

제일 먼저 우리의 선택을 받은 건 레드불스였다.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지만 팀원들은 기왕이면 실력 좋은 팀이 대회에 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누가 하든 간에 미국에서 우승팀을 배출하려면 세 팀 모두 최고의 실력을 지닌 팀이 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레드불스의 경기력을 생각하면 S.솔리드나 다이나믹 G.C 다음으로 경쟁력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 결승을 준비하며 비프로스트 선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상부상조 하는 셈이었다.

‘문제는 저 녀석인데.’

우리와 스크림을 하는 팀들은 연습 퀄리티에 제법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 쪽에 있었다.

스크림을 함께 하는 제레미의 호흡이 영 맞지 않고 있었다.

숙소에 있는 팀원들 중 형식적으로라도 화해하지 못한 친구는 제레미가 유일했다.

내가 발탁했으며 S.솔리드의 무도가 2옵션을 책임지는 기둥.

기민하게 움직이며 화려한 공격을 퍼붓던 녀석의 플레이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부분이 많아졌다.

“너희가 봐도 이상하지?”

“음. 콕 집어서 말은 못하겠는데 컨디션이 안좋나 싶은? 너네 아직도 말 안 해?”

팀원들도 나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건 아닌데 어색한 기류가 분명 존재했다.

보다못한 케빈이 제레미와 나를 화해시키려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녀석은 신경 쓰지 말라며 말을 끊었다.

더 자극하면 폼이 회복되긴커녕 사이클론의 재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팀원들도 입을 다물었고 결국 코치는 로테이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팀전에서만 경기력이 저하되면 전에 그랬듯 실무아비를 기용하면 되지만 개인전 경기력까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코치가 스크림에서 제레미를 제외했을 때, 나는 그를 휴게실로 불러냈다.

“기분 상한 일이 있으면 풀고 가자. 내가 비밀로 한 건 미안해.”

“그런 거 아닌데.”

“아니면 뭔데 그래. 아니라고 해도 너 요즘 경기력이 엉망인 건 알지···?”

자기 슬리퍼 발끝을 쳐다보며 한참을 머뭇거리던 제레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나도 곧 있음 계약 끝나잖아. 그래서 말인데 그냥 이번에 계약 끝나면 형이랑 한국에서 뛰면 안 될까? 같이 말이야.”

맙소사.

제레미는 나한테 화가 났던 게 아니었다.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난 손을 저으며 대화를 끊었다.

“잠시만···.”

제레미의 속내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든 생각은 그야말로 복잡했다.

나한테 화난 건 아니라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 제레미가 같이 한국행에 동참한다면 내년에 있을 그림이 아주 화려해질 거란 생각, 이렇게 선수를 같이 끌고 나가도 될까 싶은 생각 등등. 여러 가지였다.

좋게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제레미의 발언은 분명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다.

얼마 전에 같이 스테이크를 썰며 허허 웃던 해링턴 대표 얼굴도 생각났다.

물론 제레미의 계약은 올해 만료되는 상황이라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다만 도의적인 문제로 대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럼 한국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능력이 출중한 친구를 빼내 가는 그림이 된다.

설령 내게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말이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제레미에게 물었다.

“너 이거 누구한테 이야기했어.”

“아직 아무한테도 안 했는데···?”

“나하고 내년에 같이 게임을 하고 싶다고?”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한국에 가서 어떤 식으로 경기를 시작할지는 알고 있고? 1부 리그는커녕 아마 2부에서 시작할 거야.”

“왜? 형 실력이면 원라이프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원라이프가 싫다고 하면 VT스타즈도 있고 DT게이밍도 있잖아. 아, 그 팀들이 전부 대기업 끼고 있어서 조건 맞추기가 까다로우면 대원eSTAR 같은 팀도 괜찮겠다.”

뭐야. 왜 이렇게 빠삭해?

원라이프, VT스타즈, DT게이밍은 한국에서 1, 2, 3위를 차지한 강팀들이다.

월챔을 앞두고 전력분석팀이 이미 분석을 마친 강팀들이니 이름을 아는 게 퍽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원eSTAR는 아니었다.

대원은 올 시즌 한국 프로리그에서 꼴찌를 했다.

4등, 5등도 아닌 꼴찌다.

전력분석팀조차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쓴 팀이다.

분석팀도 모르는 곳의 이름을 알 정도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미 적지 않음을 뜻했다.

대체 언제부터?

“표정이 왜 그래···? 나랑 같이 게임하는 거 별로야?”

“당황스러워서.”

“솔직히 형이 우리 버리고 간다고 했을 땐 많이 충격이었어.”

“버리고 간다니. 원래 계약이 이랬어.”

“어쨌든! 나도 그냥 올해까지만 하고 계약 종료하려고. 나도 데려가주라. 한국.”

이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월드챔피언십 우승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S.솔리드를 떠나기 전, 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녀석과 같이 한국으로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날 어떻게 기억할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안 그래도 말이 나올 판국에 똥 되는 거지.

제레미의 동행 발언은 터럭만큼도 생각지 않던 것이기에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솔직히 형 빼면 북미에서 나보다 잘하는 무도가 없잖아.”

“없지.”

“형이랑 나랑 원투펀치로 나가면 어딜 가든 강팀으로 만들 수 있어.”

“이건 그렇게 간단히 말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왜? 내가 내 마음대로 계약 종료도 못 해?”

이번 시즌, 내가 S.솔리드에서 차지한 비중은 못해도 3할은 족히 됐다.

그럼 내가 빠져나간 S.솔리드에서 제레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정도나 될까.

‘아무리 못해도 2할 이상. 아니, 3할은 되겠다.’

케빈이나 데니스 또한 S급 선수인 건 틀림없지만 팀전 한정에서의 이야기다.

내가 없는 S.솔리드에서 개인전 S급 카드는 제리와 제레미 뿐이다.

이런 상황에 나를 따라 제레미까지 빠지면 S.솔리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언제나 우승을 거머쥐는 최고의 팀이 아닌, 우승후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여러 강팀 중 하나가 되겠지.

“네 말대로 너랑 내가 같은 팀에서 뛰면 원투펀치로 손색이 없겠지. 그럼 반대로 너랑 내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S.솔리드는 어떻게 될 거 같냐?”

“내가, 아니 형이 그런 것까지 걱정해야 해? 프로는 자기만 생각하면 되는 거 아냐?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나빠. 우리 팀 팬들이 들으면 기절할만한 일이라고 이건.”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도 없다.

팬이라곤 손에 꼽을만큼 적던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한국인인 나도 내가 떠난 뒤의 S.솔리드가 걱정돼. 2년이나 뛴 팀이잖아. 국적을 떠나서 나한테 좋은 기억을 준 팀이야.”

“그렇게 걱정되면 안 가면 되잖아?”

그렇게 이야기하면 답하기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마땅한 답을 찾느라 말을 머뭇거리는 사이 제레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형이 싫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나를 추천한 것도 형이고, 나를 키운 것도 형이잖아. 아, 몰라. 난 따라갈 거니까 마음대로 해.”

이게 무슨···.

대니얼 감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폭탄이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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